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 (윈터 리미티드 에디션) 세계문학의 천재들 1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완전한 삶을 욕망하다

- 파스칼 메르어 『리스본행 야간열차』



완전한 삶을 구성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나오는 프라두가 던진 질문입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정말 누가 봐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그들 나름대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도 있죠. 제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몇 명 있습니다. 누구나 그들의 삶을 부러워하죠. 하지만 그들 중에서도 완전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저마다의 고민이 있죠. 과연 프라두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사람이 존재할까요? 제 생각에는 누구도 자신의 삶이 완전하다고 대답하지 못할 것 같아요. 저 또한 완전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우리는 왜 완전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까요? 완전한 삶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완전한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01.

그 중 하나는 욕망입니다. 흔히 쓰는 말로 인간의 욕망엔 끝이 없기 때문이죠. 하나의 욕망이 충족되면 또 다른 욕망이 필요하고, 또 하나가 충족되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곧 또 다른 욕망의 대상을 찾게 됩니다. 욕망의 대상이란 우리가 소유 가능한 유형의 것이 될 수도 있고, 사랑, 우정, 분노와 같은 무형의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프라두는 욕망의 대상 중 가장 고차원적인 것이 자화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때의 자화상은 그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하는 자신의 모습을 뜻합니다. 프라두의 말을 빌리자면 자신의 인생이 어떤 상(像)으로 충족되길 바라는 욕망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런 고차원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만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페르소나란 타인에게 보여주는 모습과 자신이 알고 있는 본인의 모습이 일치하지 않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가면을 쓰고 있는 거죠. 


이는 이 소설이 제시하고 있는 핵심 문제이기도 합니다. 제 주관적인 의견입니다만 페르소나는 자화상말고도 또 다른 욕망과 얽혀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문화적 욕망과 말이죠. 문화적 욕망은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자신도 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예쁘고 멋진 연예인이 입은 옷을 나도 입고 싶다거나 TV에 방송되고 있는 음식을 보고 나도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페르소나와 문화적 욕망이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는 이유는 페르소나가 ‘닮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닮고 싶은 모습의 가면을 쓰는 것이죠. 


하지만 페르소나 또한 완전하지 않습니다. 본연의 자신이 아닌 충족되지 못한 욕망일 뿐이기 때문이죠. 이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두 주인공, 프라두와 그레고리우스가 괴로워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죠. 사실 자화상이 충족된다 해도 이 둘의 괴로움은 가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욕망이 그들의 머릿속을 헤집을 테니까요.



02.

이 외에도 중요한 욕망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먼 욕망이죠. 바로 삶과 죽음입니다. 이는 완전한 삶을 이루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삶과 죽음이 왜 완전한 삶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가 될까요? 우리 삶은 유한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책 속의 문장을 인용하자면 `죽을 운명이라는 인식은 종이로 만든 느슨한 끈처럼 우리를 감싸고 있어 피부에 거의 닿지 않는다.` 이게 바로 죽음이죠. 언젠가는 죽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것은 아주 멀리,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가 SNS를 보며 시간을 낭비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또 다른 인물, 조르지는 자신의 삶을 죽음에서부터 보며 괴로워합니다. 삶을 죽음에서부터 계산하며 살아간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공포에 떨며 모든 시간에 연연하게 되겠죠. 프두의 말처럼 인간은 인생이 가볍든 힘들든 가난이든 부유하든 관계없이 더 많은 삶의 요소를 원하며, 또 죽고 나면 모자라는 인생을 더 이상 그리워 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삶과 죽음은 매우 멀리 있는 것 같아 제대로 생각해 보기도 전에 바로 눈앞에 있는 문제에 얽매이게 됩니다.



03.

사실 현대의 젊은이들은 완전한 삶을 생각해 볼 겨를도 없습니다. 한 세기 전에는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본인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게 현실입니다. 저보다 더 쾌적한 삶을 살아가는 친구들에게 ‘그래도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좋겠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획일화된 사회 속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데 유리한 페르소나를 만드느라 혹은 문화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급급한 나머지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거죠. 그런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하면서도 사회의 행렬을 따라 그저 열심히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철학자 페터 비에리(필명 파스칼 메르시어)가 쓴 소설입니다. 철학자가 쓴 만큼 인문학적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딱딱하기만 한 소설은 아닙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 그레고리우스를 따라 프라두의 인생 그리고 리스본을 여행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완전하진 않더라도 내 삶을 채우는 요소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내가 가장 욕망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레고리우스와 함께 여행하며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요?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으실 때에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한 문장 한 문장 꼭꼭 씹어 삼키시기를 권합니다.

http://me2.do/xeD1tg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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