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작품들은 책장에 오래오래 남게 될 작품들 중 하나이다. 하루가 다르게 쌓이고 빠져나가는 혼돈의 카오스와 같은 책장 속에서 살아남기란 어떤 명징한 기준의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어렵다. 그것은 스스로도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기준일 때도 있다. 아무튼 그 중에서 뚜렷한 특징을 지어보자면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것이다. 여기서 실패란 시간낭비를 주로 뜻하는데, 해당 작품들의 경우 읽는 동안의 문학적 성취를 쌓아가는 것은 물론 새로운 시야와 경험치를 쌓아갈 수 있다는 기본값이 보장되어있음을 뜻하기도 하다. “시적인 힘으로 삶과 신화를 응축해 오늘날 인간이 처한 곤경의 불안한 자화상을 그려냈다.”라는 한 평론가의 언급이 그대로 마음을 관통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디스토피아적인 냉담한 배경을 설정하고 있음에도 고래와 나무의 혼을 수호하는 주인공, 그의 장애를 가진 아들로부터 이어지게 되는 연대와 공존의 시작. 이를 엮어내는 시적인 문장의 아름다움에서는 작가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핵전쟁과 핵오염에 대한 문제의식과 인간의 실존에 대한 질문들은 해당 작품에 대한 보다 깊은 생각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공들여 읽는 시간들만큼의 통찰력을 선사하는 듯하다. 황폐화된 세계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연대와 집단을 구성해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 아이러니한 평안함을 느끼게 된다. 아직 1편 이기에 이후 또 다른 전개의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의 감상은 그러하다:)✏️테이블 위 작은 나뭇가지는 버려진 물건처럼 건조해져 그를 위협하던 험악한 새의 다리를 닮아간다..✏️비록 싹이 나오기는 했어도 아직 발아할 징후가 없는 동안, 나무의 혼은 밑동에 오므린 채 겨울잠을 자고 있다. 나무와 교감하길 늘 바라는 그는 그 견고한 동면에서 배우는 것이 있었다. ✏️나무의 혼, 고래의 혼이 듣기를 희망합며 길고 긴 보고를 시작했다.✏️지하벙커로 구조를 요청하러 내려가 철제 사다리 밑에 이 계절 마지막 서릿발을 밀어내고 있는 지면에 닿고, ”이젠 너도 괜찮다. 잠들어라. 점심까지 쭉 잠들어라, 오후는 새로운 싸움이다“라는 나무의 혼, 고래의 혼의 소리를 드는 것을 이사나는 느꼈다. ✏️“내가 협조하기로 한 마음을 못 바꾸도록 내 아들을 감시하라고 지시받은 건가? 인질처럼?” 이사나는 물었다.“그런 지시는 아무도 안 해. 예쁜 아이라서 보고 있었어.” 여자아이가 말했다.✏️여자아이는 순수한 놀라움을 드러내며 머리를 돌려 이사나를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예쁜 목소리로”라 말하며 여자아이는 완전히 흰자위가 드러날 정도로 동그랗게 눈을 떴다. ✏️나의 이런 나무의 혼 고래의 혼을 향한 호소의 열렬함 외에는 나 스스로에게조차 내가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보증할 수 없는데? 하고 이사나는 가련하게 나무의 혼 고래의 혼을 향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