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엄마 이유식 달인되기
고시환.신송하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아이가 4개월에 접어들면서 조급한 마음에 구입을 서둘러 사긴 했지만 본인은 직장을 다니는 일하는 엄마인 관계로 자주 펼쳐보지 못하는 편이다. 구입 당시부터 본인이 주의깊게 살핀 것이 바로 적절한 시기에 책을 바로 펼쳐서 이유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였다. 제목과 본문, 출판시기 등을 오가며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 산 책인데 솔직히 좀 실망스러운 감이 있다. 아가의 발단단계에 맞추어 엄마가 첨가할 수 있는 재료별 특징이나 주의 점 등을 짚어주긴 했지만 요리 레시피 면과 분리되어 있어서 혼동이 생기기도 하고 설명이 너무 개괄적이어서 어느단계에 주의를 요하는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저자가 소아과 의사님과 요리전문가인데 아무래도 서로 자신이 맡은 분야의 원고만 검토했지 책의 내용상 그 연결고리를 깔끔하게 정리해 주지 못한듯하여 아쉬움이 있다. 아가를 위함에 있어서는 엄마들이 얼마나 세심하게 마음을 쓰는지 두 저자분들이 다시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여 주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었다. 아뭏든 본인은 이제 막 이유식에 걸음마를 띠었고 책에서 느낀 부족한 점을 인터넷이라는 광활한 정보의 바다를 이용하여 조심스럽게 배워나가고 있다. 구입당시 인터넷에 떠도는 허무맹랑한 정보들을 피하고 좀 더 검증받은 정보만을 취하고자 했던 본인의 뜻에서는 벗어났지만 하는 수 없이 비교에 비교를 거듭하며 육아에도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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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Daisy > 만남이란 어쩌면 순간이기도 하고 영원하기도 하다.
냉정과 열정사이 - 전2권 세트
에쿠니 가오리.쓰지 히토나리 지음, 김난주.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절판


마음의 위로가 되었던 친구가 떠났다. 그냥 몸만 옯겨 떠난 것인데도 영영 그를 잃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친구가 떠나고 일주일 되었을 무렵에, 난 사놓고 문득 까먹고 있었던 이 책 (난 이 책이 서로 연결된 책인지 모르고, 그냥 Russo라고 적혀있는 한 권의 책만 샀었다)을 책꽂이 한 귀퉁이에서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다. 마음이 울적해서인지, 내용이 내가 좋아하는 로맨스 쟝르라서인지 나는 Russo를 하루만에 단숨에 읽고, 뒤늦게 다른 한 쪽인 Blue를 인터넷으로 주문하느라 3일을 기다려야 했다. 그 3일동안 나는 그 친구를 생각했다. 그가 예전에 내게 보냈던 그 짤막한 메시지가 사실은 이 책에서 발췌했음을 비로소 깨달으면서...

그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란 어쩌면 순간이기도 하고 영원이기도 한 것 같다.

Russo의 소설

- 담담하게 자신의 일상을 표현하는 문체. 이런 류의 문체로 된 글을 읽을 때면 불현듯 나도 글을 쓰고 싶어진다.

- 주인공 아오이의 생활이 그래서인지(워낙 변화를 싫어하고 정적인) 좀 지루한 감이 없쟣아 있다.

- 늘 보살펴주고 어루만져주는 마빈. 아마 현실에선 이런 남자가 더 좋을 것 같은데.. 살아봐라. 사랑도 중요하지만 이해와 배려만큼 중요한 건 없는 것 같다.

- 문득문득 빛을 발하는 싯구같은 문장들은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소녀같은 감수성을 잘 나타낸다 (작가의 사진도 꼭 영화배우같이 예쁘고 가녀리다).

-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밖에 없는 것이란다. (페데리카 할머니의 말)

- 누군가의 가슴속. 비냄새 나는 싸늘한 공기를 들이키며, 나는 생각한다. 나는 누구의 가슴 속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내 가슴 속에는 누가 있는 것일까. 누가, 있는 것일까.

- 우리의 인생은 다른 곳에서 시작됐지만, 반드시 같은 장소에서 끝날 것이라고.

- 사랑해, 고통스러울 정도로 (쥰세이가 아오이에게 한 말); 맞아. 모든 사랑엔 고통이 수반되는 것 같다. 고통이 없는 사랑이란 내리사랑밖에는 없는 것 같다. 아무 조건 없는 사랑. 그래서 댓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이란 결코 고통스럽지 않을 테니까...

