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의 몸 - 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에 대하여
희정 글, 최형락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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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몸_희정/최형락

출퇴근 길에 읽으며 의지를 다잡을 수 있었던 책. 정년까지 한 곳에서 헌신하신 노동자의 숭고한 모습을 보다보면, 내 몸에 남은 일의 흔적들이 통증이나 질병으로만 명명되는 것 같지 않아 위로받는다.
마치 일의 흔적이 나 자신으로 치환됨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과 함께 한 이번 한 주동안의 출근과 퇴근길이 나에게 버텨나갈 용기를 주었으리라 생각하게 된다. 그만큼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한 한 주 였기에. 힘든 시기에 사유할 수 있는 가치로운 책을 만나 기쁘다.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분명하리라. 새로운 각성이 필요한 이들에게도.

📌노동이라는 것은 냉정하여 무엇이건 지키고자 한다면 몸을 움직여야 했다. 찰나의 성과도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기술도 대가 없이 내주지 않았다. 시간을 내놓은 베테랑들은 둥근 달과 함께 퇴근해야 했고, 굳은 살이 박혀야 했고, 눈물을 머금어야 했고, 살이 벗겨져야 했고, 기약 없이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오래 한자리에 붙박였다.

✏️몸은 일의 기억을 생기는 성실한 기록자이다. (...) 손가락에서 손목으로, 손목에서 어깨, 목, 허리, 골반으로, 그는 통증으로 인해 관절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알게 된다. 통증이 자세를 만들고, 자세는 체형을 만든다. 반복된 행동은 버릇과 습관으로 남는다. (...) 젊은 시절, 아직 노동을 거치지 않았을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몸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는 경력이 기술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내 기술은 내가 만드는 거거든요.”

✏️숙련이라는 것이 '하다 보면'의 시간 속을 채워 쌓이는 게 아닌가. 그 시간을 채우는 게 어렵고, 잘 채 우는 건 더 어렵다. 우리가 숙련자들에게 감화받는 지점은 거기에 있을진대, 사람들은 유독 살림에 박하다.

✏️"자존심으로 여태 살았어요. 우리 아버지가 가르 치길, 우리는 오징어 아니다. 썩어도 준치다. 뼈대가 있다. 자존심을 내려놓는 일은 하지 말래. 그래도 우리 아버지가 하는 말이, 개같이 벌어도 된다. 안 그래또 직장 다니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 많잖아요. 그거는 괜찮다. 왜냐하면 내가 여기서 도둑질하는 것 아니고, 정당하게 일해서 보수를 받는 거니까. 그건 자존심 상할 것이 아니다. 내 직종이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무시당한다지만, 이 옷 벗으면 사람 다 똑같다, 그렇게 마음먹었지."

✏️이렇게 한길로 살아온 자기 자신에게 고맙다는 그 말이 좋았다. 한 사람이 한길로 살아온 여정을 좇으며 건전지가 아닌 사람의 존엄을 본다. 수모와 존엄 사이에서 단련되고 쌓 여가는 숙련의 질감을 더듬었다. 마치 그것은 하영숙처럼 말랑하고 따스하며 딴딴했다.

✏️"그런데 실전만 한 게 없어요. 현장에서 일을 배우면 초집중 상태라 일이 몸에 달라붙어요. 한 번을 해도 내 것이 되는 거죠."

✏️'내 안전은 내가 지키는 것.' 이 말에 는 자신의 안전이 타인의 관심 영역이 아니라는 씁쓸한 인식도 들어 있다.

✏️세상의 시선이 어떠하든, 그는 이 일을 허투루 여긴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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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사르르 비밀의 밤 밤이랑 달이랑 7
노인경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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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도서가 시리즈 작품인지에 대해서 무감했던터라 어떠한 그림체와 감수성을 가지고 이야기가 펼쳐질지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일단 아이들의 시선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할 수 있는 언어들이 너무나 매력적이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 배가 뜨워진다는 동생, 밤 사이 상어모양 아이스크림과 수박 모양 아이스크림들에 눈이 생기고 이곳 저곳으로 사라질 것만 같은 두려움에 떠는 오싹함에 귀여운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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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샐러드 : Salad for Me (NEW Edition)
김현의 지음, 사키 그림 / 어반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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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는 어반북스의 새로운 개정판 ‘나의 샐러드’책이 도착했다. 어반북스의 책들은 물성자체로도 오브제의 역할을 톡톡하게 하기에 이번 책의 실물도 너무나 기대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책장을 넘길때마다 펼쳐지는 마티스 풍의 감각적인 그림들과 하나 같이 나의 몸을 치유해줄 것만 같은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건강한 음식을 챙겨먹어본 이들이라면 안다. 샐러드 한 그릇과 토마토 마리네이드같은 음식에 맛이 깃들기까지는 얼만큼의 정성과 재료에 대한 관심이 필요로 한지. 거의 선식만 먹으며 생활하던 때는 정말 라면의 감칠맛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음식 본연의 맛이 느껴졌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며 다채로운 샐러드들의 이야기를 읽어내릴 때마다, 그 당시의 산뜻한 기억과 식욕이 입 안을 돋군다.
저마다의 사연이 가득 담긴 샐러드들 이야기와 함께라면 두배로 즐길 수 있다. 게다가 감각적이고 모던한 샐러드 드로잉은 포스터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넉넉한 사이즈, 분철이 가능한 방법으로 제작되어 만족스럽다. 물론 나는 단 한 장도 뜯지 못하게 보관하게 되겠지만:)
때로는 보고 만지고 읽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순간이 있기 마련이니, 이 드로잉 북을 꽤나 소중하게 들고 다니게 될 것 같다.

