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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 원전 번역본) - 톨스토이 단편선 ㅣ 현대지성 클래식 34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홍대화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어릴적 동화전집에서 읽어본 기억이 있다.
따스한 이야기로 기억 속에 남아 있는데, 이번에 평소 좋아하던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에서 톨스토이의 인생 단편 10편을 묶어낸다는 소식에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펼쳐보게 되었다.
이 10편의 단편은 자살 직전까지 갈 정도로 정신적 극한에 내몰렸던 톨스토이가 치열하게 고민하며 사상적 전환을 겪는 과정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이야기에 기독교적 윤리관이 바탕이 되어 있지만, 비신자로서 그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다. 기독교적 윤리관에 기반한 서민 사회, 농민 사회를 현실적으로 잘 그려냈다는 느낌을 받았다.
10편의 단편이 모두 좋았지만,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단편은 <사람에게는 얼마만한 땅이 필요한가>(p193)였다.
일단 제목부터 강렬하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이 제목은 누구나 궁금해질 만한 내용이 아닐까?
주인공 빠홈은 평범한 농부로 살고 있었는데, 그의 아내가 자신들에게 땅만 충분하다면 악마도 남편을 유혹하지 못할 거라고 큰소리 치는 것을 악마가 듣게 되면서 인생 파멸의 길로 걸어가게 된다.
초반부터 악마가 '좋았어. 한번 겨뤄보자. 네게 땅을 많이 주마. 내가 땅으로 너를 취하겠어.'(p196)라고 말하고 시작하기 때문에 마치 결론을 내놓고 시작하는 스릴러 영화같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이 단편은 술술 읽히고, 심지어 빠홈이 겪는 모든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악마의 농간이 대체 어디에 숨어있는 것인지 느끼기 어려울 정도다.
만족하고 살아가던 일상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마침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대안이 생기면 우리는 누구나 그 대안을 선택해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를 원할 것이다. 내가 읽어내려가는 빠홈의 모습도 그랬다. 읽어가며 나도 빠홈이 된 듯 했다. '그렇지, 이런 상황이면 이렇게 느낄 수 있어, 그럼그럼, 그럼 거기로 가야지,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하면서 읽다보니 어느덧 이야기는 막바지로 치달아 있었고 충격적인 결말을 맞았다.
읽고 나서도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단편이었다. 내가 빠홈이었어도 그런 선택을 하고 이런 결말을 맞았을 것 같은데, 과연 인간의 욕망은 어느 시점에서 멈춰야 하는걸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에 대한 답은 다음 단편인 <노동과 죽음과 질병>(p215)에서 제시해주는 것 같다. 3페이지짜리로 정말 짧은 단편이지만, 사랑과 화목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남아메리카 인디언 전설과 연결해서 강렬하게 제시해 준 단편이었다. 또한 표제작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p9)도 답이 된다고 생각한다. "저는 모든 사람이 자신에 대한 염려가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감을 알았습니다."(p39)라는 천사 미하일라의 말에, 어릴 적 동화책으로 읽었을 때보다도 마음이 더 따스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책 표지에 '삶이 유독 가혹하게 느껴질 때 읽는' 단편이라고 적혀있는데, 지금의 내 삶이 가혹한 건 아니지만 이 책은 내게 따뜻한 등불로 다가온 것 같다. 지치고 힘들 때 읽어보면 다시금 힘을 내서 일어설 수 있게 해 주는 책인 것 같다. 곁에 자주 두고 펼쳐봐야겠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