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미식수업 - 먹는다는 건, 진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후쿠다 가즈야 지음, 박현미 옮김 / MY(흐름출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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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 의식주(衣食住). (아마 내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인간 생활의 3요소인 '..'에 대해서 처음 배운다. 인간이 기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이 세가지 요소는 단골 학교 시험 문제일 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국가의 3요소인 국민, 주권, 영토만큼이나 내 기억에 중요했던 시험문제 필수 예상 문제로 남아있다.) 인간의 역사는 늘 생존에서 삶으로의 질적인 변화를 추구해온 역사다. (세계 모든 지역이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소위 산업발전을 이룬 국가의 경우, ..주의 개념은 생존이 아닌 풍족한 삶을 대변하는 바로미터가 되었다.)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는지, 그리고 어느 동네의 어느 아파트 단지에 사는지(), 그리고 얼마나 외식을 자주하며 그 외식으로 무엇을 먹는()지는 (보이지 않는) 구별이라는 이름의 가면을 쓴 차별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중 특히나 식()문화는 처한 환경과 지역의 특수성에 따라 가지각색으로 발전하였다. 단순히 먹는 일()에서 음식이 가진 고유의 풍미 느끼고 음식을 요리라는 질서로 만들어내는 일 -미식(美食)- 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여전히 우리 다수는 생존을 위해 살아가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먹는 일에서 예술로서의 환희와 아름다움을 느낀다.) 

 

 

이 책은 미식가인 저자가 음식을 즐기는 법 -저자는 이 즐기는 미식의 과정이 곧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음식을 즐기는데 있어서 총체적 감각을 사용(할 것을 요구)한다. 저자는 이 서평의 도입부에서 내가 잠깐 언급했던 인간 생활의 세가지 요소인 의..주를 음식을 향유하고 즐기는 인간다운 삶이라는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먹는다'라는 행위를 곧 삶이자, 하나의 스토리를 지닌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확장한다. 함께 음식을 먹는 사람, 요리를 담는 식기의 중요성, 가게와 음식에 따라 미식가가 갖추어야 할 적절한 복장, 맛의 기억, 더 세세하게는 그릇과 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와 울림, 질서가 결여된 음식이 가지는 카오스의 의외성 등등 요리는 준비하고 먹고 느끼고 계산하고 소화시키는 과정까지의 모든 것을 미식수업이라고 이야기한다. (, 이 책은 주로 가게에서 돈을 지불하고 사먹는 요리에 대한 언급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요리를 만드는 과정과 설거지를 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설거지의 과정까지가 음식을 먹고 향유하는 과정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부분에 대한 기술이 없는 것이 조금 아쉽다.)

 

 

이 책의 저자가 음식(요리)을 대하는 태도는 남다르다. ()을 단순히 먹는 행위 혹은 영양소의 공급이라는 생물학적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먹는다는 행위를 구성하는 요소를 음식에 담긴 사람, 분위기, 태도, 그릇, 재료, 가공방법 등등으로 세심하게 고려하여 설명하고 있다. 마치 잘 짜여진 각본으로 완성되는 한 편의 영화처럼, 그리고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소리의 사각거림, 소품의 디테일, 인물의 표정을 타고 흐르는 묘한 긴장,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내는 공기를 담는 예술 영화처럼 저자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유려하면서도, 담담하고, 평범하면서도 극적이다.

 

 

