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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일 년 후 ㅣ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평점 :
<한 달 후, 일 년 후>는 1957년 발표된 사강의 세번째 소설이다. 그녀의 데뷔작 <슬픔이여 안녕>과 대표작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대비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지만 명작으로 평가받는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인상깊게 본 사람들 중엔 찾아본 이가 꽤 많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의 여주인공이 이 소설을 좋아하고 등장인물인 '조제'로 불리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다리가 불편해 걷지 못하던 그 아이는 왜 '조제'가 되고 싶었을까? 그 답은 소설의 도입부에 금방 드러난다. 책 속 조제는 미모의 25세 여성으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영화 속 조제에겐 앞으로도 허락되지 않을 자유를 마음껏 향유하는 삶... 걷지 못하는 그녀에게 조제란 이름은 곧 자유였을 것이다ㅠ
책 얘기로 돌아가 이 소설은 20세기 중반 파리를 무대로 한 아홉 남녀의 사랑과 젊음에 관한 이야기다. 그 9명 중에 조제가 있고, 부부도 두 커플 있다. 문제는 이들의 관계가 너무 얽히고 설켜있단 점이다. 간략하게나마 인물관계도를 그리며 읽었는데 아주 멍멍이판이 따로 없어서 기가 찼다. 프랑스인들의 연애나 결혼 문화가 우리 것과 워낙 달라 그럴 수 있겠지만 태생이 유교걸인 나로서는 행동거지들이 다 맘에 안 들었다. 어..? 나 사강이랑 안 맞나? 의심하며 정 가는 캐릭터 하나 없이 완독하나 싶었는데 마지막에 조제의 한 마디가...너무 뜻밖이었던 그 한마디가 그녀와 등장인물을 넘어 모든 인간에 대한 연민을 자극했다.
책 제목인 '한 달 후, 일 년 후'는 본래 프랑스의 비극작가 라신이 쓴 희곡에서 이별 장면에 나오는 대사로 서로 사랑하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는 연인들의 애절한 심정을 표현했던 것인데 사강은 이 구절을 한때는 사랑했지만 세월이 흐르면 변하고 잊혀지게 마련인 남녀간의 사랑과 젊음의 덧없음을 아련하게, 조금은 냉소적으로 설파하는 데 썼다. 여기, 사강이 생각하는 남녀의 사랑과 젊음의 무상함이 드러나는 구절을 덧붙여둔다.
"우리는 모두 사랑의 열정이 대도시의 한가운데에 만들어내는 이런 조그마한 구역들을 알고 있다"
"젊음이 맹목에 자리를 내줄 때, 행복감은 그 사람을 뒤흔들고 그 사람의 삶을 정당화하며, 그 사람은 나중에 그 사실을 틀림없이 시인한다."
이 책을 본 이상,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재감상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는 조제가 안타까울지언정 남주 입장에 치우쳐 봤다면 이번에는 조제를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다가올 이별과 고독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한 조제의 사랑...아, 벌써부터 마음 아프고 난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서평은 주관대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