-어떤 사랑도 한 사람의 몫은 2분의 1이란 것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 저자후기 중에서)

-근데 결말이 이게 뭐야? 넘 허무해. 마지막 장을 덮고 왠종일 우울했다.

Blue의 소설.

- 남자 작가가 쓴 글이라서인지 비교적 빠른 템포라 지루함이 덜해 한결 낫다.

- 츠지 히토나리; 독특한 경력의 작가이다. 록밴드를 결성한 뮤지션이면서 아쿠다가와 상을 수상한 작가. 전형적으로 예술의 기질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사진도 날라리 같다.

-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추억은 달리는 기차 창 밖으로 던져진 짐짝처럼 버려진다. 시간은 흐른다. 바로 어제처럼 느껴지던 일들이, 매순간 손이 닿지 않는 먼 옛날의 사건이 되어 희미한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

- 두려움과 불안과 망설임 때문에 모든 것을 향해 등을 돌려 버리면, 새로운 기회는 싹이 잘려 다시는 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지 못할 것이다. 후회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 고작 15분이지만, 나는 그것으로 미래를 손에 넣을 수 있다. ; 순간의 망설임으로 어쩌면 자신의 운명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하릴없이 떠나 보냈던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 냉정과 열정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랑과 고독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자추기 중에서): 기억만이 존재한다. 그것이 추억이 된다면 다행이고 그냥 스치는 기억이라면 그건.. 그래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가? 이제 사랑할 기회가 별로 없다고 느끼기 때문인가?

- 아오이를 만나려고 플랫폼으로 달려가는 쥰세이의 마지막 모습을 읽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었다. 그들의 사랑이 이렇게 끝나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정말 마음에 드는 결말인걸? Russo를 읽고 내내 우울했던 3일이 Blue를 읽고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 아침은 그렇게 물색이다. 파랗다. 왜 아침은 파랄까. 그건 빛이 어둠을 이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기면 붉은 색이 나타난다. 그래서 석양은 늘 붉게 타오른다. (역가 양억관의 후기 중에서); 역자지만 꽤 시적인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다. 멋진 역자 후기를 썼다.

- 시작의 순간에는 항상 설렘과 두려움, 우울이 따른다. 그래서 우리는 블루(Blue)를 멜랑콜이아의 색으로 치부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도 역자 후기중에서)

-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 남녀의 사랑이다. 연애하다가 죽는 사람은 제대로 길을 간 것이다 (역자 후기 중에서); 너무도 멋진 말이다.

-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졌다. 직접 원저를 읽으면 느낌이 또 색다를 것 같다.

죽도록 사랑해보고 싶다.

내 가슴 속에, 누군가의 가슴 속에 서로가 깊게 아로새겨져 너무너무 아프게 사랑하고 싶다.

임종의 마지막 순간 생각나는 한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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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나귀님 > 삼순이, 김만준, 차경아, 이오덕..
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

며칠 전, <삼순이> 팬인 집사람이 최근회를 보고 나와서 혀를 끌끌 찬다. "또 베스트셀러 하나 나오겠구만."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방금 끝난 방송분에서 삼순이가 여자아이 (나야 그 드라마를 안 보니 스토리를 모른다. 하여간 여자아이.) 를 데리고 서점에 가서 <모모>를 한 권 사주는 장면이 나왔더란다. "그러니 이제 또 다들 <모모> 사러 서점 가지 않겠어." 말이야 맞는 말이다. 지금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뻑하면 인터넷뉴스에서 그 등장인물이며, 스토리며, 배우들의 한 마디 한 마디까지 "뉴스"로 가공해 만들어내는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드라마에 나왔으니, 그야말로 베스트셀러가 될 것은 시간 문제인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이렇게 보니 대뜸 <모모>가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하.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는다더니, 삼순이가 이젠 모모를 살려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이게 언제적 책이야? 그리하여 <모모>에 관한, 그러나 작품과는 직접 관련 없는 이런저런 잡생각이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2.

