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최장집과 민주주의(진행중)

월요일 아침부터 인터뷰 압박이다.

 

"올해는 1987년 6월항쟁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12월엔 대통령선거도 치러진다. 지난 20년 동안의 변화 속에서,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지나면서 우리 사회의 변화와 민주개혁 세력의 집권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겨레>는 노무현 정부의 성과와 한계를 평가하고 어느 때보다 논란에 휩싸여 있는 민주개혁 세력의 갈 길을 살펴보기 위해, 민주화 운동의 원로로 꼽히는 세 분과 연쇄 인터뷰를 가졌다. 학계의 최장집 고려대 교수, 종교계의 함세웅 신부, 문화·예술계의 고은 시인과의 인터뷰를 차례로 싣는다."

인터뷰 / 박찬수 정치팀장

최장집(64) 고려대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4년간) 노무현 정부의 정책 내용과 방향이 민주화 세력의 기대에서 많이 벗어났다. 노무현 정부는 ‘민주 정부’로서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최 교수는 “내용도 없으면서 다시 모여 재집권을 위해 노력하자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정부가 실패하고 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교체되는 게 당연하다. 한나라당이라고 안 되고 하는 그런 것은 없다”고 여권의 정계개편론을 비판했다. 인터뷰는 지난 12일 오후 최 교수가 소장으로 있는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에서 이뤄졌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85639.html

 

-노무현 대통령은 개헌 제안하면서 그 명분으로 1987년 헌법체제 미비점의 보완·극복을 얘기하셨는데, 87년 헌법체제가 우리 사회 민주화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비판은 학계에서도 있어왔다. 87년 헌법체제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어떤 문제점이 있다고 보시나?

=‘87년 체제’라는 것은 학계에서도 얘기되는 말이다. 민주화 이후 체제라고 할 수도 있겠다. 87년 체제란 말은 사태를 단순화하기 위해 서술적인 개념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최근의 이 용어가 정치적으로 동원되면서 이데올로기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87년 체제’ 대 ‘민주헌정체제’라고 하는 대립적인 형태의 담론을 동원해 한국 민주주의의 모든 문제를 87년 체제 때문으로 돌리는 식이다. 이것은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일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위험한 효과를 낳고 있다고 본다. 87년 체제는 두 가지 요소의 결합을 그 특징으로 한다. 하나는 운동에 의해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주화는 혁명적 단절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존 체제의 연속선상에서 제도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두 요소가 일정하게 결합되어 운동과 제도의 힘의 균형이 이루어졌다. 다시 말해 운동이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동시에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국민들이 위임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기존 정치세력과 공존하는 민주주의 체제가 곧 87년 체제의 기본 성격이라 할 수 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여기에 돌리면서 뭔가 획기적으로 정치의 틀을 확 바꾸면 된다는 주장이 과도해지고 정치적 슬로건이 되면 근본주의의 문제를 부를 수 있다. 민주주의를 위한 뭔가 이상적 헌법이나 제도가 있다는 발상도 위험하다. 모든 것이 87년 체제 때문이고 5년단임제 때문이고, 지역주의 때문이고 그래서 대연정하고 개헌해야 한다는 접근은 기본적으로 정치에 대한 환원주의적 태도이다.

-87년 체제가 있고, 그 이후에 드러난 문제점이 있는데 그 문제점들을 87년 체제의 책임을 돌린다는 말씀 같다. 설령 그렇더라도 87년 체제 이후 20년 지났고, 그 20년 동안 우리 사회가 바뀌면서 다른 이유에서도 문제점도 있고 담아낼 게 있다. 그런 점에서 헌법을 바꿀 필요가 있지 않을까. 노 대통령 얘기처럼 5년 단임제가 87년 체제 때문이라는 게 아니라, 정치문화 등 여러 잘못된 문화 때문에 단임제 폐해 커졌는데, 그걸 고치려면 비록 책임을 돌릴 수 없어도 고칠 필요가 있다는 얘기는 할 수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여러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걸 보는데, 87년 체제라는 것은 하나의 정치, 민주주의의 틀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당시 만들어졌던 균형점을 표상하는 틀이고, 제도화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틀 때문에 정치가 발전하지 못했거나, 민주주의 발전이 제약 당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 내용을 뭐라 하든 87년 체제는 지난 20년 동안 한국 민주주의를 정초시킨 제도적 틀이다. 그 위에서 좋은 정치를 통해 한국 사회의 갈등을 해결해 가고 필요한 개혁을 했어야 한다고 본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민주화는 혁명이 아니기 때문에 합의했던 제도와 틀 안에서 개혁과 발전을 해 가야 하는 운명을 갖는다. 문제는 현실에서 존재하는 실제적 갈등을 외면하거나 적극적으로 해결을 시도하지 않고, 갑자기 새로운 이슈나 갈등으로 치환하려고 하는 데서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권위주의로부터 축적된 문제가 민주화로 폭발했다. 따라서 권위주의 하에서 억압된 여러 갈등, 사회경제적 문제, 남북관계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민주화이후 체제에 부과되었다. 그런데 이런 과제를 소홀히 한 채 모든 문제를 지역주의 때문이다 라고 하면서 기존의 보다 중요한 갈등을 치환해버린 것이다. 나는 지역주의를 한국 사회의 중심적인 갈등, 일차적인 과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87년 선거에서 민주 대 독재의 갈등을 치환한 것이 지역주의였듯이 지금도 현실의 중요한 갈등을 지역주의 문제로 치환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정치란 어떤 갈등을 선택하고, 어떤 갈등을 배제하느냐 하는 것을 본질로 하는 파워게임이다. 현실의 중심적 갈등을 배제하고 새로운 갈등으로 대체하려 할 때 정치가 갖는 파괴적인 양상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기존의 중요 균열, 구조, 표현의 자유는 억압되고 기회의 구조는 축소된다. 민주주의는 정치의 방법을 통해 발전할 수 있는 데, 정치를 부정적으로 보면서 정치 밖에서 외재적 제도를 부과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위험하다. 헌법이 잘못됐다, 단임제 때문이다 하는 식으로 정치 밖의 제도의 힘을 통해 안 풀리는 정치를 해결하려고 하면 결국 사태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만든다. 대연정 시도도 같은 성격의 문제를 가졌다. 갑자기 반지역주의를 들고 나오면서 불평등과 양극화 등 우리 현실의 실제 갈등을 이데올로기적 허상으로 대체하려 하고 선거를 통해 성립한 정당정치의 구조를 일거에 대통합하자는 태도의 연장선에 지금의 개헌론이 있다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은 한국 정치의 중심 과제가 지역주의 해결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노 대통령은 왜 이렇게 지역주의에 집착하는지, 한국사회의 제일 큰 문제가 지역주의라는 노 대통령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노 대통령은 자신이 호남과 경상도를 기반으로 한 정치세력들의 지역주의 혹은 지역주의적 경쟁 틀을 넘어서 지역주의 논리를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통령의 지위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따라서 지역주의 문제를 제기할 때 자신은 현재의 정치구조 안에서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부터가 한국의 지역주의 문제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악의 축이 아니며 점진적으로 개선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모든 것은 지역주의의 문제라거나 난 지역주의가 아니라거나 하는 식의 접근은 자기합리화라고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노 대통령이 대통령에게 주어진 헌법적 권한, 개헌 발의권을 행사하겠다고 했다. 정략적이지 않다는 점 보여주기 위해 임기만 고치는 원포인트 개헌하겠다고 했다. 국민들로서는 갑작스럽고 깜짝 놀랄 만한 일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대통령이 개헌 이슈를 지금 이 시점에서 제기한 것 자체가 매우 파괴적인 정치행위이며 해서는 안 될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방법 자체가 무슨 군사작전 하듯 하는 것도 문제고, 전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 나를 따를 것이냐 아니냐 식의 극단적 양자택일로 몰고 가는 것도 문제다. 대통령이 임기 1년 남겨둔 상황에서 제기해선 안 될 문제를 제기했다고 생각한다. 현임 대통령의 임기 말 제일 중요한 역할의 하나는 여러 분야에서의 정책추진을 순조롭게 마무리해서 성과를 남기는 일이며, 다른 하나 중요한 것은 대선을 관리하면서 여야 누가 집권하든 권력 이양을 순조롭게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임기 말에 정치의 게임룰 변경을 전격적으로 제기하고 공세적으로 나올 때 사람들은 놀라게 된다. 야당의 보수파들은 현임 대통령의 개헌추진을 일단 경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가령 한나라당이 집권해 임기 말이 되었고 민주파의 집권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 가정할 때, 갑자기 한나라당 대통령이 나서서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하면 야당이나 민주파 인사들이 이를 어떻게 생각하겠나. 경계하고, 정권 연장을 위한 숨겨진 의도가 있는 것 아닌지 의심하고 두려움 갖게 될 것이다. 이슈 자체가 제기되는 시점, 방법이 대단히 좋지 않다.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잘한 일이냐 못한 일이냐고 하는 것을 따질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물론 4년 연임제나 총선 대선의 주기를 일치시키자는 개헌 내용 자체도 문제가 있다.

-노무현 정부의 임기 마지막 해다. 지난 4년 동안 민주정부로서 해온 역할, 어떤 성과를 보였는지, 어떤 문제점을 가졌는지 총체적 평가를 부탁드린다.

