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부릅뜨고 와 귀를 가리고 가다 - 백봉 김기추 거사의 삶과 가르침
최운초 지음 / 가을여행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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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봉 거사는 무자 화두를 참구하여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유명한데, 승속을 불문하고 재가자로서 그 깨달음을 공공연하게 인정받은 것은 그가 거의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는 한일합방이 이뤄지기 2년 전에 태어나 일제치하와 2차 세계대전, 남북전쟁이라는 굵직한 굵직한 사건들을 몸소 겪어내야했다. 민족운동, 청년운동, 국회의원 등 파란만장한 세상사를 살다가 나이 50이 넘어 불교를 접했고, 무자화두를 참구하여 그 다음해 견처를 얻는다.


지견이 난 뒤 부터는 금강경을 강의하기 시작했는데, 여기 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들더니 금방 회상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후로 영향력이 조금씩 커지면서부터는 백봉 거사의 유명세가 절집에까지 퍼지기 시작했다. 경봉스님, 전강스님, 구산스님, 혜암스님(수덕사) 등 기라성 같은 선승들과의 교제가 있었다. 종단의 총무원장을 지내고 정화 운동에 앞장 섰던 청담스님은 대의스님과 함께 백봉 거사에게 출가를 권유했다. 지금이야 나이 40, 50이 주된 출가 연령층이지만 그때 당시만해도 삼십이 넘어 출가하면 늦깍이 출가라 하여 절집에서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풍토에서 종단의 원로스님들이 찾아와 상당한 특혜가 보장된 출가를 권유하니 당시 백봉 거사의 영향력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대의스님이 하도 그러기에 내 말 들어주면 머리 깎겠다 이랬습니다. 지금 중 반 내보내라, 옷 벗겨라 이랬습니다. 못 벗기겠죠? 내가 그랬어요. 내가 만약 머리를 깎아. 그래서 어떤 조실에 앉는다든지 만약 그래 된다면 난 중 옷 벗기겠단 말이여. 내가 베끼려면 그 중 옷 벗겨지겠습니까? 까딱하면 두들겨 맞아. 하하하. 못합니다.


올바른 정신을 가져야 올바른 행동이 나오죠. 이 제도 가지고는 안 된다. 공부하는 방편 고쳐야 된다. 그러면 그러겠다고. 늦깎이니 뭣이니 그건 상관없다고. 내가 답답해 죽겠어요. 사람 일 년에 몇이나 났느냐 이겁니다. 일 년에 단 열만 나도 좋겠습니다. 열 못나면 하나만 나도 좋겠습니다. 지금 지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이 나도록 지도하지 않는 것이거든. 사실을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면 아무리 멍텅구리라도 어째 조금 깨닫지 못하겠습니까?


----- 백봉 거사, 1983년 남천동 여름 정진 법회 중에서


백봉 거사는 조계종 원로 승려들의 출가 제의를 거절했다. 그는 승가의 수행 풍토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였는데, 이것이 출가 제의를 거절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한국불교의 간화선 수행풍토는 철저한 방임주의에 있다. 선지식이 화두를 하나 던져주면, 납자는 그 화두 하나만을 가지고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 몇몇 수좌들은 혼자 물고 늘어진 끝에 마침내 공의 도리를 맛보긴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더러 많지는 않은 것이 현실이다. 성철스님이 입적하고서 20여년이 흘렀지만 제방에 이렇다 할 간화선 선지식은 배출되지 않고 있다. 제방에 어른스님들은 납자 제접을 받아들이긴 하지만 당신들이 수행지도 일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원대 간화선을 그대로 계승한 특성이라곤 하지만 이러한 방임주의가 간화선풍의 침체를 불러오고 있다.


몇년전 산철 결제 때 초빙된 교선사스님이 학인들을 앞에두고 선문염송을 읽어보았느냐 물은 적이 있었다. 제목은 들어보았으나 읽지는 못했다는 학인들이 태반이었다. "간화선을 한다는 사람들이, 여태까지 선문염송도 읽지 않고 무엇을 했습니까?" 어이가 없다는 듯 내뱉은 교선사스님의 말씀이 쉬이 잊혀지지 않는다.