저자는 프렌치(프랑스) 요리가 담고 있는 요소들을 마치 긴장감 넘치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음미하듯이 서술하는데,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얼마를 주더라도 그 가게에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마치 홈쇼핑 상품의 마감 임박을 외치는 쇼 호스트처럼, 아니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에 침을 흘리는 것처럼 그 가게에서 파는 요리는 무엇일까?” 궁금해서 미치게 만드는 힘이 느껴진다. (이 책이 사진집에 아니라 에세이이기에 책 속에 등장하는 요리에 관한 사진이 거의 없다. 그렇기에, 그것이 오롯이 요리를 표현하는 저자의 글빨(?)에 기대게 만든다. 어쩌면 책을 읽기를 멈추고, 요리 이름을 구글링(googling) 하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홈쇼핑처럼 자극적이고 광고적인 홍보성 어투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마치 밀당을 하는 연인처럼 내가 이런 데에서 이런 걸 먹어봤는데~ 그거 굉장하더라! 궁금하면 가보던가~”라는 자세를 취하는데, 그것이 때로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럽다. (그의 어투에는 일본인 특유의 겸양(이라고 불리는 개인성)이 묻어나면서도, 때론 까칠하면서 단호한 자기의 주장이 드러난다.) 이것은 독자에게 나쁜 남자가 주는 까칠하고, 불친절한 이름의 알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나는 저자의 이 태도가 나는 이렇게 음식을 나의 존재가치처럼 중요하게, 풍부하게 음미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일종의 잘난 척(?)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저자의 잘난 척의 내용, 즉 요리가 품을 수 있는 다양한 함의(공간, 관계, 식기(그릇), 기억과 추억, 요리사의 품격, 복장과 스타일, 가격, 매너, 풍미(냄새) )를 마치 켜켜이 풍미가 배어든 코스 요리처럼 다채롭고 정교하게 엮어가기에 오히려 그 잘난 척에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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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의사들 - 그곳에 히포크라테스는 없었다
미셸 시메스 지음, 최고나 옮김 / 책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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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교사, 목사..

 

아무나 해서는 안되는 직업이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난 저 세 직업군만은 아무나 하지 않길 바란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살아있지 않은 의사는 한 사람의 몸을 망가뜨린다. 파스텔로찌의 애정이 사라져버린 교사는 한 아이를 괴물로 만들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없는 목사는 한 사람의 영혼을 지옥으로 인도한다.

 

이 책은 의료행위의 긍국적인 목적인 생명을 살리는 것!이 사라진 의사(라고 불리는 괴물)들을 다룬다. 그들에게 인체는 생생한 결과를 가져다 줄 실험재료일 뿐이며, 생명은 온 오프 스위치처럼 그들 손에 놓여진 바퀴벌레의 운명 같다.

 

"자신의 편견을 검증하고 싶었다"라고 저자가 머릿말에 밝힌 것처럼, 나도 이책을 읽으며 나의 과학적 호기심과 사람다운 삶과 생명 윤리를 다시 점검하고 싶었다. (반면교사처럼 인간의 지혜로움이 묻어나는 행동이 있을까? 만약 실제의 삶에 적용한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한때)과학도로서의 삶을 꿈꾸었던 나는, 최소한의 양심과 지적 호기심 사이에서 어떠한 선을 넘어버린 죽음의 천사들의 생생한 민낯을 보았다.(글인데도 생생하다. 그리고 그 죽음의 천사들의 실제 민낯을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그들의 실물 사진을 보기위해 각챕터마다 구글링을 했다.)

 

치료가 아니라 감염을 목적으로 연구했던 의사들, 권력을 위해 자신의 과학적 지식을 사용한 의사들, 생명의 천사이기 보다는 죽음의 천사로 살아가기를 기꺼이 즐겼던 9명의 의사(라 부르기엔 적절치 않은 사람)들이 이 책에 나온다.

 

한나 아렌트가 그녀의 책 <예루살렘의 아히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에 대한 정의를 했다면, 이 책의 저자인 미셸 시메스가 언급한 9명의 의사들의 '악의 평범성'이란 명제를 증명하는 매우 적절한 실례임을 증명한다.

 

저자는 세계 2차대전 독일 나치 치하의 의사들이 (자의이자, 타의로) 자행했던 인체 실험들을 생생한 미사여구로 묘사하기 보다는, 담담하지만 객관적인 문체로 된 의사 소견서 같은 보고서를 보여준다. (물론 프랑스인 특유의 예술적인 감성과 유머가 문장 곳곳에 묻어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주제 자체를 침범할 정도로 가볍거나 희화화 되어있진 않다.)

