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르츠 바스켓 23 - 완결
타카야 나츠키 지음, 정은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후르츠 바스켓은 '호리에 유이'가 토오루 성우를 맡은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접했다. 너무 너무

착하고 밝은 토오루가 좋았다. 십이지 연회라는 독특한 소재도 좋았다. 부드럽고 따뜻한 op, ed

도 마음에 들어 애니메이션을 다 보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간혹 듣곤한다.

 

 만화책 6권 정도의 분량을 다루고, 애니메이션은 완결 난다. 자연스레, 다음 내용을 보고 싶어

만화책을 보기 시작했고.

중반부 까지는 토오루의 밝고 따뜻함, 십이지 캐릭터들과 얽힌 재미난 이야기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다. 후반부 들어서는 그림체가 '급격히'(안 좋은 쪽으로) 바뀌었으며, 순정 만화 특

유의 심리 분석(xx는 왜 상처 입었고, 그걸 누가 치유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에 빠져든 탓에

흥미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별 한 개 감점은 그 탓)

 

 이미 넷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결말이지만, 가슴에는 여운이 남는다. 오랜 기간 후르츠 바스켓과

함께 했기에. 쿄와 토오루.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서로 손을 맞잡고 있는 두 사람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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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 따끈 베이커리 26 - 완결
하시구치 타카시 지음, 이경주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처음 이 만화책을 접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까마득하다. 다만, 예쁜 그림체와 빵

이라는 특색 있는 소재 탓에 가장 좋아했던 만화 중 하나였다는 건만.

 

  빵타지아 대회에서부터 '리액션' 이라는 유치한 장난질이 비중이 커가고, 모나코 대회쯤에는

이미 요리만화라기 보다는 소년 만화라 변질되더니만... 어느새 일본빵 만들겠다는 포부는

사라지고, 빵으로 세계를 뒤덮을려하는 마왕과 싸우고, 지구를 환경 오염의 위기로 부터 구하

는 히어로가 된 아즈마....

 

  그림체는 일본만화 중에서도 수준급이었다. 빵이라는 소재는 참신했고, 요리만화의 백미인 대회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작가는 진지하지 못했다! 리액션이니 뭐니 유치한 장난질

에 치중하질 않나, 초등학생이 봐도 코웃음이 쳐지는 이야기를 만들어 대질 않나.  마지막 권에

서는 이제 화 낼 기운도 나지 않는다. 더 망가지기 전에 이쯤에서 그치는 게 나았으리라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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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 보이 11
세가미 아키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알라딘 추천 도서는 신뢰할 만 하다. 특히 만화 부분에서는, '추천도서'가 소위 '명작' 이라 할 만

한 만화책들을 두루 포함하고 있어 더욱 그랬다.

 

  꽤 구하기 힘들었던 것을 어찌 어찌  읽게 되었다. 그림체가 예쁜 것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누가

읽더라도 '그림체는 예쁜 만화'라는 평을 내릴 거다.

그러나 그것을 빼고는 결국 여타 하렘만화와 다를 게 없다. 어리버리한 남자 주인공 옆에 온갖

타입의 여자들이 주렁 주렁 달라붙고, 카케토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는. 그래도 카케토라와 유

키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변함 없다는 점에서 천생 연분과 매우 유사하게 느껴진다.

 

 이 책에 '추천' 을 붙인 것은 도서 선정을 맡은 사람의 개인적 선호 탓일까? 다른 추천도서와 비교

해 보면 이 책은 추천을 받을 만한 책이 아닌데.

이런 류의 하렘, 러브 코믹을 좋아한다면, 그저 가볍게 읽을 만한 만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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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최장집과 민주주의(진행중)

월요일 아침부터 인터뷰 압박이다.

 

"올해는 1987년 6월항쟁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12월엔 대통령선거도 치러진다. 지난 20년 동안의 변화 속에서,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지나면서 우리 사회의 변화와 민주개혁 세력의 집권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겨레>는 노무현 정부의 성과와 한계를 평가하고 어느 때보다 논란에 휩싸여 있는 민주개혁 세력의 갈 길을 살펴보기 위해, 민주화 운동의 원로로 꼽히는 세 분과 연쇄 인터뷰를 가졌다. 학계의 최장집 고려대 교수, 종교계의 함세웅 신부, 문화·예술계의 고은 시인과의 인터뷰를 차례로 싣는다."

