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 한국 현대문학 100년, 단편소설 베스트 20
김승옥 외 / 가람기획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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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나'이다. 이 소설에서 서술자로 등장하는 '나'는 서른 셋의 나이로 제약회사에서 꽤 높은 자리에 있는 소위 잘 나가는 기업가이다. 게다가 며칠 후면 그 아내와 장인의 도움으로 제약회사 전무가 될 몸이다. 그런데 그의 아내와 장인은 그에게 잠시 동안의 휴가로서 무진으로의 여행을 권하게 된다. 무진에는 어머니의 묘가 있고 그가 참담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에게 있어 무진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아픈 옛 추억의 장소라 할까...그는 현실에서 좌절했을 때, 혹은 심하게 갈등을 겪을 때면 고향인 무진을 찾곤 했다. 그러나 늘 어두운 골방 속에서의 화투와 불면, 수음 그리고 초조함뿐이었다. 그는 항상 무진을 생각할 때마다 어두웠던 자신의 청년생활을 연상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는 이미 돈 많은 아내를 얻어 출세 가도에 올라 있다. 서울에 큰 제약회사의 전무로서 그는 무진으로 금의환향하는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여러 사람을 만난다. 그를 존경하는 후배인 '박'과 중학 동창이며 고등고시에 합격해 무진의 세무서장으로 있는 '조', 그리고 '박'과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음악교사 '하인숙' 등이다. 문학소년이었던 박은 그를 우러러보고, 그에게 열등의식이 있었던 조는 갑자기 출세한 그와 자신을 똑같다고 생각한다. 하인숙은 그에게서 풍기는 서울 냄새를 즐기며 그를 유혹한다. 그는 하인숙의 유혹에 몸을 맡기며, 그가 폐병으로 요양했던 바닷가 옛집에서 정사를 나눈다. 그는 무진을 탈출하고 싶어하는 하인숙에게서 그는 자신의 옛 모습을 발견하고 사랑을 느낀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서울로 데려가겠다고 말한다. 다음날 그는 상경을 요구하는 아내의 전보를 받고는 갈등한다. 서울로 가겠다고 작정한 후, 그는 하인숙에게 사랑한다는 편지를 쓴다. 그리고 찢어버린다. 그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서울로 간다.

나는 '무진기행'을 읽으면서 서울과 무진이라는 두 배경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서울...그에게 있어 서울은 기회의 땅이오, 일상의 공간이다. 그곳에는 그의 성공을 뒷받침해 준 아내와 장인이 살고 있고 그는 그곳에서 제약회사의 전무를 맡고 있다. 그에 비해 무진은 참담했던 어린 시절의 쓰라린 추억을 간직한 아픔의 공간임과 동시에 꿈의 공간이다. 안개와 바다와 하인숙의 노래가 있는 꿈의 공간이다. 주인공인 '나'는 이 때문에 둘 사이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한다. 결국 그가 택한 것은 현실의 세계인 서울이었다. 그는 이미 전쟁과 실직과 실연의 쓰라림을 맛본 30대의 성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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