내가 먹는 것이 나의 몸을 만들어 내게 될 것이라 믿는 당신, 리틀 포레스트 속 모든 장면을 애정하고 사랑하는 당신에게 이 책이 꼭 맞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소설 속 내가 가장 좋아했던 에스더의 모습은 <레이디스 데이> 오찬에서의 모습이었다.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눈앞에 두고도 조심스러워하며 먹지 못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에스더는 접시를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마치 음식을 적게 먹고, 얌전히 먹는 여성이 여성스럽다는 사회적 편견에 대항하듯. 그녀는 캐비아를 얹은 찬 닭고기 를 한 접시 먹은 다음. 한 접시를 더 먹고, 마요네즈에 버무린 게살을 담은 연둣빛 아보카도 샐러드에 달려들었다.

✏️누군가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결국에는 자살한 실비아 플라스를 보고 자신의 삶을 쉽게 놓아버린 나약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가 살아온 인생을 제대로 들여다보고도 그녀를 나약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꿈꾸 는 여성에게 가혹했던 시대적 상황과 연대할 수 없었던 그녀의 삶을 생각한다. 지금의 우리는 '벨 자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어쩌면 우리 곁의 누군가는 그녀처럼 벨 자'를 뒤집어쓰고 괴로워하고 있진 않을까.

✏️“나만의 레시피로 새 계절을 맞는 일. 나의 봄은 그것으로부터 다시 시작되지 않을까.” _리틀 포레스트

✏️여름철에는 잔뜩 만들어 놓고 샐러드로 먹기도 하고, 와인 안주로 조금씩 꺼내 먹는다. "삶은 토마토 같은 거야. 언제나 애매하지. 그러니까 복잡한 감정들 속에서 혼란스러울 때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라는 문장으로 나의 불안한 삶을 다독이며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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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1~2 세트 - 전2권
오에 겐자부로 지음, 김현경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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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품들은 책장에 오래오래 남게 될 작품들 중 하나이다. 하루가 다르게 쌓이고 빠져나가는 혼돈의 카오스와 같은 책장 속에서 살아남기란 어떤 명징한 기준의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어렵다. 그것은 스스로도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기준일 때도 있다. 아무튼 그 중에서 뚜렷한 특징을 지어보자면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것이다. 여기서 실패란 시간낭비를 주로 뜻하는데, 해당 작품들의 경우 읽는 동안의 문학적 성취를 쌓아가는 것은 물론 새로운 시야와 경험치를 쌓아갈 수 있다는 기본값이 보장되어있음을 뜻하기도 하다.
“시적인 힘으로 삶과 신화를 응축해 오늘날 인간이 처한 곤경의 불안한 자화상을 그려냈다.”라는 한 평론가의 언급이 그대로 마음을 관통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디스토피아적인 냉담한 배경을 설정하고 있음에도 고래와 나무의 혼을 수호하는 주인공, 그의 장애를 가진 아들로부터 이어지게 되는 연대와 공존의 시작. 이를 엮어내는 시적인 문장의 아름다움에서는 작가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핵전쟁과 핵오염에 대한 문제의식과 인간의 실존에 대한 질문들은 해당 작품에 대한 보다 깊은 생각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공들여 읽는 시간들만큼의 통찰력을 선사하는 듯하다.

황폐화된 세계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연대와 집단을 구성해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 아이러니한 평안함을 느끼게 된다. 아직 1편 이기에 이후 또 다른 전개의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의 감상은 그러하다:)

✏️테이블 위 작은 나뭇가지는 버려진 물건처럼 건조해져 그를 위협하던 험악한 새의 다리를 닮아간다..

✏️비록 싹이 나오기는 했어도 아직 발아할 징후가 없는 동안, 나무의 혼은 밑동에 오므린 채 겨울잠을 자고 있다. 나무와 교감하길 늘 바라는 그는 그 견고한 동면에서 배우는 것이 있었다.

