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전쟁과 평화> 등의 유명 러시아문학을 읽어본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일단 분량이 많고,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너무 긴데 비슷하기까지해서 헷갈린다고, 내용도 너무 철학적이라 어렵단 말이 많은 탓일 거다. 그런데 <죄와 벌>을 읽고나니 지나친 선입견을 갖고 있었단 생각이 든다. 쉽다는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읽을 만했다.그런데 제대로 읽은 걸까? 미약한 독서력은 차치하더라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데 난 러시아 역사나 문화, 문학에 문외한이다. 물론 모르면 모르는 대로 스토리만 따라가도 문제될 건 없지만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서 도움을 받기로 했는데 역시...이 책 진짜 물건이다👍✨️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의 저자 조주관 님의 저서인데 작가에 대한 설명보다는 줄거리 요약 및 주제 중심의 텍스트 분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도 러시아 문학 읽었다'에 의의를 두기보다는 '깊이 읽기'를 원하는 독자라면 꼭 소장하시길! 가격이 있긴 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18~20세기 러시아 장단편 소설뿐 아니라 희곡까지 작품별로 디테일하게 분석해서 러시아 문학을 접할 때마다 참고할, 진짜 두고두고 읽을 책.✨️ 최근 읽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부분을 참고용으로 일부 발췌해둔다.📚 도스토옙스키는 사상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 <죄와 벌>(1866)을 통해 초인사상을 신봉하는 대학생이 자신의 신념에 의해 어떻게 파멸해 가는가를 보여준다.📚 <죄와 벌>의 '선 넘기'는 간단히 말해 '죄짓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가장 빈번하게 접할 수 있는 선들 가운데 하나는 문지방이다. 러시아인들에게 문지방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문지방은 항상 경계선을 상징한다. 그들은 관습적으로 문지방을 사이에 두고 악수를 하면 불행이 온다고 믿는다.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노파를 살해하기 전에 전당포의 문지방 앞에서 갈등한다. 문지방을 넘을지말지 망설이던 그는 마침내 문지방이라는 선을 넘고 이중살인이라는 죄를 짓게 된다. 그의 '비범인사상은' 경계선을 넘어가는 사상이다.(중략)초인사상이라는 이론을 위해 라스콜니코프는 살인을 범하여 사회의 법률을 어기고 이교도적 인신 사상으로 종교적인 선을 넘어 버린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도덕적 경계선뿐만 아니라 종교적 경계선까지 뛰어넘은 죄인이 된다. 📚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벌'은 주인공에 대한 외적 형량이 아니라 '마음의 고통'이다. 라스콜니코프가 범한 살인이 결국 자기 자신을 죽였다는 게 핵심이다. (중략) 에필로그에서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에게 내려진 벌이었던 고통으로부터 해방된다. 재판 후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그는 "내 양심은 편안하다"라고 말한다. 법적 처벌은 오히려 그의 양심의 가책을 덜어 주어, 벌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보상으로 작용한다. 형사상의 벌이 오히려 그를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이다. 즉 양심의 고통이 진정한 벌이라는 의미이다. 📚 라스콜니코프가 인간으로서 초인사상을 품은 것 자체가 '범죄 이전의 죄', 즉 '원죄'이다. (중략) 기독교에서 신이 되고자 자신의 경계선을 넘는 것을 '오만, 자만'이라고 한다. 이 자만과 오만이 바로 '범죄 이전의 죄'이다.📚 작가가 지식인들에게 경계한 것은 이념이나 사상에 의한 폭력과 살인이다. 📚 에필로그에서는 가난 속에서 이념에 시달리며 어둠의 길을 걸어온 라스콜니코프가 그보다 더 극심한 가난을 겪으면서도 희망의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소냐를 만나 빛의 길로 인도된다. (중략) 소냐의 사랑은 '어리석음의 아름다움'에서 나온 행동이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고 인류의 역사가 발전하는 데에는 소냐가 보여준 그 어리석음이 원동력이 된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삶의 아름다움은 지식인들이 생산해 내는 이론이 아닌 인간의 양심과 윤리적인 삶에서 나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