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짝짓기 -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ㅣ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년의 비밀> 2
김시준.김현우,박재용 외 지음 / Mid(엠아이디)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아름답다. 강렬하다. 죽음과 맞닿은 짝짓기여
<소설은 왜 읽는가>에서 문학평론가 김현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호기심이나 하고 싶어 하는 욕망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라고 썼다. 그것은 이야기를 하고픈(혹은 듣고픈), 즉 무언가 알고 표현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그만큼 강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책 속의 표현을 빌려) 이렇게 변주하고 싶다.
“생명체는 왜 짝짓기를 하는가? 모든 짝짓기는 죽음과 맞닿아 있다.”
어느 개체(숫 사마귀, 수벌)에겐 실제로도 그렇고, 어느 개체(인간, 보노보)에겐 죽음과 바꿀 만큼 달콤한 유희다. 그것은 생과 사를 가를 만큼 절대적이고, 모든 것을 올인(ALL-IN)한 만큼 강렬하다. 죽음과 맞닿은 달콤함을 가진 짝짓기 보고서를 받아들고 나는 이미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넓고도 깊은 짝짓기 세계로의 역사 여행
‘생존과 번식을 위한 진화론적 연대기‘라는 책의 부제처럼 이 책은 살아있는(그리고 살아있었던) 모든 것의 번식, 즉 생존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모든 생명체에게 자손을 남기는 것은 자신이 세대를 걸쳐 영원한 시간 속에 기록되는 것이기에 모든 생명들은 만물에 대한 만물의 투쟁을 힘겹고도 처절하게 벌인다. 이 책은 그 생존과 번식 속에서의 성(性)이 가지는 의미를 넓고도 깊게 파고든다.
우연의 산물로 생성된 성의 기원과 진화를 꼼꼼하게 보여주는 파트 1에서는 원핵생물부터 진핵생물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생존과 번식을 기술한다. 그리고 암수의 생성(성의 생성)과 감수 분열에 의한 생식이 개체의 생존에 어떠한 장점으로 작용했는지를 보여준다.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한번 쯤 들어봤을 법한 출아법, 이분법 등의 무성생식을 기술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성생식이 가진 부족한 점을 설명해 주고, 그렇기에 살아남기 위해서 끊임없이 발발거리던 생명체들이 다세포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택한 생식 기관의 생성과 유전자 재조합에 의한 유성생식 출현의 과정을 논리적으로 보여준다.
파트 2에서는 암컷과 수컷으로 나뉜 성 구분과 그로인해 일어나는 짝짓기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준다. 특히나 생물의 종 수 만큼이나 다양한 각 생물들의 짝짓기 행태는 때로는 놀라움, 부러움, 경악, 폭소를 자아낸다. 그리고 성을 번식의 도구로 이용함으로서 파생된 여러 가지 교미 형태들은 생물이 얼마나 자신의 유전자를 세상에 남기고 싶어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난교, 하렘, 영아살해, 성적 강압, 근친혼 등 인간 군상에서만 벌어지는 줄 알았던 일들이 모든 생명체에 나타난다는 것을 다양한 사례들로 보여준 파트 2를 지나 파트 3에 이르면 그 다양함의 종류가 그 깊이가 더한다. 유전자 상으로 모두 암컷이지만, 젠더가 서로 다른 일벌과 여왕벌의 차이를 보여주기도 하고, 각 생물들에게서 나타나는 일부일처, 일부다처, 일처다부, 다부다처가 어떻게 왜 등장하고 정착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를 제시기도 한다. 특히나 인상 깊었던 것은 지느러미사관생도물고기와 블루길에서 보이는 하나의 성 속에 드러나는 다양한 젠더의 모습이었다. 파트 3은 다채로운 마치 무지개와 같은 성적 행태와 사회학적 성(젠더)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생물학적 암수의 구별과 사회학적 성역할에 대한 각 생물의 변화를 통해 자기가 처한 환경과 여러 세대에 걸친 적응과 우연들이 지금의 가장 최적화된 형태의 생물들을 만들고, 생존, 번식 시키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파트 4는 흥분될 정도로 흥미롭게 재미가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성을 인간과 가장 비슷한 유인원들의 성적 행태를 통해 비교, 대조하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난교형이 침팬지와 일부일처형인 인간의 성기를 뼈와 근육, 해면체의 해부학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이 짝짓기 행태에 영향을 미쳤음을, 아니 반대로 짝짓기 형태가 성기의 변화에 영향을 미쳤음을 설명하는 부분은 재미가 있고, 인간에게서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폐경을 종족 번식의 입장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는 점은 흥미로웠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진화적으로 자신과 종족을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다는 가설은 아주 흥미로웠지만 쉽게 동의가 되진 않는다. (아~ 지금 나는 종족의 보존을 위해 아내를 사랑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파트 4의 후반부에서는 섹스와 젠더를 통해 사회학적 성과 지금 현실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젠더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것이 틀림이 아니라 다름임을 주장한다. (이 주장에는 일부는 동의하고 많은 부분은 동의하지 않기에 길게 쓰지는 않겠다.)
