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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지배 - 디지털화와 민주주의의 위기 ㅣ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3년 2월
평점 :
이 책의 독일어판 원제는 저자가 새롭게 발굴한 개념 '인포크라시(Infokratie)’로 정보체제 내에서 민주주의를 대체하고 있는 새로운 지배 형태를 뜻한다. 한병철 님은 이 개념을 통해 정보체제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했음을 경고한다.
정보체제는 정보가, 그리고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을 통한 정보의 가공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과정들을 좌우하는 지배형태를 말한다. 정보체제에서는 몸과 에너지 대신 정보와 데이터를 착취하며 데이터를 통한 감시가 이루어진다.
정보체제에 예속된 사람들은 모두 자아를 숭배하며 자기를 공연하고 생산한다. 그 과정에서 만든 데이터를 스마트폰이라는 정보원에게 제공함으로써 정보체제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다. 자신은 매우 자유롭고 진정성 있고 창조적이라 망상하면서.
“우리는 소통과 정보에 도취하여 혼미한 상태다. 정보의 쓰나미가 파괴적인 힘들을 발휘한다. 어느새 그 쓰나미는 정치 분야마저 덮쳐 민주주의적 과정에 막대한 혼란과 장애를 유발한다. 민주주의가 인포크라시로 변질하고 있다.”-p.27
한병철 님의 책은 어렵다는 인식이 강했는데 <피로사회> <사물의 소멸>보다 훨씬 잘 읽혔다. 평소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에 거부감을 넘어 공포까지 느끼는 편이라 와닿는 내용이 많아서일 수도. 밑줄 치다 포기했을 만큼 버릴 내용이 없다.
챗gpt 등장에 열광했다면 혹은 마냥 신뢰한다면
매일 sns를 이용한다면
아니, 그냥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강력추천
가짜뉴스는 거짓말이 아니다.(중략) 도널드 트럼프가 자기 형편에 맞게 모든 것을 거침없이 주장할 때, 그는 의식적으로 사정을 왜곡하는 고전적 거짓말쟁이다 아니다. 오히려 그는 진실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실맹이자 실재맹인 사람은 거짓말쟁이보다 진실을 더 크게 위협한다. 미국 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라면 오늘날의 트럼프를 "개소리쟁이"라고 부를 법하다. 개소리쟁이는 진실에 반항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진실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p.82 / 거짓말이 아니라 개소리란 뜻이었음 ㅋㅋㅋ
인플루언서들은 모범으로서 숭배받는다. 그리하여 이 모든 사정이 종교적 차원을 획득한다. 동기부여 훈련자의 역할을 하는 인풀루언서는 구원자로 행세한다. 팔로워는 신봉자로서 인플루언서의 삶에 참여한다. 즉 인플루언서가 자신의 연출된 일상에서 스스로 소비한다고 하는 상품을 구매한다. 그렇게 팔로워는 디지털 성찬식에 참여한다. (중략) 소셜미디어는 교회와 같다. 좋아요는 아멘이다. 공유는 성찬식이다. 소비는 구원이다.-p.18~19
텔레스크린과 텔레비전 화면은 오늘날 터치스크린으로 교체된다. 새로운 예속 매체는 스마트폰이다. (중략) 정보 체제의 예속 구호는 이러하다. 우리는 죽도록 소통한다. -p.34 (더이상 본질이라 할 수 없는 소통을 강요하는 인스타그램)
심리기록법이라고도 하는 심리측정법은 데이터에 기초하여 성격 프로필을 작성하는 기법이다. (중략) 데이터가 충분히 많으면, 심지어 우리가 우리 자신에 관하여 안다고 믿는 바를 넘어선 정보들도 생산할 수 있다. 스마트폰은 심리측정용 기록장치다. 우리는 그 장치에 매일, 아니 매시간 데이터를 공급한다. (중략) 정보체제는 심리측정 정보들을 입수할 수 있고, 그 정보는 심리정치에 투입된다.-p.37
시민이 여론 로봇과 상호작용하고 그 로봇에 의해 조작될 때, 출신과 동기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행위자들이 정치적 논쟁에 끼어들 때 민주주의는 위험에 처한다.-p.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