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크로스 더 투니버스 트리플 4
임국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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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레트로'가 트렌드가 된 지 좀 되었다. 추억이 가득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 음악 프로그램, 리메이크 앨범 등이 유행하고, 최근에는 오랫동안 사랑받는 공산품들도 이 레트로 유행에 힘입어 각종 제품들을 출시하고 있을 정도다.

왜 우리는 과거를 떠올리며 기분이 간질간질하고 아련해지는 것일까.

요즘 작품성 있는 좋은 한국소설들을 많이 펴내고 있어서 좋아하는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단편소설 트리플 시리즈로 임국영 소설가의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를 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반가운 마음으로 펼쳐보았다.

'투니버스'라니! MZ세대라면 이 네 글자만 들어도 두근거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투~니버스!'하는 소리도 생각나고, 어린 시절 투니버스를 보며 빠져들었던 그 설레고 신나는 만화 속 모험 세계가 떠오르곤 하니 말이다.

이 책의 전반에서 사용되는 모든 소재들이 이런 역할을 했다. 시대를 풍미한 소재들이 정말 다양하게 등장하기 때문에, 등장인물들과 비슷한 시대를 보낸 사람들이라면 최소 하나 이상의 소재에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소재만 봐도, 보글보글, 철권, 더킹, 후르츠 바스켓, 백스트리트 보이스, 팩 게임, 카드캡터 체리 등 다양했다. 내가 알고 사랑했던 소재들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과 더불어 한순간 그 시대로 다시 돌아가 깊이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소설에서 인물과 풍경을 자세히 묘사하는 것이 몰입을 위해서라고 들었는데, 이 소설은 일단 소재부터가 몰입에 최적화된 치트키였던 것 같다.

하지만 단순히 소재만 좋은 소설은 결코 아니었다.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를 읽으면서는 학창시절 만경처럼 외톨이로 지낸 친구들의 마음을 생각해볼 수 있었고, 수진처럼 BL과 웹소설을 좋아하는 여자아이들의 마음도 헤아려볼 수 있었다.

세피아 빛의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은 <코인노래방에서>는 성별과 나이를 떠나 사랑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느낌으로 피부에 와닿는지 새삼 느껴졌다.

<추억을 보글보글>은 오락실 게임 형식에 맞게 1P와 2P로 나뉘어 쓰인 점도 흥미로웠다. 30대가 되어서도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두 친구의 서로 다른 이야기. 게임에 관한 단상들 하나하나가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읽으며 즐거웠고, 자신이 분출한 순수한 증오에 스스로 발목잡혀 산 1P의 모습에는 마음이 참 아팠다.

읽으면서는 어렴풋이만 느꼈는데, 해설을 읽으며 이 세 편의 등장인물들이 별개가 아니라 연결된다는 것을 확인하니 또 느낌이 새로웠다. '트리플 시리즈'를 처음 읽어보았는데, 단편소설이 이렇게 연결되는 방식이 참 매력적인 것 같아서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언어에는 독성이 있어서 품고만 있으면 병'(p135)이 들기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소설을 통해 나는 왠지 그 시절을 다시 한번 살아보고 이해받는 느낌이 들었다. 다 읽고 난 후에는 뭔가 모르게 마음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는 듯했다.

"내가 사랑하고 좋아했던 것"들, "내 존재의 어느 깊숙한 자리에 들어"온 것들, "나를 떠받친 마음의 가장 깊은 부분을 이루는 것들"을 "긍정받고, 당당히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시대"(p144)라는 정지우 작가의 표현처럼, 이 책을 통해 나의 마음 깊은 곳을 만나고 긍정할 수 있었다.

MZ세대뿐만 아니라,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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