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권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를 설레게 하는 단 하나의 책. 친구들에게 3권 째 선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스터 세바스찬과 검둥이 마술사
대니얼 월리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도 않고 <빅피쉬>라고 대답하는 나에게, <빅피쉬>원작자의 새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어찌 이를 놓칠소냐 하고 책을 구했고, 책을 손에 든 채 다 읽어버렸다.

역시나였다.

빅피쉬에서 보여주었던 그 환상적임과 재기발랄함을 그대로 가져왔고, 기억의 불완전성에 대한 이야기 또한 그대로 가져왔지만, 이건 조금 더 슬픈 운명의 장난을 다루고 있다.

하나의 기억은 여러 가지 이야길 만들어낸다. 하나의 사건이 기억되고 이야기될 때의 불완전성. 하나의 진실은 존재하겠지만 그 진실만이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주인공인 검둥이 마술사는 그의 다사다난했던 인생 이야길 동료들에게 들려준다. 그가 겪어온 인생은 결코 보통 사람의 인생의 범주는 아니었고, 특별함과 함께 기이함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의 초반, 그의 한 동료는 이야기를 적당히 줄이고, 늘리고, 변형하며 검둥이 마술사를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독자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주인공의 인생을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 검둥이 마술사가 사라진 뒤, 그가 머무르던 차이니즈서커스단의 단장은 그에게 들은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고, 그 전문은 독자들에게 공개된다. 그러나 어떤 부분은 불에 탔고, 어떤 부분은 물에 젖었으며, 어떤 부분은 잉크가 번졌다. 조금 더 자세해진 검둥이 마술사의 이야기를 독자들은 재구성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Q정전 문학동네 루쉰 판화 작품집
루쉰 지음, 이욱연 옮김, 자오옌녠 판화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근대 중국의 대표 얼굴 -아큐정전

루쉰의 대표작인 <아큐정전>에서 그는 근대 중국인의 대표적 얼굴을 찾아냈다.
아큐는 무엇 하나 잘난 것 없이 약한 자에겐 강하고 강한자에겐 약한 사람이다.
강한 자에게 매섭게 혼이 나더라도 속으로는 자신이 승리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좋지 않기에 변화를 바라고 있고, 개혁의 소식에 미소짓는다. 모든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지몽매하고 자기 것을 우악스럽게 지키려 하는 사람. 약간 과장되어있으니 지금의 현실에서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캐릭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 현실을 똑바로 보지 않고 옛 영화만을 쫓는 것이다. 그 날카로운 풍자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우리 모두는 조금씩이라도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이 아닌가. 공허한 자기위로는 아큐정전 처럼 객관적으로 보게 되면 우습고 민망하기 짝이 없다. 내가 지금껏 갖고 있었던 정신승리법을 생각해 본다.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로 들어갈 것.

근대 중국인들에게만 요구되는 방침은 아닐 것이다.
웃음과 해학, 풍자가 가득한 이야기 속에서 촌철살인과도 같은 메세지를 보았다. 
 

+자오옌롄의 판화 또한 인상적이다. 마치 고대인들이 남겨놓은 진리의 그림을 보는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텔 뒤락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9
애니타 브루크너 지음, 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채워지지 않는 결여에 대한 의문 -호텔뒤락

 

'워킹맘은 가정에선 나쁜 엄마, 직장에선 왕따다.'는 기사 제목을 봤다.
여성이 일과 가정에 모두 매진할 수 있도록 전혀 뒷받침해주지 않는 사회제도를 비판한 말인데, 여성이 사회활동을 시작한 17세기부터 지금까지 전혀 바뀐 것은 없어보인다는 안타까운 현실에 한번 더 좌절하게 된다.

 

'직업은 자아 실현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배웠다. 엄마나 아빠는 직업이 아니다. 그런데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니. 여성들로서는 어마어마한 생의 압박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엄마의 역할을 잘 하자면 직업적 성취를 이룰 수 없고, 그렇다면 '어머니'가 아닌 오롯한 '나 자신'으로서의 성취는 불가능한 것일까? 사회적 복지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이런 상황의 딜레마에 대해 소설은 계속해서 의문을 던진다.

 

 주인공 이디스는 로맨스소설을 쓰는 성공한 작가다. 그럼에도 결혼식을 망쳐버린 그녀는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호텔 뒤락으로 간다. 휴가철이 끝난 무렵의 호텔에서 그녀가 마주하는 '여성'들은 가정이라는 체제 안에서 자기 스스로의 정체성과 성취를 묻은 채 사치를 즐기는 사람들과, '어머니'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가정'안에서까지 쫓겨나 결국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거식증 여성이다.

