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태양꽃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어른을 위한 동화 16
한강 동화,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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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내가 누군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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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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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과 꿈과 눈

눈 맞는 우듬지
목 잘린 사람들

무덤 곁으로 또박또박 걸어가는 이야기

세월은 나의 아주 작은 개인적인 트라우마 마저도 어설프게 깎아낼 뿐인데,
군중이 자행하고 방임한 폭력 속에 삶을 잃어버린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냈을까.

소설이 몸서리치게 춥다.

아마와 아미의 그림자 일렁이는 촛불 곁에서
들춰지는 신문조각과 사진 들

“...내가 있잖아.”
고요한 사랑의 빛이 어리는 곳에 그대가 오는 꿈을 꿨어

“하도 생각해서 어떤 날엔 꼭 같이 있는 것 같았어.”
너는 손을 내밀었고 나는 잔을 들려주었지

”이제는 그게 이상한 이야기라고 생각되지 않아,“
거기 내 체온이 실려있었을까?

차마 만질 수 없었어
작별하지 않기 위해서말이야
마치 눈처럼, 닿으면 녹아버릴까봐.

그러나 나무는, 녹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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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한강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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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책이란 책은 다 읽어보려고 하는 내가, 어째서 한강의 작품은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는지 의아할 뿐이다. 교과서에 실리는 한국문학 외에는 문외한이고, 읽을 거면 작정해서 허균의 홍길동전부터 최명희의 혼불까지 읽어볼 ‘생각’만 하고 있었다. 현대문학은 생각도 안 했고.. 그치만 최근에 최은영과 황정은의 글을 읽고 생각이 바꼈다. 동시대의 작품을 읽어야 한다. 더 늦었다고 생각하기 전에 한국어문학을 파봐야겠다.

그 시작을 2024년 노벨문학 수상자 한강이 본격적으로 해외로 이름 날리게 된 작품 <채식주의자>로 삼아보겠다. 온 신문에서 내용을 스포하려고 달려들기에 얼른 읽어주었다. 먼저 읽어본(?) 사람들이 겁준 만큼 잔인하지도 폭력적이지도 않았다. 이게 과연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스토리일까? 난 오히려 지극히 사실적이어서 소름끼치더라.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혜의 시점은 오직 꿈을 통해서만 반쯤 보여주고, 영혜의 두 남자 가족과 한 여자 가족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연작소설이다.

<채식주의자>
아내의 언니와 아내의 어머니를 여인으로 훑는 그 징그러운 시선. 사람 대 사람으로 설득할 자신 없으니 가까운 관계로 옭아매는 찌질함. 피 흘리는 아내를 두고 혼비백산하는 와중에 구두짝은 제대로 갖춰 신어야 하는 정신머리. “사위 보는 앞에서 딸을 때리는 장인어른“ 앞에서 찍소리도 못하는 남편. 굽은 장인의 뒷모습을 보고 그가 해왔을 평생의 노동을 짐작하며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는 그의 공감력은 아내에게로는 조금도 뻗지 않았다.

<몽고반점>
이미지가 먼저 왔고, 몽고반점을 덧입혀 상상했더니, 연약한 처제의 모습이 되었다는 추잡한 변명. 결국 붓질과 아랫도리 휘두르는 힘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의 영상은 그렇게 외설적이지 않은 ’예술‘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예술가가 결국 하고 싶었던 걸 생각해보라. 늦은밤 다섯 살 배기 아들을 집에 혼자 남겨두고 뭐하러 갔었나. 상대의 마음은 조금도 궁금해 하지 않고, 그저 삽입. 왜? 어차피 자긴 남들은 이해 못하는 예술가니까.

<나무 불꽃>
인혜는 ”오랫동안 혼자여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시선“으로 지킬 것이 있다. 아들 지우와 동생 영혜. 남편의 예술똥꼬쇼를 본지 일 년밖에 안 되었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그는 혼자 고민하고 혼자 짊어져야 했다. 그렇게 삶을 견뎌왔다. 선량한 인간으로서 성실하고 평탄하게. 그러나 뜻밖의 고통은, 유예된 삶의 잔인함은, 실은 그의 삶이 어느 정도 죽음에 물들었다는 걸 방증한다. 하지만 선량한 인혜는 동생과 달리, 남자들과 달리 인간으로서 그의 삶에 조용히 항의하면서 계속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중심에 있는 영혜는, 그저 식물이고 싶었을 뿐이다. 트랜스식물이랄까. 영혜를 함부로 대한 무수한 남자들의 폭력과, 영혜가 가했을 혹은 방관했을 인간으로서의 폭력에 무력해져 이제 동물이기를 그만두고 싶었을 것이다. 죽고 죽일 필요가 없는 식물의 세계로, 햇빛 아래 가슴을 내밀고 그저 해바라기하기를 나무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영혜가 인간성을 하나 하나 뱉어내는 동안 인간들은 어떻게든 그의 입속으로 무언가의 사체를 집어넣으려 했다. 영혜가 가진 꿈은, 그들이 도저히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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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야기는 우리 곁에 있다 - SF와 인류학이 함께 그리는 전복적 세계
정헌목.황의진 지음 / 반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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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신청할 때 언급된 소설 전 작품 다 읽고 서평하겠다고 호기롭게 외쳤는데 자신 없었다. 당첨되면 생각하지 뭐. 이런 마인드였다. 그리고 당첨되었고, 다 읽었다!

