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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프로파간다가 시장경제와 자유 민주주의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면 1984는 사회주의와 전체주의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 주인공인 윈스턴은 외부 당원이다. 그는 과거의 신문 기사를 '당'의 요구데로 고치는 일을 한다. 이 과거의 기사를 뜯어 고치는 모습은 국정원의 댓글 조작을 떠올리게 한다.
이 소설은 실체도 없는 권력을 쥐고 있는 소수가 통제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린다. 소설은 과거의 전체주의 국가가 보여준 여러 모습을 은유한다. 조작을 통한 영웅화와 우상화가 등장한다. 사회는 적대감을 통해 통제한다. 전쟁은 평화라는 슬로건은 지배층이 외부의 위협을 조장하여 내부를 결속하는 행태를 보여준다.
소설에서 당은 '신어'를 만들고 수많은 단어를 제거한다. 인간은 언어로 세계를 정의하고 이해하면 구성한다. 언어는 우리 생각보다 더 강력하다. 새로운 언어로 선전을 할 수도 있고, 단어를 없에서 과거를 통재할 수 도 있다. 언어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고 현미경이다. 따라서 언어가 획일화 되면 생각도 획일화 된다. 말을 잘라서 자유를 자르고 다양성을 자른다.
나는 현재의 자본주의가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라고 이해한다. 왜 우리는 끝 없이 노동하는가? 노동은 신성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노동은 착취의 수단이자 억압의 도구일 수도 있다. 극심한 노동은 다른 생각을 차단한다. 노동은 인류를 유지하는 기둥이자 계층을 구속하는 족쇄다.
소설에서 내부에 의심을 심어 서로를 감시하게 하고 분쟁을 야기하는 통치의 방식을 묘사한다. 스탈린 주의다. 그리고 수많은 기록을 날조하고 없애버리는 부분은 분서갱유와 문화혁명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것은 사회주의를 부정적으로 바라 보게했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악은 아니다. 독제와 전체주의가 악이다.
2부에서 줄리아와 윈스턴이 도심지를 벗어나서 밀회하는 것은 크게는 문명에 대한 거부일까? 라고 생각 했으나 지나친 생각이었다. 당에 대한 반항일뿐. 둘의 애닲은 모습을 보면서 폭력에 대항하는 수단은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의 행위위가 정치적이었더라도. 반복되는 거짓은 진실에 무관심하게 만든다. 줄리아의 태도가 그렇다. 선동은 소수의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다.
3부에서는 전체주의, 스탈린주의의 어둔운 면을 직접 보여준다. 고문과 세뇌를 당한 윈스턴은 진실을 버리고 거짓을 택한다. 그런 어둠에서 맹자의 '역성혁명'을 떠올려본다. 지배자는 선하고 징의로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갈아 엎어야 한다. 이 소설에서는 좌절만 한다. 단결하지 못한 개인의 힘은 무력하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몇 차례에 걸쳐 역사로 증명했고 나도 그 증인이다.
당의 슬로건.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굴종
무지는 힘
나의 생각.
사랑은 평화
자유는 평등
진실은 힘
지배층은 가상의 적으로 내부의 평화를 꽤한다. 전쟁에서 죽는 이는 오직 노동자다. 그러나 진정한 평화는 인류애에서 나온다. 아무도 희생되지 않아도 되는 세계가 진정 평화로운 세계다. 다다를 수 없는 세상이라도.
당의 사상에 완전히 굴종하면 자유로워 진다. 우리는 노동력을 자유롭게 제공한다. 그렇게 믿는다. 우리는 세뇌됐다. 거짓을 진실로 믿는 이중사고에 빠졌다. 이는 지배층이 지배를 공고히 하는 수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착취에서 벗어나는 진정한 자유야 말로 계급을 타파하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수단이다. 진정한 평등이다.
무지는 지배자가 체제를 유지하는 힘이다. 우리는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제도권은 벽 너머의 지식을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는 그 벽에 좌절한다. 그 벽 너머의 진실이 진정한 힘이다.
아주 삐딱하게 세계를 보자면 현재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차악이다. 그러나 다른 대안은 없다.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도 실패했다. 차악 속에 사는 나는 그래도 최악으로 빠지지 않게 감시를 해야 하지 않을까?
사족: 텔레스크린은 벤담의 파놉티콘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가 여기에서 영감을 얻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