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었던 책들 중 이토록 빠르게 읽어내린 작품이 있었나 싶다. 물론 작은 판형에 깊은 사유를 담은 배반인문학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는 가지고 있었으나, 신작으로 나온 ‘말’ 특히 언어를 다루는 주제는 흥미로울 수 밖에 없었다. 가끔 라캉을 통해 ‘언어’의 학문적 정의까지 내려갈 때는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정해진 분량 안에 전문적인 지식및 배경지식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엄청난 이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어를 기반으로 한 문학에 대한 관심사가 적은 이들도, 결국은 사회관계 속에서 필수적으로 이용될 수 밖에 없는 언어를 다룬 작품. 언어의 다면적인 모습 및 특성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즐거웠다. 더불어 배반인문학의 다음 시리즈들도 기대하게 만드는 신작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문장수집가 : No.4 Last Words_아틀리에 드 에디토이미 책의 물성 자체만으로도 영감과 오브제의 역할 모두 훌륭하게 해내는 어반북스의 문장수집가시리즈. 나에게 닿는 글들은 나의 결핍 혹은 사유와 닿아있기에, 엄선 된 문장들로 구성된 문장수집가시리즈는 항상 여운을 남긴다.어반북스 북클럽 자격으로 받게 된 이번 신작은 출판사의 편지와 포장, 사용된 마스킹테이프, 박스의 스티커 하나까지 모조리 오밀조밀 모으게 만드는 멋진 구성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이번 문장시리즈가 이전에 접했던 시리즈들과 또 다른 깊이의 사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바가 있다. 바로 ‘Last words’ 라는 주제로 유언과 죽음, 즉 마지막과 관련된 언어들의 향연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내가 사랑했고 우리가 사랑했던 이들의 삶의 끝에서는 어떤 문장들을 만나게 될 지, 기대할 수 밖에 없다. 다른 시리즈들도 그랬으나 이 책은 더더욱 천천히 아껴가며 읽게 되리라는 기분 좋은 예감:)이번 작품이 아니였다면, 내가 어디서 실비아 플라스의 묘비 모습과 그녀를 기리기 위한 펜들의 향현과 같은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을까 싶다.✏️Even amidst fierce flames the golden lotus can be planted. _Sylvia Plath거센 불길 속에서도 금빛 연꽃은 심을 수 있으리.실비아 플라스. 1932-1963
이야기의 구성이 굉장히 흥미롭다. 분명 에세이라고 적혀있지만, 어디선가 할머니가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씩 꺼내 풀어주는 듯한 신비로움마저 느껴진다. 이야기 산문집 정도로 장르르 조금 더 구체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모든 일상이 버겁고 힘들 때 초저녁부터 잠들기 전에 고른 책으로는 엉뚱하지만 또 그에 어울리는 위안을 건넨다.작가의 세계에 대한 진수를 맛보는 중. 작가가 바라보는 아웃국에 대한 인상 하나가 SF적 요소를 담은 이야기로 풀어지다니. 특히 너구리 냄비 요리에 대한 이야기는 압도적인 신묘한 설화 하나를 들은 듯하여 아주 흥미롭다:)직업적으로는 재능낭비인 것 같지만 독버섯 백과사전을 구비해두었다는 일회는, 엉뚱하면서도 작가로서는 아주 명민한 재능을 가진 그의 매력을 한껏 보여준다. 그와중에 사물을 보는 섬세하고 다정한 시선이 너무나 좋다.✏️단밸질 공급원이 될 만한 동물은 다 기운이 없고 몸이 약한 사람에게 좋은 약으로 나와 있다는 사실이다. 하긴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예전에 고기를 구하기가 힘들었으니까. 아니, 고기만이 아니라 배불리 먹는 일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던 시절이었다. 웬만한 자잘한 병은 잘 먹고 푹 자기만 해도 저절로 낫 는다는 걸 생각하면 동의보감, 탕액편 수부를 읽을 때마다 슬픈 마음이 드는 걸 어쩔 수 없다.✏️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을 테지만 할머니와 새는 돌아왔다. 추웠던 겨울, 그들은 함께 엄청나고 깊고 어두운 허방을 헤엄쳐 건넜을 거다. 그리고 둘은 다시 벤치에 앉아 서로를 마주 보게 되었겠지.✏️[꿈의 머리맡에 은어를 내려놓으며]밤이 깊다.아직 잠들지 못한 모든 이들이 행복하길.꿈속에서 나는 그들의 머리맡에 반짝이는 은어를 놓아둔다.
📚돌고래 복순이_김란아이들의 높이에서도 돌고래 포획 및 돌고래 쇼, 동물원의 경각심에 대해 정확하게 짚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 구성이 유익했다. 그림책에서 유익함을 찾는 것을 평소 선호하지는 않지만, 동물권에 대한 이해와 자연스러운 인식을 돕기 위한 방식으로는 더 없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채화와 같은 느낌으로 돌고래의 사랑스러움을 표현하고, 둥글둥글 귀여운 글씨체가 가독성을 해치지 않아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