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노스케 이야기 오늘의 일본문학 7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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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슈이치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이었기에 그다지 큰 편견도 그리고 기대도 없었지만 내가 요시다 슈이치를 처음 만나게 된 작품이 <요노스케 이야기>라는 점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 속에 잠깐 등장하는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만나는 이 작가를 더욱 친숙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나 이 소설은 작가가 2009년 봄에 한국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출간되었다는 점에서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을 기다렸던 많은 국내 팬들에게는 큰 기쁨일 것이다.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을 한번도 본 적은 없어도 <악인>, <퍼레이드> 등 많은 사랑을 받은 책들의 제목만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요노스케 이야기>를 읽고 나니 이 책들도 하루빨리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노스케 이야기>는 소설의 구성이 재미있었다.

요노스케가 도쿄에 올라온 4월을 시작으로 그 다음해 3월까지의 요노스케의 삶을 담은 책인데 중간중간 요노스케가 알고 지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읽다보면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들은 요노스케 이야기 속의 젊은 그들이 아니라 시간이 한참 흐른 뒤의 그들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문득 자신의 삶 속에서 요노스케를 떠올리게 된다.

당장 요노스케의 청춘을 읽고 있으면서도 시간이 흐른 뒤의 요노스케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이 세상을 살고 있을지 궁금한 건 그들의 마음과 내 마음이 다르지 않았다.

 

요노스케의 인생은 참 평탄하고 굴곡이 없어보였다.

그러기에 왠지 그닥 재미없는 내 인생이 요노스케의 삶에 투영된 것 같아 요노스케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끝까지 그의 인생을 평탄하고 굴곡 없는 삶이라 말할 순 없었다.

요노스케의 인생이 평탄하게 느껴졌던 건 큰 사건, 사고가 없어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낙천적인 요노스케의 성격이 한 몫 한 것 같다.

요노스케의 성격이 어떤 어려운 일이든 쉽게 해결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요노스케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도 요노스케는 그런 사람이었다.

 

「선생님, 공부 별로 안 해도 제가 붙을 만한 도쿄 대학이 없을까요?」라며 지망 학교 결정 면담에서 요노스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요노스케 또한 대학에서 처음 사귀게 된 친구 구라모치를 만난 후 자신이 했던 이 말을 떠올리게 되고, 자기처럼 '먼저 타협'하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세상에는 '먼저 인생'을 고려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나 또한 이 부분을 읽으며 마음 한구석이 찔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동안 내가 느낀 나의 모습도 먼저 타협하는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요노스케가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볼 때 나 또한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요노스케와 만난 인생과 만나지 못한 인생이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봤다. 아마도 달라질 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청춘시절에 요노스케와 만나지 못한 사람이 이 세상에 수없이 많다는걸 생각하면, 왠지 굉장히 득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인상깊었다는 구절이다.

이 구절을 읽으며 나도 누군가에게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들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나와 만났던 어느 누군가가 먼 훗날 나를 떠올리며 나를 만난 덕분에 아주 좋은 쪽으로 인생이 달라졌다고 생각해준다면야 더 바랄 건 없겠지만 그건 아니더라도 누군가 나를 저렇게 떠올려준다면 난 참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내가 가끔 부모님께 드리는 말씀 중 하나가 나를 8살에 학교를 입학시킬 게 아니라 7살에 입학을 시키지 그랬냐는 것이다. 생일도 빨라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부모님께서는 그리하지 않으셨다.

7살에 학교에 들어갔다고 내 인생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거라는 확신도 없지만 만약 그랬을경우 내 인생이 조금 달라지진 않았을까 라는 철없는 생각을 하게 될 때마다 하는 이야기였다.

그럴 때면 위안이 되는 것이 지금 내 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을 거라는 것이다.

지금 어느 누구보다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겠지,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추억도...

지금껏 나를 만난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나를 만날 사람들 모두 나를 만나서 크게 달라진 인생은 아니지만 왠지 굉장히 득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무사태평 낙천가 요노스케가 도쿄에 와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 궁금한 사람들은 나처럼 자신의 삶과 요노스케의 삶을 비교해보는 재미로 책을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소설 속 그들이 요노스케를 만난 인생과 만나지 못한 인생은 뭐가 다르고 <요노스케 이야기>를 만난 나의 인생과 만나지 못한 나의 인생은 또 뭐가 다를까.

앞으로 더 많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느껴야 할 숙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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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 - 0~20개월까지, 꼬마 아인슈타인을 위한 두뇌육아법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
헤티 판 더 레이트.프란스 X. 프로에이 지음, 유영미 옮김, 김수연 감수 / 북폴리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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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시집을 조금 빨리 가서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친구가 있다.

요즘 그 친구를 보면 시집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사그라든다.