인터뷰 / 박찬수 정치팀장

최장집(64) 고려대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4년간) 노무현 정부의 정책 내용과 방향이 민주화 세력의 기대에서 많이 벗어났다. 노무현 정부는 ‘민주 정부’로서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최 교수는 “내용도 없으면서 다시 모여 재집권을 위해 노력하자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정부가 실패하고 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교체되는 게 당연하다. 한나라당이라고 안 되고 하는 그런 것은 없다”고 여권의 정계개편론을 비판했다. 인터뷰는 지난 12일 오후 최 교수가 소장으로 있는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에서 이뤄졌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85639.html

 

-노무현 대통령은 개헌 제안하면서 그 명분으로 1987년 헌법체제 미비점의 보완·극복을 얘기하셨는데, 87년 헌법체제가 우리 사회 민주화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비판은 학계에서도 있어왔다. 87년 헌법체제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어떤 문제점이 있다고 보시나?

=‘87년 체제’라는 것은 학계에서도 얘기되는 말이다. 민주화 이후 체제라고 할 수도 있겠다. 87년 체제란 말은 사태를 단순화하기 위해 서술적인 개념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최근의 이 용어가 정치적으로 동원되면서 이데올로기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87년 체제’ 대 ‘민주헌정체제’라고 하는 대립적인 형태의 담론을 동원해 한국 민주주의의 모든 문제를 87년 체제 때문으로 돌리는 식이다. 이것은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일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위험한 효과를 낳고 있다고 본다. 87년 체제는 두 가지 요소의 결합을 그 특징으로 한다. 하나는 운동에 의해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주화는 혁명적 단절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존 체제의 연속선상에서 제도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두 요소가 일정하게 결합되어 운동과 제도의 힘의 균형이 이루어졌다. 다시 말해 운동이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동시에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국민들이 위임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기존 정치세력과 공존하는 민주주의 체제가 곧 87년 체제의 기본 성격이라 할 수 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여기에 돌리면서 뭔가 획기적으로 정치의 틀을 확 바꾸면 된다는 주장이 과도해지고 정치적 슬로건이 되면 근본주의의 문제를 부를 수 있다. 민주주의를 위한 뭔가 이상적 헌법이나 제도가 있다는 발상도 위험하다. 모든 것이 87년 체제 때문이고 5년단임제 때문이고, 지역주의 때문이고 그래서 대연정하고 개헌해야 한다는 접근은 기본적으로 정치에 대한 환원주의적 태도이다.