 

이 책은 과거 독일 나치의 역사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의술이 인술이 아닌, 상술이 되어버린 지금의 현실은 윤리와 양심을 저 뒤편으로 던져버린 힘러와 맹겔레, 하임의 모습과 닮아있다. 과거의 '나쁜 의사들'이 과학의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인간을 도구화 했던 것처럼, 지금의 우리 또한 행복이라는 미명하에 인간을 돈의 가치와 바꾼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그 선서의 정신을 계승한 '제네바 선언'에는 의학(醫學)의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치료 혹은 지식으로서의 의학과 기술 혹은 행위로서의 의술, 그리고 덕목이나 윤리로서의 의덕(醫德). 즉, 이론(의학)과 실천(의술)과 도덕(의덕)이 치우침없이 균형잡힌 것. 그것이 의사가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임을 알려준다. 이론과 실험 정신은 넘치지만, 의덕을 저버린 9명의 의사들은 미치광이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이 되어버렸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과연 나쁜 의사가 되지 않았을까?' 자문해 본다. 전쟁이라는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 그 속에 놓여진 인간이 선택한 여러 선택항 중 하나였겠지만, 그들의 행위는 반드시 변명보다는 용서를 구해야 하는 반인륜적 행위임이 분명하다.

뉘른베르크 강령과 페이퍼 클립 작전 이야기는 아직 복구되지 못한 역사의 흔적이다. 마땅히 행해져야 할 사과와 적절한 처벌의 자리에 어처구니없는 변명과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적 계산만이 존재한다. 책을 읽으며 우리가 울분이 터지는 이유는 그것에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9명의 죽음의 천사(혹은, 사형 집행인)은 감추어진 우리 시대의 얼굴이다. 이 얼굴들과 마주하는 순례와 추모 여행을 마치는 이 순간, 책 서두에 저자가 써놓은 문구에 기대어 생각에 잠긴다.

 

"양심이 없는 과학은 영혼의 잔해일 뿐이다" (리블레)

 

히포크라테스는, 아니 그냥 인간을 인간으로 여기는 의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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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권하는 사회, 빚 못 갚을 권리 - 왜 빌린 자의 의무만 있고 빌려준 자의 책임은 없는가
제윤경 지음 / 책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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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없이 살수 없는(?) 사회. 구조적으로 돈 빌려주는 것을 권하는 사회.

 

수많은 대부업체 광고를 매일 TV에서, 영화관에서, 지하철에서 접한다. 생활고 때문에 높은 이자에도 불구하고 돈을 빌릴수 밖에 없는 사람들과 빚에 더해지는 커다란 이자빚에 신음하는 사람들의 한숨을 듣는다.

 

빌려줄 때는 봄바람처럼 따스하고, 추심할 때는 가을서리처럼 매서운 금융권의 두얼굴을 본다. 돈 앞에 인간이 운다. 처절하게 흐느끼다가 돈이 되어버린 사람에게 짓밟힌다. 인간이 돈을 쥐는 것이 아니라, 돈이 인간의 머리채를 쥐고 흔든다.

 

순수했던(?) 자본주의가 맘몬주의로 변해버린 현실을 보며 인간의 탐욕을 본다. 돈이 빚이되고 빚이 한숨이 한숨이 좌절이 좌절이 죽음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나도 어쩌면 예외는 아닐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절망에서 희망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구조적인 변혁을 꾀하는 주빌리(Jubilee) 은행의 뜻과 움직임을 응원한다. 약탈적 금융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그래도 돈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빚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되기에.

 

희망의 희미한 빛이라도 보이는, 기쁨과 회복의 희년(Year of Jubilee)을 간절히 바라며. 적어도 자본주의와 돈의 맨얼굴을 직시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빚 권하는 사회, 빚 못 갚을 권리], (제윤경 지음)을 읽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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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짓기 -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년의 비밀> 2
김시준.김현우,박재용 외 지음 / Mid(엠아이디)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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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강렬하다. 죽음과 맞닿은 짝짓기여

 

<소설은 왜 읽는가>에서 문학평론가 김현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호기심이나 하고 싶어 하는 욕망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라고 썼다. 그것은 이야기를 하고픈(혹은 듣고픈), 즉 무언가 알고 표현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그만큼 강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책 속의 표현을 빌려) 이렇게 변주하고 싶다.

