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만장일치로 유죄 파기한 ‘양승태 대법원’ 굴욕 자초

 2017-08-30 21:26 교보블로그에 실렸던 글

 

 

[원세훈 대선개입 유죄] 민낯 드러난 사법부·검찰
대법, 전합 만장일치로 이례적 파기환송
대선 댓글파일 증거에서 배제
“박근혜 정권 눈치보기 판결” 비판

논란 부른 1심·파기환송심
1심 “정치개입 맞지만 대선개입 아냐”
파기환송심 김시철 재판장 시간끌기

검찰, 윤석열 내친 뒤 감싸기 수사
채동욱 사퇴·수사팀 공중분해
되레 민주당 의원들 기소하기도

2015년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가 열린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 양승태 대법원장이 참석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이 걸린 국가정보원 정치·선거 개입 사건은 결국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난 뒤에야 네 번째 사법부 판단을 통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수사부터 재판까지 4년 남짓한 기간은 정권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정보기관과 수사기관, 사법부의 민낯을 드러낸 ‘치욕의 시간’이었다. 수뇌부가 수사를 방해한 검찰, 정권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내놓고 심리를 노골적으로 지연한 사법부 모두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 전합서 만장일치 파기… 박근혜 ‘임시정통성’ 연장해준 대법원

“최고 사법기관에서 나왔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의 판단이다.”

2015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일영 대법관)가 만장일치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 개입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자 법조계에선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대법원은 유무죄 판단을 하진 않았지만, 유죄 판단의 결정적 근거가 된 국정원 트위터팀 직원의 전자우편 첨부파일 2건(‘425지논’, ‘시큐리티 파일’)을 증거에서 배제하며 사실상 항소심 결론을 뒤집었다. 재판연구관 경험이 있는 한 부장판사는 “통상 결론이 같으면 일부 증거관계 판단이 달라도 파기하지 않는 게 일반적인데, 지엽말단적인 데 집중해 유무죄 판단도 미뤘다. 살아있는 권력에 밉보일 수 없으니 하급심에 책임을 떠넘긴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고 했다.

전원합의체(전합)에서 만장일치가 나온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상고사건은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를 먼저 거치고, 한명이라도 반대 의견을 내면 전합으로 간다. 법률과 같은 구속력이 있는 대법원 판결은 특히 전합을 거치면 무게감이 다르다. 새로운 판례를 내놓거나 기존 판례의 법리를 변경하는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전합으로 간다. 국정원 사건은 그런 경우가 아니었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당시 일부 대법관과 재판연구관(판사)들 사이에서는 “소부에서 판단해도 충분한 사안을 전합까지 와서 골치 아프게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소부의 반대 의견 등이 있어 전합을 열어놓고 소수의견 하나 없이 13 대 0 만장일치가 나오는 건 모순적이란 지적이 나왔다. 결국 양승태 원장 체제의 대법원이 합심해 박근혜 정부의 ‘임시 정통성’을 연장해준 셈이 됐다.

■ ‘지록위마’·심리 지연… 진실 규명 외면한 사법부

2014년 9월, 1심이 같은 댓글 활동을 두고 정치개입은 맞지만 대선개입은 아니란 판단을 내놓자 “술 먹고 운전해도 음주운전은 아니란 말”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김동진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통신망에 “상식과 순리에 어긋나는 지록위마(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함)의 판결”이라고 비판하자,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위원장 민일영 대법관)는 “법원 위신을 떨어뜨렸다”며 정직 2개월 처분을 내렸다. 증인에게 “늙으면 죽어야 해요”라고 말한 법관이 견책 처분에 그치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최근 감봉 4개월 징계를 받은 데 비하면 강도 높은 징계였다.

나중에 대법원에서 사건을 돌려받은 서울고법에서도 파행은 계속됐다. 파기환송심 재판장을 맡은 김시철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1년7개월 동안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끌다가 지난 2월 정기인사에서 다른 재판부로 전보됐다. 김 부장판사는 법정구속 상태인 원 전 원장을 보석으로 풀어줬고, 재판에서 국정원의 댓글공작을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탄력적 용병술’에 빗대는 등 공정성을 의심케 하는 재판 진행으로 구설에 올랐다.

