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이 기회입니다 - 영혼의 자유를 묻는 그대에게, 개정판
김기태 지음 / 침묵의향기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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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불안, 우울, 잡생각, 망상, 무기력, 분노, 미움, 말더듬, 경직, 긴장, 우유부단, 강박, 비열함, 야비함, 이기심, 교만, 기쁨, 환희, 즐거움, 상쾌함, 성실, 겸손, 자비심 등등 모든 번뇌와 오욕칠정이 다만 있는 그대로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울이 오면 그냥 좀 우울해하고, 문득 불안이 찾아오면 그냥 좀 불안해하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어느 순간 경직과 긴장이 찾아오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그냥 좀 경직되고 긴장하면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또 살다가 무기력해지면 그냥 좀 무기력해하고, 우유부단하면 그냥 좀 우유부단하며, 속에서 어떤 비열함이 올라오면 그 비열함 또한 자신임을 인정하고 시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또 기분이 좋아지면 그냥 기분 좋아하고, 어떤 기쁨과 즐거움이 찾아오면 그 순간 그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매 순간 있는 그대로의 우리네 삶이 모두 다 진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를 두고 "중생의 삶 그대로가 곧 부처이며, 번뇌가 바로 보리이다."라는 말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p.201~202, 김기태 저, <지금 이 순간이 기회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산철 결제가 취소되었다. 대중이 흩어지고 몇몇 스님네들만 남아 선원을 지키고 있다. 권태롭게 시간을 죽이던 차에 손에 책이 잡혀 읽어보니 김기태 선생의 책이었다. 김기태 선생의 책은 시종일관 같은 자세를 유지한다. 모든 것에는 문제가 없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라. 너무나 깔끔하고 담백해서 건드릴 여지가 없다. 특정한 수행 지도법이 없다. 특별한 신비 체험의 일화 같은 것도 없다. 그는 그저 모든 풍경의 문제 없음을 이야기할 뿐이다. 그 이야기는 너무도 담백해서, 어쩔땐 그저 그런 자기계발서의 관용구처럼 들리기도 한다. 수행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김기태 선생의 가르침은 그 갈증을 더욱 심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갈증의 해소가 아닌, 갈증의 직면에서 갈증의 밑바닥까지 침잠할 것을 이야기한다.


김기태 선생의 가르침은 정말 '본질적'이다. 그것은 때로 선불교 조동종의 가르침을 연상케한다. 조동종에는 현성공안現成公案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의 공안은 화두라기보다는 진리, 깨달음의 세계 그 자체를 뜻한다. 진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이뤄져있다는 뜻이다. 조동종은 이 현성공안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일반적으로 밭을 가는 마음은 가을에 곡식을 거두기 위함이다. 그러나 우리네는 그와 다르다. 벼가 익어도 나가서 거두어들일 생각을 않고, 그대로 비바람에 맞게 내버려 둘 뿐이다. 그대들이여, 이 몸뚱아리는 몸뚱아리 그대로 완성되어 있고, 두 눈은 두 눈대로 그대로 있어야 할 곳에 자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깨달음의 소식은 처음부터 털끝만치도 어긋남 없이 완전한 그대로이다. 그러니 늙은 여우같이 의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다시 무엇을 의심할 것인가." 조동종의 조사인 굉지 선사의 법문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내면을 견디지 못하여, 때로는 어떤 지지부진한 현실을 초극하기 위하여 깨달음을 갈구한다. 이에 조동종의 선승들은 그 견디지 못하는 마음, 그 깨달음 갈구하는 마음을 묵묵히 비추어보며 앉아있을 뿐이었다. 김기태 선생의 가르침도 그와 같다. 그렇게 갈구하는 마음, 추구하는 마음, 밖으로 치달리는 마음을 받아들일 뿐이다. 그 마음이 세운 대상을 쫓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 자체를 직면한다. 그리하여 현재 딛고 선 지금 여기에 대한 완전함을 발견토록 한다. 그는 어떤 돌파구로서의 해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히 그런 '해법' 같은 것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의문과 질문을 끝가지 몰아 붙이기보다는 그 의문과 질문이 가리고 있는 '현재'를 목도하도록 한다.


그는 또한 삶의 그늘진 풍경 역시 '진실'이라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밖의 풍경을 보며 '그것들은 인과에 따라 일어나는 일'이라고 짐짓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척 하면서도 안의 풍경들에 대하여는 어떻게든 극복하려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외면의 풍경들이 그러하듯 내면의 풍경들도 인과에 따라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저자는 시기, 질투, 열등,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들마저 삶의 진실한 모습임을 이야기한다. 그 진실한 모습들을 애써 극복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극복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때로는 시기에 흔들리고 질투에 흔들리고 분노에 흔들리더라도, 그 흔들리는 모습 그대로가 삶임을 긍정하는 것이다. 긍정, 그리고 또 긍정. 이 긍정의 바탕 위에서 그것들을 극복해나갈 수도 있고, 또는 그 어두운 감정들을 움켜쥐고 삶의 여러가지 그림들을 그려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를 힘들게 하는 '문제'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그것에 대한 모든 저항을 그친다면, 그 순간 우리 마음 안에는 어떤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 더 이상 문제가 문제로 보이지 않게 되는 묘한 힘 같은 것이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 마음이 만들어 내는 모든 허구적인 고통이 사라지게 되어, 다만 문제 자체가 갖는 약간의 힘겨움과 고통만을 치러 내기만 하면 되기에, 우리의 삶은 한결 가볍고 자유로우며 설명할 수 없는 평화 같은 것을 깊이 맛볼 수 있게 됩니다.


------p.205 김기태 저, <지금 이 순간이 기회입니다>


그의 가르침에는 정말 군더더기가 없다. 그러나 다른 말로 하면, 배우는 사람에겐 발 디딜 틈이 없다는 의미도 된다. 있는 그대로가 문제없다는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너무도 적확한 이야기이지만, 있는 그대로에 문제없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겐 그저 막연한 미사여구로 다가온다. 이런 식의 공부는 스승을 곁에두고 꾸준히 지도받아야만 전환을 이룰 수 있다.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는 힘을 얻기가 힘들다. 있는 그대로에 문제를 제기하는 '생각'의 힘이 그토록 강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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