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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스토리에 대한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미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베로니카는 제목처럼 시작됩니다. 베로니카가 자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죠. 하지만 베로니카의 자살은 미수에 그치고, 베로니카는 빌레트 정신병원에서 보호받게 됩니다. 소설의 배경이 정신병원인 만큼 독자는 미쳤다는 단어를 자주 보게 됩니다. 정신병원이란 곳은 본인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모아두기 위해 만든 곳이니까요. 그렇다면 `미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서는 크게 두 가지로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구분합니다. (제 주관적인 시점에서 본 것입니다.)
일단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구분법으로는 남들과 같은 방향을 보느냐, 다른 방향을 보느냐입니다. 다른 방향을 보는 사람을 미친 사람이라고 하죠. 본인들이 생각하는 `보통`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미쳤다고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쉽게 적으로 간주하고 무리에서 밀어냅니다. 본인들과 다른 사람을 무리에서 밀어내는 게 `보통`인 거죠. 이처럼 사람들은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간단하게 적과 아군을 구분지어버립니다.
소설에서는 이것을 넥타이로 형상화했습니다. 정상인은 넥타이를 넥타이로 인식하지만 미친 사람은 그저 알록달록한 천조가리로 인식하죠. 재미있는 건 `보통`과 같아도 적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게 바로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또 다른 구분법이죠. 바라보는 방향 자체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만, 숨기느냐 드러내냐에 따라 정상인이 되고 미친 사람이 됩니다. 숨기는 사람은 미친 사람과 같은 것을 욕망하면서도 아닌 척, 고결한 척 연기를 합니다. 미친 사람이 넥타이가 어디에 쓰는 물건이냐고 물으면 아무 쓸 데도 없는 물건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말이에요. (넥타이에 관한 것은 여러 관점으로 다르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결국 아무 쓸 데도 없다고 볼 수도 있고, 미친 사람에게 있어서 쓸데없는 물건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얼마 전 재미있는 실험 동영상 하나를 본 적이 있는데, 군중심리를 실험한 동영상이었어요. 실험은 간단합니다. 4~5명 정도의 사람들을 엘리베이터에 배치합니다. 그리고 그 엘리베이터에 실험 대상이 타면 배치된 사람들 모두 똑같은 행동을 하는거죠. 예를 들어, 우리는 보통 엘리베이터를 타면 엘리베이터 입구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실험에 배치된 사람들에게 입구 반대쪽을 바라보도록 지시했죠. 모든 사람이 보통과 다른 방향을 보고 있음에도 실험 대상 역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방향을 바라봤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어요. 엘리베이터에 혼자 있을 때는 아주 당연히 입구를 바라보고 있던 실험 대상이었는데, 엘리베이터에 한 두 사람이 타더니 결국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입구 반대쪽을 바라보자 불안해 하다가 결국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향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이 실험이 보여준 것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가 보여준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소설 속 정신병원에서도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빌레트 정신병원은 아주 보안이 아주 열악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자유롭게 탈출할 수 있죠. 그럼에도 빌레트를 탈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전직 변호사였지만 공황장애로 빌레트에 들어오게 된 마리아는 자신의 병이 다 나았음에도 빌레트를 나가지 않습니다. 시도해 보려고는 했지만 결국 빌레트 병원의 이고르 박사를 찾아가 다시 공황장애에 결렸다며 입원하기를 원합니다. 마리아 뿐 아니라 빌레트에 입원한 모두가 빌레트에 있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빌레트 안에서의 자신은 남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죠. 빌레트 밖에서의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에 미친 사람 취급을 받지만, 빌레트 안에서는 미친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거기에 소속감을 느끼고 안도합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강연을 듣거나, 무리를 짓고, 토론을 하는 등 빌레트 밖에 생활과 똑같은 생활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빌레트 안의 생활이 쾌적하다고 믿고 있죠.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죠. 마리아는 본인이 느낀 것들을 쪽지에 써서 전하지만 그들은 마리아가 완전히 미쳐버렸다고 말할 뿐입니다. 미친 사람이 보통인 그곳에서 완전히 미친 사람은 그들과 다른 사람인거죠. 빌레트 밖에서 보통 사람들이 본인들을 미친 사람 취급했듯이 말이에요.
사람은 다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장 고결하면서도 가장 천박한) 성적인 욕망은 더더욱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같진 않겠지만 적어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욕망을 겉으로 내보이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미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죠. 지금 미쳤다고 생각하는 해괴한 행동이라도 모든 사람이 그러한 행동을 한다면 그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 미친 사람이 되겠죠. 과거 미쳤다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던 화가가 타계한 뒤 각광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죠.
저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이고르 박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고르 박사가 독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거죠. 알고는 있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이고르 박사가 정신 병원 환자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사실 이 책이 미쳐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 그런지, 읽고 나서 나도 미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0.1초 정도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습니다. 하지만 그 뿐이고 저는 베로니카가나 에뒤아르가 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 또한 죽을 때까지 넥타이를 맨 이고르 박사로 남겠죠.
이번에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고 파울로 코엘료작가에게 또다시 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