■ 수사팀 공중분해, ‘달 가리키는 손가락’만 기소한 검찰

사건이 여기까지 온 데는 애초 떠밀리듯 미적지근하게 수사를 벌인 검찰의 ‘공로’도 크다. 2013년 6월 황교안 장관이 이끌던 법무부는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것 자체에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해 9월엔 정권 등 외압으로부터 수사팀 바람막이 역할을 하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자 의혹으로 옷을 벗었다.

검찰 수뇌부가 수사를 방해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윤석열 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장(현 서울중앙지검장)은 2013년 10월 상부의 허가 없이 국정원 직원들을 체포하고 압수수색을 했다는 이유로 직무에서 배제됐다. 윤 전 팀장은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며 압력을 넣었다고 그해 국정감사에서 폭로했다. 이후 법무부는 윤 전 팀장에게 보고 절차 누락을 이유로 정직 처분을 내렸고, 특별수사팀 소속 검사들을 지방으로 인사발령 내 수사팀을 사실상 해체했다. 수사팀 단성한, 김성훈, 이복현 검사 등은 원 전 원장 재판이 열릴 때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힘겹게 공소유지를 했다.

검찰은 달이 아니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주목하기도 했다. 2015년 6월, 검찰은 18대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 오피스텔을 찾아간 민주당 의원 4명 등을 공동감금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은 지난달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반면 댓글 작업을 주도한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에 대해선 기소유예 처분했다가, 민주당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인 법원 명령에 따라 이들을 기소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 황당증언에 자료제출 거부… 수사·사법기관 농락한 국정원

수사과정과 법정에서도 국정원은 실체적 진실 규명에 적대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국정원 직원들은 법원의 증인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거나 증언 거부, ‘모르쇠’ 답변으로 번번이 재판에 훼방을 놓았다. 1심 재판 때 증인으로 나온 심리전단 안보5팀(SNS팀) 소속 직원들은 “이메일을 안 써서 (내 계정이 맞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2011년 연말) 당시 소속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트위터 자체를 잘 모른다”는 황당 답변을 내놓다 재판장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파기환송심 땐 잇따라 불출석하거나 증언 거부로 일관하면서 제대로 된 증인 신문이 이뤄지지 못했다.

수사 초기부터 안보5팀 직원 명단과 트위터 계정 목록을 보내달라는 검찰 요청을 무시하던 국정원 기조가 수사 협조로 급선회한 것은 정권이 바뀌면서부터였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는 최근 국정원이 2009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30개 ‘사이버외곽팀’을 꾸려 정치·대선개입한 정황을 담은 자료와 원 전 원장의 불법 지시가 담긴 2009~2012년 전 부서장 회의 녹취록 등을 검찰에 제출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09010.html?_fr=st1#csidxb665272415b1a4e9fc4e6ce2a7e4c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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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숨은영웅' 안병하 경무관

 2017-08-22 21:31 교보블로그에 실렸던 글

 

 

경찰, 5·18 '숨은영웅' 안병하 경무관 흉상 제작한다

http://v.media.daum.net/v/20170822180755922?rcmd=rn#none

한영익 중앙일보입력 2017.08.22. 18:07 수정 2017.08.22. 18:14

고 안병하 경무관. [사진 경찰청]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어기고 시민들을 보호한 고(故) 안병하 경무관의 추모 흉상이 세워진다. 경찰청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숨은 영웅’인 안 경무관의 추모 흉상을 세우기로 결정했다고 22일 밝혔다.

1979년 2월 전라남도 경찰국장으로 임명된 안 경무관은 부임 1년 3개월 만에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맞게 된다. 당시 신군부는 안 경무관에게 강경 진압 및 발포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그는 “우리 경찰이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시민에게 어떻게 총을 들 수 있느냐”며 경찰이 소지한 무기를 회수하고 부상 당한 시민들의 치료를 돕도록 했다.