 

생명체는 왜 짝짓기를 하는가? 모든 짝짓기는 죽음과 맞닿아 있다.”

어느 개체(숫 사마귀, 수벌)에겐 실제로도 그렇고, 어느 개체(인간, 보노보)에겐 죽음과 바꿀 만큼 달콤한 유희다. 그것은 생과 사를 가를 만큼 절대적이고, 모든 것을 올인(ALL-IN)한 만큼 강렬하다. 죽음과 맞닿은 달콤함을 가진 짝짓기 보고서를 받아들고 나는 이미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넓고도 깊은 짝짓기 세계로의 역사 여행

 

생존과 번식을 위한 진화론적 연대기라는 책의 부제처럼 이 책은 살아있는(그리고 살아있었던) 모든 것의 번식, 즉 생존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모든 생명체에게 자손을 남기는 것은 자신이 세대를 걸쳐 영원한 시간 속에 기록되는 것이기에 모든 생명들은 만물에 대한 만물의 투쟁을 힘겹고도 처절하게 벌인다. 이 책은 그 생존과 번식 속에서의 성()이 가지는 의미를 넓고도 깊게 파고든다.

 

우연의 산물로 생성된 성의 기원과 진화를 꼼꼼하게 보여주는 파트 1에서는 원핵생물부터 진핵생물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생존과 번식을 기술한다. 그리고 암수의 생성(성의 생성)과 감수 분열에 의한 생식이 개체의 생존에 어떠한 장점으로 작용했는지를 보여준다.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한번 쯤 들어봤을 법한 출아법, 이분법 등의 무성생식을 기술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성생식이 가진 부족한 점을 설명해 주고, 그렇기에 살아남기 위해서 끊임없이 발발거리던 생명체들이 다세포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택한 생식 기관의 생성과 유전자 재조합에 의한 유성생식 출현의 과정을 논리적으로 보여준다.

 

파트 2에서는 암컷과 수컷으로 나뉜 성 구분과 그로인해 일어나는 짝짓기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준다. 특히나 생물의 종 수 만큼이나 다양한 각 생물들의 짝짓기 행태는 때로는 놀라움, 부러움, 경악, 폭소를 자아낸다. 그리고 성을 번식의 도구로 이용함으로서 파생된 여러 가지 교미 형태들은 생물이 얼마나 자신의 유전자를 세상에 남기고 싶어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난교, 하렘, 영아살해, 성적 강압, 근친혼 등 인간 군상에서만 벌어지는 줄 알았던 일들이 모든 생명체에 나타난다는 것을 다양한 사례들로 보여준 파트 2를 지나 파트 3에 이르면 그 다양함의 종류가 그 깊이가 더한다. 유전자 상으로 모두 암컷이지만, 젠더가 서로 다른 일벌과 여왕벌의 차이를 보여주기도 하고, 각 생물들에게서 나타나는 일부일처, 일부다처, 일처다부, 다부다처가 어떻게 왜 등장하고 정착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를 제시기도 한다. 특히나 인상 깊었던 것은 지느러미사관생도물고기와 블루길에서 보이는 하나의 성 속에 드러나는 다양한 젠더의 모습이었다. 파트 3은 다채로운 마치 무지개와 같은 성적 행태와 사회학적 성(젠더)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생물학적 암수의 구별과 사회학적 성역할에 대한 각 생물의 변화를 통해 자기가 처한 환경과 여러 세대에 걸친 적응과 우연들이 지금의 가장 최적화된 형태의 생물들을 만들고, 생존, 번식 시키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파트 4는 흥분될 정도로 흥미롭게 재미가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성을 인간과 가장 비슷한 유인원들의 성적 행태를 통해 비교, 대조하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난교형이 침팬지와 일부일처형인 인간의 성기를 뼈와 근육, 해면체의 해부학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이 짝짓기 행태에 영향을 미쳤음을, 아니 반대로 짝짓기 형태가 성기의 변화에 영향을 미쳤음을 설명하는 부분은 재미가 있고, 인간에게서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폐경을 종족 번식의 입장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는 점은 흥미로웠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진화적으로 자신과 종족을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다는 가설은 아주 흥미로웠지만 쉽게 동의가 되진 않는다. (~ 지금 나는 종족의 보존을 위해 아내를 사랑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파트 4의 후반부에서는 섹스와 젠더를 통해 사회학적 성과 지금 현실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젠더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것이 틀림이 아니라 다름임을 주장한다. (이 주장에는 일부는 동의하고 많은 부분은 동의하지 않기에 길게 쓰지는 않겠다.)

