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조각의 존엄성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누군가에게  "사람이 눈이 멀게 되면 어떻게 될까?" 물어보았다.

그는 "먹고 살기 힘들겠지" 라고 말했다.

이 책을 읽고나면 "먹고 싸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될것이다.

퇴근길 횡단보도앞에서 한 남자가 눈이 멀고 만다. 눈앞이 하얗게 보이는 '백색병' 그를 시작으로 하나둘 눈이 멀기 시작한다.  처음 눈이먼 몇사람을 시작으로 격리수용을 위한 정신병원에는 이들 말고도 수십명, 아니 수백명의 사람들이 몰려든다. 국가의 주관하에 목숨부지할만큼의 음식을 공급받고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치부되어 병원밖에 나가게 되면 군인들에 의해 사살되는 것이다. 이들중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은 안과의사의 아내 한 사람 뿐이다. 이 여자는 이 생지옥을 우리로 하여금 잘 관찰하게 도와주는 통로역할을 한다.

앞을 볼 수 없으니 잘 걸어다니지도 못한다. 씻을수도 없으니 당연히 사람들에겐 말할 수 없는 악취가 난다. 화장실도 넘치다못해 의미가 사라져서 몇 발자국 떼다보면 밟히는게 배설물이다. 아무곳에서나 자고 인간다운 자부심같은것은 없으며 원시적인 본능만 남아 눈만 반짝거리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벌레가 된다. 아무것도 볼수가 없기 때문에 인간을 버린 인간의 짐승만도 못한 행태가 벌어진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아무나하고 성관계를 맺고 아무데서나 배설을 하고 식량을 도둑질한다. 게다가 그 불쌍한 무리들 중에서도 총을 가졌다는 이유로 군림하려는 깡패두목도 생겨난다. 그 깡패두목에게 붙은자들까지 합세하여 군인들이 배식하는 식량을 모조리 약탈한다. 음식을 조금씩 나눠주는 댓가로 금품을 탈취하고 그도 모자라 여자들을 성적노리개로 만들기까지 한다. 먹을것을 위해 여자들은 몸을 바친다. 남자들은 배고프기때문에 자신의 아내가 성상납한 댓가로 받아온 음식으로 끼니를 연명한다. 깡패두목이 총을 가졌으므로 무기력한 남자들은 불의한 권력에 복종할 수 밖에 없다. (팔 몸도 없는 무능력한 남자들,, 아 정말 증오스럽다.)

눈이 보이는 의사아내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눈이 멀어서 이곳에 수용될 때 남편의 안위를 위해 눈이 먼것처럼 가장하고 따라와서 이 지옥을 지켜보게 된다. 자신도 그 깡패 두목에게 당하게 되고 자신의 남편도 그녀를 의식하지 못하고 다른여자의 이불속으로 들어가는 것 까지 지켜보면서 차라리 자신도 눈이 멀기를 바라며 흐느낀다.

눈이 먼다는 이 단순한 가정뒤에 이렇게 끔찍한 현실이 뒤따라 올 수 있다니 작가의 상상력과 독창성이 놀라울 뿐이다. 인간이 인간을 버리는 과정을 너무도 치밀하고 설득력있게 묘사하고 있다. 왜 하필 눈인가? 눈이 안보이기 때문에 우리를 더 잘 들여다 보기위함 일 수도 있다.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역겹고 치욕스런 만행들을 저지르는 인간들...그것을 지켜보는 한 여자의 절망과 눈먼이상의 고뇌가 공감을 이끌어낸다.눈이먼다는 것은 여기서 인간다움 즉 인간의 부끄러움을 잃어버리는것을 의미하는것 같다. 사실우리는 눈이 멀었다. 보이는 현실을 외면하고, 권력에 눈이멀고, 명예에 눈이 멀고, 정욕에 눈이 멀고, 이 세상에 내놓을 자랑거리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 판치는 이 세상에서 나 조차도 그것을을 피해갔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당연히 아니다.

어쨌든 그 곳에서도 인간다움을 조금이라도 가졌던 사람들이 마지막 한 조각의 존엄성을 무기로 의기투합하여 눈이보이는 의사아내와 함께 깡패두목을 처치하고 병원밖으로 탈출하게 된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어버린 것을 알고 또 다시 절망한다. 거리에는 굶어죽은 시체들, 시체를 먹는 개들, 산 짐승을 날로 잡아먹는 사람, 풀을 뜯어먹는 사람 내집 네집이 없고 아무곳에서든 불청객들 뿐이며 온세상이 썩은냄새로 진동하고 먹을것이라고 는 찾아볼수 없다. 그래도 눈이 보이는 의사아내도움으로 제일처음 병원에 수용되었던 소수멤버들은 의사아내의 집에 기거하며 그녀의 보살핌을 받는다.

그 절망속에서도 이들은 서로 고통을 나누고 서로 의지하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은 마음과 마음으로 교제하며 도움으로써 희망을 향해 한 걸음씩 발을 떼게 된다. 이 멤버중의 한사람 집에서 우연히 한 작가를 만나는데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겹겹이 포개어 쓴 글씨로 눈이멀었던 동안의 흔적을 남겼던 작가,,이 사람이 종말에 앞서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던진 말이 바로 사라마구가 우리에게 하려했던 말임을 알 수 있었다.

"'자기자신을 잃지마시오, 자기자신이 사라지도록 내버려두지마시오"

인간은 자신의 흰머리 한올도 검게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사람과의 소중한 관계, 인간의 정체성,존엄을 통해 우리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눈을 잃음으로써 모든것을 잃었지만 정말 잃버려서는 안되는 것이 무엇이며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는 이 작품을 만난건 행운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으며 나와 함께 하는 모든이들에게 감사 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주인공 이름도 없고 마침표밖에 없는 책이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집중력, 긴장감.. 강력추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