하지만 정헌목의 탁월한 요약 덕분에 인용된 열 권의 작품을 굳이 읽지 않아도 이 책을 읽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듯하다. 글쓰기 교실에서 소설 읽고 요약하기의 모범사례로 보여줄 만큼 깔끔한 정리다. 정헌목의 요약 반 인류학적 해석 반으로 이루어진 여덟 편과 황의진의 탐사 보고서(?)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황의진은 만약 SF 세계관 속에서 민족지 연구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학술적인 글을 썼다. 사이언스픽션과 앤트로폴로지가 교차하는데 나는 아무런 경계선을 발견하지 못 했다. 이미 SF는 어느 정도 인류학이 아닐까? 또 인류학은 SF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내게 인류학은 지구 권역에 스며드는 어떤 ‘유행’들을 경계하도록 경고해주는 학문이다. 서구의 것이 마치 지구의 표준인 양 퍼지고 있는 세계화를 시니컬하게 본다. 또한 지구행성 중심의 역사에서 인류라는 종의 위치를 가늠하고 주제를 파악한다. 그러는 한편 여전히 인류를 애정한다. SF와 판타지문학도 마찬가지다. 그 세계만의 작동방식을 현실에서 재현하고 구연하기엔 다소 우스꽝스러울지 몰라도 이미 그 자체로 고유하게 존재하는 세상이다. 난 사이언스픽션이 현실의 대안세계라는 평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기 이곳이고 ‘그곳’은 상상력이 풍부한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탄생한 허구일 뿐이라고 해도, 이미 우리는 그 세상에 빠져들지 않은가. 우리의 지독한 현실과 상관없이 말이다. 그래서 난 판타지에서 현실을 읽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두 저자의 합이 돋보이는 글은 어슐러 K. 르 귄의 <<어둠의 왼손>>을 다룬 것이다. 정헌목은 “성별을 제거하고 나면 착취와 전쟁이 없는 사회가 남는다”는 “사고실험”이라고 평했다. 황의진은 작품 속 주인공 겐리 아이(남성)가 아닌 어떤 ‘여성’이 게센 행성을 방문한다면 어떨까 상상하며 양성의 외계인 세상을 탐구한다. 동일 작가의 다른 작품 <<빼앗긴 자들>>도 소개되었는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은유로 읽을 수도 있고, 정반대인 서로를 밀어내면서도 끌어당김으로써 각자의 체제를 유지하는 ‘공존’으로 읽을 수도 있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작품도 두 편 소개되었다. 르 귄이 타자와의 조우와 타자에 대한 예우를 다룬 정치적인 글을 썼다면 버틀러는 책임소재를 가지고 저글링하는 러브스토리들을 썼다.

SF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많은데, 과연 느끼는 대로 살고 있는가? 허물어진 경계, 연결된 관계를 일상에서 몸소 느끼고 있는가? 실천하고 있는가?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하겠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직 덜 읽어서 그럴까? 좀더 SF와 환상문학에 푹 빠져보고 다시 생각해보겠다. 나는 이제 버틀러와 르 귄의 전 작품을 읽을 것이라는 다짐과 미루고 미루었던 애나 칭의 <세계 끝의 버섯>을 빨리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이 책을 덮는다.

일독을 권한다. SF가 궁금한데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일단 이 책을 먼저 읽어보길 권한다.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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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마거릿 렌클 지음, 최정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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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카드같은 패치워크. 사랑으로부터의 상실로의 이주, 상실로부터의 사랑으로의 이주는 그냥 받아들이는 방법을 익히는 것. 그리고 그것이 바로 화해다. 자연 속에서 발맞춰가면서 상실의 운명을 이해하는 훌륭한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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