 

생활밀착형 예시가 과학에 숨결을 불어넣다

 

다세포 생물이 단 두 가지 형태의 생식 세포를 만들게 된 세 가지 가설을 소개하면서 가설들 사이의 상호 연관성을 남녀의 혼수 준비 상황에 비교해서 서로 세탁기만 두 대 가지고 왔다든지(p58), 암컷이 새끼를 낳고 기르는 수고와 거미, 나비, 유럽풍선파리 수컷이 짝짓기에 들이는 고생을 비교하면서 하루 종일 살림하고 애보고 녹초가 된 아내에게 집에 와서 설거지 한 번 정도하고 유세떠는 식이다라는 표현(p71)을 보며 입술이 씰룩 거렸다. 이 표현들은 결혼한 암컷(여성) 독자들의 마음에 사이다와 같은 시원함을 안겨 주었을 것이고, 수컷(남성) 독자들의 마음에는 왠지 모를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주었을 것 같다. 이처럼 짝짓기와 생존에 관한 이야기를 생활밀착형 비유로 설명한 점은 비슷한 주제의 여타 다른 책들과 비교해서 탁월했다. 생물의 성선택과 진화가 어렵고 따분한 역사적 과학적 이야기가 아니라, 피부에 와 닿은 지금의 나(암컷, 수컷으로서의 사람)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이랄까. (아마 이런 비유들은 결혼하신 작가분의 생활 경험이 아닌가 싶다.)

 

신화(이야기)의 문을 통해 짝짓기(과학) 세계 들어가기

 

과학적 지식, 혹은 연구의 결과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설명되고 어떠한 매개로 전달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독자들은 책에서 하는 이야기가 나와 관련이 있는 나의 이야기라고 느낄 때, 반응하고 열광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 앞에서 언급한 <소설은 왜 읽는가>의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죽음이 맞닿아 있음을 한 번 더 언급해야겠다. 사람들은 이야기에 열광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한(할 것이라 믿는). 이 책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를 빌어 현상들을 설명한다. 헤르마프로디토스의 탄생 이야기를 통해 암수한몸(자웅동체)(p182), 헤파이스토스 이야기를 통해 처녀생식 이야기(p198)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아폴론과 다프네에 얽힌 월계수 신화에서는 무성애자(p244), 그리고 섹스와 젠더의 차이를 설명하는 도입부로 사용한다. 이 점은 인문학 속의 과학, 과학 속의 인문학이 서로 녹아 있음을 보여주고, 양 쪽 주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충분한 지식과 흥미를 제공한다.

 

세상에 대한 이해

 

결국 이 책은 인간에 대한 이해이자, 생물에 대한 이해이고, 세상에 대한 이해에 관한 책이다. 책은 성의 시작과 시작에서 이어진 세세한 곁가지들이 자라난 흔적을 충실하고 자세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보여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성적 행태 이면에 숨어 있는 진화적 의미(생존, 번식을 위한 공동체와 문화의 형성) 꼼꼼하게 짚어준다. 그렇기에 재미있지만 진중하고, 넓지만 깊다. 고등학교 시절 생물 공부를 이 책으로 했더라면 조금 더 재미있게 잘하지 않았을까?

 

* 책을 읽으며 발견한 오탈자와 부자연스러운 표현을 함께 적는다. 재판 찍을 때에 수정되었으면 좋겠다. 좋은 책을 읽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

 

1. 부자연스럽다고 느낀 문장들

(p 72) 마지막 줄에 이런 차이는 무엇을 결과 했겠는가?”

