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도서관 문 앞의 야만인들
애드 디 앤절로 지음, 차미경.송경진 옮김 / 일월서각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에 공공도서관이 자리를 잡은 것은 1900년대로 100여년의 역사를 갖는다. 아직은 복지국가에 비해 도서관 수도, 장서량도, 사서 수도 많이 뒤쳐진다. 그나마 점차 도서관이라는 이름보다 학습관, 정보센터 등의 이름으로 우리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책은 공공도관의 임무를 민주주의와 시민교육, 그리고 공익으로 본다. 포스트모던 소비자 자본주의에 의해 오락의 기능으로 치우치면서 이 가치들과 함께 사서와 도서관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문지기로서의 사서의 역할이 사라지면서 대중문화에 휘둘려 도서관은 소비자 경제의 일부가 되어 버리고, 역할이 없어진 사서는 경영관리나 공공계획 쪽의 학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밀려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 공공도서관 사서로서 10여년간 근무한) 도서관의 가장 큰 역할은 무엇보다 세월을 아우르는 장서의 수집과 그 자료를 이용시키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이다. 그래서 도서관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양질의 도서를 모으기 위한 수고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한 장서의 뒷받침 하에 교육, 문화 등의 기능이 수반되어야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지식의 창출은 개인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개인의 깊이 있는 공부 없이는 세대를 뛰어넘는 지식이 나올 수 없다. 또한 그런 세기의 지식은 독서 없이는 탄생할 수 없다. 논어에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라 했다. 옛것을 익히지 않고는 새것이 나올 수 없다. 도서관의 교육, 문화프로그램은 함께 받는 자극이다. 여기에서 받은 자극을 내면화 하고 심도있는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독서이다. 자신의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기 위해서도 다양한 독서를 통한 비교와 성찰이 동반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공공도서관 정책을 보면 지나치게 교육적 측면을 강조한다. 현 사회의 문제를 도서관(기타 유사 기관...)에 기대어 풀어나가고자 한다. 좀 더 양질의 독서와 독서를 위한 프로그램의 활성화가 이루어 져야 한다는 이 생각은 너무 안이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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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
~우리가 직업의 뿌리에 대한 이해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꼭 필요한 공공재와 교육의 가치를 정부가 평하절하하고 억압하는 것도 쉬워진다.


p.29
어떻게 우리는 도서관에 사서가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일까? 어떻게 우리는 '공공도서관'에서 '공공'을 떼어내버리게 되었을까? 그리고 왜 우리는 이런 일들을 걱정해야 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의 광범위한 경향에 대한 탐색과 더불어 도서관과 사서직의 역사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무엇ㅅ이 공공도서관을 시장의 다른 사기업들과 구분 짓는 근본적이고도 핵심적인 것인가 하는 것과 공공도서관의 임무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오락과 교육, 욕망과 교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민주주의와 시민교육 그리고 공익이라는 것은 공공도서관을 지탱하는 세 기둥이라는 것이며, 포스트모던 소비자 자본주의는 이 세가지 가치와 더불어 이를 위한 기관인 공공도서관을 위협한다는 사실이다.

p.39
공익이라는 개념은 공공도서관의 개념에 필수적이다. 18세기에 이미 민주주의란 곧 공익으로 믿어졌고, 교육은 그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근대 공공도서관들은 본래 민주주의와 시민교육을 진작시킴으로써 공익에 이비지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p.76
교육은 지식을 바탕으로 한 전문적인 권위를 전제로 한다. 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을 교화시키는 것이다. 반면 오락의 목적은 고객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다. 오락은 고객이 늘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옳고 그름 사이의 어떠한 구별도 전제하지 않는다. 오락은 일종의 소비지상주의다.

p.199- <포스트모던 소비자 자본주의와 공공도서관>
오늘날에는 서평이나 판단기준에 근거해서 책을 선별하는 경향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사서들의 일상업무는 사서들의 독서시간을 줄이도록 재편되어왔다. 점점 더 많은 책들이 수요가 높다거나 판매고가 높게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 선정된다. 이러한 경향이 지속되면 결국 사서들은 더 이상 장서에 포함시킬 도서를 선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러한 경향의 끝에는 기업형 체인서점의 도서자동주문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단지 대출이나 신청된 수에 다라서 필요한 책을 주문하는 자동화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할 수 있다. 다소 충격적으로 들리겠지만, 트웨첼식으로 말하자면, 윌리엄 프레더릭 풀이라는 시카고 공공도서관의 수석 사제가 곧 컴퓨터 스크린 위에 깜박이는 작은 숫자들을 지켜보고 있는 기술자가 된다는 것이다. " 다니엘 스틸과 스티븐 킹의 책들을 좀 더 가져다주세요"라고 말하면서.
~도서선정의 원칙은 아주 간단해졌다. "달라는 걸 줘벼려"라는 것이다.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라는 것이다. 비위를 맞춰 주고 떠받들어주되 교육하려 들지는 말라는 것이다. 판단기준의 결여는 포트스모던 소비자 문화의 중심에 도사린 허무주의를 입증한다.
공공도서관에서 문지기로서의 역할이 사라지자 대중문화가 고급문화를 압도했고, 오락이 교육을 대체했으며 이미지가 활자를 대신했다. 도서관은 이제 영화로 만들어지기 위해 쓰인 베스트셀러뿐만 아니라 거대한 비디오 컬렉션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지와 활자는 모두 정보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둘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으며 도서관의 업무는 대중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양쪽 모두를 제공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정보와 지식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단어는 이미지보다 더 잘 추상적인 사상과 지식을 전달할 수 있다. 이미지는 단어보다는 훨신 더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재미란 단지 즐거움을 얻기 위해 지식이 아닌 정보를 소비할 뿐이다. 도서관이 이미지의 조달자가 되는 한 도서관은 소비자 경제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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