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베개 - 장준하전집 1
장준하 지음 / 세계사 / 1992년 4월
평점 :
절판


돌베개는 그가 죽기 4년 전 펴낸 자서전적 소설로 1944년 7월 부터 1945년까지 2년이라는 세월의 파란만장한 나날들을 그린 것이다. 그는 학도병이로서 중국 서주에 있는 일본 군영에 있다가 김영록, 윤경빈, 홍석훈과 함께 탈영을 시도한다. 그들은 당시 중경에 위치한 임시정부의 소식을 듣고 자신의 안전과 나라에 대한 애국심 사이에서 갈등을 하다가 마침내 그 당시 임시정부가 있던 중경행을 결심한 것이다. 탈영 직전, 그는 고국의 집에 편지를 보냈다. 편지 도중에는 '앞으로 베어야할 야곱의 돌베개는 나를 더욱 유쾌하게 해 줄 것이다' 라고 해 그의 굳은 결의를 엿볼 수 있었다. 탈영 도중 굶주리고, 목이 말라 썩은 물을 먹기도 하는 등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운 좋게도 그는 중국의 진영하에 들어가게 된다. 그 곳에서 한 때 일본 진영의 포로 교환 요구에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한 사령관의 배려로 그들은 무사히 살아남았다.

그러나 중국 진영에서도 오래 머물지는 못하였따. 중국의 <팔로군>의 기습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중국 진여에서 나와 다시 중경으로 향한다. 중경을 가던 도중 광복군에 들어간 그는 광복군에 기대기는커녕 오히려 취사를 책임지고, '등불'이라는 잡지를 발행하는 등 광복군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여 광복군을 이끌어가게 된다. 광복군 졸업식이 있는 날. 그는 연예회를 열어 많은 공연들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다시 중경으로 향한다. 그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며 결국 1945년 1월 31일, 그는 중경의 임시정부에 도차갷T다. 그곳에서 그는 꿈에도 그리던 임시정부의 요인들을 만났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그를 만족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여러 당이 결합하여 결성한 임시정부인지라 내부 분열이 심각했던 것이다. 부패한 임시정부에 실망을 느끼던 장준하와 r를 따라 임시정부로 온 많은 젊은이들은 결국 이범석 장군을 만나게 되고 그의 휘하에 들어가 훈련을 받고 미군 OSS의 대원이 되어 미군과 함께 국내 침투 훈련을 받는다. 그러나 그 해 8월, 광복이 되고 만다. 그리고 마침내 1945년 11월 그는 김구를 중심으로한 임시정부 요원 중 한명으로 고국에 발을 내딛었다. 그는 고국에서 김구 선생을 보좌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내가 접한 돌베개라는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장준하..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그는 오직 자신보다는 조국을 위해서 살았고, 심지어는 가족보다도 조국을 더 소중히 여겼다. 또 많은 사람의 존중을 받으면서도 결코 자만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굳은 신념을 많은 사람들에게 심어 주었다. 그리고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그가, 그 당시 군사정권으로 대통령 자리에 있던 '박정희의 천적'이라고까지 불렸겠는가. 이렇게 박정희의 군사정권에 반발하던 그는 등산을 하던 도중 의문의 추락사로 사망하고 만다. 민족의 등불 중 하나가 꺼진 것이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많은 의견들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순히 그의 사인이라기 보다는 그가 죽기까지 이루어낸 많은 업적들이다.자신의 의지와 신념에 따라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조국의 안녕을 위해 노력한 장준하 선생. 우리는 그의 열정, 장렬한 넋을 가슴에 영원히 간직하여 그가 이룩한 이 조국을 지키도록, 아니 발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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