-87년 체제가 있고, 그 이후에 드러난 문제점이 있는데 그 문제점들을 87년 체제의 책임을 돌린다는 말씀 같다. 설령 그렇더라도 87년 체제 이후 20년 지났고, 그 20년 동안 우리 사회가 바뀌면서 다른 이유에서도 문제점도 있고 담아낼 게 있다. 그런 점에서 헌법을 바꿀 필요가 있지 않을까. 노 대통령 얘기처럼 5년 단임제가 87년 체제 때문이라는 게 아니라, 정치문화 등 여러 잘못된 문화 때문에 단임제 폐해 커졌는데, 그걸 고치려면 비록 책임을 돌릴 수 없어도 고칠 필요가 있다는 얘기는 할 수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여러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걸 보는데, 87년 체제라는 것은 하나의 정치, 민주주의의 틀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당시 만들어졌던 균형점을 표상하는 틀이고, 제도화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틀 때문에 정치가 발전하지 못했거나, 민주주의 발전이 제약 당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 내용을 뭐라 하든 87년 체제는 지난 20년 동안 한국 민주주의를 정초시킨 제도적 틀이다. 그 위에서 좋은 정치를 통해 한국 사회의 갈등을 해결해 가고 필요한 개혁을 했어야 한다고 본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민주화는 혁명이 아니기 때문에 합의했던 제도와 틀 안에서 개혁과 발전을 해 가야 하는 운명을 갖는다. 문제는 현실에서 존재하는 실제적 갈등을 외면하거나 적극적으로 해결을 시도하지 않고, 갑자기 새로운 이슈나 갈등으로 치환하려고 하는 데서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권위주의로부터 축적된 문제가 민주화로 폭발했다. 따라서 권위주의 하에서 억압된 여러 갈등, 사회경제적 문제, 남북관계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민주화이후 체제에 부과되었다. 그런데 이런 과제를 소홀히 한 채 모든 문제를 지역주의 때문이다 라고 하면서 기존의 보다 중요한 갈등을 치환해버린 것이다. 나는 지역주의를 한국 사회의 중심적인 갈등, 일차적인 과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87년 선거에서 민주 대 독재의 갈등을 치환한 것이 지역주의였듯이 지금도 현실의 중요한 갈등을 지역주의 문제로 치환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정치란 어떤 갈등을 선택하고, 어떤 갈등을 배제하느냐 하는 것을 본질로 하는 파워게임이다. 현실의 중심적 갈등을 배제하고 새로운 갈등으로 대체하려 할 때 정치가 갖는 파괴적인 양상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기존의 중요 균열, 구조, 표현의 자유는 억압되고 기회의 구조는 축소된다. 민주주의는 정치의 방법을 통해 발전할 수 있는 데, 정치를 부정적으로 보면서 정치 밖에서 외재적 제도를 부과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위험하다. 헌법이 잘못됐다, 단임제 때문이다 하는 식으로 정치 밖의 제도의 힘을 통해 안 풀리는 정치를 해결하려고 하면 결국 사태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만든다. 대연정 시도도 같은 성격의 문제를 가졌다. 갑자기 반지역주의를 들고 나오면서 불평등과 양극화 등 우리 현실의 실제 갈등을 이데올로기적 허상으로 대체하려 하고 선거를 통해 성립한 정당정치의 구조를 일거에 대통합하자는 태도의 연장선에 지금의 개헌론이 있다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은 한국 정치의 중심 과제가 지역주의 해결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노 대통령은 왜 이렇게 지역주의에 집착하는지, 한국사회의 제일 큰 문제가 지역주의라는 노 대통령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노 대통령은 자신이 호남과 경상도를 기반으로 한 정치세력들의 지역주의 혹은 지역주의적 경쟁 틀을 넘어서 지역주의 논리를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통령의 지위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따라서 지역주의 문제를 제기할 때 자신은 현재의 정치구조 안에서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부터가 한국의 지역주의 문제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악의 축이 아니며 점진적으로 개선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모든 것은 지역주의의 문제라거나 난 지역주의가 아니라거나 하는 식의 접근은 자기합리화라고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노 대통령이 대통령에게 주어진 헌법적 권한, 개헌 발의권을 행사하겠다고 했다. 정략적이지 않다는 점 보여주기 위해 임기만 고치는 원포인트 개헌하겠다고 했다. 국민들로서는 갑작스럽고 깜짝 놀랄 만한 일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대통령이 개헌 이슈를 지금 이 시점에서 제기한 것 자체가 매우 파괴적인 정치행위이며 해서는 안 될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방법 자체가 무슨 군사작전 하듯 하는 것도 문제고, 전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 나를 따를 것이냐 아니냐 식의 극단적 양자택일로 몰고 가는 것도 문제다. 대통령이 임기 1년 남겨둔 상황에서 제기해선 안 될 문제를 제기했다고 생각한다. 현임 대통령의 임기 말 제일 중요한 역할의 하나는 여러 분야에서의 정책추진을 순조롭게 마무리해서 성과를 남기는 일이며, 다른 하나 중요한 것은 대선을 관리하면서 여야 누가 집권하든 권력 이양을 순조롭게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임기 말에 정치의 게임룰 변경을 전격적으로 제기하고 공세적으로 나올 때 사람들은 놀라게 된다. 야당의 보수파들은 현임 대통령의 개헌추진을 일단 경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가령 한나라당이 집권해 임기 말이 되었고 민주파의 집권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 가정할 때, 갑자기 한나라당 대통령이 나서서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하면 야당이나 민주파 인사들이 이를 어떻게 생각하겠나. 경계하고, 정권 연장을 위한 숨겨진 의도가 있는 것 아닌지 의심하고 두려움 갖게 될 것이다. 이슈 자체가 제기되는 시점, 방법이 대단히 좋지 않다.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잘한 일이냐 못한 일이냐고 하는 것을 따질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물론 4년 연임제나 총선 대선의 주기를 일치시키자는 개헌 내용 자체도 문제가 있다.

-노무현 정부의 임기 마지막 해다. 지난 4년 동안 민주정부로서 해온 역할, 어떤 성과를 보였는지, 어떤 문제점을 가졌는지 총체적 평가를 부탁드린다.

