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목구멍 속의 유령 ㅣ 암실문고
데리언 니 그리파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8월
평점 :
목구멍 속의 유령
A Ghost in the Throat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사랑하고
그러기를 멈추지 못하고
그런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에드 시런 Ed Sheeran을 한참 즐겨듣던 시절이 있었다. 옛날 하림 느낌이랄까. 골웨이 걸 Galway Girl은 아일랜드 여행을 하면서도 참 많이 들었다. 기억에 남는 아일랜드의 풍경들. 둔 앵거스 절벽의 바람과 middle of nowhere에 있던 벽돌로 지어진 아늑한 에어비앤비 숙소, 흑맥주, 그리고 황량한 벌판. 데리언 니 그리파의 책을 읽으며 그날의 풍경들이 떠올랐다. 건조한 언덕과 마른 풀들 그리고 바람과 소리.
마음에 언어를 품고 시를 쓰는 사람들에게 모국어는 숨을 쉬는 방법과 다름없을 것이다.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시인에게 시의 심상은 어떤 언어로 찾아오는 걸까. 시가 언어를 선택하는 걸까, 언어가 시를 선택하는 걸까. 데니언 니 그리파의 심상의 씨앗은 오늘 아침 자고 일어난 흐트러진 잠자리에서, 아직 빵 부스러기가 남아있는 아침의 식탁에서, 바닥에 흐트러져있는 장난감을 담는 바구니에서 자라난다. 어제 같은 오늘을 맞이하며, 내일이 오늘 같지를 바라지 않는 여성의 자아에서 시의 씨앗들이 싹튼다.
누군가의 옷을 개는 동안, 심장에 단단히 품어진 텍스트들은 셀 수 없는 사소한, 하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을 수행하는 동안 부드럽게 자란다.
"이것은 여성의 텍스트, 죄책감과 욕망에서 태어나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에 꿰매진 텍스트다."
매일 같은 아침을 단순한 말들이 채워진 목록을 천천히 지우는 일에서 기쁨을 느끼지만 서서히 증발하는 자아에 절망한다. 깊이를 모르는 어두운 수렁 안으로 가라앉으면서도 작가는 글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이 아니었다. 낡을 대로 낡은 커다란 점퍼 한 벌이었다. 솔기들은 다 닳아 해졌지만, 그런데도 이 옷은 너무 편안해서, 너무도 부드럽고 안락해서, 나는 그 부드러운 덩어리 속에 영원히 파묻혀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뼛속까지 지친 채로도 대체로 만족한 채 지냈다."
오래지 않아 삶의 욕망과 삶에 대한 의지는 작가를 집에서 몰아내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으로 몰아간다. 좋아하는 작가에 무서울 정도로 천착하며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 본인의 삶을 재건하기 시작하는 여정의 끝에서 여성의 몸으로 쓰이는 여성의 텍스트는 다른 수많은 여성들에게 각자의 깊이만큼의 울림으로 전달된다. 새로운 말들을 찾아 떠나는 그 길에서 새로 시작하는 노트의 첫 문장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 채로 다시 시작되는 여성의 텍스트이다.
#목구멍속의유령 #데리언니그리파 #을유문화사 #암실문고 #책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