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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21인의 위험한 뇌 ㅣ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고나가야 마사아키 지음, 서수지 옮김, 박경수 외 감수 / 사람과나무사이 / 2021년 4월
평점 :
쉽게 읽기 어려웠던 세계사,
요즘은 다양한 콘셉트로 재미있게 풀어주는 책이 많아 즐겨 찾는 분야가 되었다.
세계사를 흥미로운 관점에서 풀어쓰는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이 그중 하나다.
그 시리즈 네 번째는 뇌 이야기.
영웅과 리더의 '병든 뇌'가 세계사 흐름을 바꿨으리라고 몇이나 생각했을까.
아무리 커다란 사건도 개인의 삶이 바탕인 만큼 별개의 이야기일 수 없는데 결과만 받아들이다 보니 미쳐 생각지 못한 부분 같다.
65주 연속 역사 분야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이 더 잘 보여주는 듯,
약, 식물, 물고기, 뇌로 관점을 바꿔 보는 세계사에 끌리지 않을 수 없다.
저자 고나가야 마사아키는 신경내과학 전문의다. 역사 속 부각을 나타낸 인물들의 흔적을 추적해 그들의 뇌질환이 역사를 어떻게 좌지우지했는지 보여준다. 교수로 의학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에피소드를 모은 결과물이라니 그 열정이 대단하다.
Part1에서는 무서운 질병이 영웅과 군주의 뇌를 조종해 세계사를 뒤흔든 이야기,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단순 기록만으로 추정하지만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사실들을 전달한다.
Part2에서는 강대국 리더들의 뇌질환이 불러온 결정적인 오판으로 세계사 흐름이 바뀐 이야기를 전해준다.
잔 다르크와 도스토옙스키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측두엽뇌전증 증상을 엿볼 수 있다.
측두엽뇌전증으로 인한 환청과 환취, 환각 증상은 신의 부름과 종교적 경험을 고취시킴으로써
프랑스 백년전쟁에 뛰어들게 했고
또는 그 경험을 소설에 녹여내면서 큰 영향을 미쳤다 할 수 있다.
로마제국을 멸망의 길로 몰고 간 막시미누스를 조종한 것은 뇌하수체 거인증과 말단비대증이 아니었을까.
저자는 로마 동전과 기록이 전하는 외모 그리고 식습관을 포함한 생활습관에서 위와 같은 병을 진단한다.
두통과 고혈압 등의 합병증에 시달리며 혼란한 시대 속 극심한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인격마저 변하며 잔혹한 폭군이 되어간 것은 아닐까.
미국 남북전쟁에서 링컨과 북군 사령관 그랜트 장군의 지독한 편두통이 미국의 혼란을 종식시키고 단합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을까.
당시 그랜트 장군은 무자비한 학살자로 유명했다고 한다. 역사적인 날도 지독한 편두통에 시달리다 밤을 새웠는데 최종 패배를 인정하는 남군의 전갈을 받고는 순간 편두통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고 한다. 정신적인 변화로 평소와 다른 뜻밖의 관용을 베풂으로써 남북 간의 반목을 화합으로 이끈 덕에 미국 연합을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통령 힌덴부르크는 알츠하이머병 또는 혈관 치매로 보이는 증상이 심해 명석한 판단을 할 수 없음을 스스로 알면서도 나치에 대한 불만으로 자리를 유지하려고 했다. 결국 사고는 물론, 거동마저 불가능해지며 독일은 나치가 장악하게 된다. 힌덴부르크가 알츠하이머나 혈관 치매를 앓지 않고 후계를 진지하게 고민했더라면 히틀러는 등장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한 히틀러의 독주를 막은 요인에는 파킨슨병이 있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독재자가 두 손을 모아 쥐고 꼿꼿하게 서있는 모습이 왼손이 떨리는 증상을 감추기 위함이었다니. 전쟁이 시작되자 전면에 나서지 않고 신비주의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후에 파킨슨병의 특효약은 빈 연구팀에 의해 개발되었지만 대단한 업적임에도 노벨 의학상을 받지 못했다. 연구팀에 나치스 친위대 소속 군의관 전력이 있는 인물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마오쩌둥 하면 문화대혁명이라는 키워드밖에 아는 것이 없어 더 흥미롭게 읽혔다.
마오쩌둥을 바보로 만든 건 루게릭병이었다.
역사적 서술에서는 쉽지 드러나지 않을 것 같은 그의 여성 편력과
건강할 때부터 루게릭병으로 심신을 가눌 수 없게 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옆에 둔 생활 비서이자 비밀 비서 장위펑의 존재는
권력 다툼의 중심에서 큰 흐름을 좌지우지했다.
소련 붕괴의 시발점이 된 브레즈네프의 혈관치매, 무함마드 알리를 괴롭힌 파킨슨증, 시인 보들레르와 알 카포네를 파멸시킨 질병 매독 등,
드러나지 않았지만 흐름을 뒤바꾸는 결정적 요인이 된 뇌질환들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새삼 일깨워준다.
끝이 없는 욕망도 헛될 뿐이다.
측두엽뇌전증, 뇌하수체 종양, 편두통, 치매, 고혈압뇌출혈, 파킨슨병 등의 질환이 역사에 미친 영향만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요소는 그에 대한 의학 지식을 함께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살면서 뇌질환에 관한 책을 읽어볼 일이 없길 바라는데
역사와 함께 읽다 보니 병의 유무와 상관없이 알아둬야 할 지식 중 하나로 다가온다.
치매의 경우 증상, 원인을 짚어보고 용어의 유래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예전에는 치매노인을 흔히 망령이 들었다거나 망령이 났다 또는 노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 치매가 일반적인 의학용어로 자리 잡았는데 저자는 오랜 인생을 산 끝에 불행하게 기억과 인지 능력이 저하된 사람을 바보나 멍청이의 뉘앙스가 들어간 말로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한다. 그런 맥락으로 일본에서는 2004년부터 치매 대신 '인지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하고 지금은 정식 용어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우리도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다.
누구나 원치 않게 닥칠 수 있는 많은 질환들을 멸시나 놀리는 의도로 비하하는 용어나 행동은 마땅히 고쳐야 한다.
언어의 차이가 인식 또한 바꾼다. 뇌전증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수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책,
『세계사를 바꾼 21인의 위험한 뇌』
다양한 사고를 이끌어내주는 흥미진진한 세계사였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포스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