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 그대에게
류근 지음 / 곰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시인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나에게 가장 먼저 떠 오르는 것은 윤동주 시인 같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면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섬세한 감수성이다.

류근 시인의 산문집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는 시작부터 이러한 고정관념을 깬다.

페이스북 통해 이 사람의 글을 접하고 있는 나도 무슨 후렴처럼 등장하는 욕설이 거슬리는데, 시인이라는 것과 시처럼 아름다운 제목만 보고 읽기 시작한 독자들은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욕설보다 더 짜증났던 것은 도무지 무슨 소린지 그냥 생각나는 데로 끄적거려 놓은 쓰레기같은 글들이다.

마치 고우영 화백의 오래된 만화에서나 볼 법한 시대착오적인 B급 유머들로 일관한다.

이런 이유들로 그다지 글자 수도 많지 않은 책 읽기에 빠져들지 못하고 있는데, 삽화처럼 들어가 있는 생뚱맞는 글에서 폭소가 터져버렸다.

"아 시바,
러키치약 다 떨어져서
러키 하이타이로 양치질했다.
전생까지 한꺼번에 다 빨렸다."

그 후로는 차츰차츰 책의 내용 속에 들어있는 메시지들이 공감되었다.

시인은 너무나 외로운 사람이었다.

사는 일이 너무나 눈물겹고 서러워서 술을 못 끊는 것이겠다 싶었다.

"돌아갈 곳이 없는 자가 돌아갈 곳은 결국 자기 자신 밖에 없다." (180쪽)

예술가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예민하다.

보통 사람이 1을 느끼는 상황에서 10을, 심지어 100을 느낀다.

그렇기에 일상적인 충격과 상처조차도 견디고 살아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청소년 시기에 욕 한 마디 하지 않았다던 시인이 이렇게 욕설을 입에 달고 살게 된 것은 너무나 연약하고 섬세한 자신의 내면을 위장하기 위함일 것이다.

"'당신 시는 좀 쉽잖아요'라고 어제 누군가 말했다.
나 또한 깊이깊이 기쁘게 수긍하여 주었다.

대개, 머리로 해석하는 세상은 좀 어렵다.
그러나 가슴으로 느끼는 세상은 좀 쉽다.

어려운 시는 머리 아픈 당신들이 쓰고,
쉬운 시는 가슴 아픈 내가 쓰면 된다." (211쪽)

"밖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라고 세상의 것들과 어울리고 섞이며 또 그 안에서 얻어터지고 짓밟히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상처 받으면서도 끝끝내 견디고 살아남아야 할 삶이, 목숨들이 문득 눈물겨웠던 것이다." (296쪽)

요즘 인기 있는 역사에 관한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 중인 시인은 자신을 '삼류 트로트 통속 시인' 이라고 소개한다.

이 눈물겹고 서러운 세상살이 살아내는데는 삼류든 일류든 아무 상관 없다.

오히려 아무런 의지가지 없이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견디고 살아가야 할 삼류인생의 생명력이, 은숟가락 물고 태어나서 시간이 갈 수록 더욱 강해지는 일류들의 그 것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그래서 안치환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고 노래했을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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