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 - 난치병을 딛고 톨킨의 번역가가 된 박현묵 이야기
강인식 지음 / 원더박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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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들어 세상 나태해진 나를 침대와 떨어뜨려준 이야기의 주인공, 현묵은 혈액을 응고해 주는 인자가 부족하여 피가 잘 멈추지 않는 유전적 질병, 혈우병을 앓고 있다. 혈우병을 앓아도 정상 인자를 보충하는 약이 있기 때문에 대개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는데 현묵은 안타깝게도 그렇지가 않다. 아주 작은 충격에도, 아니 충격이 없어도 내출혈이 생기는 데다 약을 아무리 써도 효과를 거의 보지 못하는 세계적으로도 아주 특이한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양쪽 고관절과 장기까지 공격하는 내출혈 때문에 집과 병원을 오가느라 중고등학교는 단 하루도 다닌 적이 없었던 소년 현묵의 매일은 고통이 섬광처럼 몸을 뚫고 지나가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2020년 봄, 고졸 검정고시를 패스했고 여름에는 국내에 번역된 적 없었던 J. R. R. 톨킨의 책 <끝나지 않은 이야기> 번역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것이다. 같은 해 12월에는 수능을 보고 서울대학교에 합격했다. 놀라운 성취다. 그런데 이보다 더 혀를 내두를 만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현묵이 삶에 임하는 자세다. 난치병과 장애를 극복한 현묵의 이야기는 긍정의 힘과 낙천적 사고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묵은 16살에 처음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혈우병 환자의 수명이 일반인보다 크게 짧은 건 아니에요. 죽을 만큼 아플 때는 많아도 실제로 죽기는 쉽지 않죠. 이렇게 어른이 되는 것이죠. 그럼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파서 잠이 안 오니까 더 그런 생각을 떨칠 수 없었어요." 68p

나라면 신세한탄이나 하거나 포기해버렸을 순간에 현묵은 달랐다. 누구보다 자립적이고 진취적이며 밝은 현묵의 성격은 엄마를 닮았다. 정말 본받아아 할 '놀랍도록 건강한 정신'이랄까...

현묵의 이야기를 '장애인의 인간 승리'가 아니라 '매우 드문 어떤 기적에 관한 이야기' 또는 '공부의 본질에 대한 탐구'로 정의하는 저자에 동의한다. 실제로 현묵의 서사는 톨킨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대학 입학도, 번역도 모두 현묵이 진정한 톨키니스트 (J.R.R. 톨킨을 좋아하고 그의 저작물을 사랑하는 사람)로서 성취한 것이기에 '덕후의 승리'로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 나도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 정도는 대사를 줄줄 꿰고 있는 사람이라 현묵을 통해 톨키니스트들의 세계를 엿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는데 진짜… 대단한 사람들이다…ㄷㄷㄷ

다행히 2019년 6월부터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한 이후로는 응급실행이나 중환자실 입원 없이 생활하고 있다는 현묵...여전히 정상적인 보행이나 움직임은 불가능하다지만 어제보다 행복한 오늘이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스스로 나태하다면…소중한 이가 나태하다면…. '나태하지 않은 영혼' 박현묵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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