=(길게 포즈, 아...) 글쎄요. 한마디로 뭐라 얘기하긴 어렵다. 대통령 선거 당시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의 여망이랄까 기대와 이 정부가 실제 수행한 정책의 내용과 성격 사이에 너무나 큰 괴리가 있다는 사실, 이것이 문제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노 대통령이 말하는 레토릭과 정책의 결과 사이의 격차가 큰 것이 문제였다. 가장 중요한 건 사회경제적 정책이라 생각한다. 노정부의 경제정책이 어떤 보수정권이 들어섰을 때 내놓을 수 있는 정책과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다.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 가히 혁명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누구보다도 강하게, 그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한미FTA(에프티에이) 등이 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뤄지고 있다. 노무현정부가 개혁적 또는 진보적이다 라고 평가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무엇보다도 노무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는 것의 하나는 노 대통령이 정치를 이해하는 방법과 그것이 가져온 매우 부정적 효과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사회의 광범위한 갈등이나 이해관계가 정당에 의해 대표되고 의회가 민의의 대표기구로서 역할을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런데 당정분리를 내걸고 당과 국회의 역할을 가급적 우회하거나 회피하려 하고, 청와대 중심의 정책 산출, 전문가 중심의 정책 산출, 관료 중심의 정책 산출에 너무 크게 의존했다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의 이러한 정치관이 대연정이나 지금과 같은 헌법 개정 추진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얘기하면서 그 논거를 제시하는 데 있어서 민주주의적 가치와 배치되는 요소를 많이 갖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개헌이 필요하다는 논리의 근본에는 대통령 권력 혹은 통치의 효율성과 안정성이 많이 거론된다. 어떤 정치체제든 통치의 효율성과 안정성이 필요하므로 그 자체는 나쁠 게 없다. 문제는 그러면서 민주주의의 원리와 가치를 부정적으로 정의한다는 거다. 선거를 낭비로 보는 태도는 매우 위험하다. 현재 대통령권력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 요구로부터 유리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정과 비생산적 혼란이 결과적으로 심화된 것이다. 원인이 이러함에도 선거를 통한 견제를 부정적인 것으로 본다거나 통치의 효율성을 무엇보다 우선시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의 과잉 때문에 문제이고 효율성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부족해서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나는 문제를 그 역으로 본다. 한국 정치는 민주주의의 부족과 신자유주의의 과잉 때문에 문제라고 본다. 한국에서 선거가 지나치게 많다고 하는 것은 명백히 틀린 사실이다. 한국은 선거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 가장 적은 나라의 하나이다. 미국을 예로 들어 보자. 미국은 선거가 우리보다 많고, 선거를 통해 결정하는 내용도 우리보다 훨씬 많다. 지방정부의 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검찰총장, 경찰서장도 선거한다. 작은 정책 하나도 투표하는 주가 많고, 수많은 형태의 주민투표가 있다. 독일도 16개 연방이 거의 매달 어디선가 선거가 있다고 할 정도로 선거가 잦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선거 많이 해서 문제라고 한다. 현재 상태에서 선거가 많다고 하고 그래서 선거를 줄이자고 한다면 사실 민주주의를 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통치의 효율성만을 놓고 보면 권위주의가 민주주의보다 더 효율적이다. 지금 개헌론을 옹호하는 많은 주장들에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부정하거나 여기에 도전하는 주장이 많다.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은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선거와 같은 참여를 통해 뭔가 이뤄질 때 시민은 자부심을 갖고, 민주주의 체제에 대해 공화주의적인 충성심을 느끼게 된다. 선거에서 승리하면 환호하고 깃발 들고 나가고 뭔가 집합적 열망을 표출하려 하는 것이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다. 개헌이 실제로는 안 된다고 할지라도 현재와 같은 개헌론이 낳고 있는 문제는 부정적인 유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의 관념이 약해진다는 것은 우리 현실에서 우려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은 1년 동안 노무현 정부는 뭘 해야 한다고 보시는지?

=두 가지 일에 집중했으면 한다. 하나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기존의 정책과 제도를 잘 운영하고 관리해서 권력 이양을 원만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대통령의 역할이라고 본다. 그 다음에는 중요한 정책 사안들을 중심으로 리더십과 행정력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하고 서민생활이 개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부동산 정책 같은 것인가?

=부동산 정책도 중요하고, 교육정책도 중요하다. 실생활에 가장 밀접한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를 푸는데 전력을 해야 한다. 덧붙일 것은 리더십의 윤리적 기초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실천해줬으면 좋겠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현직 대통령에 대해서는 가혹하지만 임기를 끝낸 대통령에 대해선 관대하다. 많이는 아니더라도 대통령으로서 좋은 정책, 리더십을 보여준 사안이 있으면 꼭 평가해준다. 레임덕은 어느 권력이든 존재하는 것이다. 실현될 수 없는 이슈를 난데없이 제기하거나 현실을 인정하지 않거나, 뭔가 기본 구조를 바꿔보려는 시도는 파괴적인 효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이는 한 사회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의 윤리적 기반을 송두리째 해치기 때문에 피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도 임기 말에는 많은 비판자들로부터 최악의 대통령으로 공격받았지만 퇴임 뒤에는 제대로 한 업적에 대해서만큼은 있는 대로 평가되고 있지 않은가.

노 대통령은 현실을 거역해서 지금의 어려움에 처했다. 재보궐선거와 지난 지방선거의 결과는 민의의 평결이 어떤 내용을 갖는가를 보여주었다. 그러한 민의의 평결을 대통령은 존중하고 따랐어야 했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정치를 승부를 거는 게임으로 만드는 것은 좋지 않다. 그것은 대통령을 따를 것이냐 말 것이냐,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거냐 식의 극단적 선택을 국민에게 윽박지르는 거다. 이렇게 하면 합리적 비판이나 건설적 대안은 형성되기 어렵다. 지금 또다시 민주파들에게 비합리적 선택이 강요되고 있다. 개헌을 지지할 것이냐, 아니면 한나라당 좋은 일 하게 그냥 둬야 하느냐, 한나라당으로 권력이 넘어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의 동원에 노출되어 있고 혹시 개헌론으로 반한나라당 연합을 만들 수는 있지 않을까 이런 몽상적 정향에 흔들리고 있다. 정치에 대한 불신은 커지고 뭔가 합리적 방향에서 힘을 결집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 4년간 노무현 정부가 민주정부로서 실패했다고 보나.

=난 실패했다고 본다.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너무 단정적일 수 있지만 적어도 지지자의 신뢰 상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등 객관적 정책수행의 지표는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다. 민주정부로서는 실패했다고 해도 남은 임기동안 우리 사회의 지도자로서 윤리적 권위를 회복할 기회까지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지난해 9월 <경향신문> 인터뷰 때 민주화 세력은 노무현과 결별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매섭게 비판하신 이유가 뭔가?

=노무현 정부는 우리 사회, 전체적인 사회 세력과의 관계라는 면에서 볼 때 민주개혁을 바랐던 사람의 지지를 받고 수립됐다. 그러다보니 노무현 정부는 민주개혁 세력의 대표가 되었고 실제 정책 내용과 수행결과는 민주개혁 세력에게도 곧바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선출된 정부는 자기를 지지해준 세력에 일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이다. 대표와 책임의 고리가 유지될 때는 그 관계가 유지되지만 그렇지 않고 집권 이후 정책 내용과 방향이 지지 세력의 기대로부터 벗어날 때 그 고리는 해체될 수밖에 없다.

나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의 내용과 방향이 민주화 세력의 기대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민주정부의 권위를 스스로 약화시키는 권력의 운영 스타일도 문제이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존중하고 실천하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386 세력을 부당하게 매도해서는 안 되겠지만, 객관적으로 권력에 참여한 운동세력과 여기에 참여하지 않은 민주화운동 세력 간의 괴리는 굉장히 커졌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권력에 참여한 사람과 세력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노무현정부가 민주화운동세력 전부를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모든 민주화 세력의 책임으로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민주개혁 세력은 독자적으로 대안을 만들 수 있어야 하고 그 가능성을 확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정부와 분명한 차이를 강조하고 싶었다.

-올 12월 대선에서 민주개혁 세력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 딜레마인데, 일부 시민사회 운동에선 어쨌든 보수 세력에 정권 넘길 수 없다며 정치세력화의 움직임이 있다.

=지금 현재 노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여당과 한나라당 간의 구분이, 이제는 분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실제 정책의 내용이라는 측면에서 노무현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실제 정책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는 전통과 이상에서 너무 멀어졌다. 투표의 결과에 있어서 서민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경향은 더 강해진 느낌이다. 그렇다고 민주세력이냐, 반민주 세력이냐 하는 식의 낡은 구분에 구속될 단계도 지났다. 반민주세력 집권 가능성을 운운하는 식으로 두려움을 동원해 비판을 가로막는 것은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것이다.