안 경무관은 시위 관리를 할 때도 시민들과 학생들이 부상을 입지 않도록 하라고 부하들에게 당부했다고 한다. 안 경무관은 5·18 때 명령을 어긴 일로 직위해제를 당한 뒤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는 이후 후유증으로 시달리다가 1988년 10월 숨을 거뒀다.

2006년에야 순직 처리된 안 경무관은 현재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돼있다. 충남 아산의 경찰교육원에는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한 ‘안병하 홀’이 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안 경무관은 6·25 전쟁에도 참전해 북한군과 맞서 싸웠다고 한다. 경찰 생활은 1962년 장교 특채로 시작했다.

안 경무관은 살아있는 동안 5·18 때 시민군과 대치하다 숨진 고 정충길 경사, 강정웅 경장, 이세홍 경장, 박기웅 경장 등 후배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후배들의 추모식을 꼭 치러달라"는 그의 유지에 따라 지난 5월 서울 현충원에서 이들에 대한 추모식이 열리기도 했다.

안 경무관의 흉상 설치 장소 등 세부적인 내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안 경무관 유족 및 그의 생전 근무관서였던 전남청과 협의해 흉상 설치 장소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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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기념일, 건국절 논란 관련 기사

 2017-08-16 19:21 교보블로그에 실렸던 글

 

 

 

건국기념일, 보수세력은 왜 이리 무리할까

미국 건국기념일이 주는 교훈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51361&PAGE_CD=ET001&BLCK_NO=1&CMPT_CD=T0016

 

 

 

류석춘 "대한민국, 사람으로 치면 1919년 임신한 것"

문 대통령의 "건국 100주년" 발언에 반발, "건국과 건국 의지 밝힌 것은 다른 것"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51170&dable=3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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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고영주, 이명박근혜 부역자이자 현대판 친일부역자"

   2017-08-11 14:18 교보블로그에 실렸던 글

 

 

"이인호·고영주, 이명박근혜 부역자이자 현대판 친일부역자"

[KBS€MBC 피해자 증언대회] ③ 역사왜곡 증언
 
'KBS·MBC 정상화 시민행동'은 지난 7월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KBS·MBC 피해자 증언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지난 9년여간 KBS와 MBC의 의제 왜곡, 편파보도, 무(無)보도로 인해 큰 피해를 당한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있었습니다. 이 피해는 특정 단체나 집단에 대한 피해를 입힌 것이 아니라, 우리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것입니다. 이에 'KBS·MBC 피해자 증언대회'에 참석한 9명의 언론 피해 증언을 모아 기고문 형식으로 연재합니다.

▲ 2011년 6월 24~25일 방송된 KBS 한국전쟁 61주년 다큐멘터리 <전쟁과 군인>(2부작)

▲ 2011년 9월 28~30일 방송된 KBS 특집다큐멘터리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초대대통령 이승만>(3부작)

 
친일에 민간인까지 학살한 백선엽, 국방부도 못 건드리는 '우상'