김만준이란 가수가 있다. 이름도 몰라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이겠지만, 이 사람이 부른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제목이 <모모>이기 때문이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해를 쫓아가는 시계 바늘이다." 운운. 노래 제목도 <모모>이니, 사람들은 대개 여기서 책 제목 <모모>를 자연스레 떠올린다. 즉 이 노래는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읽고 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이 노래에 나오는 "모모"는 엔데의 <모모>에 나오는 여자아이 "모모"가 아니라,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이란 소설에 나오는 남자아이 "모모"이다. 왜냐하면 김만준의 노래에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을 꿈꾸는" 이란 가사가 나오는데, 이는 바로 <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를 키워주는 할머니가 늘 말하는 프랑스의 휴양지 "니스"에 대한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기 앞의 생>과 노래 <모모>를 연관시키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엔데의 <모모>와 노래 <모모>를 연관시키는 사람이 더 많다. (사실 나도 <자기 앞의 생>을 읽기 전까지는 그렇게 알고 있었으니까.) 에밀 아자르에겐 불행한 일이겠지만, 어쩌면 그만큼 <모모>라는 책이 우리나라에서 그토록 오랜 세월 지속적인 인기를, 그러니까 무슨 유행가에 나와도 무리가 아니라 생각할 만큼 보편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모모>라는 노래를 생각하면 또 하나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그 노래를 부른 김만준이다. 이 노래가 아마 TBC (지금은 당근 없어진) 방송에서 하는 무슨 대학가요제인가 하는 데서 상을 탄 것으로 알고 있다. 한참 뜸하더니 1980년대 중반에 <무명 가수의 하루>라는 상당히 풍자적인 노래로 다시 등장했다가, 이후 소식을 알 수 없다. 이상하게도 내겐 가끔 "오늘도 하루가 또 시작 됐어. 오늘은 드디어 무대에 서는 날이야"라는 이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무대에 설 기회도 거의 없는 가난한 무명 가수의 설움을 토로한 노래인데도, 어쩐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진 않은 까닭인가보다. 김만준씨, 머지않아 정말 <가요무대>나 그런 데서나 만날 수 있을지?

3.

<모모>라는 책을 떠올리면 또 하나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바로 1970년대 말에 이 책을 처음 번역, 소개한 번역가 차경아 씨다. (경기대 독문과 교수로 계신다고 알고 있음.) 어디선가 읽었는지,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 <모모>가 우리나라에 소개되기까지의 과정도 매우 드라마틱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책을 처음 펴낸 "청람"이란 출판사는 본래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였다. 지금도 간혹 헌책방에서 볼 수 있는 <프랑크푸르트 학파> 등의 책을 비롯해서 상당히 "딱딱한" 책만 펴내던 곳이었고, 전 국회의원이었던 손세일 씨가 편저한 <한국논쟁사>라는 다섯 권짜리 흥미로운 앤솔로지를 펴내기도 했던 곳이다. 당시 이곳 사장님이 해직기자 출신이었다고 알고 있는데, 사회과학 출판만 가지고는 영 살림이 어려워 전전긍긍하던 중에, 당시 독일 유학중이던 차경아씨의 추천으로 펴낸 <모모>가 그야말로 요즘 말마따나 "대박"을 치면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차경아씨는 <짐 크노프>, <뮈렌 왕자>, <끝없는 이야기> 등 엔데의 대표작들을 연달아 번역했고, 그 와중에서 저자 엔데와의 친분으로 매번 한국어판 서문과 출판 허가 등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차경아씨는 지금도 활발히 번역 활동을 하고 있고, 내겐 바하만의 <삼십세>와 <만하탄의 선신>, 그리고 <말리나>의 번역자로도 기억되고 있지만, 그래도 역시 엔데, 특히 <모모>와 <끝없는 이야기>의 번역자로도 반가운 이름이다. 청람출판사는 여전히 건재한 모양이고(이름은 바뀌었지만) 지금도 <모모>의 차경아 번역본을 계속 펴내고 있다. 물론 독일 출판사와 정식 계약한 곳은 "비룡소" 쪽이지만 말이다. 국내 저작권법의 이중적인 규정으로 인해 이런 중복 출판이 가능한 것인데, 솔직히 별로 아름다운 광경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살았더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어쩌면 둘 사이의 중재를 도왔을지도 모르겠지만, 글쎄, 역시 모르겠다.

4.

