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전환점

숙명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구혜영 옮김 / 창해 / 2007년 5월

히가시노 게이고 스스로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 여긴 <숙명>을 얼마 전에 읽었습니다.

 먼저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주인공인 유사쿠는 어렸을 때 동네에 있던 병원의 뜰에서 놀기를 좋아했고 그곳의 환자인 한 여성과 친해집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여인은 병원 창문에서 추락사하게 됩니다.

 20년 후,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 때문에 경찰이 된 유사쿠는 그 지역에서 이름난 기업의 사장이 묘지에서 독화살에 맞아 살해된 사건을 맡게 됩니다. 유사쿠는 그 사건을 조사하면 할수록 그 기업 내의 파벌들 간 다툼이 보기보다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와중에 원래 회사 후계자였다가 의사가 된 아키히코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게 됩니다.

 더욱이 아키히코는 공교롭게도 유사쿠와 동창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적, 운동 모든 면에서 유사쿠보다 앞섰기 때문에 유사쿠에게는 일종의 장애물로 여겨졌고, 더욱이 유사쿠의 첫사랑인 미사코는 지금 아키히코의 아내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기가 막힌 운명일까요, 과연 유사쿠는 제대로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전체적으로 봤을 때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탄탄한 구성, 그리고 배경에 나와 있듯이 정신의학과 관련된 지식 등이 돋보였습니다. 로빈 쿡 스타일의 의학 스릴러로 갔다면 더욱 긴박감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숙명'이라는 제목답지 않게 의외로 편안히 볼 수 있도록 이야기를 이끌어 가더군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에 그리 좋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동기는 나름대로 괜찮았지만, 가장 중요한 마지막 반전은 솔직히 복선이 부족했다고 봐야 할 것 같고, 등장인물, 특히 미사코와 아키히코, 유사쿠의 관계는 조금 억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단지 미사코가 '보이지 않는 끈'이라 표현한 무엇인가가 전부지요, 하지만 '어떻게'보다 '왜'에 주력하여 사건을 이끌어 나간 히가시노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