나는 민주화 세력도 노무현 정부를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나라당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보고, 그래야 한다고 본다. 이런 것이 전제되어야 민주적일 수 있고 합리적일 수 있다고 본다. 권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 열린우리당이든 새로 만드는 정당이든 대안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비판해야 하는 것이 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비판하면 한나라당 도움 된다는 식이면 곤란하다. 아무 것도 없는데 한나라당 때문에 지지하라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최열 대표, 정대화 교수 등이 모여 한나라당과 같은 보수세력에 정권이 넘어가는 걸 막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다. 이런 움직임과 명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썩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 이슈 들고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의 문제를 과도하게 단순화하고 둘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좋지 않다. 민주주의는 그런 것이라기보다 사회적으로 제기된 이슈와 의제에 대해 정치세력과 지도자들이 그 대안을 조직하는 데 있다. 몇몇 명사들이 모여서 사회의 이익이나 갈등을 초월해 문제를 던지는 방식에 대해 난 회의적이다. 그런 방법으로 좋은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기대는 별로 안 생긴다.

-어쨌든 보수 세력한테 정권을 넘겨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시민사회 단체들의 생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민주세력이) 잘못했으니 (정권이) 넘어갈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있고, 어떤 수를 내서든 (여권이) 재집권해야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 있다. 열린우리당 정계개편 논의의 시발점도 그런 것이다.

=그런 접근은 나는 맞지 않다고 본다. 민주파 또는 개혁파를 자임하고, 스스로 그렇게 규정한다고 해서 이 그룹들이 언제나 개혁적이고 민주적인 세력들을 대표한다고 보지 않는다. 기존의 권위주의 체제는 우리가 개혁해야 할 과제와 그 내용을 이미 분명하게 남겨 놓았다. 분명한 개혁 과제와 이슈가 있는데 그간 이에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고 개혁의 방향과 내용을 달리해왔으면서, 무작정 보수파 집권만은 막자고 한다면 안 된다. 내용도 없으면서 정치적, 이념적 라인을 따라 다시 모여 재집권을 위해 노력하자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어떤 정당이든 다수가 지지하면 교체해서 다수가 더 많이 지지하고 다수에 더 순응하는 권력을 만드는 것을 그 원리로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에 충실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민주파로 자임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정책비전이 뭔지, 대안이 뭔지, 한국사회가 어떤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말을 하지 않았고, 구체적으로 그걸 실천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보수파 집권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이 꼭 재집권을 해야 한다고 한다. 재집권에 실패하면 역사의 죄를 짓는 것이라 하는데 그때의 역사는 뭐고 그때의 민주주의는 뭔지 모르겠다,

-보수 세력과 보수 언론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하면서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통해 한국 사회가 오히려 후퇴했다고 한다.

=선거를 통해 집권정부가 실패했다고 다수가 평결하면 그것이 곧 민중의 평결이 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보수세력과 보수언론의 표현이라 해서 모든 것은 다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정부가 실패하고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교체되는 것이 당연하다. 한나라당이라서 안 되고 하는 그런 것은 없다.

-그 10년을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후퇴로 볼 것이냐, 여기엔 민주개혁 세력이 아무 것도 한 게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거니까.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사회가 진보한 측면도 있지 않나.

=총체적으로 다 실패했다거나 과거로 후퇴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꼭 했어야 한 의제에서 실패했다거나, 할 수 있었는데 못했다면 비판적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가장 중시 여기는 것은 한 사회의 시민적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의제, 즉 사회경제적인 분야에서 나빠졌다는 사실이다. 지금처럼 불평등해지고 서민이 빈곤해져서는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없다. 또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세력에 정권이 넘어간다고 해서 그것이 곧 민주주의의 퇴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후퇴 여부는 누가 집권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체제로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잘 작동하느냐는 기준에서 봐야 한다. 개혁파가 이번 선거에서 패배해 야당이 된다 해도 그 후 실력을 쌓고 다시 경쟁해서 승리하고 전보다 낳은 정책수행력을 보인다면 민주주의는 제 기능을 하는 것이다. 개혁세력의 패배가 장기적으로는 자신들의 정당을 더 강하게 만들고, 지지기반을 확대하려는 노력의 계기가 되고 좋은 정책 대안을 심화하는 기회가 안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청와대에선 ‘진정성’이란 단어를 많이 쓴다. 노 대통령은 선의로 하고 순수한데 진정성이 국민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선의를 국민들이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한나라당은 모든 걸 정치적 계략에서 내놓는다고 본다. 노 대통령 집권 4년 동안 국민과 소통에 실패한 것인가, 아니면 노 대통령이 정치적인 계산을 해서 행동한 것으로 보나.

=진정성이란 말 자체에 의미가 없다는 건 아니다. 자연인으로서 진정성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 가치라고 본다. 그러나 정치일반에 있어 진정성이냐, 아니냐는 기준으로 문제를 보는 것은 정치의 본질을 오히려 못 보게 한다. 바꿔 얘기하면 진정성을 갖느냐 갖지 않느냐가 사태를 이해하는 기준이 아니라는 말이다. 모든 정치인들이 다 진정성이 있다고도, 또 다 없다고도 봐도 정치를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는 진정성 여부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결과로 평가되는 것이다. 이번 개헌 이슈를 제기하면서도 대통령의 진정성을 자주 인용하고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논리가 많이 동원되곤 하는데, 그건 의미 없는 얘기라고 본다. 일단은 정치 행위로 이해되어야 하고 그 핵심은 정치적 영향력과 권력의 분배효과를 다투는 데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 설령 진정성이 없다 해도 사회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다면 정치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것이다. 중요한 건 정치행위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제도화돼야 하고, 서로의 이해관계와 전략이 어느 정도는 투명하게 표출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진정성이 없는 정치행위의 부정적 효과가 정치체제 내적 논리에 의해 제어되도록 하는 데 있다. 진정성을 정치행위의 이유로 제시하는 순간 그 진정성은 레토릭이자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이 정치세계의 법칙과 같은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실패가 조·중·동의 공격 때문에, 노 대통령이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보수세력으로부터 공격받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한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런 논법은 실패의 알리바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 들어와 뭐가 잘 안 되는 원인을 조·중·동이나 보수세력의 저항, 이런 식으로 얘기하곤 한다. 그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국가권력은 굉장히 강하다는 사실 또한 주목해야 한다. 이번에 개헌론을 제기하면서 현행 헌법 하에서는 대통령이 뭘 할 수 없게 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데 사실이 아니다. 한국의 헌법은 강한 대통령 권력을 제도화한 대표적인 유형이다. 현행 헌법 하에서 한국의 대통령 권한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미국보다도 강하다.

미국의 대통령은 예산 수립이나 집행을 맘대로 할 수 없다. 예산에 대한 권한은 우선적으로 하원에 있다. 인사에 대한 의회의 비준권도 우리보다 더 강하다. 사법부의 견제도 받아야 한다. 미국 헌법은 국가의 권력을 쪼개고 분할해서 견제와 균형의 틀 안에서 움직이게 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한국은 대통령이 강하지 의회가 강하지 않다. 한국 대통령의 경우 정치력만 잘 발휘하면 그가 제도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권력의 크기는 매우 크다. 4년 연임제로 대통령 권력을 8년으로 연장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결과를 가질 가능성도 있다. 한국의 국가와 대통령은 제도적으로나 구조적으로 매우 강한데, 이걸 더 강화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 문제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보수 언론과 보수세력의 영향력이 커진 것은 민주정부와 대통령의 정치적 실천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반영한다. 보수언론의 논리가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게 설득되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정부와 대통령을 비판하는 건 이제 보수언론만이 아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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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하이데거와 함께 철학을!

하이데거의 <철학입문>(까치글방, 2006)이 출간됐다. 출간일자는 작년말이지만 지난주에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알라딘의 '새로 나온 책'을 둘러보다가 발견하게 됐다. 지난주에 유난히 읽을 만한 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 탓에(홉스봄의 자서전 <미완의 시대>나 다니엘 벨의 <탈산업사회의 도래> 등) 미처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는데, "하이데거가 1928~29년 겨울 학기에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강의한 내용을 수록한 강의록"으로서 지난 1996년 하이데거의 전집 제27권으로 출간되었다는 이 책은 충분히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하다(아직 영역본은 나오지 않은 듯하다). '하이데거의 모든 책'이기도 하지만, 게다가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철학 입문' 아닌가?

하이데거  

그런 '입문'이란 단어를 제목에 달고 있는 책으로 나는 <형이상학 입문>(문예출판사, 1994) 정도를 알고 있을 뿐이다. 우연이지만, 내가 하이데거에 매혹당하게끔 한 책이 바로 <형이상학 입문>이었다. 그러니 <철학 입문> 또한 철학 입문이면서 동시에 하이데거 입문으로의 역할을 덩달아 해줄 거란 기대를 갖는 건 억지스럽지 않다. 1928-9년이면 주저인 <존재와 시간>을 발표한 직후이고 갓 마흔이 된 '젊은' 거장의 염력이 거침없을 때이다. 해서, 이 겨울에 딱 3일 정도 바람이라도 쐬러 가면서 들고 가고픈 책이다.

하이데거와 전혀 '안면'이 없는 독자라면 <30분에 읽는 하이데거>에서부터 역자이기도 한 이기상 교수의 <하이데거 철학에의 안내>(서광사, 1993)나 역시나 하이데거 전공자인 박찬국 교수의 <들길의 철학자, 하이데거>(동녘, 2004)를 미리 혹은 같이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내가 감동적으로 읽었던 조지 스타이너의 <하이데거>(지성의샘, 1996)도 지난번에 절판된 듯하다고 적었지만 다시 나왔다). 한데, 하이데거는 가장 기초적인 물음(들)을 던지면서 자신의 사유를 전개하기 때문에 그냥 차근차근 따라가봐도 팍팍하거나 멀미나지 않는다. 아니, 그냥 장서용이면 어떤가. 폼나지 않나. '하이데거' 그리고 '철학입문'.