조사선이 부흥한 이래로 당송시대 선불교에서는 수많은 공안들이 발생했는데, 역대 선사들은 이 공안들을 정리하고 수습하여 학인들에게 숱하게 강의하였다. 그런데 유독 한국의 제방선원에선 공안을 다루길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공안이란 화두를 타파하고 난 뒤의 일인 것이며, 깨닫기 전에는 읽어도 그 의미를 알 수 없으니 가르쳐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심산이다. 그러나 공안이란 부처를 위한 언어 유희가 아니라 중생을 위한 언어를 여읜 언어이다. 공안이란 깨달음을 얻고 난 뒤에 읽어야 할 문답이 아니라 깨닫기 위해 읽어야 할 문답들인 것이다. 그래서 송나라 시대 조사들은 제자들에게 공안을 강의하고 또 강의했다.


대혜종고의 스승이었던 원오극근 선사는 설두선사가 가려 뽑은 공안 100칙에 자신의 해석을 더하였고, 그 해석들을 학인들에게 강의하기 시작했다. 훗날 학인들이 원오 선사의 강의를 책으로 만들어 간행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선불교의 백미라 꼽히는 벽암록이다. 물론 벽암록의 간행으로 생긴 부작용도 만만찮았다. 공안에 대한 강의와 공안집에 대한 숙독으로 선의 문법을 익힌 자들이 선에 관한 진정한 체득 없이 깨달음을 흉내는 일이 잦아졌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대혜종고는 직접적인 화두선을 창시했고, 그것이 곧 반-공안 수행풍토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 벽암록을 불태운 대혜종고 조차도 661개의 공안들에 착어한 정법안장을 간행하였는데, 이는 벽암록의 6배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일본에서는 송나라 공안선의 수행풍토가 잘 보존되어있다. 이것은 일본 임제종의 특색이기도 한데, 그들은 한국과는 달리 공안의 낙처를 통찰하여 '적절한' 답을 내놓는 것이 점진적 수행의 과정으로 인정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납자는 역대 조사들이 이야기한 '언어의 바탕'을 조금씩 눈치채게 되는 것이다. 이는 조사선 시대의 '직지'가 공안선과 결합한 일본 임제종 특유의 수행가풍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수행가풍에서는 선지식의 역할이 직접적이다. 안목없는 선지식은 납자들을 제접할 수 없다. 오직 견처가 있고 안목이 있는 선지식이라야만 지속적으로 납자들을 지도하고 점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일본 임제종에서는 평상시에도 매일 1~2회 씩, 셋신이라 불리우는 집중 수행기간에는 하루에 너다섯번 씩이나 독참을 한다. 1:1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선문답이 이뤄지는 것이다. "독참을 하지 않으면 좌선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일본 임제종의 격언구다. 이런 점검 시스템은 납자들의 수행의지를 북돋우면서도 능력없는 선지식을 걸러내는 작용이 있다. 한편으론 이러한 수행풍토가 선어록, 공안집에 대한 방대한 해석으로도 이어지는데 이를 두고 한국불교에서는 의리선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비판하는 한국불교의 간화선 수행풍토는 정작 너무도 빈약한 것이 현실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공안집 주석서는 그리 많지 않은데, 그 몇 안되는 주석서들 또한 대부분 재가수행자가 간행한 것들이다. 제방선원의 선사들은 공안에 대해 착어를 하고 해설하는 것을 불필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수행 풍토가 한국 간화선의 답보를 불러 들이고 있다. 선풍이 부흥하기 위해선 선사들의 직접적인 수행 지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홀로 화두만 참구해야 하는 방임주의 간화선에는 선지식의 수행 지도가 끼어들지 못한다. 제방에서는 항상 '선지식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만, 솔직한 말로 이야기하자면 한국의 간화선풍은 선지식의 역할이 거의 전무하다. 어쩌면 40여년전 한국불교의 간화선 종장들도 이러한 문제를 두고 고민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혜성처럼 등장한 백봉 거사를 무리해서라도 승가에 편입시키고자 했던 것인지 모른다. "이 제도 가지고는 안 된다. 공부하는 방편 고쳐야 된다." 한국 선불교의 르네상스로 불리우던 7~80년대에도 이런 말들이 오갔다.


이 책은 백봉 거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이야기다. 그의 출생과정과 파란만장한 삶, 무자화두를 참구하기 시작하여 불교계의 거목으로 활약한 백봉거사의 일대기가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기록되어있다. 편집자적 견해가 없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되도록이면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 사실에 의거해서 기록하려던 노력이 엿보인다. 백봉 거사는 말년에 이르러 재가수행자들을 위한 새로운 화두 수행법을 제시했는데, 이른바 '새말귀' 수행이다. 현재 서울 보림선원에서 백봉 거사의 후학들이 지도를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새말귀 안내서'라고 하는 수행지도서도 나왔으니 백봉 거사의 수행 지도법을 알고 싶다면 같이 한 번 읽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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