3살이 된 첫째 아이는 다른 사람과 눈빛만 마주쳐도 엄마 품에 달려들며 울먹거리고,

이제 7개월 정도 된 둘째 아이는 누나가 때린다고 울고, 밥 달라고 울고, 안아달라고 울고...

도저히 개인 생활이라곤 없이 아이들에게만 매달려있는 친구를 보면서 어찌나 답답하던지...

 

처음 그 친구가 첫 아이를 낳았을 때는 그냥 먹고, 자고, 싸고, 가만히 누워만 있는 아기가 너무 귀여워 나도 얼른 시집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아이가 조금씩 자라고 그런 아이를 키우는 친구의 모습을 보니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왜 위대하다고 하는지 정말 이해가 갔다.

그리고 나는 절대 그 위대한 엄마 노릇을 하고싶지가 않았다. 자신이 없었다고 하는게 맞겠다.

이러니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아직 시집도 가지 않은 내가 아니 시집을 가고싶지 않은 내가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를 읽는다고 과연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게 있을까 싶었다.

헌데 어라, 책을 다 읽고났더니 괜한 자신감이 생긴다.

어쩜 나도 위대한 엄마 중의 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자신감 말이다.

 

이 책은 두 명의 발달 심리학 박사가 무려 30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연구해온 것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이토록 오랜 기간의 연구를 토대로 씌여진 책이라는 것만으로도 강한 신뢰감이 들었다.

그리고 물론 아직 아기를 낳아보지 않은 나지만, 출산 경험이 있는 친구가 가끔씩 전화로 아기때문에 힘들다고 넋두리를 한다거나 아기가 예쁜 짓을 한다고 자랑을 하던 일을 떠올려보며 '아...그 아이가 그때 이러이러한 상태였구나...'라고 막연하게나마 아이의 상태에 대해 짐작을 해볼 수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실제 부모들의 경험이 책에 그대로 살려있다는 점이다.

읽는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율리아, 35주   "너무 순해서 다른 아이 같아요. 얼마 전까지 그렇게 자주 울고 소리 지르고 했는데……. 이야기도 아주 상냥하게 하고요. 종이상자를 밀고 방 안을 휘젓고 다니는 폼이 아기가 아니라 어린이가 된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엄마들이 직접 자신의 아이의 상태를 이야기하고 있어 읽는 이가 한 아이의 엄마라면 자신의 아이와 비교도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아기의 발달에 좋은 놀이와 행동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이가 태어난지 몇 주가 되었느냐에 따라 제시되어 있는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 어려운 놀이나 행동도 아니니 아이를 기르는 부모들이라면 쉽게 해봄직한 것이었다.

 

아이가 처음 태어나서 무엇을 보고, 무슨 소리를 듣고, 어떤 냄새를 좋아하고,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아이가 느끼는 것들에 대해 그냥 궁금해하기만 했던 내가 왠지 아기 박사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이런 책을 보고있다고 오해를 살까봐 밖에서 이 책을 펼쳐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아기를 낳아본 적도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 세상에 태어나 쑥쑥 자라는 아기, 도약하는 아기들에 대한 설명이 마치 내 자식이 처음 태어나 자라는 모습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미 0~20개월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도 굳이 처음부터 책을 읽을 부담이 없고 자기 아이의 개월 수에 맞추어 읽기 시작해도 좋으니 많은 엄마들이 이 책으로 도움을 받았으면 싶다.

 

아이를 키워본 옮긴이가 '진즉 이 책을 만났더라면 좀 더 안심하는 가운데 아이의 발달을 적절히 도울 수 있었겠다'고 생각했으니 시집을 가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만난 나는 '행운아'라고 해도 되겠다.

어쩜 먼 훗날 내가 꼬마 아인슈타인의 엄마가 되어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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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북
F. E. 히긴스 지음, 김정민 옮김, 이관용 그림 / 살림Friends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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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비밀'은 언제나 우리의 삶과 동행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비밀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공유하는 비밀이 더이상 비밀이겠냐마는 누군가와 비밀을 공유함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고 더 가까워지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비밀을 알게 되면 특별한 비밀이 아닐지라도 괜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비밀을 알아가며 느끼는 재미는 우리가 일상 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책을 읽을 때에도 그렇다.

추리소설을 읽으며 비밀이 무엇일까 궁금해서 손에서 책을 쉽게 놓지 못할 때도 있고, 어떤 책은 단지 비밀과 관련된 책이라는 이유로 그 자체로 미스테리함을 풍기기 때문에 독자의 선택을 받기도 한다.

<블랙북>도 이런 이유로 나의 레이더망에 포착되기도 했다.