 

 

 

 

재작년 여름에 데리다의 <정신에 대하여>(동문선, 2005)가 출간되었을 때 책소개를 하면서 몇 자 적어놓은 걸 다시 읽어봤는데, 이왕 하이데거를 펴보았다면 하이데거론도 곁들어 얼마쯤 읽어두면 좋겠다. 나도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정신에 대하여>에서, 이전의 소개를 반복하자면, "데리다는 하이데거와 관련하여 한번도 질문된 적이 없는 '정신(Geist)'의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하이데거의 철학은 해체/구축한다. 이런 '대결' 장면은 며칠전 이종격투기 프라이드 경기에서 표도르('효도르'라는 이름은 러시아어가 일어로 음역된 걸 다시 옮겨오면서 생긴 '괴상한' 이름이다)와 크로캅이 맞붙은 것만큼이나 흥미진진한 볼거리이다. 그런 걸 놓쳐도 좋은 삶은 또한편 나름대로 재미있을지 모르겠으나 내가 부러워하는 삶은 아니다."

앨런 메길의 <극단의 예언자들: 니체, 하이데거, 푸코, 데리다>(새물결, 1996)은 네 철학자에 대한 아주 재미있는 안내서이다. 하이데거 편을 데리다 편과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그리고 부르디외의 하이데거 비판서 <나는 철학자다>(이매진, 2005)도 (원제인) '하이데거의 정치적 존재론' 비판으로 읽어봄 직하다. 한데, 번역서는 읽기에 좀 팍팍하다. 그리고 라캉주의자가 되기 이전에 하이데거 전공자였던 지젝의 <까다로운 주체>(도서출판b, 2005). 책의 1장은 '칸트 독자로서의 마르틴 하이데거'를 다루고 있는데, 주로 <존재의 시간>에서의 곤궁을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한길사, 2001)에서 어떻게 극복/회피하려고 했는가를 다루고 있다. 하이데거에 대한 '상식'을 상당 부분 뒤흔들어놓는다(나는 지젝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도달해 있는/있을 경지가 부럽다).  

 

 

 

 

물론 <철학 입문>을 통해서 하이데거의 사유에 맛을 들이고 매혹을 느낀다면 이후엔 그의 주저들에 도전해볼 수 있겠다. 하이데거만큼 상대적으로 풍족하게 번역/소개된 철학자도 국내엔 많지 않다. 게다가 번역의 수준도 높은 편이다(당장 헤겔과 비교해 보라). <존재와 시간>에서 <이정표>에 이르기까지의 여정? 그렇게만 읽어도 우리의 한해는 다 가고 말 것이다. 맨날 하는 소리이기도 한데, 인생은 행복하기에는 너무 길지만 공부하기에는 너무 짧다...

07. 0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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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소쉬르와 언어학 참고문헌

국어학을 공부하시는 어느 분이 소쉬르 관련 문헌들에 대해서 조언을 구해오셨다. 아마도 이번에 <일반언어학 강의>가 재간된 때문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조언은 '서평꾼'이 아닌 언어학을 전공하시는 분들에게 구하여 마땅한 것일 테다. 그럼에도 정중히 마다하지 못한 것은 그간에 이런저런 아는 체를 많이 해온 탓에 무작정 발뺌하는 것도 볼썽사나운 듯하기 때문이다. 해서 궁여지책으로 예전에 써둔 걸 옮겨놓는다. 원래는 다음카페 '비평고원'에서 라캉182님이 소개한 내용에 몇 글자 더 보탠 글이기에 필자는 두 사람으로 해야겠지만('비평고원'은 어제 언론의 '직격탄'을 맞고 신입회원이 600여명 가까이 늘어났다. 나도 즐찾이 16명 늘어나긴 했지만 비할 바는 아니겠다. 한겨레의 힘(?)을 보여주는 일례일 텐데 후유증(?)은 없으려나 걱정된다), 일단은 임의로 올려둔다. 이미지는 이번에 새로 붙인 것이다. 

 

 

 



1. 그의 저서
소쉬르, <일반언어학 강의>, 샤를르 발리, 알베르 세쉬에 편집, 최승언 역(민음사, 1990 초판)(샤를르 발리(Bally)는 (불어식으로) '바이이'라고도 표기됩니다.) 오원교 역의 <일반언어학 강의>(형설출판사)도 번역돼 나왔는데, 역시나 도서관에 의존해야 할 듯싶고, 최승언 역의 <일반언어학 강의>에 대해 경악한 얘기는 제가 다른 글에서 썼습니다. 최승언 역의 <일반언어학 강의>에는 서두에 마우로 교수의 강의 주석본도 곧 번역돼 나오는 것으로 예고돼 있는데, 12년이 지나도록 아직 안 나오고 있습니다...

 

 

 



2. 입문서
조더선 컬러, <소쉬르>, 이종인 역(시공사, 1998). 조나단 컬러는 영미권에 소쉬르와 구조주의를 처음 소개한 이로서(<구조주의 시학>이 대표작) 신뢰할 만한 비평가입니다(<바르트>와 <문학이론>도 그의 책이다). 우리말 번역서는 이 책의 증보판을 옮긴 것인데, 꼼꼼하게 읽지는 않았지만, 읽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원서는 소쉬르 입문서로서 많이들 추천하는 책입니다...

C. 샌더스,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 김현권 역(도서출판 만남, 1996)는 말 그대로 일반언어학 강의의 주요 개념들을 정리해주고 있는 책입니다. 김현권 교수의 번역. 저는 이 책으로 <일반언어학 강의> 읽기를 때웠었는데, 요즘 다시 소쉬르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바르트도 그랬지만, 저도 랑그 연구자로서의 소쉬르보다는 랑가주 연구자로서의 소쉬르에 더 흥미를 갖게 됩니다. 랑가주 연구자로서의 소쉬르에 대해서 그래도 가장 자세히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은 마루야마 게이자부로의 <존재와 언어>(민음사, 2002)입니다. 원제는 '생명과 과잉'이고, 저자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소쉬를 연구자의 한 사람입니다. 1장은 그런가보다 했는데, 2장부터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3. 단행본 연구서
요하네스 페르, <소쉬르 언어학과 기호학 사이>, 최용호 역(인간사랑, 2002) 저도 아직 구입하진 않았지만(2만원!) 서점에서 몇 번 들춰보았습니다. 제목 그대로 언어학자이면서 (퍼스와 더불어) 현대 기호학의 창시자인 소쉬르를 다루고 있습니다(*퍼스의 기호학에 대해서는 <퍼스의 기호사상>(민음사, 2006)을 참조할 수 있고요).

김현권 외 편역, <비판과 수용:언어학사적 관점 (페르디낭 드 소쉬르 연구 제1권)>(도서출판 역락, 2002) 마침 오늘 산 책이네요. 제목대로 소쉬르에 대한 그간의 비판(1부)과 각국의 수용(2부)에 대한 글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2부에는 일본과 한국에서의 소쉬르 수용에 관한 장들도 들어 있습니다. 참고로 <페르디낭 드 소쉬르 여구> 총서는 4권으로 기획돼 있는데, 2권은 "비교역사언어학: <논고>를 중심으로"이고, 3권은 "일반언어학: 일반어어학 이론, 문헌비판적 연구"이며 4권은 "기호학: 아나그람, 전설, 기호학, 철학 등"입니다. 제가 제일 기대하는 건 역시나 4권입니다.

프랑수와 가데, <소쉬르와 언어과학>, 김용숙 역(동문선, 2001). 라캉 182님이 "소쉬르 연구의 결정판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큰 연구서..김성도 교수가 자주 인용한 저자. 부담없는 가격과 두께! 내용은 두께에 반비례할 수도 있음!"라고 상찬하셨는데, 저로선 너무 비싸보이는 책이어서(!) 소쉬르 '쇼핑'을 나간 오늘도 사지 않았습니다...

 

 

 

 

김방한, <소쉬르>(민음사, 1998). 작고한 김방한 교수는 우리나라 1세대 언어학자입니다. 제자인 김현권 교수와 방통대의 언어학 강의를 맡기도 하셨고, 그 강의를 TV에서 몇 본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일반언어학 강의>를 평이하게 해설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데, 가장 큰 장점은 '2차 일반언어학 강의'가 발췌지만 부록으로 실려 있다는 것입니다. 김방한 교수에 대해서는 그의 자서전 <한 언어학자의 회상>(민음사, 1996)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김성도, <로고스에서 뮈토스까지>(한길사, 1999). 고대 김성도 교수는 외대 최용호 교수와 함께 본토에서 소쉬르를 전공한 '전문가'입니다(*김현권 교수는 국내에서 소쉬르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다). 아직까지는 국내 소쉬르 연구의 최대치라고 할 수 있을 거 같군요. 한길사에 다니던 후배의 부탁으로 이 책을 절반쯤 읽고 서평을 쓴 바 있습니다...