무엇을 결과 했겠는가? 라는 표현은 어색하다. 어떤 결과를 가져왔겠는가?로 고치면 어떨까 싶다.

(p 73) 아래서 네 번 째줄 보면 최초에 앞선 정자는 일종의 바람막이 역할을..”

전체 문맥에서 보면 앞선 정자들이 위험을 막아주는 것이므로 바람막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다. 바람막이는 바람을 막아주는 것이므로 오히려 방패막이라는 표현이 문맥과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2. 오탈자

(p 103) 위에서 열 번째 줄을 보면 쥐의 경우 영양이 겹핍되면..”

겹핍 -> 결핍

(p 113) 네 번 째줄 숭악하기론 사람이 더하겠지만

숭악하다란 표현을 국어사전에서 찾을 수 없었다. 혹시 흉악하다라는 표현을 잘못 쓴 게 아닐까 싶다.

(p 244) 아래서 세 번 째 줄 아버지, 저를 아플론이 다가올 수 없게..’

아플론 -> 아폴론

(p 245) 사진 제목인 다프네와 아폴로

아폴로와 아폴론이 둘 다 통용 되기에 사진에 아폴로라고 표기된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책에서 계속 아폴론이라고 썼기에 사진 제목도 아폴론으로 통일해서 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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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용 2015-09-02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자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읽고 평하고 지적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지적하신 부분에 대해선 차후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숭악하다란 표현은 흉악하다의 함경도 사투리로 알고 있습니다. 흉악보다 문맥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여 사용했다는 점을 밝힙니다.
내내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구름신발 2015-11-27 04:20   좋아요 0 | URL
이렇게 저자분께서 댓글을 달아주셔서 제가 더욱 감사합니다. 책을 읽고 느끼고 쓰는 것이 즐거운 한 인간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 - 뇌공학의 현재와 미래
임창환 지음 / Mid(엠아이디)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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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뇌

"우리 몸에서 가장 큰 성()기관은 어디일까요?"

 

대학교 때 <인간과 성()>이란 교양 수업을 수강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담당 교수님이 저런 질문을 하셨다.

 

질문을 듣자, 여기저기서 남학생들의 피식~거리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곳(?)이 아닙니다. 우리 몸에서 가장 큰 성()기관은 뇌입니다."

 

그 이야기는 갸우뚱하면서도 이해가 되는 말이었다. 우리의 모든 행동과 버릇, 심지어 생식과 성이라는 인류 번식과 즐거움을 담당하는 곳이 뇌라는 이야기는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이었다. '뇌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내 삶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그 무렵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뇌에 관한 연구가 어디쯤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라는 생생한 현장 보고서 한 편을 받아 들었다. (우리 몸의 가장 큰 성기관으로서의 뇌를 다루었을까? 기대가 된다.)

 

#두루두루, 재미나게, 의미있게 쓰여진 뇌공학 보고서

수 많은 공상과학 영화들이 뇌, 그리고 뇌를 연구한 결과물로서의 인공지능을 다룬다. <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를 보며 드는 생각은 이런 공상과학 영화들이 작가 나름의 상상이기도 하지만, 우리모두의 상상이기도 하고, 그 상상이 실현(되어가고 있는) 중간 결과물이라는 것이었다. 저자가 언급한 <써로게이트>, <터미네이터>, <트랜센던스>, <매트릭스> 등의 영화가 담고 있는 뇌(혹은 인공지능, 더 나아가 생명연장에 관한) 연구와 기술들이 지금 어떻게 연구되고 있는지에 대한 생생한 자료들이 이 책에는 가득하다.

 

chapter 1.'드림 레코더'에 관한 베르거 박사의 뇌파 측정기 연구가 현재 30개 회사에서 팔리고 있다든지, chapter 3.에서 언급한 '정신적 타자기' 2012년에 베티나 소르거 교수에 의해 자기공명영상 장치를 기술을 해서 현재 개발되었고, 저자의 연구실에서도 뇌파를 이용한 타자기를 연구하고 있다는 것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보여준 것은 읽는 독자에게 마치 지금 손에 닿을 듯한 생생한 결과물을 보고 느끼는 것 같게 해주었다. 특히나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chapter 5.에서 기계장치를 뇌에 심는 '브레인 임플란트'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이었는데, 메드트로닉(Medtronic)의 얼 바켄이 심장 페이스메이커를 만들고 발전시키고, 그것이 현재의 브레인 임플란트 연구에 어떤 영향과 결과물들을 탄생 시켰는지 일목요연하고 재미있게 소개한 글이 참 좋았다.

