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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가라앉지 마 - 삶의 기억과 사라짐, 버팀에 대하여
나이젤 베인스 지음, 황유원 옮김 / 싱긋 / 2022년 5월
평점 :
이 책은 영국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 북디자이너인 나이젤 베인스가 엄마의 치매 발병부터 죽음을 맞이하기까지의 2년을 글과 그림으로 회고한 '그래픽 내러티브'이다.
픽션이 아닌 회고록이란 점에서 그래픽 노블과 구분되며 프레임과 간격 등을 좀더 의도적으로 배치할 수 있어 표현이 자유롭기 때문에 개인적 체험을 회고하기에 적절한 형식이다.
저자의 80대 노모는 춥고 비오는 날 오후 5시에 택시에서 내리다 엉덩이뼈를 다치며 쓰러지셨는데 전화교환원이 심각한 상황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는 바람에 길에서 네 시간을 보낸 후에 겨우 앰뷸런스에 올랐고, 입원까지 또 세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이 일로 저자는 지역 앰뷸런스 서비스와 지역 응급실의 문제, 경찰이 종종 긴급 앰뷸런스 서비스를 대행하는 현실에 대해 tv, 라디오, 신문과 인터뷰했다.
이로써 상황이 변할 수도 있단 생각에 스스로 만족한 것도 잠시, 청천벽력 같은 어머니의 치매 판정 소식을 듣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의외로 엄마와의 사적인 에피소드보다는 사회복지 시스템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는 데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서 좀 아쉽기도 했지만 덕분에 배운 것도 많긴 하다.
자꾸 이런 책을 찾아읽는 게 못마땅하기도 하지만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언젠가는 마주할 상실의 순간에 속절없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치매의 가장 흔한 원인이 바로 알츠하이머병이다. 알츠하이머병이 발병하면 뇌에서 아밀로이드 단백질과 타우 단백질이라고 불리는 두 단백질이 이상반응을 보여 신경세포를 공격하고 죽이며, 이에 따라 뇌는 위축되고 공격당한 부위에 따라 뇌의 중요 기능이 상실된다. 그것은 치료법이 없는 진행성 질환이며 결국에는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기능들의 고장으로 이어진다." -p.27
📚“엄마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졌지만 그 서식들은 끔찍했다. 체크를 하는 네모 칸들, 양자택일들. 미묘한 차이가 들어설 여지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은 네모 칸 안에 쑤셔넣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인간을 위한 여지는 그 시스템에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 돌보미들은 훌륭했지만 돌봄 시간은 너무 짧았고, 그들은 오자마자 택시를 불러서 다음 고객에게 가기 바빴다.”-p.93
📚"인생도 마찬가지다. 말들 사이의 틈새. 순간들 사이의 공백, 없어져버린 듯한 것들. 바로 그곳이 우리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그리고 엄마의 경우에도 정말로 눈에 띄었던 것은 바로 그 없어져버린 것들이었다. 엄마가 처음으로 내게 생일 카드를 보내지 않았던 해. 엄마가 처음으로 내게 전화를 하지 않았던 일요일. 내가 방문할 때면 엄마가 늘 방갈로식 주택의 손님용 침대에 두곤 하던 '그랜섬 타운; 쿠션의 실종. 진실은 바로 그것들의 틈새에 자리하고 있다."-p.127
📚"연도를 본다. 1933-2017. 저 대시. 저 짧은 대시. 저것이 인생이다. 모든 게 다 저 짧은 문장 부호 안에 들어 있다. 당신이 하고, 생각하고, 보고, 꿈꾸고, 울고 웃은 모든 것. 당신의 전부. 저 대시 안에."-p.167
📚"국민건강보험과 사회복지 사이에 벌어진 틈은 사라져야만 한다. 자원은 이용가능한 것이 되어야만 한다. 우리 사회가 공동체임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분명 우리가 인생의 끝자락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달려있다."-p.176
📚"궁극적으로 꼭 해야 할 일의 목록은 사실 꽤 간단하다. 그리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겠지만 그래도 분명 그 상황에 익숙해지긴 할 것이다. 그것은 꽤나 놀라운 발견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중략) 하지만 그 일을 혼자서 하진 말라. 대화를 하라. 당신에게 큰 의미를 지닌 친구들에게 손을 내밀라. 당신만을 위한 공간을 찾으라.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가라앉지 않고 계속 떠 있는 것뿐이다."-p.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