김현권 외, <소쉬르의 현대적 이해를 위하여>(박이정, 1998). 국내 소쉬를 학자들의 논문과 번역모음입니다. 아마도 모여서 스터디를 하는 모양인데, 그 결과를 묶어낸 책입니다. 오래전에 산 책인데, 방구석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듯하군요...

로이 해리스, <소쉬르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고석주 역(도서출판 보고사, 1999) 라캉182님에 의하면, "저자 Roy Harris는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 1983년 영역과 주석을 출판한 저자"입니다.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부담은 없어서 사두긴 했는데, 아직 읽지는 않은 책입니다.

미셀 아리베, <언어학과 정신분석학:프로이드, 소쉬르, 옐름슬레우, 라깡을 중심으로>, 최용호 역(인간사랑, 1992) 아리베는 최용호 교수의 지도교수입니다. 최교수가 유학중에 번역한 책인데, 한동안 미뤄두고 있었지만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 최교수는 <라캉의 재탄생>(창작과비평사, 2002)에 '라캉과 소쉬르'란 논문을 싣고 있기도 합니다.

 

 

 



루이 옐름슬레우, <랑가쥬 이론 서설>, 김용숙/김혜련 역(동문선, 2000) 흔히 '언어이론 서설'로 알려진 책인데, 주의할 것은 이때의 언어가 '랑그'가 아니라 '랑가주'란 것입니다. 불어에서는 이 둘을 구별하는데, 영어나 독어, 그리고 우리말에도 이 둘은 명확히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냥 랑그/랑가주를 언어/언어활동 정도로 옮기고 있습니다. 크리스테바의 <언어, 그 미지의 것>(민음사, 1997)도 원제는 '랑가주, 그 미지의 것'입니다. 어쨌든 엘름슬레우의 이 책은 얇지만, 그레마스가 '이 한권의 책!'으로 꼽은 책입니다(*그레마스의 책과 연구서로는 <의미에 관하여>와 <구조에서 감성으로>가 있다).

 

 

 



에밀 벤베니스트, <일반언어학의 제문제 1, 2>, 황경자 역(민음사, 1993) 한불문화출판에서도 김현권 교수의 번역으로 1권이 번역돼 나왔었는데, 현재는 절판됐습니다. 적어도 구조주의에 대해서 말하려면, 소쉬르와 야콥슨 그리고 벤베니스트를 읽어야 합니다. 참고로 벤베니스트는 A. 메이예의 제자이고, 메이예는 바로 소쉬르의 제자입니다. 메이예의 책으론 <일반언어학과 역사언어학>, 김현권 역(어문학사, 1997)이 번역돼 있습니다.

벤베니스트, <인도 유럽사회의 제도 문화 어휘연구 1,2>, 김현권 역(아르케, 1999) 작년에 맘먹고(!) 산 책중의 하나입니다(*러시아어본도 구했다). 사실 그렇게 '전문적'이진 않고 고급 교양서 정도로 분류될 수 있는 책인데, 그냥 '사전' 정도라고 생각하면 좋을 거 같군요.

앙투안 아르노/클로드 랑슬로, <일반이성문법>, 한문희 역(민음사, 2000) 얇은 책이지만, 저도 아직 사지는 않은 책입니다. 참고로 언어학 관련서 중에서 욕심이 나는 책은 훔볼트 관련서들입니다. 그의 책들과 그에 관한 책들이 나오고 있으니까 한번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혹시 읽으신 분이 있다면, 정보를 주시길...)

4. 영어
<초보자를 위한 소쉬르('Saussure for Beginners)>, W.Terrence Gordon, Abbe Lubell, Writers & Readers, 1996. 도서관에서 빌려봤는데, 데리다가 한 얘기들은 실제로 소쉬르도 다 한 얘기다라는 지적이 들어 있습니다. 평이하기 때문에 번역 소개되면 좋을 거 같군요. 단, '정치적인' 소쉬르 얘기는 없습니다.

Saussure and Contemporary Culture

'Saussure and Contemporary Culture', Francoise Gadet, trans. Gregory Elliott. 라캉182님 덕분에 알게 된 책이군요. 나중에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책은 정말 많고도 많습니다(하지만, 없는 책들은 더 많습니다!).

 

 

 



덧붙임: 서정철 교수의 <기호에서 텍스트로>(민음사, 1998)는 평이한 구조주의/기호학 입문서이다. 소쉬르에서부터 옐름슬레우, 바르트, 그레마스 등에 이르는 언어학/기호학 사상을 해설하고 하고 있는 책이다. 서교수의 후속작으로는 <인문학과 소설텍스트의 해석>(민음사, 2002)가 있다. 여타 구조주의/기호학 참고문헌에 대한 소개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03. 01. 30./ 07. 0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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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가장 쉬운 기호학 입문서

다니얼 챈들러의 온라인 기호학 입문서 <초보자를 위한 기호학(Semiotics for Beginners)>이 번역돼 나왔다. <미디어 기호학>(소명출판, 2006)이 그것이다. 책이 나온 건 좀 됐는데, 소개를 하려고 해도 마땅한 리뷰가 그간에 눈에 띄지 않았다. 마침 북데일리에서 이 책을 다루고 있어서 겸사겸사 옮겨놓는다.

소개에 따르면 책은 "웨일스대학 연극/영화/텔레비전학과 교수인 대니얼 챈들러가 1994년에 처음 인터넷에 공개해 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받은 '기호학 입문(Semiotics for Beginners)'이 교정을 거듭한 후 책으로 발행되었다." 아래의 책이 그것인데, 나는 한때 문화기호학 강의를 준비하느라 온라인에 떠 있던 텍스트를 다 프린트했었고, 책으로 묶여 나온 것도 (교보에선가) 눈에 띄길래 구입했었다. 말 그대로 '초보자용'이어서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교재로서는 유용하지 않나 싶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기표'니 '기의'니 하는 말만 들어도 멀미를 하는 게 강의실의 현실이기 때문에.

국역본의 제목은 특이하게도 '미디어 기호학'이라고 붙여졌다. 좀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미디어'가 그렇게 어필하는 것인지?). 소개를 더 읽어보면, "기호학의 일반 이론을 쉽게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졌으나 미디어 학자가 '미디어 교육' 수업으로 쓴 교재이기 때문에 영화. 텔레비전, 광고 등의 미디어에 초점을 두고 있다. 여기에 미디어학자인 옮긴이가 원서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사진과 그림, 그리고 100여 개의 역자주를 추가해서 미디어기호학의 입체성을 충분히 살려 냈다." 즉, 저자와 역자가 모두 미디어학자인 탓에 <기호학 입문>이 <미디어 기호학>으로 탈바꿈한 것. '영화. 텔레비전, 광고'가 활용되는 것은 설명의 용이함 때문이기도 할 텐데, 그것이 '미디어 기호학'으로 특화될 만한 성질의 것인지는 의문이다. 여하튼 드물게 눈에 띈 리뷰도 참조해보시길. 아래 사진은 저자 다니엘 챈들러.  

북데일리(06.12. 29) '분홍’은 남자, ‘파랑’은 여자의 색? 기호의 허구!

분홍색과 파란색, 이렇게 두 가지 색 곰 인형이 있다고 하자. 이를 여자와 남자 어린이에게 준다고 할 때, 어떤 색을 줄지 고민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분홍’이 ‘여성’을, ‘파랑’이 ‘남성’을 상징하는 자연스러운 기호로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상황은 반대였다고 한다. <미디어기호학>(소명출판. 2006)의 저자 대니얼 챈들러는, 책 서문에서 1918년에 발행된 미국 잡지에 실린 글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일반적 상식에 따르면 분홍은 남자아이를 위한 것이고, 파랑이 여자아이를 위한 것이다. 분홍은 파랑보다 더 과감하고 강렬한 색이기 때문에 남자에게 잘 어울린다. 반면에 파랑은 더 섬세하고 우아하기 때문에 여자아이들에게 잘 받는 색이다.”

현대인은 분홍색에서 자연스럽게 ‘여성스러움’을 연상하지만, 불과 80여 년 전에는 같은 색으로부터 강렬한 ‘남성성’을 발견했던 것. 저자는 “이처럼 자연스럽게 인식되는 기호의 허구성을 깨닫는 것은 인식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일깨운다”며 “바로 여기에 기호학의 목적이 있다”고 설명한다.

즉 <미디어기호학>은 기호학의 일반 이론을 다루고 있는 책. 영국 웨일스대학의 연극.영화.텔레비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미디어학자답게 미디어에 초점을 맞춰 기호학을 풀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 속 샷의 크기(카메라 거리)에는 ‘발화’의 기호가 숨어있다고 한다. 클로즈업(close-up)은 친밀하거나 개인적인 양식이고, 미디엄샷(medium shot)은 사회적 양식이며, 롱샷(long shot)은 비개인적인 양식이라고. 책은 이에 대해 “시각미디어가 재현하는 관찰자와 관찰 대상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관객의 감정적 개입을 이끌어 낼 수도 있고, 이와 반대로 무관심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해설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미디엄샷’은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흔히 유지하는 ‘사회적 거리’를 모방한다. 관객에게 부담 없이 접근하는 방법이다. 반면에 대상을 멀리서 잡은 ‘롱샷’은 낯선 사람들과의 관계를 모방함으로써, 관객의 무관심을 유도한다.

