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낙엽
토머스 H. 쿡 지음, 장은재 옮김 / 고려원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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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소설의 전형은 아니다. 불가능한 범죄가 일어나지도,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이 절묘하지도 않다. 아주 사소한 계기로 범인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 어떤 소설보다 읽는 동안 심장이 조여온다. 가족을 의심하는 고통에 뒤틀려가는 에릭의 모습 때문에. 

 에이미가 실종된다. 범인은 내 아들인 것 같다. 키이스. 의심이란 독이 싹을 피우면 온몸에 뿌리내리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가을이 와서 단풍이 붉게 물드는 것처럼 행복했던 가족의 계절도 저물어 간다. 아버지, 형, 부인까지 아무도 믿지 못한다. 내가 이해했다고 생각한 세상이 무너진다. 가족을 의심하고, 그 모든 의심이 내 오해였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아들과 극적으로 화해한다. 아주 작은 믿음을 통해. 그러나 끝내 비극이 기다린다. 나는 붉은 낙엽이 질 때마다 피로 물든 정원을 떠올린다.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살고 있을까? 가족이 범죄자로 의심을 받는다면? 끝까지 믿어 줄 수 있을까? 피할 수 없는 비극이 찾아온다면? 삶을 회복할 수 있을까? 나는 자신이 없다. 그러니 제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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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소네 케이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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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각각 잘린 이야기로 시작한다. 수많은 인물이 어떻게 연결될지 궁금하다. 장을 넘길수록 인간의 어둠이 드러난다. 장막을 들추니 또 장막이 드리운다. 자기가 판 우물 안에서 발목부터 차오르는 물에서 발버둥 치는 인생들. 인간의 길을 벗어난 자들.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다 죄를 짓는다. 죄를 짓고 반성하지 않고, 원죄에서 벗어나려 더 큰 죄를 짓는다. 인간의 길을 벗어난 짐승들. 료스케는 자업자득이라지만 미나와 간지는 안타까운 면도 있다. 분명 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지만. 삶은 왜 이리 힘든가? 이들이 처한 상황은 점점 꼬여만 간다. 지푸라기처럼 흔들리던 세 사람의 이야기는 럭키 스트라이크와 보스턴 백으로 절묘하게 연결된다. 그리고 모두가 파멸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작가는 묻는다. 세상에 천벌이 존재할까? 그리고 답한다. 아마도. 악인이 악인을 벌하는 것도 천벌이라면.

 제발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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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증거 범죄 추리의 왕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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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범인을 어떻게 특정 지을까? 눈 앞에 보이는 뚜렷한 동기도 살해 방법도 증거도 없다. 지문이 남아 있는데도 범인을 찾지 못하다니 의아했다. 혹시 산아 제한 때문에 호적이 등록되지 않은 사람이 범인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경찰을 완전히 속일 수 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을까? 범인의 정체는 곧 밝혀진다. 역시 천재라 부를만한 인물이 범인이었다. 범인의 정체보다 그 사람이 범행의 동기가 중요했던 소설이다.


 책의 띠지에 적힌 문구처럼 <용의자 X의 헌신>을 떠오르게 하는 소설이다. 범인을 추적하는 옌랑은 수학자다. 고차원 방정식의 풀이를 범죄 수사에 연결해 보여준다. 고차원 방정식의 일반적인 풀이 방법은 없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단서에서 범인을 도출하는게 아니라 범인을 특정하고 추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유카와 마나부'가 떠오르게 하는 인물이다.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정의로운 것 같은 러원은 법의 테두리를 넘어 증거를 조작한다. 남의 죄를 감추기 위한 범죄를 저지른다. 이성을 뛰어넘는 연민 때문이다. 가족애 앞에서 그는 도덕을 버리고 악마가 되기를 자처한다. 옌량도 그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 그래서 그를 더욱 범인으로 의심했는지 모른다. 최후에 러원은 자신이 파렴치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며 자신을 희생한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지켜주려던 사람들은 체포되고 만다. 이 전개는 <용의자 X 의 헌신>과 판박이다. 분명 재밌는 소설이다. 그러나 내가 처음으로 <용의자 X의 헌신>을 읽었을 때의 충격에 비하자면 글쎄. 차라리 띠지와 옮긴 이의 말에 그런 문구가 없었더라면.


 이 살인들이 공권력이 무능하여서 발생했다. 안타깝다. 소설 속의 파렴치한 범죄자가 제대로 수사되거나 처벌되었다면 살인이 일어났을까? 안타깝다. 이것이 단지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라서. 지금도 고통받을 사람들은 생각해 본다. 그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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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드뷔시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정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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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재로 할아버지와 사촌을 잃은 하루카를 노리는 사람이 있다! 같은 집에 사는 사람의 악의가 드러난다. 유산 때문일까? 갑자기 하루카의 어머니가 사망한다. 유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범인은...


 하루카는 드뷔시의 곡이 눈앞에 장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매우 좋아한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글자로 그림을 그려낸다. 미사키나 하루카의 정열적인 연주가 눈 앞에 보였다.


 결말의 반전을 제외한다면, 이 소설은 극복과 성장의 이야기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책은 실존주의로 가득하다. 쇼펜하우어는 삶은 고통이라고 했다. 작가는 그런 고난과 시련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하루카를 통해 보여준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발버둥치는, 발악하는 삶. 장애를 가지게 된 하루카는 '투쟁'한다. 육체적인, 정신적인 고통을 예술로써 승화한다. 만화 <4월은 너의 거짓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우리는 삶을 선택하진 않았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던져졌다'. 하지만 나를 다시 '던질 수 있다'. 어떻게 태어날지는 정하지 못했지만 어떻게 죽을지는 정할 수 있다. 어떻게 자신의 길을 찾고 원하는 방식으로 걸어갈지 결정할 수 있다. 나는 얼마나 치열한가? 


 흔히 쇼펜하우어를 허무주의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금욕적으로 살았다. 고통스러운 삶을 철저히 사유했다. 그리고 모두가 다른 고통받는 이를 '동정'하는 삶을 역설했다. 미사키가 그런 인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책에서 '불관용의 시대'라는 말이 나온다. 남들의 잘못된 기대와 오해는 사람을 망칠 수도 있다.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인색하지 않은지 돌아본다. 남을 함부로 재단하며 살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한편으로는 끝까지 자신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하루카처럼 


 최후에 나를 구원할 사람은 나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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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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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기록들. 일상 속의 비일상. 이 책에 담긴 소설들에는 큰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어떤 긴 이야기보다 특별하다. 기억에 박힌다. 

 단절된 관계, 단절되는 관계. 
만나고 있지만 만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평범한 하루를 사는 것 같지만, 상처 입은 사람들.  
어쩌면 나, 어쩌면 너의 삶. 

 세계는 크지 않다. 
어쩌면 우리 삶은 시시한 건지 모른다. 
내가 볼 수 있는 경계에만 머무는 삶.
내 주변에서 느끼는 행복과 슬픔. 
그러나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내'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의 기록.

 많은 작품이 있지만 단연코 '피부'가 기억에 남는다. 굉장히 짧지만 아주 인상 깊다. 특별한 상징을 담거나 함축적인 글이 아닌데도.

 짧은 글로도 수많은 것을 담아낼 수 있다. 작가의 역량에 놀라면서 불안한 미래와 현재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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