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그리고 가학증

 2010-01-07 23:51  교보블로그에 실렸던 글

 

 

용서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듭디다.

용서라는 개념을 깊이 인식하기 위해 관련 서적도 많이 사서 읽고 좀 더 확장시켜 인지치료의 개념으로 접근도 해 보지만 정말로 쉽지 않은 일입디다. 용서를 하는 이들의 모습은 옛 사람들의 포기와 체념의 삶에서 보았다고나 할 수 있습니다. 현대에서는 그리 좀처럼 보기가 어렵더군요.


 
간단하게 말해서 용서란 사건이나 사람의 이면을 이해하는 일 그리고 집착하지 않고 떠내 버리는 일, 원망과 보복(복수)을 포기(체념)하는 일로서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엄청난 파괴적 속성의 힘을 갖는 내적괴물로부터 벗어나 편안한 마음으로 회복하는 일이라고는 하나, 용서하기 전에 분노와 증오감 등의 감정들을 해결해야 하고, 가학증과 감정적 협박을 무작위로 당한 경우에는 깊숙한 마음 속에 있는 깊이 난도질 당한 상처자국들을 벗어나기가 용이하지는 않습디다. 외상후 스트레스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이런 때마다 증오와 보복과 격분으로 전율하는 나 자신의 내면을 있는 그것들을 힘을 다해 붙잡고 있느라고 거의 모든 에너지가 다 동원되다시피 하더군요. 가학과 감정적 협박(위협)을 하는 이들은 그것을 하면서 즐기고 통쾌해 하면서 이를 더 강화시키고, 그럴수록 살아있다는 희열과 가치감을 느끼는지 아주 재미있어 하는 악마의 모습(놀이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거의 미친 상태를 보입니다. 상대를 무력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란 방법들은 동원할 수 있는 어떠한 수단이라도 거의 모두 동원하는 것이 바로 가학증에 빠진 이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은 부부와 가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결국 이런 곳들에서 가끔은 대형사고가 발생하는 이유들이 바로 가학증과 무력감(무가치감) 간의 전투가 되겠겠지요. 동족상잔이 잔혹한 이유도 바로 혈육이라는 개념에서 오는 당연과 기대와 증오를 기반으로 하는 가학이기 때문일 겁니다. 사람이 가장 타락한 상태가 바로 가학증에 빠진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놀면서 쾌감을 느끼고 재미있어하는 것이니까요. 가까운 우리 역사 속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장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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