<삼순이>에서 <모모>가 등장하기 직전, 나로선 다시 한 번 이 책의 존재를 떠올리게 된 일이 있었다. 다름아닌 아동문학 평론가인 고 이오덕 선생의 저서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아리랑나라) 개정판 --- 이 책은 출판사의 고집 때문에 일반 판매는 하지 않고 인터넷과 일부 헌책방에서만 판다고 하니, 필요한 분은 이오덕학교 사이트(http://25duk.cyworld.com)에 가보시라 --- 을 읽다가 거기 이오덕 선생이 엔데의 <모모>(물론 70년대의 차경아 역본)에 대해 평론을 쓴 것이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이오덕 선생은 이 책이 상당히 잘 쓴 작품이긴 하지만, 지나친 물질주의와 비인간화의 원인을 단순히 어떤 "비현실적인" 대상으로 국한시킨 점이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독일의 경우는 어떨지 몰라도, 우리의 현실에는 분명 그런 인간 소외 현상을 가속화시키는 어떤 "원인"이 있으니 (물론 그게 뭔지는 선생 자신도 딱 짚어주진 않았지만) 따라서 차라리 그 원인을 분명히 직시하고 개선해 나가도록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더 낫지 않았겠느냐는 주장이었다. 과연 그럴까? 그러면서 선생은 이 책이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가 된 까닭 중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의 철학이라면 무조건 받아들이려는 성향도 한몫을 하고 있지 않겠느냐고 지적하고 있었다. 과연 그럴까? 솔직히 이 대목을 읽을 때는 선생의 관점이 너무 편협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물론 동화가 항상 아름답고 환상적이고 즐거운 내용만 담아서는 곤란하다는 선생의 생각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엔데가 부러 현실을 외면하라고 독자를 충동질하는 것은 아니므로, 동화는 어디까지나 동화로 읽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반발심이 생겼다. .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한 번 선생의 글을 읽어보니, 그 당시 (1984년) 의 상황으로선 아주 이해 못할 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선생도 물질문명의 폐해에 대한 엔데의 지적이 예리하고 흥미롭다는 사실만큼은 분명 인정하고 있었다. 다만 그런 폐해의 원인이 된 사회의 모순 문제를 좀 더 직설적으로 풀어내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뜻이었으리라.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엔데건 이오덕이건, 어느 작가에게나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무척이나 잘 쓴 "우화"로 본다. 그러니까 시간의 사용, 혹은 인생을 향한 태도에 대한 훌륭한 "은유"로 말이다. 여기서 회색인간, 혹은 시간절약주식회사의 악당들은 어떤 "사회모순"이거나 "물질주의"일수도 있고, 혹은 우리의 참된 인간성을 위협하는 그 어떤 해악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에서도 참된 인간성을, 그리고 마음의 여유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이 우화의 "메시지"가 아닐까? 직설법도 때로는 유용하지만, 항상 먹혀드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은유법도 오래, 또 천천히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이 거의 30년 가까이 스테디셀러였던 까닭은 --- <삼순이>가 나오기 전부터, 아니 <삼순이> 극본작가조차도 읽었을 정도로 --- 단순한 유행의 차원보다는 좀 더 의미심장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최소한 이 책을 읽는 데 들인 그 "시간"이야말로 결코 "낭비"되거나 "저축"될 수 없는 것이며, 다만 지금 이 순간 "즐기고" 열심히 "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말이다.

5.

결국 나야 그 <삼순이>인지 하는 드라마를 보진 않았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니, 거기서 주인공이 이 책을 고르는 장면이야말로 극의 전개에 있어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그리고 의미심장한 장면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엔데의 책을 "읽은" 독자 겸 시청자들에게만 국한된 또 하나의 "숨은 재미"였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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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서태후
펄 벅 지음, 이종길 옮김 / 길산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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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릴때 언니가 충동구매한 세계명작선 소설책에 '대지'란 책이 있었다. 이 소설은 1931년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주었고 그녀가 펄벅재단을 설립해서 세상의 많은 어린이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낼 수 있는 밑천이 되어주었다. 그때 당시 상금이 약 70억원이었다는군.. 허거덕... 이 작가..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을 산 여자다.
알고보니 그녀의 첫번째 딸은 극도의 정신박약아 였다더군.. 역시 인생의 굴곡은 인간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기도 한가보다. 이책은 그녀의 대표작 측에도 들지 못한거 같다. 그 어디에도 이책의 이름은 소개가 되어 있지 않더군.. 하지만 딱딱한 역사에 그녀만의 여성성으로 숨결을 불어넣어 읽어볼만한 작품이었다. 비록 지루한 역사라 할 지라도 역사 속 인물에게는 현실이고 삶이었을 그것에 작가의 상상력으로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어쩌면 진짜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착각마저도 들 정도로... ^^;;