=(길게 포즈, 아...) 글쎄요. 한마디로 뭐라 얘기하긴 어렵다. 대통령 선거 당시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의 여망이랄까 기대와 이 정부가 실제 수행한 정책의 내용과 성격 사이에 너무나 큰 괴리가 있다는 사실, 이것이 문제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노 대통령이 말하는 레토릭과 정책의 결과 사이의 격차가 큰 것이 문제였다. 가장 중요한 건 사회경제적 정책이라 생각한다. 노정부의 경제정책이 어떤 보수정권이 들어섰을 때 내놓을 수 있는 정책과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다.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 가히 혁명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누구보다도 강하게, 그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한미FTA(에프티에이) 등이 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뤄지고 있다. 노무현정부가 개혁적 또는 진보적이다 라고 평가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무엇보다도 노무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는 것의 하나는 노 대통령이 정치를 이해하는 방법과 그것이 가져온 매우 부정적 효과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사회의 광범위한 갈등이나 이해관계가 정당에 의해 대표되고 의회가 민의의 대표기구로서 역할을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런데 당정분리를 내걸고 당과 국회의 역할을 가급적 우회하거나 회피하려 하고, 청와대 중심의 정책 산출, 전문가 중심의 정책 산출, 관료 중심의 정책 산출에 너무 크게 의존했다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의 이러한 정치관이 대연정이나 지금과 같은 헌법 개정 추진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얘기하면서 그 논거를 제시하는 데 있어서 민주주의적 가치와 배치되는 요소를 많이 갖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개헌이 필요하다는 논리의 근본에는 대통령 권력 혹은 통치의 효율성과 안정성이 많이 거론된다. 어떤 정치체제든 통치의 효율성과 안정성이 필요하므로 그 자체는 나쁠 게 없다. 문제는 그러면서 민주주의의 원리와 가치를 부정적으로 정의한다는 거다. 선거를 낭비로 보는 태도는 매우 위험하다. 현재 대통령권력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 요구로부터 유리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정과 비생산적 혼란이 결과적으로 심화된 것이다. 원인이 이러함에도 선거를 통한 견제를 부정적인 것으로 본다거나 통치의 효율성을 무엇보다 우선시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의 과잉 때문에 문제이고 효율성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부족해서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나는 문제를 그 역으로 본다. 한국 정치는 민주주의의 부족과 신자유주의의 과잉 때문에 문제라고 본다. 한국에서 선거가 지나치게 많다고 하는 것은 명백히 틀린 사실이다. 한국은 선거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 가장 적은 나라의 하나이다. 미국을 예로 들어 보자. 미국은 선거가 우리보다 많고, 선거를 통해 결정하는 내용도 우리보다 훨씬 많다. 지방정부의 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검찰총장, 경찰서장도 선거한다. 작은 정책 하나도 투표하는 주가 많고, 수많은 형태의 주민투표가 있다. 독일도 16개 연방이 거의 매달 어디선가 선거가 있다고 할 정도로 선거가 잦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선거 많이 해서 문제라고 한다. 현재 상태에서 선거가 많다고 하고 그래서 선거를 줄이자고 한다면 사실 민주주의를 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통치의 효율성만을 놓고 보면 권위주의가 민주주의보다 더 효율적이다. 지금 개헌론을 옹호하는 많은 주장들에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부정하거나 여기에 도전하는 주장이 많다.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은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선거와 같은 참여를 통해 뭔가 이뤄질 때 시민은 자부심을 갖고, 민주주의 체제에 대해 공화주의적인 충성심을 느끼게 된다. 선거에서 승리하면 환호하고 깃발 들고 나가고 뭔가 집합적 열망을 표출하려 하는 것이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다. 개헌이 실제로는 안 된다고 할지라도 현재와 같은 개헌론이 낳고 있는 문제는 부정적인 유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의 관념이 약해진다는 것은 우리 현실에서 우려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은 1년 동안 노무현 정부는 뭘 해야 한다고 보시는지?

=두 가지 일에 집중했으면 한다. 하나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기존의 정책과 제도를 잘 운영하고 관리해서 권력 이양을 원만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대통령의 역할이라고 본다. 그 다음에는 중요한 정책 사안들을 중심으로 리더십과 행정력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하고 서민생활이 개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부동산 정책 같은 것인가?

