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의 토토 - 개정판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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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설의 의의를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면 대부분이 서정을 어쩌고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이해할 것도 같았다. 어느 하나를 좋아하고 동경하게끔 하는게 서정을 어쩌고일까.

저자 구로야나기 테츠코의 어린 시절을 쓴 창가의 토토는 서정감?에 젖게했다.

도모에 학원의 아이들이 지금도 서로 만나고있다는 것이 너무나 부럽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다만 아이들이 순수하구나... 생각하면, 나만 그런가?

'요즘은 안그렇겠지.'

무엇보다 저자가 하는 말이 가장 좋았다. 공부만이 행복한 길이라고 믿는 것...

그게 아니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어른이 된 토토도 구입해야지.

마지막으로 창가의 토토 후속편들을 소개해 놓은 사이트주소를 적는다. 복사하든 말든..

http://kin.naver.com/db/detail.php?d1id=11&dir_id=110103&eid=48QA1pF4i0Iu/eoXpj6B6V0b+9OhW//9&qb=w6KwocDHIMXkxeQgvcO4rs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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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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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살면서 얻는 아이디어는 비슷하다. 이 책의 저자는 조카와 말을 할때, 노인이 젊은 사람에 친절에 끌려 갈 이유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듯

나도 그런데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다만 나는 얻기만 할뿐이지 아무것도 못한다.

이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도서관에서 몇 번 본적이 있었다.

나무, 나무2.  대체 뭐하는 책들인가 대충 훑어봤지만 이해가 안갔었다.

나무2에서 한국독자가 쓴 글들을 모아놓은거라고 나온다. 그리고 아쉬운점에서 인생에서 쓴맛 어쩌고 그런게 나온다. 읽어봤다. 나무2.. 뱃살, 키우는 뭐뭐.

다 참신했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나무를 읽어보니 아쉬운점을 알 것 같았다.

나무에서보자면 사람의 어두운 면이 많이 나온다. 사람이 아닌 개체가 보는 사람.

잔인하고 이해할 수 없고.

어려운 쪽으로 가겠고, 능력도 없어서 이정도쯤만 해둔다.

그는 능숙한 소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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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엘리 위젤 지음, 김하락 옮김 / 예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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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차 세계대전때 히틀러의 유대인 말살 약속에 의해 가족과 강제수용소에 끌려가 겪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은이 가족이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첫번 째 강제수용소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 있던 어느 유대인이 그들을 향해 소리친다.

"여기 왜 왔어? 대체 여기 뭐하러 왔냐고? 아무것도 모른단 말야? 우리가 잡혀온지 4년이 지났는데!"

그리고 병자와 스프와 빵을 주기 아깝다고 판단하게된 허약자는 굴뚝, 화장장안에 들어가 불살라진다.

많은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매일 타죽는다.

건강한 유대인은, 노동, 작업반같은데에 들어가 강제 노동을 한다.

<노동은 자유를 준다>

거기서 유대인은 약한 자들이다. 하느님에게 믿음을 구하며, 기도하며 불살라진다.

지은이, 엘리 위젤은 유대인의 종교에 깊게 심취한 소년이었다.

그는 하느님의 침묵을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

말 그대로 거기서 겪고 일어났던 일들은 지금으로서는 생각하지 못한다.

장면이 나와도 머릿 속으로는 상상이 될뿐, 정작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그랬다. 이건 끔직한 일이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죄책감을 느낀다던가 하는건 아니지만.

그랬다가 결국 서로를 의지하던 부자가,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지은이가 양심의 안에 있는 '이젠 자유로워졌다' 에서, 거기서 모든 것이 올라왔다.

성악설이 맞는 말일까. 인간은 원래부터 악하다는. 아니, 어쩌면.

지은이는 그런 걸, 아버지의 빵과 스프를 가로채야 되는데.. 라는 감정을 느끼고 죄책감을 느낀 후에, '나는 평생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아니 대사가 조금 달랐는데.

지은이는 처음 수용소에서 엄마, 누나들과 떨어졌다. 여자들과 떨어졌다.

그들이야기는 그 후부터 안나온다. 끝나갈때도 언급이 없는 걸 보면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후에 겪은 일중 몇 가지를 지은이가 조사해봤으니까, 거기에 대한 걸 책에도 써줬으니까.

여기서도 느꼈다. 폭력이 지배하는 사회는 무섭다.

지은이가 그런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는 아버지때문이다. 그 둘은 마지막순간까지 서로를 놓지않았다.

지은이가 죄책감과 괴로움을 겪으면서까지 아버지를 챙기려고했다. 겉으로나, 때론 진심으로나.

침묵은 결과적으로 가해자를 도와줄뿐이라고, 연설문의 일부에서 발췌한다.

 

따로 옮긴 이가 인상깊어한 구절을 적어본다.

 

우리는 희생자 앞을 지나갔다. 두 사람은 이미 숨이 끊어졌다.

그들의 혀는 축 늘어진 데다 부풀어 오르고 푸르스레했다.

그러나 세 번째 밧줄은 아직 움직이고 있었다.

