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 - 고구려 ㅣ 이야기 박물관
이흔 지음, 안은진 그림 / 비룡소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우리 조상들의 문화 유산과 역사를 알려주기에 딱딱한 주입식 지식보다는 이야기를 통해 전해 듣는 일만큼 흥미로운 일은 또 없을것이다. 이런 의미로 최근에 비룡소에서 펴낸 <이야기 박물관 시리즈>는 우리 문화와 역사를 흥미롭게 접하기에 좋은 시리즈임에 틀림없다.
<이야기 박물관>시리즈는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유물, 유적 그림책인데, <서동과 선화 공주(백제)>,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고구려)>, <효녀 지은과 화랑 효종랑(산라)>의 세 권으로 이루어져있다.
이 이야기들은 『삼국유사』에서 뽑은 옛이야기들을 백제, 고구려, 신라의 대표적인 유물, 유적을 이용해 재구성한 색다른 그림책 시리즈로서 유물과 유적 사진을 옛이야기와 함께 버무려셔 보여 줌으로써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아려주고, 나아가 삼국의 역사와 문화적 특징을 알수 있게 해준다.

세 권의 박물관 시리즈 중에서 고구려의 씩씩한 문화와 애절한 사랑을 보여주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를 만났다.
제목을 보면 분명히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이 비극적인 사랑이야기일진대, 표지 그림을 보면 고구려 벽화에 등장하는 그림들이 눈에 뜨인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가 서 있는 거대한 연꽃이나 맨 위에 그려진 삼족오, 땡땡이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사람들 등이 모두 벽화에서 보여지는 유물들이다.
이 다양한 벽화 그림들과 호동 왕자와 낙랑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어떻게 절묘하게 엮이게될지 신기하기만하다.

페이지를 넘겨보니 더 많은 유물들이 눈에 뜨인다.
고구려 사람들과 힘찬 기상을 보여주는 말을 탄 기마병들에서는 힘이 느껴지고, 고구려의 해를 상징하는 다리가 셋 달린 검은 삼족오는 그 위엄이 대단하다. 또한 다양한 벽화들을 보면서 누구 무덤에 그려졌는지, 왜 그렸는지와 고구려 벽화에 실린 유물과 유적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책에는 무용총의 수렵도, 강서대묘의 사신도, 덕흥리 고분의 마사희, 안악 3호분에 그려진 귀족의 집 등 고구려의 대표적인 고분 벽화들이 보여진다.

이 고구려 벽화들은 누가 왜 그렸을까?
고구려 벽화는 주로 장군총이나 무용총 같은 무덤들에 그려진 그림이다. 무덤 자체로도 크고 웅장하고 화려해서 고구려 사람들의 대단한 표현력을 알려주는 예술작품이지만, 주로 왕이나 귀족 신분 같은 높은 사람들의 무덤에 그림까지 그렸으니 정말 대단한 유산인 것이다.
벽화는 고구려 사람들은 자신들의 빼어난 그림 실력을 알려주는 동시에, 자신들이 가장 관심을 두었던 것들을 그렸다고 한다. 따라서 주로 무덤의 주인이나 그 부인의 초상, 행렬하는 모습, 부엌과 와양간 등 일상 생활이 드러난 그림들을 많이 그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둔 것 중에 하나가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를 생각했다고 한다. 사람이 죽은 후에도 또 다른 세상이 이어져 있다고 생각했기에 무덤을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관문이라 여겼고, 그 무덤에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호동 왕자와 낙랑공주, 그들은 누구일까?
고구려 유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대무신왕에게는 '호동'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호동은 둘째 왕비의 아들로, 잘생기고 총명하여 왕으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당시 고구려 동쪽에는 동예와 옥저라는 두 나라가 있었는데, 호동은 옥저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낙랑의 왕 최리를 만났다. 이때 호동은 최리를 따라 낙랑으로 갔다가 그의 딸 낙랑공주와 사랑에 빠져 혼인을 했다.
한편 낙랑에는 외적이 침입하면 스스로 울어 위기를 알려주는 '자명고'라는 신비한 북과 뿔피리가 있었다. 그동안 고구려는 이 자명고와 뿔피리 때문에 낙랑을 정복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고구려로 돌아온 호동은 낙랑 공주에게 자명고와 뿔피리를 파괴해 함께 살자고 했다. 결국 낙랑 공주는 호동의 부탁을 들어주었고, 나라를 배신한 죄로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그러나 낙랑 정복에 성공한 호동은 첫째 왕비의 모함으로 대무신왕의 의심을 사게 되고, 자신을 변명하기 이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일생을 마감하였다.

고구려 벽화라는 유물을 통해 호동왕자와 낙랑 공주의 사랑을 더욱 안타깝게 혹은 더욱 애잔하게 만든다.
고구려를 대표하는 사랑이야기와 고구려 벽화가 한데 어우려져서 "고구려"라는 나라를 알기에 충분하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뿐 만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시대 사람들의 먹고 사는 일상과 사랑하는 일이 오늘날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책이다.
고구려 벽화 중에 <견우 직녀도> 라는 그림이 있다.
해마다 칠월 칠석이면 서로의 애틋한 사랑이 아쉬워 눈물을 흘리므로 비가 내린다는 전설을 간직한 견우와 직녀.
견우와 직녀는 근본이 별자리인 까닭에 천상을 노니는 존재들이며, 이들은 죽어서 승천한 영혼들을 돌보아주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이런 이유로 고구려 사람들은 무덤의 천장에 견우와 직녀 그림을 그려서 영혼까지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견우 직녀도>가 이 책에 수록되지 않아서 살짝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