=부동산 정책도 중요하고, 교육정책도 중요하다. 실생활에 가장 밀접한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를 푸는데 전력을 해야 한다. 덧붙일 것은 리더십의 윤리적 기초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실천해줬으면 좋겠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현직 대통령에 대해서는 가혹하지만 임기를 끝낸 대통령에 대해선 관대하다. 많이는 아니더라도 대통령으로서 좋은 정책, 리더십을 보여준 사안이 있으면 꼭 평가해준다. 레임덕은 어느 권력이든 존재하는 것이다. 실현될 수 없는 이슈를 난데없이 제기하거나 현실을 인정하지 않거나, 뭔가 기본 구조를 바꿔보려는 시도는 파괴적인 효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이는 한 사회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의 윤리적 기반을 송두리째 해치기 때문에 피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도 임기 말에는 많은 비판자들로부터 최악의 대통령으로 공격받았지만 퇴임 뒤에는 제대로 한 업적에 대해서만큼은 있는 대로 평가되고 있지 않은가.

노 대통령은 현실을 거역해서 지금의 어려움에 처했다. 재보궐선거와 지난 지방선거의 결과는 민의의 평결이 어떤 내용을 갖는가를 보여주었다. 그러한 민의의 평결을 대통령은 존중하고 따랐어야 했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정치를 승부를 거는 게임으로 만드는 것은 좋지 않다. 그것은 대통령을 따를 것이냐 말 것이냐,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거냐 식의 극단적 선택을 국민에게 윽박지르는 거다. 이렇게 하면 합리적 비판이나 건설적 대안은 형성되기 어렵다. 지금 또다시 민주파들에게 비합리적 선택이 강요되고 있다. 개헌을 지지할 것이냐, 아니면 한나라당 좋은 일 하게 그냥 둬야 하느냐, 한나라당으로 권력이 넘어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의 동원에 노출되어 있고 혹시 개헌론으로 반한나라당 연합을 만들 수는 있지 않을까 이런 몽상적 정향에 흔들리고 있다. 정치에 대한 불신은 커지고 뭔가 합리적 방향에서 힘을 결집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 4년간 노무현 정부가 민주정부로서 실패했다고 보나.

=난 실패했다고 본다.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너무 단정적일 수 있지만 적어도 지지자의 신뢰 상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등 객관적 정책수행의 지표는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다. 민주정부로서는 실패했다고 해도 남은 임기동안 우리 사회의 지도자로서 윤리적 권위를 회복할 기회까지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지난해 9월 <경향신문> 인터뷰 때 민주화 세력은 노무현과 결별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매섭게 비판하신 이유가 뭔가?

=노무현 정부는 우리 사회, 전체적인 사회 세력과의 관계라는 면에서 볼 때 민주개혁을 바랐던 사람의 지지를 받고 수립됐다. 그러다보니 노무현 정부는 민주개혁 세력의 대표가 되었고 실제 정책 내용과 수행결과는 민주개혁 세력에게도 곧바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선출된 정부는 자기를 지지해준 세력에 일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이다. 대표와 책임의 고리가 유지될 때는 그 관계가 유지되지만 그렇지 않고 집권 이후 정책 내용과 방향이 지지 세력의 기대로부터 벗어날 때 그 고리는 해체될 수밖에 없다.

나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의 내용과 방향이 민주화 세력의 기대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민주정부의 권위를 스스로 약화시키는 권력의 운영 스타일도 문제이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존중하고 실천하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386 세력을 부당하게 매도해서는 안 되겠지만, 객관적으로 권력에 참여한 운동세력과 여기에 참여하지 않은 민주화운동 세력 간의 괴리는 굉장히 커졌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권력에 참여한 사람과 세력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노무현정부가 민주화운동세력 전부를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모든 민주화 세력의 책임으로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민주개혁 세력은 독자적으로 대안을 만들 수 있어야 하고 그 가능성을 확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정부와 분명한 차이를 강조하고 싶었다.

-올 12월 대선에서 민주개혁 세력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 딜레마인데, 일부 시민사회 운동에선 어쨌든 보수 세력에 정권 넘길 수 없다며 정치세력화의 움직임이 있다.

=지금 현재 노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여당과 한나라당 간의 구분이, 이제는 분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실제 정책의 내용이라는 측면에서 노무현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실제 정책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는 전통과 이상에서 너무 멀어졌다. 투표의 결과에 있어서 서민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경향은 더 강해진 느낌이다. 그렇다고 민주세력이냐, 반민주 세력이냐 하는 식의 낡은 구분에 구속될 단계도 지났다. 반민주세력 집권 가능성을 운운하는 식으로 두려움을 동원해 비판을 가로막는 것은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것이다.