단어 자체만으로도 호기심의 귀를 쫑긋거리게 되는 바로 이 '비밀'의 이야기가 바로 <블랙북>에 담겼다.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으며 자라온 소년 '러들로'는 그들에게서 벗어나 한 시골 마을에 발을 디딘 후, 특이한 개구리를 데리고 다니는 정체 모를 '조 자비두' 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생활하며 자비두가 전당포를 열어 사람들의 비밀을 사는 일을 돕는다. 그 일은 바로 '블랙북'에 사람들의 비밀을 옮겨적는 것...

러들로는 자비두의 일을 돕고는 있지만 자비두의 정체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수많은 의문을 품고 있으며 러들로 자신이 적기 이전의 블랙북의 내용을 궁금해하기도 하고 몰래 훔쳐보고는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한다.

이는 곧 이 책을 읽는이들의 생각과도 같을 것이다. 
러들로의 이런 감정을 따라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나 또한 러들로의 감정에 동화되었던 것 같다.

또한 자비두에게 비밀을 파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시골'이라는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상에 찌들대로 찌든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밀의 한가운데에는 늘 마을에서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는 '제레미아'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 사람은 자비두와 블랙북, 그리고 특이한 개구리의 정체가 밝혀지는데에도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준다.

 

<블랙북>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하나하나가 재미있고, 섬세하고, 뛰어난 묘사와 함께 책에 포함된 일러스트는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한 책을 읽는 이들이 마치 러들로가 적은 블랙북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수 있도록 여러면에서 신경을 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이거 동화 아닌가?' 였다. 폰트의 크기도 보통 소설책보다 좀 더 커서 '워터스톤스 어린이책 상' 후보에 올랐다는 책 날개에 적힌 글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성인이 읽기 유치하다는 것은 아니고
성인이나 어린이, 모두가 읽어도 좋을 내용을 담고있다.

어쩌면 성인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책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음울하고 어두운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 답게 <블랙북>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며 짙은 회색이나 검정색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러들로가 듣고 적은 사람들의 비밀은 무엇일지, 그리고 비밀을 사는 전당포 주인 조 자비두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지, 이 모든 비밀이 궁금한 사람은 꼭 한번 <블랙북>을 펼쳐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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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매일 읽는 긍정의 한 줄 긍정의 한 줄
린다 피콘 지음, 유미성 옮김 / 책이있는풍경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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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서점에 들를 때마다 눈에 띄던 책이 한 권 있었다.

바로 <365 매일 읽는 긍정의 한 줄>이라는 책.

서점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할 때는 언제나 이 책을 집어들고 그 자리에 서서 읽곤 했다.

읽다가 기다리던 사람이 오게 되면 여느 소설처럼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염려 따위 하지 않아도 되고 부담없이 가볍게 다시 책을 제자리에 내려놓을 수 있는 책이기에 특히나 서점에서 누군가를 기다릴 때에는 꼭 이 책을 찾아 읽었다.

그러다 언젠가는 친한 친구가 먼저 서점에 도착해 날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친구의 손에도 이 책이 들려있는 걸 보니 역시 내 친구구나...싶어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젠 서점에서 읽을 필요없이 내 집에서 하루 하루 잊지 않고 이 책을 챙겨보고 있다.

폭신한 감촉과 미니멀한 사이즈로 쉽게 손이 가도록 만들어 놓았다.

매일 누군가의 명언을 읽고 또 되새겨 본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다.

명언이 영어로도 나와 있어 하루에 한문장씩 영어 공부도 한다는 생각이 들어 좋다.

그리고 명언 뿐만 아니라 저자가 그 명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두고 읽는 이들의 생각도 끌어내고 있다.

며칠 전에는 잠깐 서점에 갔다가 이 책이 베스트셀러 자리에 있는걸 보았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눈에 띄던 장소에 놓여있긴 했지만 베스트셀러 자리는 아니었는데...

그만큼 긍정의 한마디를 바라는 사람들의 힘든 삶이 전해지는 듯해 마음 한구석이 쓸쓸하기도 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의 하루하루에 긍정의 기운이 넘치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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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미술의 거장들
스테파노 G. 카수 외 지음, 안혜영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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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누군가 내게 꿈이 무어냐 물어오면 난 자신있게 '미대 교수'라고 말했었다.

그만큼 그림 그리는 게 좋았고 내가 그린 그림이 학교 복도에 걸려있는 걸 볼 때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가족, 선생님, 친구들의 칭찬...

그렇게 '그림'이란 어린 내게 현재의 행복이자 곧 나의 미래였다.

그러다 차츰 나의 진로에 대해 생각했지만 어쩌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냥 내가 왜 공부를 하고 있는지, 목표가 무엇인지는 잊은 채 남들처럼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살아왔다.

그리고 자연스레 어린 시절 가졌던 나의 꿈도 차차 희미해지고 전혀 상관없는 전공을 택해 지금까지 이렇게 지내왔다.