<미디어기호학>은 이외에도 문학, 미학, 심리학, 예술이론, 신화학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최대한 쉬운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 움베르토 에코의 학생 가운데 한 명이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지도교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는 편지를 저자에게 보냈을 정도다.

역자 강인규(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강사)가 추가한 사진과 그림, 100여 개의 역자주 역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06. 12. 31.

 

 

 

 

P.S. 기호학 입문서들에 대해서는 예전에 다룬 적이 있는 듯한데, 먼저 코블리의 만화책 <기호학>(김영사, 2002)과 존 피스크의 <커뮤니케이션학이란 무엇인가>(커뮤니케이션북스, 2001/2005)를 챈들러의 책과 함께 추천한다. 피스크의 책은 훌륭한 '커뮤니케이션학' 입문서이면서 동시에 '기호학 입문서'이기도 하다(기호학과 커뮤니케이션학의 차이는 전자가 '의미작용'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에 후자는 '의사소통'을 주된 관심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데 있다). 거기에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다른 책들이 보태질 수 있지만, '교재'로 적합한 것은 이 세 권이다(코블리의 책도 물론 수업용은 아니다). 절판된 책들 가운데는 테렌스 혹스의 <구조주의와 기호학>(을유문화사, 1987)이 조감도로서 뛰어나며, 이께가미의 <시학과 문화기호론>(한국문화사, 1994)도 훌륭하다.

 

 

 

 

물론 국내 저작들도 다수 출간돼 있다. 김경용의 <기호학이란 무엇인가>(민음사, 1994), 김운찬의 <현대 기호학과 문화분석>(열린책들, 2005) 등이 '교재'로 활용될 만하다. 거기에 기호학연대의 책들은 기호학의 유용한 쓰임들을 보여준다. 한국기호학회에서 출간하는 논문집들은 보다 전문적인 수준이다. 입문서 몇 권을 읽어보고 흥미를 갖게 된다면 자신의 구미에 맞는 책들을 더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알아둘 만한 기호학자들의 이름은 소쉬르(스위스)와 퍼스(미국), 그리고 롤랑 바르트와 그레마스(프랑스), 움베르토 에코(이탈리아)와 유리 로트만(러시아), 토마스 시벅(미국)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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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지구에서 인류가 사라지면?

오랜만에 '한겨레21'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눈에 띈 칼럼을 옮겨온다 제목이 '지구에서 인류가 사라지면?'이니까 '로자의 방주'라는 카테고리에 딱 맞는 테마이기도 하다. 필자는 저명한 과학칼럼니스트 김동광씨이다. 예전에 교양과학서 전문번역집단이었던 과학세대의 리더격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저술에도 주력하고 있는 듯하다(그와 함께 과학 저술가로서 기억해둘 만한 이름은 이인식씨이다). 그가 번역한 책들을 검색해보니 내가 갖고 있는 것만 해도 상당한 수에 달한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스티븐 제이 굴드나 스티븐 호킹의 책들이다. 국내에서도 굴드급의 과학 저술가가 나오기를 은근히 기대해본다(강조는 나의 것이다).

 

 

 

 

한겨레21(06. 10. 24) 지구에서 인류가 사라지면?

진화생물학자들은 생물의 기나긴 진화 과정에서 인류가 차지하는 위치를 밝혀내려고 노력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생물의 진화 과정을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했고, 단세포 생물에서 영장류에 이르는 과정을 일직선이나 계단처럼 매끄럽게 이어지는 단일한 경로로 간주하곤 했다. 인류의 탄생이 지극히 우연적인 과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생물 총회’가 열리면 인간은 퇴출 대상

그런데 인류가 등장한 세상은 그 이전에 견줘 너무나 크게 변화했다. 이제 인류가 등장하기 이전의 세계를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다.


△ 인간들이 생태계 깊숙이 들어가면서 자연의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의 해안에서 하마 떼가 떠내려가고 있다.(사진/ REUTERS)

그 변화는 대부분 부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됐다. 일부 추정에 따르면 인류는 자연이 만들어내는 생산성의 약 40%를 무단으로 징발해서 오로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한다고 한다. 상당 부분이 먹고사는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른바 생활 수준의 향상으로 인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화적 생활을 위해 들어가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와 물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로 인해 불과 100여 년 전과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쏟아낸다. 사람들이 도시를 짓고 농장을 만들면서 전유하고 있는 토지는 지구 전체 면적의 3분의 1에 이른다. 울창하던 숲과 지구의 허파이자 생물다양성의 보고로 알려진 열대우림도 이제는 간신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오대양의 주요 어장들 중 상당수는 이미 오래전에 어자원이 고갈됐다. 남획과 오염, 그리고 서식지 파괴로 생존 기로에 서 있는 생태계의 다른 구성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류는 터무니없는 탐욕과 횡포를 부리고 있는 셈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인류는 자신들끼리의 다툼으로 시시각각 생물권 전체의 존재 가능성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도박판을 벌이고 있다. 미국과 소련은 냉전 종식 이후 상당량의 핵무기를 해체하면서 핵으로 인한 절멸 가능성을 크게 줄이는 듯했지만 얼마 전부터 파키스탄 등이 다시 핵무장을 하면서 일촉즉발의 위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더구나 북한과 미국이 핵을 둘러싸고 마주 달리는 폭주족처럼 누가 끝까지 버티느냐를 가리는 ‘겁쟁이 경기’를 벌이면서 자칫 한반도가 재앙의 터전이 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핵으로 인한 재앙은 생물권 전체의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쯤 되면 유엔이 아니라 생물들의 대표가 한자리에 모여서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 고조를 생물권 전체의 위기로 간주하고 시급한 해결책을 논의하는 생물권 임시 총회가 열릴 법도 하다. 거기에서는 사람과 도롱뇽, 귀신고래, 들국화 그리고 미생물까지 모든 생물종이 똑같은 의결권을 가진다고 가정한다면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과연 어떤 결정이 내려질까? 진화의 역사에서 가장 늦게 무대에 등장해서 가장 빠른 시간 동안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온갖 포악과 전횡을 해대는 골치 아픈 막내둥이를 영원히 퇴출하기로 결론짓지 않겠는가? 사실 그런 결정이 나도 우리로서는 별로 할 말이 없는 셈이다.

인간이 퇴출되어 어느 먼 외계 행성에서 재교육을 받기 위해 강제 송환됐다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 <뉴사이언티스트> 최근호는 ‘사람이 없는 지구를 상상해보자’라는 특집 기사를 통해 지구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이 모두 사라졌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예측했다(*이 기사는 아래에 옮겨놓았다). 미국 샌타바버라에 있는 국립생태분석종합센터의 보전생물학자인 존 오록은 사람의 자취가 사라지는 순간 지구의 생태계는 즉각적으로 호전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한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변화로 밤하늘에서 인공 조명이 사라지고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 돌아오게 된다. 지구 전체의 18.7%가 인공 불빛에 오염됐다지만, 웬만한 도시 지역에서는 별을 보기 힘든 지경이다. 한동안 재생 가능 에너지를 이용하는 자동 전등들이 빛을 내더라도, 유지·관리가 되지 않기에 지구의 밤에서 문명의 불빛이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원전의 방사능 누출도 빨리 복원돼

건물들과 도로는 어떻게 될까? 오늘날의 건물은 약 60년, 교량은 120년, 댐은 250년가량 견딜 수 있게 설계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수치는 누군가가 유지·관리를 하고 벌어진 틈을 메워주는 등 수리와 보수를 해줄 때 지속될 수 있고, 아무도 돌보지 않으면 훨씬 빨리 무너진다. 체르노빌 사고로 사람들이 철수한 프리프야트시가 실례이다. 올해로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난 지 꼭 20년이 된 이 도시의 건물들은 이미 붕괴가 진행 중이다. 그리고 태풍, 홍수 등의 자연재해로 입는 손상이 누적되면서 훨씬 빨리 폐허로 변할 수 있다. 그렇지만 건물이나 도로의 잔해들, 특히 콘크리트와 돌로 된 구조물의 일부는 수천 년 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 지구촌의 약 19%가 인공 불빛에 오염됐다. 거대 건축물이 즐비한 이 지역은 인간이 사라진 상태에션 느리게 복구 될 수 밖에 없다(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현재 가동 중인 원자력 발전소는 어떻게 될까? 핵폐기물 관리 전문가인 로드니 윙은 원자력발전소를 유지·관리하던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사라지면 냉각수가 증발하고 결굴 원자로가 녹아내리는 참사가 빚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로 인해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누출된다. 그렇지만 자연의 복원력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고 한다. 체르노빌의 경우에도 사람들이 철수한 뒤, 몇 년 만에 생태계가 복원되기 시작해서 현재는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늑대까지 번성하고 있다.