나는 민주화 세력도 노무현 정부를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나라당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보고, 그래야 한다고 본다. 이런 것이 전제되어야 민주적일 수 있고 합리적일 수 있다고 본다. 권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 열린우리당이든 새로 만드는 정당이든 대안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비판해야 하는 것이 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비판하면 한나라당 도움 된다는 식이면 곤란하다. 아무 것도 없는데 한나라당 때문에 지지하라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최열 대표, 정대화 교수 등이 모여 한나라당과 같은 보수세력에 정권이 넘어가는 걸 막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다. 이런 움직임과 명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썩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 이슈 들고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의 문제를 과도하게 단순화하고 둘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좋지 않다. 민주주의는 그런 것이라기보다 사회적으로 제기된 이슈와 의제에 대해 정치세력과 지도자들이 그 대안을 조직하는 데 있다. 몇몇 명사들이 모여서 사회의 이익이나 갈등을 초월해 문제를 던지는 방식에 대해 난 회의적이다. 그런 방법으로 좋은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기대는 별로 안 생긴다.

-어쨌든 보수 세력한테 정권을 넘겨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시민사회 단체들의 생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민주세력이) 잘못했으니 (정권이) 넘어갈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있고, 어떤 수를 내서든 (여권이) 재집권해야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 있다. 열린우리당 정계개편 논의의 시발점도 그런 것이다.

=그런 접근은 나는 맞지 않다고 본다. 민주파 또는 개혁파를 자임하고, 스스로 그렇게 규정한다고 해서 이 그룹들이 언제나 개혁적이고 민주적인 세력들을 대표한다고 보지 않는다. 기존의 권위주의 체제는 우리가 개혁해야 할 과제와 그 내용을 이미 분명하게 남겨 놓았다. 분명한 개혁 과제와 이슈가 있는데 그간 이에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고 개혁의 방향과 내용을 달리해왔으면서, 무작정 보수파 집권만은 막자고 한다면 안 된다. 내용도 없으면서 정치적, 이념적 라인을 따라 다시 모여 재집권을 위해 노력하자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어떤 정당이든 다수가 지지하면 교체해서 다수가 더 많이 지지하고 다수에 더 순응하는 권력을 만드는 것을 그 원리로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에 충실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민주파로 자임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정책비전이 뭔지, 대안이 뭔지, 한국사회가 어떤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말을 하지 않았고, 구체적으로 그걸 실천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보수파 집권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이 꼭 재집권을 해야 한다고 한다. 재집권에 실패하면 역사의 죄를 짓는 것이라 하는데 그때의 역사는 뭐고 그때의 민주주의는 뭔지 모르겠다,

-보수 세력과 보수 언론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하면서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통해 한국 사회가 오히려 후퇴했다고 한다.

=선거를 통해 집권정부가 실패했다고 다수가 평결하면 그것이 곧 민중의 평결이 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보수세력과 보수언론의 표현이라 해서 모든 것은 다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정부가 실패하고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교체되는 것이 당연하다. 한나라당이라서 안 되고 하는 그런 것은 없다.

-그 10년을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후퇴로 볼 것이냐, 여기엔 민주개혁 세력이 아무 것도 한 게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거니까.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사회가 진보한 측면도 있지 않나.

=총체적으로 다 실패했다거나 과거로 후퇴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꼭 했어야 한 의제에서 실패했다거나, 할 수 있었는데 못했다면 비판적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가장 중시 여기는 것은 한 사회의 시민적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의제, 즉 사회경제적인 분야에서 나빠졌다는 사실이다. 지금처럼 불평등해지고 서민이 빈곤해져서는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없다. 또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세력에 정권이 넘어간다고 해서 그것이 곧 민주주의의 퇴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후퇴 여부는 누가 집권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체제로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잘 작동하느냐는 기준에서 봐야 한다. 개혁파가 이번 선거에서 패배해 야당이 된다 해도 그 후 실력을 쌓고 다시 경쟁해서 승리하고 전보다 낳은 정책수행력을 보인다면 민주주의는 제 기능을 하는 것이다. 개혁세력의 패배가 장기적으로는 자신들의 정당을 더 강하게 만들고, 지지기반을 확대하려는 노력의 계기가 되고 좋은 정책 대안을 심화하는 기회가 안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청와대에선 ‘진정성’이란 단어를 많이 쓴다. 노 대통령은 선의로 하고 순수한데 진정성이 국민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선의를 국민들이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한나라당은 모든 걸 정치적 계략에서 내놓는다고 본다. 노 대통령 집권 4년 동안 국민과 소통에 실패한 것인가, 아니면 노 대통령이 정치적인 계산을 해서 행동한 것으로 보나.

