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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없는 여자와 도시 ㅣ 비비언 고닉 선집 2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월
평점 :
'작가들의 작가'라고 불린다는 비비언 고닉의 선집(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의 작품 가운데서 어떤 기준에 따라 몇 작품을 모아 엮은 책)이다.
뉴욕에서 나고 자라며 여러 번 로맨틱한 사랑에 빠졌지만 끝내 '짝 없는' 여자이길 선택한 고닉의 회고록.
그녀가 누군지도 몰랐고, 글을 읽어본 적도 없으나 제목으로 미루어보아 내 마음 같은 문장이 많을 거라 예상했는데 딱히 그렇진 않았다. 아직까진 지향하는 바가 다르고, 뉴욕이란 도시도 나와 별다른 접점이 없어서 그런 듯.
저자가 재치있고 영리한 게이라 표현한 20년 지기 레너드와의 관계는 정말 부러웠다. 이런 게 소울메이트 아닐까. 아닌가?
📚 지금까지 20년이 넘도록 레너드와 일주일에 한 번씩 걔네 동네나 우리 동네에서 만나 산책을 하고 저녁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았다. 영화 보는 두 시간을 빼면 우리는 내내 이야기만 한다. (중략) 실상은, 우리가 각자 살면서 나눠본 대화 중에 가장 흡족한 대화를 나누고,우리 둘 다 그걸 단 일주일이라도 포기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토록 강렬하게 이끌리는 대화를 나눈다는 것, 그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느끼는 방식이니까.-p.7
📚 레너드와의 우정은 내가 사랑의 법칙을 들먹이면서 시작됐다. 사랑의 법칙엔 기대가 수반된다. "우리는 하나야." 나는 레너드를 만나자마자 결론을 내렸다. "너는 나고, 나는 너야. 서로를 구원하는 게 우리 의무고." 이런 감상이 헛다리를 짚은 것이었음은 몇 해가 지나서야 깨달았지만. 사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이라는 영토를 힘겹게 횡단하다 국경이 맞닿는 곳에서 이따금 만나 서로에게 정찰 기록을 건네는 고독한 두 여행자다.-p.58~59
제목이 살짝 낯익다 싶었는데 이유가 있었다.
📚 19세기 말, 현대 여성을 다루는 대단한 책들이 문학계 천재 남성들의 손에 의해 쓰여졌다. (중략) 내게 직접 말을 걸어 온 건 조지 기싱의 <짝 없는 여자들>이었다. 작품 속 인물들은 마치 내가 실제로 아는 여자들 남자들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중략) 그의 작품은 묻는다. 남자와 여자는 그들 자신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무엇이 되려 하는가?-p.186~187
오! 마침 선물받은 책!! 그 소설엔 내 마음 같은 문장이 더 있으려나~ 또 한번 기대해 본다.
📚 우리가 원하는 건 상대에게 알려졌다는 느낌이다. 결점까지도 전부. 그러니까 결점은 많을수록 좋다. 내가 털어놓는 것이 곧 나 자신이라는 생각, 그것은 우리 문화의 대단한 착각이다.-p.28
📚 벌써 몇 시간째 그와 함께 있으면서도 나는 내내 혼자였다.-p.58
📚 이해는 부적같은 단어였다. 엄마 말로는, 이해를 받지 못하면 당신이 살아 있는 건지 알 길이 없었고 이해를 받으면 마음이 정돈되며 세상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아빠 곁에서 엄마는 당신에게 있었는지도 몰랐던 깊이로 반응했다. 시든, 정치든, 음악이든, 섹스든 모든 것에. 감정이 북받친 듯 엄마는 눈을 감았다. 모든 것.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는 말했다. "모든 것"이 아빠와 함께 가버렸다고. -p.63
📚 누군가를 영원토록 매혹할 수 있는 건 오직 사람의 머릿속 생각이나 영혼의 직관 뿐-p.128
📚 뉴욕에 있는 사람은 대부분 인간의 자기표현력에 대한 증거가ㅡ그것도 대량으로ㅡ 필요해서 거기 있는 사람들이다. 가끔씩도 아니고 매일 필요해서. 그들에게 필요한 게 바로 그거라서. 감당할 만한 도시로 떠나버리는 사람들은 뉴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뉴욕에 발을 붙이고 있는 사람들은 뉴욕없인 못 사는 사람들이다.-p.218~219
#도서협찬 #글항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