 

처음 <유럽 미술의 거장들>이라는 책을 보고선 잊고지낸 그 옛 꿈이 생각났다.

내가 만약 어린 시절 꿈을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왔다면 이 책 속의 인물들과 그림들이 너무도 친숙했을텐데...

책을 읽으면서 내가 놓친 꿈과 열정들이 머릿속에서 달그락거리며 자꾸 나를 괴롭혔다.

사실 이럴까봐 지금까지 어린 시절 내가 꿈꾸었던 이 분야의 책들은 멀리해왔다.

그런데도 이 책은 끌렸다. 아마도 '거장들'이라는 복수의 개념이 지금까지 잊어왔던, 내가 한때 간절히 만나기를 희망했던 아니 어쩌면 만나기를 회피했던 그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 같다. 어린아이같은 생각이지만...

 

책을 읽는 내내 벅차오르는 감정과 설렘 때문에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한 장 한 장 책을 넘기는 시간이 무척이나 오래 걸린 듯하다.

그림을 그린 예술가들과 그림 속 인물들의 삶이 궁금했고 또 그림의 속사정이 자꾸 궁금해졌다.

이 책은 어쩌면 이런 점에서 내게 조금은 실망스러운 책이기도 했다.

조금 빠져들었다 싶으니 또 금방 다음 예술가와 그의 작품으로 넘어가버리고... 좀 허망한 기분이랄까.

속된 말로 왠지 간만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 권의 책 속에 많은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이 담겨있다보니 깊이 있는 이해를 하기에는 역부족인 듯싶다.

그리고 미처 책 속에 담아내지 못한 몇몇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에는 어떤 작품을 두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함에 대한 욕구를 그만큼 해소해주지 못해 아쉬웠다.

 

그런데 사실 어쩌면 내가 이 책에 느낀 실망감은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생소한 화가들과 어려운 이름들 그리고 미술 용어들이 별다른 설명없이 나열될 때에는 내가 이러면서도 꿈 꿀 자격이 있었나... 나 자신이 한심하기도 했다.

이 책은 미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들을 갖고 있다면 충분히 더 만족스러운 책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지나간 과거로 치부하고 미술에 대한 관심을 끊어왔던 결과가 바로 오늘 이 책에 대한 실망감으로 비춰진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던가.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 미술의 거장들의 작품을 보면서 화풍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또 개별적으로만 생각해왔던 유명한 화가들이 어떤 식으로 서로의 영향을 받으며 작품을 완성해 왔는지에 대해 누군가의 설명을 보고 또 그림을 통해 직접 확인하니 그 재미가 쏠쏠했다.

몇 년간의 노력을 기울인 작품들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그 작품들 하나하나에 예술가들의 열정이 담겨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깊지는 못하더라도 작가의 생애와 작품들의 배경에 대한 지식도 쌓을 수 있었다.

이제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미술에 대해 어렵게만 느껴왔던 그 누군가가 있다면 나처럼 어서 발을 담그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발을 담그기는 그리 어렵지 않으니 시도라도 해보길...

 

사람들이 왜 미술관에 서서 한 작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나름대로 그 작품에 대한 각자의 해석도 있겠지만 그 그림 하나에 예술가의 인생이 담겨있고,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담겨있기에 하나의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도 그만큼 길어지는 게 아닐까.

<유럽 미술의 거장들>을 읽으면서 미술 작품 하나로 나와는 다른 시대와 문화를 살아갔을 그들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어느 한 작품이 마음에 든다고도 할 수 없었다.

세기를 뛰어넘어 살아숨쉬는 그들을 느낄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리고 그 작품 하나가 완성되기까지의 예술가의 열정을 생각하니 모든 작품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멋있다. 그리고 직접 보고싶기도 하다.

훼손된 작품, 미완성된 작품까지도 오히려 예술적으로 느껴졌으니 내가 이 책에 푹 빠지기는 했나보다.

 

책의 힘이란 참 대단하다.

어제 잠시 들렀던 서점의 한귀퉁이에 적혀있던 '아름다움이란 그대의 서재에 책을 채우는 것이다'라는 말이 참 인상깊었는데 오늘 문득 서평을 쓰며 생각해보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너무 멋진 말인 것 같다.

물론 책을 구입하라는 서점의 유혹(?)일 수도 있겠지만 오늘 내 책장에 꽂힌 <유럽 미술의 거장들>을 보니 내 가슴 속 한구석에 비어놓았던 나의 꿈도 조금은 채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차곡차곡 내 서재를 채워가며 새로운 내 꿈도 채워나가고 싶다. 그럼 나도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시간들을 그릴 수 있었다.

예술을 '하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예술을 '즐기는 것'도 멋지지 않은가.

비록 '하는 사람'은 되지 못했지만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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