 

하지만 이제는 가엾은 우리 엄마라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면서 삶이 돌려준 그 슬픔과 혼란스러움과 외로움을 알게 되었거든요. 어머니는 내게 자신의 무지몽매함을 그대로 물려주었어요. 가혹하고 실망스러운 현실 속에서 어머니는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연애담으로 위안을 얻었지요.
... 어머니가 책에서 눈을 들면 그 눈빛도 푸른색에서 회색으로 바래 있었어요. 꿈과 그리움과 환멸에 가득 찬 눈빛이었지요.


 

그녀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내려온 이 공허감. 이것은 아주 오랫동안 여성들이 당면해 왔던 문제일 것이다. 작가는 모든 여성의 대변자로서 가정을 빼고 '한 사람'의 여성에게 남는 것. 혹은 '자신'을 이루고자 하는 한 사람의 여성에게 있어 '가정'이 얼마나 큰 압박으로 다가오는지를 묻는 것이다. 어떤 한 편에 서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 답은 있을까?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우리는 답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버지니아 울프'처럼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된 이디스. 그러나 그녀는 묻는다. '자기만의 방'으로 채워지지 않는 어떤 결여는, 정체가 무엇이며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버지니아 울프는 그녀를 사랑하는 남편이 함께였고, 그녀를 인정해주는 동료 남성들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가 아닌 다른 여성이 주위 남성들에 의해 어떤 인정도 받지 못한다면 어떨까. 그녀가 '그녀'스스로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여성과 공존하는 남성이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여성에 대한 배려의 차원이 아니라 여성을 동반자로 삼기 위한 의무이다.

 

이 의문이 다음 세대에도 똑같이 유효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텔 뒤락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9
애니타 브루크너 지음, 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채워지지 않는 결여에 대한 의문 -호텔뒤락 

 

'워킹맘은 가정에선 나쁜 엄마, 직장에선 왕따다.'는 기사 제목을 봤다.
여성이 일과 가정에 모두 매진할 수 있도록 전혀 뒷받침해주지 않는 사회제도를 비판한 말인데, 여성이 사회활동을 시작한 17세기부터 지금까지 전혀 바뀐 것은 없어보인다는 안타까운 현실에 한번 더 좌절하게 된다.

'직업은 자아 실현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배웠다. 엄마나 아빠는 직업이 아니다. 그런데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니. 여성들로서는 어마어마한 생의 압박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엄마의 역할을 잘 하자면 직업적 성취를 이룰 수 없고, 그렇다면 '어머니'가 아닌 오롯한 '나 자신'으로서의 성취는 불가능한 것일까? 사회적 복지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이런 상황의 딜레마에 대해 소설은 계속해서 의문을 던진다.

 주인공 이디스는 로맨스소설을 쓰는 성공한 작가다. 그럼에도 결혼식을 망쳐버린 그녀는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호텔 뒤락으로 간다. 휴가철이 끝난 무렵의 호텔에서 그녀가 마주하는 '여성'들은 가정이라는 체제 안에서 자기 스스로의 정체성과 성취를 묻은 채 사치를 즐기는 사람들과, '어머니'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가정'안에서까지 쫓겨나 결국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거식증 여성이다.

하지만 이제는 가엾은 우리 엄마라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면서 삶이 돌려준 그 슬픔과 혼란스러움과 외로움을 알게 되었거든요. 어머니는 내게 자신의 무지몽매함을 그대로 물려주었어요. 가혹하고 실망스러운 현실 속에서 어머니는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연애담으로 위안을 얻었지요.
... 어머니가 책에서 눈을 들면 그 눈빛도 푸른색에서 회색으로 바래 있었어요. 꿈과 그리움과 환멸에 가득 찬 눈빛이었지요.

그녀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내려온 이 공허감. 이것은 아주 오랫동안 여성들이 당면해 왔던 문제일 것이다. 작가는 모든 여성의 대변자로서 가정을 빼고 '한 사람'의 여성에게 남는 것. 혹은 '자신'을 이루고자 하는 한 사람의 여성에게 있어 '가정'이 얼마나 큰 압박으로 다가오는지를 묻는 것이다. 어떤 한 편에 서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 답은 있을까?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우리는 답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버지니아 울프'처럼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된 이디스. 그러나 그녀는 묻는다. '자기만의 방'으로 채워지지 않는 어떤 결여는, 정체가 무엇이며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버지니아 울프는 그녀를 사랑하는 남편이 함께였고, 그녀를 인정해주는 동료 남성들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가 아닌 다른 여성이 주위 남성들에 의해 어떤 인정도 받지 못한다면 어떨까. 그녀가 '그녀'스스로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여성과 공존하는 남성이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여성에 대한 배려의 차원이 아니라 여성을 동반자로 삼기 위한 의무이다.

이 의문이 다음 세대에도 똑같이 유효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