너무 가벼운 그 아이는 아직도 숨을 쉬고 있었다.

소년은 우리가 보는 앞에서 30분 넘게 몸부림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우리는 가까이서 소년을 보아야만 했다.

내가 지나갈때도 소년은 살아 있었다. 혀는 아직도 붉었고,

눈도 여전히 감기지 않았다.

내 뒤에서 아까 그 사람이 다시 묻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님은 어디에 있는가?"

그때 내 안에서 어떤 목사리가 대답하는 것을 들었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여기 교수대에 매달려 있지."

그날 저녁 수프는 시체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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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그 잃어버린 진실
스티브 비덜프 지음, 박미낭 옮김 / GenBook(젠북)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죄송합니다. 9일날 받았는데 하루 늦었군요. 제가 게을렀다는걸 아시겠습니다.

 

 

 

 

 

지금의 남성들은 문제가 있다. 나는 내 주의에서도 몇 번 보았는데도 다른 사람이 겪는 일을 실감하지 못했다고할까?

나만 그런줄 알았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는걸 아는데도 말이다.

첫 장 '문제점들'에서 내가 겪은 걸 정확하게, 아니면 나보다더 깊게 나온 것에 감탄했다. 괜히 이렇게 유명해진게 아니구나.

성인의 삶을 시작할 무렵 남자들이 선택하는 가면, 일중독자, 멋쟁이, 착한 녀석, 강인한 남자, 신세대 남자.

착한 녀석은 실제 내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해야되는지도 모르고 그냥 착하다는 소리를 듣겠다는 욕심에.

그 욕심은 표면적인 것 뿐이라고 해야되나? 실제로 원하는건 이 책에서 말하듯 야성적인 남자였다. 난 인디언이 나오는 책이 정말 좋았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 열광하고 눈물흘렸다. 이상적인 삶.

내 경우 주변환경의 억압으로 인해 착해졌다(지금은 아니다. 내겐 부모님이 새로운 얼굴의 믿을 수 있는 심리상담가나 마찬가지다).

 

'여자들의 적은 자신들을 둘러싼 세상에 있고 남자들의 적은 자신의 심장속 벽안에 감추어둔 그것에 있다.'

나는 책에서 제시한 위 문장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여자들의 적이 세상에 있는 것은 남자들이 세상을 구성하기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들의 문제점은 자신의 심장안에 있다.'

성차별적인 발언으로 생각하기 보단 과거의 남성들의 지위와, 사회에서의 뭐 그런걸 생각해주길 바란다.

 

이렇듯 첫 장에선 문제점을 제시해 놓은 걸로 끝난다.

 

2 장은 성숙한 남성이 되는 일곱 가지 단계.

 

아버지가 필요하다는 것에, 2 장은 내가 읽으며 울었던 부분이다. 남자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반항하고, 커서 성범죄자, 아내폭행자가 되는 것은 자신이 괴롭기 때문이라는 것. 안으로만 쌓아두고서. 이해 할 것 같았다.

학교는 남녀 공평이라는데 여자들은 나이 많은 여자들과의 관계가 깊다. 남성보다 긴밀하고 광대한 영역을 가진다.

그것은 이해가 어려워서 안했지만 학교에 여자교사만 있는 것은 이해가 갔다.

남자아이들은 결코 자신의 남성성을 여성교사에게서 배울 수 없다.

여성교사를 좋아하고 그들을 따르기위해 남자아이는 자신을 여성성에 맞추게 되어, 여자들을 배려하며 부드러운 남자가 된다.

그러나 인간적 뭐 어째고 했는데 5일 동안 읽다 보니 내용이 다 기억이 안난다.

 

여기서 깊이 공감했던 것은 '우리 젊은 청년들이 잘난 척, 즐거운 척 행동하지만, 삶의 무게가 차곡차곡 쌓여 자신들을 짓누를 때가 되면 그들의 결핍은 좀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스티브 비덜프는 굉장한 사람이다.

 

3장과 4장은 개인을, 자기 자신이 변화할 부분이 나타났다.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 남자들을 위한 해방.

대략적으로 남자들을 위한 해방의 소주제들을 쓰자면 '페메니즘은 남성들을 위한 운동이아니다.''심오한 남성성''무엇이 잘못되었는가?''아버지결핍증''자유의 다른 반쪽'

아버지 결핍증은 정말 울게 만드는 거다. 이걸 읽고 아빠와 같이 살자고 말했다. 그 외에도 몇 년만에 운건지 시원했다는 건 느끼지 못했지만 내게 변화가 오긴 왔다. 조금 더 긍정적이게 된것.

 

5장은 섹스와 영혼.. 인데 자신의 성적 정체성 속에서 안정감 찾기를 제외하곤 전부 이해하지 못했다.

이 장을 읽기 전엔 확실히 나는 저런 짓이 나쁘고 추하고 사악하고 비참한 짓이라고 강압적인 생각을 해왔다. 이유도 없이.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역시 책에서 제시해줬으며, 그게 날 긍정적이게 만들었다.