생활밀착형 예시가 과학에 숨결을 불어넣다
다세포 생물이 단 두 가지 형태의 생식 세포를 만들게 된 세 가지 가설을 소개하면서 가설들 사이의 상호 연관성을 남녀의 혼수 준비 상황에 비교해서 서로 세탁기만 두 대 가지고 왔다든지(p58), 암컷이 새끼를 낳고 기르는 수고와 거미, 나비, 유럽풍선파리 수컷이 짝짓기에 들이는 고생을 비교하면서 “하루 종일 살림하고 애보고 녹초가 된 아내에게 집에 와서 설거지 한 번 정도하고 유세떠는 식이다”라는 표현(p71)을 보며 입술이 씰룩 거렸다. 이 표현들은 결혼한 암컷(여성) 독자들의 마음에 사이다와 같은 시원함을 안겨 주었을 것이고, 수컷(남성) 독자들의 마음에는 왠지 모를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주었을 것 같다. 이처럼 짝짓기와 생존에 관한 이야기를 생활밀착형 비유로 설명한 점은 비슷한 주제의 여타 다른 책들과 비교해서 탁월했다. 생물의 성선택과 진화가 어렵고 따분한 역사적 과학적 이야기가 아니라, 피부에 와 닿은 지금의 나(암컷, 수컷으로서의 사람)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이랄까. (아마 이런 비유들은 결혼하신 작가분의 생활 경험이 아닌가 싶다.)
신화(이야기)의 문을 통해 짝짓기(과학) 세계 들어가기
과학적 지식, 혹은 연구의 결과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설명되고 어떠한 매개로 전달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독자들은 책에서 하는 이야기가 나와 관련이 있는 나의 이야기라고 느낄 때, 반응하고 열광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 앞에서 언급한 <소설은 왜 읽는가>의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죽음이 맞닿아 있음을 한 번 더 언급해야겠다. 사람들은 이야기에 열광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한(할 것이라 믿는)다. 이 책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를 빌어 현상들을 설명한다. 헤르마프로디토스의 탄생 이야기를 통해 암수한몸(자웅동체)을(p182), 헤파이스토스 이야기를 통해 처녀생식 이야기(p198)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아폴론과 다프네에 얽힌 월계수 신화에서는 무성애자(p244), 그리고 섹스와 젠더의 차이를 설명하는 도입부로 사용한다. 이 점은 인문학 속의 과학, 과학 속의 인문학이 서로 녹아 있음을 보여주고, 양 쪽 주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충분한 지식과 흥미를 제공한다.
세상에 대한 이해
결국 이 책은 인간에 대한 이해이자, 생물에 대한 이해이고, 세상에 대한 이해에 관한 책이다. 책은 성의 시작과 시작에서 이어진 세세한 곁가지들이 자라난 흔적을 충실하고 자세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보여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성적 행태 이면에 숨어 있는 진화적 의미(생존, 번식을 위한 공동체와 문화의 형성) 꼼꼼하게 짚어준다. 그렇기에 재미있지만 진중하고, 넓지만 깊다. 고등학교 시절 생물 공부를 이 책으로 했더라면 조금 더 재미있게 잘하지 않았을까?
* 책을 읽으며 발견한 오탈자와 부자연스러운 표현을 함께 적는다. 재판 찍을 때에 수정되었으면 좋겠다. 좋은 책을 읽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
1. 부자연스럽다고 느낀 문장들
(p 72) 마지막 줄에 “이런 차이는 무엇을 결과 했겠는가?”
무엇을 결과 했겠는가? 라는 표현은 어색하다. 어떤 결과를 가져왔겠는가?로 고치면 어떨까 싶다.
(p 73) 아래서 네 번 째줄 보면 “최초에 앞선 정자는 일종의 바람막이 역할을..”
전체 문맥에서 보면 앞선 정자들이 위험을 막아주는 것이므로 바람막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다. 바람막이는 바람을 막아주는 것이므로 오히려 ‘방패막이’라는 표현이 문맥과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2. 오탈자
(p 103) 위에서 열 번째 줄을 보면 “쥐의 경우 영양이 겹핍되면..”
겹핍 -> 결핍
(p 113) 네 번 째줄 “숭악하기론 사람이 더하겠지만”
‘숭악하다’란 표현을 국어사전에서 찾을 수 없었다. 혹시 ‘흉악하다’라는 표현을 잘못 쓴 게 아닐까 싶다.
(p 244) 아래서 세 번 째 줄 ‘아버지, 저를 아플론이 다가올 수 없게..’
아플론 -> 아폴론
(p 245) 사진 제목인 ‘다프네와 아폴로’
아폴로와 아폴론이 둘 다 통용 되기에 사진에 아폴로라고 표기된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책에서 계속 아폴론이라고 썼기에 사진 제목도 아폴론으로 통일해서 써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