KBS가 2011년 백선엽 장군과 이승만 전 대통령을 찬양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봤으니, 이에 대한 언급을 먼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백선엽은 현재 살아있습니다. 1920년생이니, 몇 년 후면 100세입니다. (필자는 2011년 당시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을 맞아 국방부 관계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때 국방부 고위 관계자에게 들으니, 백선엽이 거의 매일 출근한답니다. 서울 용산 국방부 건너편 전쟁기념관에 자기 전용 방(국방부 군사편찬위원회 자문위원장실)이 있거든요. 국방부 관계자들이 백선엽의 친일, 간도특설대 활동, 한국전쟁 당시에 민간인 학살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는데도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다. "백선엽이 살아있는 한 자기들은 어떻게 못 한다." 이것이 국방부 관계자가 저에게 밝힌 입장입니다. 백선엽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로 바꿀 수도 없고,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38선을 돌파한 날인 10월 1일로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알고는 있구나. 모르면 문제인데 알고는 있으니까 백선엽이 죽으면 해결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습니다. 백선엽은 사후에 서울시 동작구 국립묘지에 안장됩니다. 국립묘지가 지금 만원입니다. 안장할 공간이 없습니다. 그러면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전 국립묘지도 거의 공간이 부족해 경북 영천에 있는 국립영천호국원에 안장되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백선엽만 예외적으로 서울 국립묘지에 자리를 예약해놨습니다. 국립묘지 관리권이 과거에는 국방부에 있었는데, 민족문제연구소가 문제제기를 해서 노무현 정권 시절에 관리권이 국가보훈처로 이관됐습니다. 국립묘지는 국가보훈처가 관리합니다. 그런데 서울시 동작구에 있는 국립묘지만은 국방부가 한사코 관리권을 포기하지 않아서 여전히 국방부가 관리합니다. 국방부 깃발이 휘날리고 있고, 그래서 이미 만원임에도 불구하고 백선엽의 안장 공간을 예약해 놓은 상태입니다. (국방부는 2010년 '한국전쟁 60돌'을 맞아 기념사업의 하나로 백선엽 예비역 대장을 명예 원수(5성 장군)로 추대하려다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미흡하다"며 태도를 바꾼 바 있다.)  

이런 과정을 보면, 백선엽에 대한 국방부의 우상화 작업이 계획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동상을 세우면, 그 사람은 보통 독재자거든요. 이승만이 그랬고요. 백선엽은 대통령도 아니었는데, 지금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 '백선엽 동상'(2011년 제막)이 있습니다. 원래 전신상을 만들려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파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발하니까 부조로 만들었어요. 2분의 1 정도로 규모가 줄어든 겁니다. 그래도 여전히 살아있는 자의 부조가 존재하고 있죠. 이 부조가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파주에는 개성공단을 바라볼 수 있는 도라산 전망대가 있고, 남북통일의 상징인 개성공단으로 가는 통일대교가 있죠. 바로 이 옆에 '백선엽 부조'가 있는 겁니다. 민주주의를 반대하고 통일을 반대하며 민족의 화해를 방해하는 인물, 지금도 왕성하게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그 인물을 찬양하기 위해 KBS가 백선엽 미화 다큐인 <전쟁과 군인> 방송을 만들었습니다. '백선엽 다큐'가 상영되기까지의 이런 맥락은 꼭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할아버지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자 뉴라이트 선봉에 선 이인호

▲ 역사왜곡 증언 중인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민언련

현재 KBS 이사장은 이인호죠. 이분도 친일과 관련해서는 빼놓을 수 없습니다. KBS의 이인호는 과거에 러시아사를 전공했습니다. 엄혹한 시절에 러시아사를 전공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많은 대학생들, 진보적인 지식인들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런 공덕인지 몰라도 김영삼 대통령 시절 주 핀란드 대사에 이어 김대중 대통령 시절 최초로 여성 러시아 대사까지 역임하면서 여러 감투를 쓰신 분이죠. 그런데 그 정도 했으면 물러나야 되는데, 성에 안 찼는지 입장이 변했습니다.

입장이 눈에 띄게 변화된 시점은 명확합니다. 2009년에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었고 거기에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친할아버지인 이명세가 등재된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 이인호는 좌파와 싸워야 된다는 식으로 입장의 변화가 있었던 겁니다. 이러한 생각을 KBS 이사장 되기 전부터 공개적으로 발언합니다. 발언 내용은 백범 김구에 대한 폄하, 전반적으로 독립운동가에 대한 폄하로 이어졌습니다.  

이인호의 할아버지인 이명세는 독립운동가이자 성균관대 초대 총장인 김창숙 선생을 몰아내는데 앞장선 사람입니다. 유교계 친일파의 대표적인 인사지요. 그런 부분에 대해 문제 제기가 되자 억하심정으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독립운동에 대한 폄하가 시작되었고 뉴라이트의 선봉이 되었고, 건국절을 주창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어느덧 '이승만 칭송자'가 됐습니다.  