생태계의 복원 속도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온난하고 습윤한 지역은 추운 지역에 비해 복원이 빠르게 진행된다. 사람의 토지 이용을 연구하는 생태학자 브래드 스텔폭스가 캐나다 지역을 대상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숲은 약 50년이 지나면 전 지역의 80%를 덮고, 200년 뒤에는 95%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반면 벼나 밀처럼 단일 품종이 경작되던 지역이 자연 상태로 돌아가기까지는 수세기가 걸릴 것이라고 한다. 보전생태학자들은 일부 지역의 경우 사람이 사라져도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가축이나 애완동물의 운명은? 일부는 그 선조였던 야생동물의 상태로 돌아가겠지만, 오랜 세월에 걸친 인위 선택의 결과로 스스로 먹이를 찾거나 번식한 능력을 상실한 동물들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미국 환경보호국의 제이 라이히맨은 “사람이 사라진 들판에 푸들이 떼를 지어 달릴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고는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유전자조작(GM) 작물들은 어떻게 될까? 일부는 야생종으로 살아남겠지만, 제초제 내성을 갖도록 조작된 식물들은 제초제가 없는 상황에서 경쟁종에 비해 유리할 것이 없기 때문에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사람이 사라지면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동물들이 다시 번성할 수 있을까? 서식지 파괴가 멸종의 큰 원인이기 때문에 상황이 나아질 수 있지만, 일부 종은 이미 개체 수가 더 이상 복원될 수 없는 정도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크게 상황이 나아지기 힘들 전망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명맥을 유지하던 멸종위기종 가운데 상당수는 사람이 사라지면서 더 빨리 자취를 감출 수도 있다. 그 원죄는 인간에게 있지만 사람들을 그리워할 생물종은 이들이 유일한 셈이다.

대기과학자인 수잔 솔로몬은 화석연료 사용 등으로 대기 중에 방출된 이산화탄소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은 1천 년 이상 계속되고, 남아 있는 과잉의 이산화탄소를 바다가 모두 흡수하기까지는 2만 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모든 요소들을 종합해서 지구상에서 인류가 남겼던 자취가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10만 년으로 예측된다. 먼 외계의 방문자가 지구를 찾아와 겉으로만 훑어본다면 어떤 문명의 흔적도 찾지 못할 것이다.

기후변화, 핵전쟁보다 무섭다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생각되는 인류 문명이 사라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며, 지배적인 종으로 군림하던 인간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도 지구와 생물권이 운행되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다. 오히려 피폐해지던 생태계는 즉각 복원 작업을 시작하고, 그 누구도 인간을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생태학자들은 핵전쟁보다 더 심각한 위기가 갑작스런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생태계의 교란이라고 주장한다. 요즘 한반도는 들어보지도 못한 가을 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핵위기에 떠밀려 하찮은 현상으로 치부되지만, 어쩌면 우리를 더 낯선 상황으로 몰아갈 전조일지도 모르지 않은가.(김동광 과학저술가·고려대 강사)

Cover of  issue of New Scientist magazine 

Imagine Earth without people

  • Bob Holmes
  • Humans are undoubtedly the most dominant species the Earth has ever known. In just a few thousand years we have swallowed up more than a third of the planet's land for our cities, farmland and pastures. By some estimates, we now commandeer 40 per cent of all its productivity. And we're leaving quite a mess behind: ploughed-up prairies, razed forests, drained aquifers, nuclear waste, chemical pollution, invasive species, mass extinctions and now the looming spectre of climate change. If they could, the other species we share Earth with would surely vote us off the planet.

    15,589 Number of species threatened with extinction

    Now just suppose they got their wish. Imagine that all the people on Earth - all 6.5 billion of us and counting - could be spirited away tomorrow, transported to a re-education camp in a far-off galaxy. (Let's not invoke the mother of all plagues to wipe us out, if only to avoid complications from all the corpses). Left once more to its own devices, Nature would begin to reclaim the planet, as fields and pastures reverted to prairies and forest, the air and water cleansed themselves of pollutants, and roads and cities crumbled back to dust.

    "The sad truth is, once the humans get out of the picture, the outlook starts to get a lot better," says John Orrock, a conservation biologist at the National Center for Ecological Analysis and Synthesis in Santa Barbara, California. But would the footprint of humanity ever fade away completely, or have we so altered the Earth that even a million years from now a visitor would know that an industrial society once ruled the planet?

    9.7 Average eco-footprint of a US citizen, in hectares

    If tomorrow dawns without humans, even from orbit the change will be evident almost immediately, as the blaze of artificial light that brightens the night begins to wink out. Indeed, there are few better ways to grasp just how utterly we dominate the surface of the Earth than to look at the distribution of artificial illumination (see Graphic). By some estimates, 85 per cent of the night sky above the European Union is light-polluted; in the US it is 62 per cent and in Japan 98.5 per cent. In some countries, including Germany, Austria, Belgium and the Netherlands, there is no longer any night sky untainted by light pollution.

    18.7 Percentage of Earth's surface affected by light pollution

    "Pretty quickly - 24, maybe 48 hours - you'd start to see blackouts because of the lack of fuel added to power stations," says Gordon Masterton, president of the UK's Institution of Civil Engineers in London. Renewable sources such as wind turbines and solar will keep a few automatic lights burning, but lack of maintenance of the distribution grid will scuttle these in weeks or months. The loss of electricity will also quickly silence water pumps, sewage treatment plants and all the other machinery of modern society.

    The same lack of maintenance will spell an early demise for buildings, roads, bridges and other structures. Though modern buildings are typically engineered to last 60 years, bridges 120 years and dams 250, these lifespans assume someone will keep them clean, fix minor leaks and correct problems with foundations. Without people to do these seemingly minor chores, things go downhill quickly.

    The best illustration of this is the city of Pripyat near Chernobyl in Ukraine, which was abandoned after the nuclear disaster 20 years ago and remains deserted. "From a distance, you would still believe that Pripyat is a living city, but the buildings are slowly decaying," says Ronald Chesser, an environmental biologist at Texas Tech University in Lubbock who has worked extensively in the exclusion zone around Chernobyl. "The most pervasive thing you see are plants whose root systems get into the concrete and behind the bricks and into doorframes and so forth, and are rapidly breaking up the structure. You wouldn't think, as you walk around your house every day, that we have a big impact on keeping that from happening, but clearly we do. It's really sobering to see how the plant community invades every nook and cranny of a city."

    With no one to make repairs, every storm, flood and frosty night gnaws away at abandoned buildings, and within a few decades roofs will begin to fall in and buildings collapse. This has already begun to happen in Pripyat. Wood-framed houses and other smaller structures, which are built to laxer standards, will be the first to go. Next down may be the glassy, soaring structures that tend to win acclaim these days. "The elegant suspension bridges, the lightweight forms, these are the kinds of structures that would be more vulnerable," says Masterton. "There's less reserve of strength built into the design, unlike solid masonry buildings and those using arches and vaults."

    But even though buildings will crumble, their ruins - especially those made of stone or concrete - are likely to last thousands of years. "We still have records of civilisations that are 3000 years old," notes Masterton. "For many thousands of years there would still be some signs of the civilisations that we created. It's going to take a long time for a concrete road to disappear. It might be severely crumbling in many places, but it'll take a long time to become invisible."

    The lack of maintenance will have especially dramatic effects at the 430 or so nuclear power plants now operating worldwide. Nuclear waste already consigned to long-term storage in air-cooled metal and concrete casks should be fine, since the containers are designed to survive thousands of years of neglect, by which time their radioactivity - mostly in the form of caesium-137 and strontium-90 - will have dropped a thousandfold, says Rodney Ewing, a geologist at the University of Michigan who specialises in radioactive waste management. Active reactors will not fare so well. As cooling water evaporates or leaks away, reactor cores are likely to catch fire or melt down, releasing large amounts of radiation. The effects of such releases, however, may be less dire than most people suppose.

    The area around Chernobyl has revealed just how fast nature can bounce back. "I really expected to see a nuclear desert there," says Chesser. "I was quite surprised. When you enter into the exclusion zone, it's a very thriving ecosystem."

    The first few years after people evacuated the zone, rats and house mice flourished, and packs of feral dogs roamed the area despite efforts to exterminate them. But the heyday of these vermin proved to be short-lived, and already the native fauna has begun to take over. Wild boar are 10 to 15 times as common within the Chernobyl exclusion zone as outside it, and big predators are making a spectacular comeback. "I've never seen a wolf in the Ukraine outside the exclusion zone. I've seen many of them inside," says Chesser.

    The same should be true for most other ecosystems once people disappear, though recovery rates will vary. Warmer, moister regions, where ecosystem processes tend to run more quickly in any case, will bounce back more quickly than cooler, more arid ones. Not surprisingly, areas still rich in native species will recover faster than more severely altered systems. In the boreal forests of northern Alberta, Canada, for example, human impact mostly consists of access roads, pipelines, andother narrow strips cut through the forest. In the absence of human activity, the forest will close over 80 per cent of these within 50 years, and all but 5 per cent within 200, according to simulations by Brad Stelfox, an independent land-use ecologist based in Bragg Creek, Alberta.

    In contrast, places where native forests have been replaced by plantations of a single tree species may take several generations of trees - several centuries - to work their way back to a natural state. The vast expanses of rice, wheat and maize that cover the world's grain belts may also take quite some time to revert to mostly native species.

    At the extreme, some ecosystems may never return to the way they were before humans interfered, because they have become locked into a new "stable state" that resists returning to the original. In Hawaii, for example, introduced grasses now generate frequent wildfires that would prevent native forests from re-establishing themselves even if given free rein, says David Wilcove, a conservation biologist at Princeton University.

