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전체를 콜로라도에서 보내기로 한 것은 데이 수집이 목적이었지만 나는 과학에 대해 가장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실험이라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세상이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해 가을에 나는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여름이 가져온 재난의 잔해에서 새롭고 더 나은 목표를 만들어냈다. 식물을 새로운 방법으로 연구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식물들을 밖에서부터가 아니라 안에서부터 연구하겠다고 결심했다. 나무들이 왜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 논리를 이해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내 논리를 당연한 듯 적용하는 것보다 연구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곳은 다른 게 아니었다. 바로 우리만이 열쇠를 갖고 있는우리의 첫 실험실이었다. 작고 누추하기 짝이 없는 곳일지는 모르지만 우리 것이었다. 나는 그 텅 빈 방을 우리가 언제나 계획하고 꿈꿔왔던 실험실과 비교하지 않고,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본 빌의 눈에 감탄했다. 과거의 꿈과 현재의 현실 사이에 커다란 격차가 있었지만 그는 우리의 새 삶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도 그 삶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보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또 실존적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작은 소녀였을 적부터 나는 진짜 과학자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런데 그 목적에 마침내 가까워졌는데 모든 것을 잃을 위험에 빠진 것이다. 나는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 데 바쳤다. 그러나 그다지 효율 적이지도 않은 밤샘 작업은 상황을 해결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않았다.
"모든 게 정말 고맙습니다. 저한테는 큰 의미가 있어요." 뭔가 더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싶었지만 더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덕분에 해고되기 전에 2년 이상은 더 버틸 수 있을 거 같아요." 내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아, 넌 잘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에드가 고개를 저으며웃었다. "그때까지 너무 지치지 않도록 조심해. 알았지?" 내 몇 년에 걸친 노력을 완곡하게 인정해준 그의 말 덕분에이별이 더 가슴 아팠고, 갑자기 목이 메어왔다. 주차장에서 우리, 두 과학자는 그의 삶의 도구들을 내게로, 그의 커리어를 내커리어로 이전하는 소박한 의식을 거행했다.
우리 모두 일하며 평생을 보내지만 끝까지 하는 일에 정말로통달하지도, 끝내지도 못한다는 사실은 좀 비극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대신 우리의 목표는 세차게 흐르는 강물로 그가 던진 돌을 내가 딛고 서서 몸을 굽혀 바닥에서 또 하나의 돌을 집어서 좀 더 멀리 던지고, 그 돌이 징검다리가 되어 신의 섭리에 의해 나와 인연이 있는 누군가가 내딛을 다음 발자국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우리의 비커와 온도계와 접지봉을 관리할 것이다. 내가 은퇴할 때 전부 다 쓰레기 취급 당하지는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나는 빌의 바로 앞에 앉아서 고개를 쳐들고 그를 바라봤다. 빌이 지금 하고 있는 일, 빌이라는 인간, 그리고 그 순간의 모든것을똑바로 목격하는 증인으로서 그를 바라봤다. 그곳, 세상의끝에서 그는 끝이 없는 대낮에 춤을 췄고, 나는 그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닌 지금의 그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그를 받아들이며 느껴진 그 힘은 나로 하여금 잠시나마, 그 힘을 내 안으로돌려 나 자신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도록 했다.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그 부분은 언젠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오늘은 이미 할 일이 있었다. 오늘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 눈 속에서 춤을추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이번 ‘상황이 좋지 않은 때‘는 너무 길어지고 있었다. 나는 캘리포니아에서 아버지를 애도하고 장례를 치른 것이 빌에게 어떤 경험이었는지 상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낮동안 상처 난 부위를 지탱해주던 부목을 잡아맨 끈이 석양과 함께녹아내리면서 절박한 슬픔이 밀려오고, 오로지 잠만이 그 슬픔의 고통을 무디게 할 수 있는 시간들. 다음 날 아침 또다시 비탄의 하루가 시작됐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무겁게 느껴지는 눈꺼풀, 입에 넣는 음식의 맛도 느껴지지 않는 애절한 슬픔.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떴을 때 자기도 함께 세상을 떠난 것 같은느낌이 든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리고 그런 상태를 고쳐줄 수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는 것, 아니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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