✏️나무의 혼, 고래의 혼이 듣기를 희망합며 길고 긴 보고를 시작했다.

✏️지하벙커로 구조를 요청하러 내려가 철제 사다리 밑에 이 계절 마지막 서릿발을 밀어내고 있는 지면에 닿고, ”이젠 너도 괜찮다. 잠들어라. 점심까지 쭉 잠들어라, 오후는 새로운 싸움이다“라는 나무의 혼, 고래의 혼의 소리를 드는 것을 이사나는 느꼈다.

✏️“내가 협조하기로 한 마음을 못 바꾸도록 내 아들을 감시하라고 지시받은 건가? 인질처럼?” 이사나는 물었다.
“그런 지시는 아무도 안 해. 예쁜 아이라서 보고 있었어.” 여자아이가 말했다.

✏️여자아이는 순수한 놀라움을 드러내며 머리를 돌려 이사나를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예쁜 목소리로”라 말하며 여자아이는 완전히 흰자위가 드러날 정도로 동그랗게 눈을 떴다.

✏️나의 이런 나무의 혼 고래의 혼을 향한 호소의 열렬함 외에는 나 스스로에게조차 내가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보증할 수 없는데? 하고 이사나는 가련하게 나무의 혼 고래의 혼을 향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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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1~2 세트 - 전2권
오에 겐자부로 지음, 김현경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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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품들은 책장에 오래오래 남게 될 작품들 중 하나이다. 하루가 다르게 쌓이고 빠져나가는 혼돈의 카오스와 같은 책장 속에서 살아남기란 어떤 명징한 기준의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어렵다. 그것은 스스로도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기준일 때도 있다. 아무튼 그 중에서 뚜렷한 특징을 지어보자면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것이다. 여기서 실패란 시간낭비를 주로 뜻하는데, 해당 작품들의 경우 읽는 동안의 문학적 성취를 쌓아가는 것은 물론 새로운 시야와 경험치를 쌓아갈 수 있다는 기본값이 보장되어있음을 뜻하기도 하다.
“시적인 힘으로 삶과 신화를 응축해 오늘날 인간이 처한 곤경의 불안한 자화상을 그려냈다.”라는 한 평론가의 언급이 그대로 마음을 관통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디스토피아적인 냉담한 배경을 설정하고 있음에도 고래와 나무의 혼을 수호하는 주인공, 그의 장애를 가진 아들로부터 이어지게 되는 연대와 공존의 시작. 이를 엮어내는 시적인 문장의 아름다움에서는 작가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핵전쟁과 핵오염에 대한 문제의식과 인간의 실존에 대한 질문들은 해당 작품에 대한 보다 깊은 생각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공들여 읽는 시간들만큼의 통찰력을 선사하는 듯하다.

황폐화된 세계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연대와 집단을 구성해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 아이러니한 평안함을 느끼게 된다. 아직 1편 이기에 이후 또 다른 전개의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의 감상은 그러하다:)

✏️테이블 위 작은 나뭇가지는 버려진 물건처럼 건조해져 그를 위협하던 험악한 새의 다리를 닮아간다..

✏️비록 싹이 나오기는 했어도 아직 발아할 징후가 없는 동안, 나무의 혼은 밑동에 오므린 채 겨울잠을 자고 있다. 나무와 교감하길 늘 바라는 그는 그 견고한 동면에서 배우는 것이 있었다.

✏️나무의 혼, 고래의 혼이 듣기를 희망합며 길고 긴 보고를 시작했다.

✏️지하벙커로 구조를 요청하러 내려가 철제 사다리 밑에 이 계절 마지막 서릿발을 밀어내고 있는 지면에 닿고, ”이젠 너도 괜찮다. 잠들어라. 점심까지 쭉 잠들어라, 오후는 새로운 싸움이다“라는 나무의 혼, 고래의 혼의 소리를 드는 것을 이사나는 느꼈다.

✏️“내가 협조하기로 한 마음을 못 바꾸도록 내 아들을 감시하라고 지시받은 건가? 인질처럼?” 이사나는 물었다.
“그런 지시는 아무도 안 해. 예쁜 아이라서 보고 있었어.” 여자아이가 말했다.

✏️여자아이는 순수한 놀라움을 드러내며 머리를 돌려 이사나를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예쁜 목소리로”라 말하며 여자아이는 완전히 흰자위가 드러날 정도로 동그랗게 눈을 떴다.

✏️나의 이런 나무의 혼 고래의 혼을 향한 호소의 열렬함 외에는 나 스스로에게조차 내가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보증할 수 없는데? 하고 이사나는 가련하게 나무의 혼 고래의 혼을 향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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