    Feral descendants of domestic animals and plants, too, are likely to become permanent additions in many ecosystems, just as wild horses and feral pigs already have in some places. Highly domesticated species such as cattle, dogs and wheat, the products of centuries of artificial selection and inbreeding, will probably evolve back towards hardier, less specialised forms through random breeding. "If man disappears tomorrow, do you expect to see herds of poodles roaming the plains?" asks Chesser. Almost certainly not - but hardy mongrels will probably do just fine. Even cattle and other livestock, bred for meat or milk rather than hardiness, are likely to persist, though in much fewer numbers than today.

    3.3bn Global population of cattle, sheep and goats

    What about genetically modified crops? In August, Jay Reichman and colleagues at the US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s labs in Corvallis, Oregon, reported that a GM version of a perennial called creeping bentgrass had established itself in the wild after escaping from an experimental plot in Oregon. Like most GM crops, however, the bentgrass is engineered to be resistant to a pesticide, which comes at a metabolic cost to the organism, so in the absence of spraying it will be at a disadvantage and will probably die out too.

    Nor will our absence mean a reprieve for every species teetering on the brink of extinction. Biologists estimate that habitat loss is pivotal in about 85 per cent of cases where US species become endangered, so most such species will benefit once habitats begin to rebound. However, species in the direst straits may have already passed some critical threshold below which they lack the genetic diversity or the ecological critical mass they need to recover. These "dead species walking" - cheetahs and California condors, for example - are likely to slip away regardless.

    784 Number of species that have gone extinct in the wild since 1500 AD

    Other causes of species becoming endangered may be harder to reverse than habitat loss. For example, about half of all endangered species are in trouble at least partly because of predation or competition from invasive introduced species. Some of these introduced species - house sparrows, for example, which are native to Eurasia but now dominate many cities in North America - will dwindle away once the gardens and bird feeders of suburban civilisation vanish. Others though, such as rabbits in Australia and cheat grass in the American west, do not need human help and will likely be around for the long haul and continue to edge out imperilled native species.

    388 Number of species listed on the invasive species database

    Ironically, a few endangered species - those charismatic enough to have attracted serious help from conservationists - will actually fare worse with people no longer around to protect them. Kirtland's warbler - one of the rarest birds in North America, once down to just a few hundred birds - suffers not only because of habitat loss near its Great Lakes breeding grounds but also thanks to brown-headed cowbirds, which lay their eggs in the warblers' nests and trick them into raising cowbird chicks instead of their own. Thanks to an aggressive programme to trap cowbirds, warbler numbers have rebounded, but once people disappear, the warblers could be in trouble, says Wilcove.

    On the whole, though, a humanless Earth will likely be a safer place for threatened biodiversity. "I would expect the number of species that benefit to significantly exceed the number that suffer, at least globally," Wilcove says.

    On the rebound

    In the oceans, too, fish populations will gradually recover from drastic overfishing. The last time fishing more or less stopped - during the second world war, when few fishing vessels ventured far from port - cod populations in the North Sea skyrocketed. Today, however, populations of cod and other economically important fish have slumped much further than they did in the 1930s, and recovery may take significantly longer than five or so years.

    The problem is that there are now so few cod and other large predatory fish that they can no longer keep populations of smaller fish such as gurnards in check. Instead, the smaller fish turn the tables and outcompete or eat tiny juvenile cod, thus keeping their erstwhile predators in check. The problem will only get worse in the first few years after fishing ceases, as populations of smaller, faster-breeding fish flourish like weeds in an abandoned field. Eventually, though, in the absence of fishing, enough large predators will reach maturity to restore the normal balance. Such a transition might take anywhere from a few years to a few decades, says Daniel Pauly, a fisheries biologist at the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in Vancouver.

    With trawlers no longer churning up nutrients from the ocean floor, near-shore ecosystems will return to a relatively nutrient-poor state. This will be most apparent as a drop in the frequency of harmful algal blooms such as the red tides that often plague coastal areas today. Meanwhile, the tall, graceful corals and other bottom-dwelling organisms on deep-water reefs will gradually begin to regrow, restoring complex three-dimensional structure to ocean-floor habitats that are now largely flattened, featureless wastelands.

    Long before any of this, however - in fact, the instant humans vanish from the Earth - pollutants will cease spewing from automobile tailpipes and the smokestacks and waste outlets of our factories. What happens next will depend on the chemistry of each particular pollutant. A few, such as oxides of nitrogen and sulphur and ozone (the ground-level pollutant, not the protective layer high in the stratosphere), will wash out of the atmosphere in a matter of a few weeks. Others, such as chlorofluorocarbons, dioxins and the pesticide DDT, take longer to break down. Some will last a few decades.

    The excess nitrates and phosphates that can turn lakes and rivers into algae-choked soups will also clear away within a few decades, at least for surface waters. A little excess nitrate may persist for much longer within groundwater, where it is less subject to microbial conversion into atmospheric nitrogen. "Groundwater is the long-term memory in the system," says Kenneth Potter, a hydrologist at the University of Wisconsin at Madison.

    Carbon dioxide, the biggest worry in today's world because of its leading role in global warming, will have a more complex fate. Most of the CO2 emitted from burning fossil fuels is eventually absorbed into the ocean. This happens relatively quickly for surface waters - just a few decades - but the ocean depths will take about a thousand years to soak up their full share. Even when that equilibrium has been reached, though, about 15 per cent of the CO2 from burning fossil fuels will remain in the atmosphere, leaving its concentration at about 300 parts per million compared with pre-industrial levels of 280 ppm. "There will be CO2 left in the atmosphere, continuing to influence the climate, more than 1000 years after humans stop emitting it," says Susan Solomon, an atmospheric chemist with the US 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 (NOAA) in Boulder, Colorado. Eventually calcium ions released from sea-bottom sediments will allow the sea to mop up the remaining excess over the next 20, 000 years or so.

    Even if CO2 emissions stop tomorrow, though, global warming will continue for another century, boosting average temperatures by a further few tenths of a degree. Atmospheric scientists call this "committed warming", and it happens because the oceans take so long to warm up compared with the atmosphere. In essence, the oceans are acting as a giant air conditioner, keeping the atmosphere cooler than it would otherwise be for the present level of CO2. Most policy-makers fail to take this committed warming into account, says Gerald Meehl, a climate modeller at the National Center for Atmospheric Research, also in Boulder. "They think if it gets bad enough we'll just put the brakes on, but we can't just stop and expect everything to be OK, because we're already committed to this warming."

    That extra warming we have already ordered lends some uncertainty to the fate of another important greenhouse gas, methane, which produces about 20 per cent of our current global warming. Methane's chemical lifetime in the atmosphere is only about 10 years, so its concentration could rapidly return to pre-industrial levels if emissions cease. The wild card, though, is that there are massive reserves of methane in the form of methane hydrates on the sea floor and frozen into permafrost. Further temperature rises may destabilise these reserves and dump much of the methane into the atmosphere. "We may stop emitting methane ourselves, but we may already have triggered climate change to the point where methane may be released through other processes that we have no control over," says Pieter Tans, an atmospheric scientist at NOAA in Boulder.

    No one knows how close the Earth is to that threshold. "We don't notice it yet in our global measurement network, but there is local evidence that there is some destabilisation going on of permafrost soils, and methane is being released," says Tans. Solomon, on the other hand, sees little evidence that a sharp global threshold is near.

    All things considered, it will only take a few tens of thousands of years at most before almost every trace of our present dominance has vanished completely. Alien visitors coming to Earth 100,000 years hence will find no obvious signs that an advanced civilisation ever lived here.

    Yet if the aliens had good enough scientific tools they could still find a few hints of our presence. For a start, the fossil record would show a mass extinction centred on the present day, including the sudden disappearance of large mammals across North America at the end of the last ice age. A little digging might also turn up intriguing signs of a long-lost intelligent civilisation, such as dense concentrations of skeletons of a large bipedal ape, clearly deliberately buried, some with gold teeth or grave goods such as jewellery.

    And if the visitors chanced across one of today's landfills, they might still find fragments of glass and plastic - and maybe even paper - to bear witness to our presence. "I would virtually guarantee that there would be some," says William Rathje, an archaeologist at Stanford University in California who has excavated many landfills. "The preservation of things is really pretty amazing. We think of artefacts as being so impermanent, but in certain cases things are going to last a long time."

    Ocean sediment cores will show a brief period during which massive amounts of heavy metals such as mercury were deposited, a relic of our fleeting industrial society. The same sediment band will also show a concentration of radioactive isotopes left by reactor meltdowns after our disappearance. The atmosphere will bear traces of a few gases that don't occur in nature, especially perfluorocarbons such as CF4, which have a half-life of tens of thousands of years. Finally a brief, century-long pulse of radio waves will forever radiate out across the galaxy and beyond, proof - for anything that cares and is able to listen - that we once had something to say and a way to say it.

    But these will be flimsy souvenirs, almost pathetic reminders of a civilisation that once thought itself the pinnacle of achievement. Within a few million years, erosion and possibly another ice age or two will have obliterated most of even these faint traces. If another intelligent species ever evolves on the Earth - and that is by no means certain, given how long life flourished before we came along - it may well have no inkling that we were ever here save for a few peculiar fossils and ossified relics. The humbling - and perversely comforting - reality is that the Earth will forget us remarkably quickly.(From issue 2573 of New Scientist magazine, 12 October 2006, page 36-41)

    06.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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