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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끓는 시간 ㅣ 사계절 1318 문고 19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2001년 7월
평점 :
요즘처럼 압력밥솥이나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는 시대에도,
밥냄새는 여전히 너무 좋다.
엄마가 밥을 하던, 제가 안치던
밥이 끓는 냄새를 엄마냄새, 사람 사는 냄새로 여기는 순지.
이 책을 읽는 내내
작가는 요즘 이 시대의 불행이란 불행,
돌봐 주는 부모 없는 어린 여자 아이가 지게 되는 모든 짐들을
낱낱이 밝혀 놓는 것만 같았다.
아빠는 일자릴 잃고 빚이 늘자 폭력남편이 되었고
엄마는 그런 남편을 묵묵히 참아주다 아빠가 바람 피우는 걸 알고는 자살해 버렸다. 순지는 살림은 물론 어린 남동생 순동이를 돌보느라 학교에도 가지 못한다. 아이들의 놀림은 순지에게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더큰 문제가 엄청난 크기로 다가와 있기 때문에.
축사같은 집에 머물며 살다 어느날 새어머니가 들어오고, 아빠와 불화로 새어머니는 갓난 순달이를 남겨놓고 사라져버린다.
이 뒤에도 줄줄이 이어지는 부모없는 아이의 몫.
그 무게란 엄청난 것이었는데도, 순지는 담담한 목소리로
혼자서 하나하나 나누어보고 합쳐보고 곱씹어보며
스스로 소화해내고 인생을 그렇게 살아간다.
그 중 가장 큰 힘이 되는 건
밥이 끓는 냄새, 그 시간이다.
부엌에서 밥끓는 냄새가 난다는 건
먹을 밥이 있다는 걸 의미하고, 밥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의미하고, 같이 먹을 가족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밥이 끓을 때마다 실어증을 앓을 때에도 어김없이 밥솥앞에 앉아 지키던 엄마의 앉은 모습도 함께 본다.
그렇게 밥을 끓이던 순지는 오늘아침 출근했다가 돌아온 아버지를 맞듯이 그렇게 한참만에 돌아온 아버지를 맞는다.
"아빠 배고프죠?"
슬픔과 초월이 묻어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