'1948년 건국설'에 '이승만 우상화'까지, 이인호 망언만으로도 KBS 이사장 그만둬야

이인호가 한 말 중에 가장 참담한 망언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망언만 가지고도 지금 당장 KBS 이사장 자리에서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라고 이야기했냐면, 바로 이런 맥락의 이야기입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만들어졌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될 때까지는 김구가 독립운동 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3년 동안 미 군정 시기에 극한의 좌우 대립 속에서 빨갱이들로부터 나라를 구한 사람은 이승만이고 그 과정에서 김구는 아무 역할을 하지 않았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건국되는 과정에서 김구는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김구는 좀 빠져줘야겠다. 건국의 주인공은 바로 좌파와 싸워서 우파의 나라를 만든 이승만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훈장도 줘야 된다'는 취지입니다.  

쉽게 말해서 법을 바꿔서라도 서북청년단들에게 훈장을 줘야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일련의 아주 잘 짜인 각본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세력, 이인호는 그 세력의 주인공 역할을 한 것인데요. 대한민국헌법 전문을 보면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헌법 정신을 부정하는 이인호는 KBS 이사장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것 하나만 가지고도 퇴진 투쟁을 벌여야 하는 수준입니다. '백선엽·이승만 다큐' 방영 당시 "KBS가 NHK냐!"라고 항의하는 구호도 있었습니다만, 일본의 NHK도 천황주의자들을 옹호하지는 않습니다. 

다음은 이인호 발언 중 일부를 정리한 것입니다. 

"말 나온 김에 김구 선생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분은 아마 대한민국 화폐에 얼굴이 실리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을 거다.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가로 끝나야 할 분이다. 살아생전 대한민국 체제에 대해 반대한 사람을 어떻게 대한민국과 결부시킬 수 있는가."(2007년 11월 20일 자 <연합뉴스> 인터뷰 중)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가로 끝나야 할 분", "살아생전 대한민국 체제에 반대한 사람을 어떻게 대한민국과 결부시킬 수 있는가"(2007년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 공동준비위원장 역임 당시 발언)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 독립을 반대한 분이기에 대한민국 공로자로서 그를 거론하는 게 옳지 않다", "상해 임시 정부는 임시 정부로도 평가받지 못했고, 우리가 독립국 국민이 된 것은 1948년 8월 15일 이후"(2014년 10월 22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출석해 한 발언)

MBC 고영주 이사장, <친북인명사전> 기획했던 사람 

이제 MBC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지금 MBC가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으로 이사 갔는데, 개인적으로 상암동에 가기가 싫은 이유가 MBC 근처에 박정희 기념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암동에 가면 답답함을 느낍니다. 박정희 기념관에다 MBC까지 있어서 말입니다. 사실 MBC는 2002년 3월 <뉴스데스크>에서 '청산해야 할 역사 친일파'라는 제목으로 여덟 번에 걸쳐 기사를 내보내며, <친일인명사전> 발간의 필요성에 대해 여론을 환기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당시는 엄기영 앵커 시절이었고, 많은 기자들이 참여했습니다. 특히 현재 투병 중인 이용마 기자와 함께 경남 밀양에 내려가 취재한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저는 MBC가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기여했던 언론으로 기억하는데, 그 이후에는 너무 망가졌습니다.

현재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고영주라는 변호사인데요. 이분도 민족문제연구소와 악연이 있습니다. 수구 논객인 조갑제는 "친일보다 친북이 더 나쁘다"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그런 영향인지 고영주는 실제로 2009년 국가정상화위원장을 하면서 <친북인명사전>(정식 명칭은 <친북반국가행위자인명사전>)을 기획하면서 예비 명단을 발표했는데, 우리 시대의 주요한 원로 민주화 인사, 언론운동 인사가 대거 들어 있었습니다. 항간에는 <친북인명사전>에 빠진 사람들이 많이 서운해했다고 합니다. '내가 삶을 제대로 못 살았구나'라는 자괴감에 빠졌다는 우스갯소리와 함께요. 결과적으로는 <친북인명사전>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영주의 행위로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명예가 훼손됐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고영주는 MBC 이사장 자격이 없습니다. 오히려 명예훼손 당한 분들이 집단소송을 해야 될 상황입니다.  