난 책을 읽기 전에 늘 머릿말이나 표지에 있는 짧은 평이나 그 책의 선전문구,, 심지어는 책속의 문구-읽다보면 당연히 나올-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읽는 평이다. 긴 글을 읽기 전 책에 대한 내 흥미를 일정량 유지하기 위한 나만의 포섭작업인데.. 이는 혹시라도 읽다가 재미가 덜해질 무렵, 그 효과가 발휘된다. 슬그머니 삐져나오기 시작하는 호기심은 결국에는 어찌어찌 되더라는 결말을 확인하고픈 강한 욕구를 불러일으켜주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습관은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인데.. 난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도 꼭 이런 일련의 사전준비를 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영화시사회 리뷰 등을  확인하고 그들이 내린 평점(☆)이 어떤지 체크해보는 것이다. 나름대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에 때로는 영화를 다보기도 전에 대강의 감상평이 떠오르기도 한다.

'연인 서태후'
이 책은 언니의 적극적인 권유로 읽었다. 물론 언니는 나의 사전작업이 무색할만큼 이 책에 대한 갖은 평을 늘어놓았고,, 때문에 읽어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어버렸다. 그녀에 대한 역사의 평은 중국의 근대화를 50년 늦춘 희대의 악녀라는 쪽이 지배적이었다. 중국의 역사를 아는 것도, 그렇다고 국사를 자세히 파악하고 있지도 못한 나였지만 '펄 벅'은 역시 훌륭한 작가였기에 역사를 바탕으로 서태후(예흐나라)가 고민하고 느꼈을 감정을 충분히 묘사했다. 이야기의 흐름은 경쾌했고 흥미진진하다는 느낌이었다. 어떤이는 감상평에 옛날 조선의 흥선대원군이라는 폭군과 비슷하다 했는데.. 역시 역사에 문외한 나는 읽는내내 예전 TV드라마에서 본 '여인천하'를 떠올렸다. 여인천하가 혹시 서태후의 전적을 조금은 표절하지 않았을까 싶었을 정도였으니... 어찌되었든 그 드라마도 한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논픽션(nonfiction)이고 이 이야기 또한 그러하니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충분한 즐거움을 선사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자. 책 한권이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라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는데 읽다보니 좀 아쉬운 감마저 들정도로 재미있는 스토리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자 중국 역사에 한 획을-그것도 굵고 깊게- 그은 인물은 바로 '여자'였다. 비록 역사는 그녀를 악녀라 말하고 사욕과 임기응변으로 그리고 말년에는 아름다운 성에서 세상물정도 모르고 아시아 제일의 거대한 제국을 망쳐버린 어눌하기 짝이 없는 여제로 평했지만... 같은 여자라는 동지애라도 발동이 된걸까? 아니면 이런 내 마음과 같았을지도 모를 작가의 의도에 영향을 받기라도 한걸까? 그녀의 행동은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1860년 혼란한 시기에 동양에 그런 야욕이라도 품었던 여자가 있었다는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위치를 얻어내고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물론 그녀도 인간이었기에 오르면 오를수록 더 높이 오르려 했고, 급기야는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저질러버리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지만.. 보수적으로 외세를 배척하다가 하루 아침에 세계화를 부르짖던 그녀의 행동에는 놀람을 금하기 어려웠다. 이런 점에서는 서태후가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고 난 후 안 사실인데 이는 모두 공친왕의 끈기있는 충언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역사는 평하고 있었다. 허나 이또한 후세의 누군가가 내린 평이었기에 그냥 그런 정도로만 인식하고 싶다. 나는 항상의 나의 나약함으로 인해 꿈틀거리는 작은 소망마저도 접어버릴 때가 있는데 그런 혼란한 시기에 그것도 한 나라의, 대국(넓은 영토의 청나라)의 여제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이다.
그녀는 사치스럽고 이기적이긴 하였으나 병약한 함풍제의 후궁에서 병약한 동치제의 어머니, 여러모로 의지 박약했던 광서제의 양어머니임을 구실로 그녀가 집권했던 48년의 역사는 참으로 치열했다.
정말 대단한 여자다.
물론 내가 바라는 궁극적인 여성상은 이런게 아니지만 그렇게 세상을 쥐고 흔들던 여자가 있었다는것 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통쾌한 스토리였다고 평하고 싶다. 한나라의 역사를 바탕으로 쓰여진 글에 대한 소감을 한낮 '재미'나 '흥미'라는 면으로만 평가해서 좀 그렇긴 한데 어차피 우리의 역사도 아니기에..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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