 

또한 뇌공학을 다루는 영역에 있어서도 뇌 자체의 기능 관한 연구(chapter 4. 감성 인터페이스, chapter 7. 거짓말 탐지 MRI)와 외부 자극을 통한 뇌조절에 관한 연구(chapter 10. 뇌조절 기술, chapter 11. 뉴로피드백), 그리고 뇌에서 일어나는 일을 영상과 데이터로 구현하려는 연구(chapter 6. 뇌기능영상 기술의 발전) 등 어느 한 분야를 깊게 다루기 보다 일반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하게(더구나, 재미있게) 다룬 점은 이 책의 강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학의 대중화'가 아닌 '대중의 과학화'   

'과학의 대중화'가 아닌 '대중의 과학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책은 대중들에게 과학과 기술이 지금 현재 서있는 좌표를 제시하고 있으며, 그 뿐 아니라,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사이에 놓인 과학 기술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에 대한 저자의 균형 잡힌 관점이 잘 녹아 있다. 늘 어렵다고 생각되는 과학이 이렇게 우리 현실에 살을 부비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끼며, 뇌를 연구하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NS-5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는가

표지에 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의 소설이자 영화로도 만들어진 <아이, 로봇>(2004) 속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로봇 NS-5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복잡한 기계회로가 뇌를 구성하고 있고, 얼굴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을 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현재 뇌공학의 현실과 열망을 잘 나타내주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측면을 향한 NS-5의 표정이 뭔가 신비롭다. 마치 알 수 없는 (그렇기에 궁금한 뇌공학의)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뇌라는 주제와 현재 뇌에 관한 여려 연구의 현재와 미래를 잘 드러내 주는 사진이다.

 

#짧고, 간결한 임팩트

다만 제목과 제목의 배치가 조금 아쉽다. 우선 제목이 좀 길다는 느낌을 준다. (물론,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뇌가 공학에 영향을 주고, 공학 기술에 다시 뇌에 영향을 주는 양방향성 연구의 실제적인 사례들을 통해, 그 긴 제목이 가지는 의미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가 서문에 밝힌 것 처럼 이 글은 과학동아라는 과학잡지에 연재된 칼럼을 모아서 책으로 발간한 것이다. 잡지 연재 때의 [브레인, 머신]이라는 타이틀을 그대로 가져 오는 것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조금 함축적인 의미를 담은 임팩트 있는 짧은 제목을 정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잡지 연재물을 책으로 만들 때

이 책은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다시피 2012년에 과학동에 연재된 저자의 칼럼 [브레인, 머신]을 모아서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잡지의 특성상 매월 한 편의 칼럼이 실리게 되므로 그 당시의 시류와 사회 분위기 과학기술의 동향에 따라 주제가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이 책은 뇌공학의 전체적인 영역을 다루고 있기에 잡지 연재 칼럼을 책으로 엮어내기에도 손색이 없는 것 같다.

 

다만, chapter 4.에서 유명 브랜드 '(GAP)'이 뉴로마케팅 조사를 통해 로고를 정했다는 에피소드를 다루는 부분에서 편집 상의 아쉬움이 눈에 띈다. p94, 18-19줄에 "그런 과정을 통해서 다음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대문자 'G' 옆에 소문자 'ap', 그리고.."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잡지에 실렸을 때에는 '(GAP)'의 바뀐 로고와 현재의 로고가 일러스트로 실렸을지 모르겠으나, 책에서는 로고의 그림이 빠져있다. 그런데 "다음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이라고 설명이 나와있어서 책을 읽는 독자에게 조금 혼란이 생길 것 같다. 이 점은 재판에 때, 그림을 넣던지, 아니면 문장을 정정해서 써주시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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