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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 1 - 묻혀진 역사
고정욱 지음 / 산호와진주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요즘 이순신에 대한 드라마도 많고, 책도 새로이 많이 나온다. 이순신과 함께 역사에 등장하나 그리 좋은 평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원균'에 대한 소설이 나왔다길래 너무 기대되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전에 읽었던 김훈의 칼의 노래가 생각났다.
일단, 칼의 노래는 이순신의 일기인 난중일기를 소설화한 것이고, 원균은 원균에 대한 여러 가지 기록을 모아 쓴 소설이다. 역사적으로 이 둘이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 책을 읽기도 전에 원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려진대로 이순신을 모함한 자였는지 얼마나 궁금하고 또 설레였는지.
사람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원균 1-묻혀진 역사를 꺼내 들고 정독한다. 처음엔 그날 따라 맘이 싱숭생숭해서였는지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원균의 측근이었던 자가 ‘이선’이라는 사람에게 원균 이야기를 해 주는 액자식 구성이라 그랬던 것 같다. 액자식 구성은 이야기에 몰입이 좀 힘들다고 느낀다.
일단 줄거리를 보자면,
원균은 이 작품 초반에서는 우리나라 북쪽 땅에 자주 침범하는 여진족으로부터 고을을 지키는 장수였다. 그 용맹하기가 하늘을 찔러, 말을 타고 여진족의 진으로 쳐들어갈 때면 언제나 앞장서서 적을 물리쳤다. 여진은 원균이 자기들과 맞서게 될 때마다 원균을 몹시 두려워하여 잘 되지 않는 발음으로 ‘엉규이다, 엉규이 왔다’하며 도망가기에 바빴다.
그 후 몇십 년이 지나,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을 무시하고 오랜 태평한 세월을 보낸 조선은 왜란에 휩싸이기 직전. 이 때 선조는 부랴부랴 이순신을 전라 좌수사로 임명하고 원균을 경상우수사로 임명한다. 둘은 거의 비슷한 등급의 지위에 있게 되었지만 이순신은 좌의정 유성룡의 뒷받침으로 그야말로 지방 현감에서 전라 좌수사로 초고속 승진을 한 것이고 나이도 원균보다 다섯 살이나 어렸다. 더구나 후에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원균의 상사가 된다. 하지만 두 장수 모두 공과 사를 구별하는 장수였기 때문에 함께 작전에 나가 적들과 싸우는 데 있어서는 별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원균은 성격이 불같아서 싸움에서 항상 앞장을 서고 두려워하는 것이 없었고, 그에 반해 이순신은 신중하기가 이를데가 없어 하늘이 무너질까 ‘장대라도 들고다닐’ 지경이었다. 그러니 둘이 안 맞을밖에.
더구나 둘의 협공으로 이긴 첫 승리를 이순신이 자기만의 승리로 왕에게 보고해버림으로써 원균과 이순신 사이에는 그 때부터 깊은 골이 패이게 된다.
그 후 우여곡절끝에 왜란이 끝나고 두 장수가 모두 전사한 후, 선조는 권율과 함께 이순신, 원균을 모두 1등공신으로 삼는다.
일단, 그 전에 나왔던 ‘원균, 그리고 원균’을 읽지 않고 이순신에 대한 내용만 알고 있던 나로서는 이 이야기가 굉장히 새로웠다. 역사 소설의 특성상 논픽션적인 면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액자식 구성으로 제 3자가 원균에 대한 이야기를 문헌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균’은 소설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처럼 다가왔다. 그에 반해 칼의 노래는 이순신 개인의 입장에서 쓴 1인칭 일기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 그리고 지은이 김훈의 멋진 문체가 인간 이순신의 마음과 심정을 나타내는 데 두드러진다는 점 때문에 읽는 감동은 벅찼지만 객관적인 ‘사실’처럼은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속의 이순신과 원균은 용맹하고 영민한 장수였지만 ‘신격화 된 영웅’으로는 그려지지 않았다. 화자인 원균의 아들의 친구였던 ‘이극주’도 이순신의 실수 뿐 아니라 원균이 둘의 관계에 있어서 잘못한 점에 대해서도 인정한다. ‘이극주’가 이 이야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이순신을 이유없이 모함하고 방해했다는 원균에 대한 세상사람들의 오해를 풀고 그 두 영웅을 올바르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요즘 드라마 등으로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 일색인 가운데서 이순신에게만 치우쳐 있던 시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균형을 잡아간다고 느꼈다. 평소에 생활하면서도 한쪽 이야기만 듣고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독자가 양쪽 의견을 다 듣고 판단할 수 있도록 논픽션이나 소설에서도 이처럼 항상 새로운 연구와 도전이 이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