▲ KBS이사회 이인호 이사장(왼쪽)과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고영주 이사장(오른쪽). ⓒ프레시안


이인호·고영주는 현대판 친일 부역자, '명확'하고 '신속'하게 청산해야


결국 KBS의 이인호와 MBC의 고영주, 이런 사람들은 '이명박근혜' 정권의 부역자이자, 현대판 친일 부역자나 다름없습니다. 프랑스의 콜라보라시옹(Collaboration, 나치 협력자) 청산 등 세계 역사상 많은 과거사 처리 과정을 보면 원칙이 있습니다. 명확성과 신속성입니다. 두루뭉술하게 하면 안 됩니다. 누가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잘못했는지를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 그리고 빨리해야 됩니다. 지금 친일파 재산의 국고 환수가 이뤄지지 않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너무 늦었기 때문입니다. 친일파 후손들이 친일의 대가로 물려받은 재산을 선의의 제3자에게 매매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우여곡절 끝에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출범해서 친일파들의 재산 환수를 시도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고 오히려 그동안 친일파들에게 시간을 충분히 벌어 준 겁니다. 

또한 과거사 청산은 물적 청산과 인적 청산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런데 KBS, MBC를 대상으로 어떻게 물적 청산을 하겠습니까. 결국 인적 청산만이 남습니다. 그 인적 청산만이라도 명확하고 신속하게 이뤄졌으면 합니다.  

과거사 청산, '국방부'가 나서는 시대정신이 필요하다 

끝으로 과거사 청산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프랑스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프랑스 국가기관으로부터 자료를 제공받아 작년 11월 '콜라보라시옹 € 프랑스의 나치 부역자들 1940~1945'라는 전시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전시회는 프랑스 정부가 2014년 해방 70주년을 맞아 자국에서 전시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당시 이 전시회를 주최한 기관은 다름 아닌 프랑스 국방부였습니다. 친일파 청산 전시회를 대한민국 국방부가 주최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프랑스 등 나치에게 침략당한 여러 유럽 국가에서는 상식입니다. 즉 ,당시 나치에 협력한 행위는 프랑스 입장에서 보면 전쟁 기간에 적국에 협력한 반역 행위이자 전범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나치 청산의 주관 기관은 국방부가 맡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에겐 이런 관점이 없습니다. 친일에 대해 너무 관대하다 못해 몰역사적이기까지 합니다.

KBS와 MBC에 남아있는 적폐 청산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거기다가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을 고민하다가 저들에게 신분 세탁할 시간을 줘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끝으로 1911년 신해혁명을 이끌어 중국을 민주공화국으로 만든 쑨원의 유언을 덧붙이겠습니다.  

"혁명은 아직 성공하지 않았다. 동지들이여 여전히 노력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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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라는 것!

   2009-08-15 19:52 교보블로그에 실렸던 글

 

 

 

 

인내 그리고 참을성은 어디까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어떤 한계를 넘어서까지 해야 하고, 하게 되는 것일까?


힘이 없어서?

두렵고 불안하고 무서워서?

무력함 때문에?

용기가 없어서? 용기일까 무모합일까는 모르겠고...

기대하는 것이 있어서?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너무도 일방적인 자기 밖에 모르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다.

특히 가족에서, 가까운 관계에서...

병리적 나르시시스트들과 경계선장애자들이라고 하는가?

그렇게 바쁘면 일을 조금 줄이면 될터인데 남을 밟고 희생시키면서까지

일을 늘리는 특별한 이유는 무얼까? 그리고 그것을 선전도구로 내세우는 이유는?  돈 욕심? 돈이 곧 힘이니까? 아니 성취지향적인데서 자기존재가치감의 추구 아닐까? 그리고 소비로 만족시키려는 마음의 굶주림을 앓는 이유는?

분명히 무지 때문인 것 같은데...

현대사회를 나르시시스트들, 마키아벨리주의자들, 사이코패스들의 양산의 사회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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