'싸구려 포르노나 성에 관련된 미디어물이 청소년들을 비참하게하고 ... '

 

6장은 재미있게 읽었다. 남성과 여성

남자의 폭력을 중단시키기, 자신의 아내와 맞서는 법, 길고 어두운 밤을 통과하기 등등.

여기서 남자의 매력이 뭔지 알았다. 내가 그럴거다. 제대로 된 이해는 못했지만.

 

7장과 8장은 참된 아버지가 된다는 것, 소년들을 위한 좋은 학교 만들기.

 

당신의 아들이 동성애자라면? 이라든가 아버지 부재의 시대, 남자들과 소년들은 왜 갈라섰는가, 의존과 보호.

 

서평이란게 객관적인 글이라던데 그렇게 하자면 이 책의 서평은 너무나도 길어지고 처음써보는 거라 내 느낌식으로 밖에 할 수가 없음을 양해해주길.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궁극적으론 행복이다. 사회에서의 편견과 비난 받고 핍박 받는 소수자가 얼마나 괴로울지 여기서 알게되었다.

그렇지만 이게 실현이 될까. 만약 이 책이 전 세계에 퍼지고 인간 50% 이상이 이책을 읽고 이 생각과 같이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그만큼 힘들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편견과 유교 뭐지. 그것이, 본인들은 부정하고 있는 것일까? 그때 괴롭지 않았나 하는 것을.

아니면 단순히 사춘기때의 과민반응인건가.

 

소년들을 위한 좋은 학교 만들기에선 교장의 역할과 여성 교사와 남성 교사의 비율을 3:1이라도 해 놓는게 좋다고 나와있다.

 

9장은 진짜로 좋아하는 직업 찾기.

저당의 덫을 경계하라, 일에 마음을 쏟아 붓기, 동료애, 복종의 상징, 은퇴-모욕과 낭비, 팀으로 인하는 즐거움 등등.

 

복종의 상징이 재미있었다. 넥타이는 모든지 시키는대로 따르겠습니다를 상징한다고 했다.

태우라고 나온다. 아니면 토마토줄기를 묶는데 쓰라던가. 때때로 나오는 장난스런 말이 참 재미있다.

 

은퇴는 나도 이렇게 안되도록 경계해야지를 생각케했다. 사회에서의 은퇴는 되지만 인생에서의 은퇴는 하지마라.

 

10장과 11장은 진정한 남자친구들, 남자의 야성.

 

성인식이라는 것에대해 나왔다. 고대의 성인식이나 현대의 성인식이나 놀랄만큼 유사한 것과 예시같은 것들.

 

 

궁극적으로 이 책에서,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시대의 남성들은 책에서 말하는 야성적인 남자가 되야한다는 것.

 

폐허의 시간이라는, 작가의 삶을 예를 들었다. 아내가 유산을 하고 6개월동안 침대에만 있고 싶어하다가 슬픔을 통해 조금씩 나아졌다.

즉, 나는 겸손해졌다.

 

고통을 받아야만 성숙해진다는 것엔 깊이 공감하고있다. 여기서 작가가 경계하라는건 좌절.

아무런 상태도 나아지지 않는 좌절은 하지 말라는거다. 슬픔을 통해 밖으로 분출해야만 된다.

 

숲, 자연을 먹고사는게 마음이라 했다. 그래서 음악, 시, 문학, 글 모두가 자연의 대체품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그래서 해변에 가는거고, 국립공원에 그렇게 많이 가는거다.

 

 

솔직히 란 말로 시작하는게 안어색하지만 어쨌든 다 이해하지 못했다.

기회를 내서 더 읽어봐야 될 것 같다.

 

 

 

 

 

 

이곳에 어른이 많은데 반말쓴게 마음에 걸립니다. 그렇지만 저는 학교에서도 뭐 발표할때 반말로하고 반말로만 해와서 하는 법을 몰라 양해해주세요. 이건 채팅에 가깝죠.

마지막으로 이 책의 각장의 뒤에는 요약과 다른 말들이 있습니다.

다른 말들도 재밌더군요. 특히 '사내녀석들이 다 그렇지 뭐'라는 책 제목이 너무 웃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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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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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장님들만 있는 곳에선 외눈이라도 볼 수 있는 자가 왕이지."

엄청 거북했다. 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거지? 소설에선 살고 있는 사람들만 보여준걸까?

움직일 능력이 없는 그런사람들은 다 죽었겠지?

눈이 먼 이윤 무엇일까. 백색으로 보이는 실명 전염병.

아주 복잡한 깊이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읽고 느낀거라곤 수용소에서 집단 강간을 한 사내놈들을 저주하는 것과

남편이 다른 여자와 합체를 하는 것을 보고도 그들을 이해했다는 것에대한

의사 아내(실질적인 주인공)의 깊이였다.

의사 아내는 이끌었다.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을.

결국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게 되어 그 수용소를 탈출했고, 그들의 살던 집으로 같이 몰려갔다.

성당의 동상들이 모두 눈이 묶여있다는 대목이 나올 때 왠지 무서웠다.

그리고 마지막 눈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하는, 백색 실명 전염병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곳에서

의사 아내의 "이제 내 차례구나.."

소름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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