=진정성이란 말 자체에 의미가 없다는 건 아니다. 자연인으로서 진정성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 가치라고 본다. 그러나 정치일반에 있어 진정성이냐, 아니냐는 기준으로 문제를 보는 것은 정치의 본질을 오히려 못 보게 한다. 바꿔 얘기하면 진정성을 갖느냐 갖지 않느냐가 사태를 이해하는 기준이 아니라는 말이다. 모든 정치인들이 다 진정성이 있다고도, 또 다 없다고도 봐도 정치를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는 진정성 여부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결과로 평가되는 것이다. 이번 개헌 이슈를 제기하면서도 대통령의 진정성을 자주 인용하고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논리가 많이 동원되곤 하는데, 그건 의미 없는 얘기라고 본다. 일단은 정치 행위로 이해되어야 하고 그 핵심은 정치적 영향력과 권력의 분배효과를 다투는 데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 설령 진정성이 없다 해도 사회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다면 정치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것이다. 중요한 건 정치행위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제도화돼야 하고, 서로의 이해관계와 전략이 어느 정도는 투명하게 표출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진정성이 없는 정치행위의 부정적 효과가 정치체제 내적 논리에 의해 제어되도록 하는 데 있다. 진정성을 정치행위의 이유로 제시하는 순간 그 진정성은 레토릭이자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이 정치세계의 법칙과 같은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실패가 조·중·동의 공격 때문에, 노 대통령이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보수세력으로부터 공격받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한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런 논법은 실패의 알리바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 들어와 뭐가 잘 안 되는 원인을 조·중·동이나 보수세력의 저항, 이런 식으로 얘기하곤 한다. 그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국가권력은 굉장히 강하다는 사실 또한 주목해야 한다. 이번에 개헌론을 제기하면서 현행 헌법 하에서는 대통령이 뭘 할 수 없게 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데 사실이 아니다. 한국의 헌법은 강한 대통령 권력을 제도화한 대표적인 유형이다. 현행 헌법 하에서 한국의 대통령 권한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미국보다도 강하다.

미국의 대통령은 예산 수립이나 집행을 맘대로 할 수 없다. 예산에 대한 권한은 우선적으로 하원에 있다. 인사에 대한 의회의 비준권도 우리보다 더 강하다. 사법부의 견제도 받아야 한다. 미국 헌법은 국가의 권력을 쪼개고 분할해서 견제와 균형의 틀 안에서 움직이게 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한국은 대통령이 강하지 의회가 강하지 않다. 한국 대통령의 경우 정치력만 잘 발휘하면 그가 제도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권력의 크기는 매우 크다. 4년 연임제로 대통령 권력을 8년으로 연장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결과를 가질 가능성도 있다. 한국의 국가와 대통령은 제도적으로나 구조적으로 매우 강한데, 이걸 더 강화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 문제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보수 언론과 보수세력의 영향력이 커진 것은 민주정부와 대통령의 정치적 실천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반영한다. 보수언론의 논리가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게 설득되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정부와 대통령을 비판하는 건 이제 보수언론만이 아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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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하이데거와 함께 철학을!

하이데거의 <철학입문>(까치글방, 2006)이 출간됐다. 출간일자는 작년말이지만 지난주에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알라딘의 '새로 나온 책'을 둘러보다가 발견하게 됐다. 지난주에 유난히 읽을 만한 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 탓에(홉스봄의 자서전 <미완의 시대>나 다니엘 벨의 <탈산업사회의 도래> 등) 미처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는데, "하이데거가 1928~29년 겨울 학기에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강의한 내용을 수록한 강의록"으로서 지난 1996년 하이데거의 전집 제27권으로 출간되었다는 이 책은 충분히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하다(아직 영역본은 나오지 않은 듯하다). '하이데거의 모든 책'이기도 하지만, 게다가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철학 입문' 아닌가?

