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 평전 - 신의 도시와 세속 도시 사이에서
김성수 지음 / 삼인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으며 이다지도 낙서를 많이 한 적은 생전 처음이었다.
대개 사회과학, 인문학 서적을 읽을 때 다시 기억하기 위해 줄을 치는 경우는 있어도 이 정도로 의문투성이인 적은 거의 없었다.
의문의 시작은 이 책이 과연 평전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는데,
이 책이 이전에 읽었던 문익환 평전, 한국 현대사를 통해 본 리영희 등과는 매우 다른 사상의 괘적만을 따라가는 저작이었기 때문이다.
김형수의 문익환 평전은 그 문체나 구성, 자료 조사면에서 책 한권만으로도 문익환 목사님의 생애 뿐 아니라 흔적들을 비교적 면밀히 볼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었다.

김성수의 함석헌 평전은 함석헌에 대한 '최초의' '박사논문'으로 보자면 어쩌면 상당히 뛰어난 것일지 모르겠으나 평전으로 보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다.
우선 책 한권으로 인물의 일대기, 앞서 가는 자의 애환, 가족사, 동지, 사상, 인물이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통찰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것이 훌륭한 평전이라 생각한다.
물론 담으려고 하는 것이 많을 수록 내용이 부실해질 수도 있으며, 그와 함께 자칫 다루는 인물에 대한 초점이 흐려질 수도 있다.

함석헌이 퀘이커교도라는 것, 한국의 간디로 불리는 사상가였다는 것, 기독교의 이단아였다는 것, 씨알의 소리라는 잡지를 창간한 언론인이며 장준하 선생님에게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는 (함석헌이 쓴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사놓기만 하고 뒤적거렸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상태였기 때문에 평전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이 책은 한국의 퀘이커교 발달사나 한국 기독교와 퀘이커교 등으로 이름붙였으면 더욱 적당했을 것 같다.
이를 통해 '근본주의적 기독교'가 가지는 허상을 깨닫게 된 것은 즐거운 일이다.
나도 어느정도는 근본주의적 기독교도이니까.

기독교, 불교, 도덕경을 아우르는 사상체계를 구축했던 함석헌의 자취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좋았다.
기독교가 갖는 배타주의에서 벗어나 씨알이 곧 하느님이다, 고 역설한 함석헌의 주장은 지금에 이르러 (적어도 나에게는) 신선하고, 이단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또 거의 모든 평전에서 발견했고, 여지없이 함석헌에게도 드러난 '진정한 지식인'의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을 묵도하면서 진정 가족이라는 것이 뛰어난 이들에게는 굴레일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의문(함석헌은 결혼한 것을 후회했다...) 하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인의 가족 또한 진정한 버팀목일 수도 있겠다 하는 두가지 생각을 했다.

"진리는 끊임없이 변하는 것, 그래서 시간이나 공간의 벽 속에 가두어 둘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고정 관념을 깨는 탄력적인 사고가 요구된다"
"기도는 말이나 입술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살림으로 하는 것이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 진정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 예수"
"한국의 민주화는 결국 함석헌의 도덕률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기독교인을 삼위 일체론이나 속죄론, 육체 부활론 등의 교리를 타인에게 주장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예수의 정신을 이어 '지금 여기서'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사회 정의나 이타주의에 입각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기독교, 믿음, 도덕, 삶에 대해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