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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할 권리 - 우리는 어디쯤에 있는가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문정 옮김 / 효형출판 / 2022년 9월
평점 :
"배가 침몰 중인데, 우리는 배에 실린 화물을 걱정하고 있다." - p.25 <얼굴 없는 인간>중에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가장 논쟁적인 철학자로 떠올랐다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주장은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조치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던 내게 충격 그 잡채였다.
그는 평범한 일상을 중지하는 중대 결정(=봉쇄 조치)을 사회 전체가 별다른 논의 없이 받아들였음을 지적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야 할 책임을 회피한 가톨릭 교회 전체와 행정관료로서 그들이 속한 시스템을 정당화할 의무만 다한 법학자들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종교가 되어버린 의학 숭배에 경종을 울린다.
📚“감염 '가능성'이란 무엇인가?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조차 함께하지 못하고, 관계 단절로 외로움에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뜨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 상황이, 정녕 인간을 위한 일이란 말인가?” -p.19, <얼굴 없는 인간> 중에서
봉쇄조치의 긍정적인 면을 아예 배제한 것은 잠시 차치하고, 최소한의 선택권조차 없이 사랑하는 이를 홀로 두고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게 한 건 누구를 위한 조치였는지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무겁고 불투명하며 숨 막히는 적막이 온 나라를 뒤덮고, 사람들은 우울하고 불만 가득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항의하지도 않고 무슨 일이라도 기꺼이 감내하고 있다. 이것이 독재 시대의 전형적인 특징이다."-p.41
📚“한나 아렌트의 아이히만에 관한 책에서 그는 아이히만이 완벽하게 이성적인 사람이었지만 명령에 따라서만 움직였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한 마디로 아이히만은 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담론의 흐름을 멈출 수 없었으며 문제 제기조차 할 수 없었고 단지 명령만 수행했던 것입니다.”-p.106
통행의 자유를 위해 백신을 맞은 건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코로나에 걸릴 확률을 줄이려면, 혹시라도 내가 감염시킬 가능성을 줄이려면 두려워도 맞아야 했다. 우리를 위해, 서로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생각하고 따른 내가 아이히만과 다름없었던 걸까.🙈
📚 “오늘날 인간은 해변에서 지워진 모래의 얼굴처럼 사라져 간다. 그러나 그 자리를 차지하는 세상은 더는 존재하지 않으며, 권력과 과학의 숫자의 자비에 따라 침묵하는, 역사가 없는 ‘벌거벗은 삶’뿐이다.”-p.144 <얼굴 없는 인간> 중에서
여기에서 ‘벌거벗은 삶’이란 살해는 가능하되 희생물로 바칠 수 없는 생명으로 아감벤은 아우슈비츠의 희생자들 혹은 난민이 근대 사회의 ‘벌거벗은 삶’이라 했다. 팬데믹 당시 조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벌거벗은 삶’을 자처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레짐은 인간관계를 극도로 약화시킬 것이며, 전례없는 사회적 통제를 활용하는 가장 잔혹한 국가주의적 공산주의와 가장 비인간적인 자본주의가 합쳐지리라는 것이다.” -p.159~160 (*레짐: 가치, 규범 및 규칙들의 총합)
물론 좀 멀리 간 감이 없지 않지만... 민주주의와 자유의 제한이 곧 독재는 아니지만... 가능성이 없지 않기에 그의 말에 귀 기울여봐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사유할 수 있는 존재고, 저항할 권리가 있으니까.
#도서협찬 #효형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