하이데거  

그런 '입문'이란 단어를 제목에 달고 있는 책으로 나는 <형이상학 입문>(문예출판사, 1994) 정도를 알고 있을 뿐이다. 우연이지만, 내가 하이데거에 매혹당하게끔 한 책이 바로 <형이상학 입문>이었다. 그러니 <철학 입문> 또한 철학 입문이면서 동시에 하이데거 입문으로의 역할을 덩달아 해줄 거란 기대를 갖는 건 억지스럽지 않다. 1928-9년이면 주저인 <존재와 시간>을 발표한 직후이고 갓 마흔이 된 '젊은' 거장의 염력이 거침없을 때이다. 해서, 이 겨울에 딱 3일 정도 바람이라도 쐬러 가면서 들고 가고픈 책이다.

하이데거와 전혀 '안면'이 없는 독자라면 <30분에 읽는 하이데거>에서부터 역자이기도 한 이기상 교수의 <하이데거 철학에의 안내>(서광사, 1993)나 역시나 하이데거 전공자인 박찬국 교수의 <들길의 철학자, 하이데거>(동녘, 2004)를 미리 혹은 같이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내가 감동적으로 읽었던 조지 스타이너의 <하이데거>(지성의샘, 1996)도 지난번에 절판된 듯하다고 적었지만 다시 나왔다). 한데, 하이데거는 가장 기초적인 물음(들)을 던지면서 자신의 사유를 전개하기 때문에 그냥 차근차근 따라가봐도 팍팍하거나 멀미나지 않는다. 아니, 그냥 장서용이면 어떤가. 폼나지 않나. '하이데거' 그리고 '철학입문'.

 

 

 

 

재작년 여름에 데리다의 <정신에 대하여>(동문선, 2005)가 출간되었을 때 책소개를 하면서 몇 자 적어놓은 걸 다시 읽어봤는데, 이왕 하이데거를 펴보았다면 하이데거론도 곁들어 얼마쯤 읽어두면 좋겠다. 나도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정신에 대하여>에서, 이전의 소개를 반복하자면, "데리다는 하이데거와 관련하여 한번도 질문된 적이 없는 '정신(Geist)'의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하이데거의 철학은 해체/구축한다. 이런 '대결' 장면은 며칠전 이종격투기 프라이드 경기에서 표도르('효도르'라는 이름은 러시아어가 일어로 음역된 걸 다시 옮겨오면서 생긴 '괴상한' 이름이다)와 크로캅이 맞붙은 것만큼이나 흥미진진한 볼거리이다. 그런 걸 놓쳐도 좋은 삶은 또한편 나름대로 재미있을지 모르겠으나 내가 부러워하는 삶은 아니다."

앨런 메길의 <극단의 예언자들: 니체, 하이데거, 푸코, 데리다>(새물결, 1996)은 네 철학자에 대한 아주 재미있는 안내서이다. 하이데거 편을 데리다 편과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그리고 부르디외의 하이데거 비판서 <나는 철학자다>(이매진, 2005)도 (원제인) '하이데거의 정치적 존재론' 비판으로 읽어봄 직하다. 한데, 번역서는 읽기에 좀 팍팍하다. 그리고 라캉주의자가 되기 이전에 하이데거 전공자였던 지젝의 <까다로운 주체>(도서출판b, 2005). 책의 1장은 '칸트 독자로서의 마르틴 하이데거'를 다루고 있는데, 주로 <존재의 시간>에서의 곤궁을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한길사, 2001)에서 어떻게 극복/회피하려고 했는가를 다루고 있다. 하이데거에 대한 '상식'을 상당 부분 뒤흔들어놓는다(나는 지젝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도달해 있는/있을 경지가 부럽다).  

 

 

 

 

물론 <철학 입문>을 통해서 하이데거의 사유에 맛을 들이고 매혹을 느낀다면 이후엔 그의 주저들에 도전해볼 수 있겠다. 하이데거만큼 상대적으로 풍족하게 번역/소개된 철학자도 국내엔 많지 않다. 게다가 번역의 수준도 높은 편이다(당장 헤겔과 비교해 보라). <존재와 시간>에서 <이정표>에 이르기까지의 여정? 그렇게만 읽어도 우리의 한해는 다 가고 말 것이다. 맨날 하는 소리이기도 한데, 인생은 행복하기에는 너무 길지만 공부하기에는 너무 짧다...

07. 0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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