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와 방금 헤어진 남자가 있다.
곧 죽을 것 같았지만 죽지 않았고, 대신 누군가 죽는 사고 현장을 목격했다.
곧 정신을 차린 그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인생을 글로 쓰면 대단한 작품이 될 거라고 말하며. '하다못해 파울로 코엘료라도 되겠지' 남자는 생각한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에는 끊임없이 죽음이 등장하고, 하도 많다보니 이제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 단어인지, 별 의미가 없는지, 그냥 마침표같은 의미인지, 블랙코미디의 극단적인 형태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페이지를 넘기며 나도 몰래 '죽음'이라는 단어를 눈으로 쫓아가고 있다는 것.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기묘묘한 상황과 주인공의 청산유수같은 말빨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소설, 물건이다. 곱씹어 읽다보면 또 슬몃 웃음이 나오는 부분이 새로 생길 것만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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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후에 오는 것들 - <클레브 공작부인>

 

첫 번째 사랑의 감정을 떠올려보자.
그 느낌은 '설렘' 하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두려움', '낯설음', '안타까움' 같은 것들.
더군다나 이미 결혼한 상대자가 있는 후에 그런 감정이 느닷없이 찾아오게 된다면.

 

클레브 공작부인은 당대의 많은 귀족 부인들처럼 자기보다 신분이 높은 공작과 정략결혼했다. 한번도 사랑의 감정을 느껴본 일이 없기에 쉽게 연애에 빠지는 다른 부인들처럼 가벼이 살지 않겠노라 다짐한 터다.

 

그러나 얄궂은 운명인지 그녀에게 사랑은 그제서야 찾아오게 된다. 그것도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편이 아닌 수많은 염문설을 뿌리고 있는 느무르 공이 바로 그 상대자가 된 것이다.
그녀는 급작스레 찾아온 이러한 감정에 괴로워한다. 설렜다가 식었다가 아팠다가 좋았다가 하루에도 열번씩 기분이 바뀌는.

 

그리하여 이 소설은 누가 누구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꽉 닫힌 공동체 속의 가쉽을 전하는 사람들은 꼭 끼는 드레스를 입고 가면을 쓴 듯 가식적이고 비밀스럽다. 거짓으로 위장하는 감정들 속에서 문득 진짜 감정을 갖게 된 사람의 이야기.

사랑 이야기임에도 그것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인간들 사이의 흔한 감정이 얼마나 무거운지 보여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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