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가장 쉬운 기호학 입문서

다니얼 챈들러의 온라인 기호학 입문서 <초보자를 위한 기호학(Semiotics for Beginners)>이 번역돼 나왔다. <미디어 기호학>(소명출판, 2006)이 그것이다. 책이 나온 건 좀 됐는데, 소개를 하려고 해도 마땅한 리뷰가 그간에 눈에 띄지 않았다. 마침 북데일리에서 이 책을 다루고 있어서 겸사겸사 옮겨놓는다.

소개에 따르면 책은 "웨일스대학 연극/영화/텔레비전학과 교수인 대니얼 챈들러가 1994년에 처음 인터넷에 공개해 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받은 '기호학 입문(Semiotics for Beginners)'이 교정을 거듭한 후 책으로 발행되었다." 아래의 책이 그것인데, 나는 한때 문화기호학 강의를 준비하느라 온라인에 떠 있던 텍스트를 다 프린트했었고, 책으로 묶여 나온 것도 (교보에선가) 눈에 띄길래 구입했었다. 말 그대로 '초보자용'이어서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교재로서는 유용하지 않나 싶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기표'니 '기의'니 하는 말만 들어도 멀미를 하는 게 강의실의 현실이기 때문에.

국역본의 제목은 특이하게도 '미디어 기호학'이라고 붙여졌다. 좀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미디어'가 그렇게 어필하는 것인지?). 소개를 더 읽어보면, "기호학의 일반 이론을 쉽게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졌으나 미디어 학자가 '미디어 교육' 수업으로 쓴 교재이기 때문에 영화. 텔레비전, 광고 등의 미디어에 초점을 두고 있다. 여기에 미디어학자인 옮긴이가 원서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사진과 그림, 그리고 100여 개의 역자주를 추가해서 미디어기호학의 입체성을 충분히 살려 냈다." 즉, 저자와 역자가 모두 미디어학자인 탓에 <기호학 입문>이 <미디어 기호학>으로 탈바꿈한 것. '영화. 텔레비전, 광고'가 활용되는 것은 설명의 용이함 때문이기도 할 텐데, 그것이 '미디어 기호학'으로 특화될 만한 성질의 것인지는 의문이다. 여하튼 드물게 눈에 띈 리뷰도 참조해보시길. 아래 사진은 저자 다니엘 챈들러.  

북데일리(06.12. 29) '분홍’은 남자, ‘파랑’은 여자의 색? 기호의 허구!

분홍색과 파란색, 이렇게 두 가지 색 곰 인형이 있다고 하자. 이를 여자와 남자 어린이에게 준다고 할 때, 어떤 색을 줄지 고민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분홍’이 ‘여성’을, ‘파랑’이 ‘남성’을 상징하는 자연스러운 기호로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상황은 반대였다고 한다. <미디어기호학>(소명출판. 2006)의 저자 대니얼 챈들러는, 책 서문에서 1918년에 발행된 미국 잡지에 실린 글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일반적 상식에 따르면 분홍은 남자아이를 위한 것이고, 파랑이 여자아이를 위한 것이다. 분홍은 파랑보다 더 과감하고 강렬한 색이기 때문에 남자에게 잘 어울린다. 반면에 파랑은 더 섬세하고 우아하기 때문에 여자아이들에게 잘 받는 색이다.”

현대인은 분홍색에서 자연스럽게 ‘여성스러움’을 연상하지만, 불과 80여 년 전에는 같은 색으로부터 강렬한 ‘남성성’을 발견했던 것. 저자는 “이처럼 자연스럽게 인식되는 기호의 허구성을 깨닫는 것은 인식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일깨운다”며 “바로 여기에 기호학의 목적이 있다”고 설명한다.

즉 <미디어기호학>은 기호학의 일반 이론을 다루고 있는 책. 영국 웨일스대학의 연극.영화.텔레비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미디어학자답게 미디어에 초점을 맞춰 기호학을 풀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 속 샷의 크기(카메라 거리)에는 ‘발화’의 기호가 숨어있다고 한다. 클로즈업(close-up)은 친밀하거나 개인적인 양식이고, 미디엄샷(medium shot)은 사회적 양식이며, 롱샷(long shot)은 비개인적인 양식이라고. 책은 이에 대해 “시각미디어가 재현하는 관찰자와 관찰 대상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관객의 감정적 개입을 이끌어 낼 수도 있고, 이와 반대로 무관심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해설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미디엄샷’은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흔히 유지하는 ‘사회적 거리’를 모방한다. 관객에게 부담 없이 접근하는 방법이다. 반면에 대상을 멀리서 잡은 ‘롱샷’은 낯선 사람들과의 관계를 모방함으로써, 관객의 무관심을 유도한다.

<미디어기호학>은 이외에도 문학, 미학, 심리학, 예술이론, 신화학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최대한 쉬운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 움베르토 에코의 학생 가운데 한 명이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지도교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는 편지를 저자에게 보냈을 정도다.

역자 강인규(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강사)가 추가한 사진과 그림, 100여 개의 역자주 역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06. 12. 31.

 

 

 

 

P.S. 기호학 입문서들에 대해서는 예전에 다룬 적이 있는 듯한데, 먼저 코블리의 만화책 <기호학>(김영사, 2002)과 존 피스크의 <커뮤니케이션학이란 무엇인가>(커뮤니케이션북스, 2001/2005)를 챈들러의 책과 함께 추천한다. 피스크의 책은 훌륭한 '커뮤니케이션학' 입문서이면서 동시에 '기호학 입문서'이기도 하다(기호학과 커뮤니케이션학의 차이는 전자가 '의미작용'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에 후자는 '의사소통'을 주된 관심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데 있다). 거기에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다른 책들이 보태질 수 있지만, '교재'로 적합한 것은 이 세 권이다(코블리의 책도 물론 수업용은 아니다). 절판된 책들 가운데는 테렌스 혹스의 <구조주의와 기호학>(을유문화사, 1987)이 조감도로서 뛰어나며, 이께가미의 <시학과 문화기호론>(한국문화사, 1994)도 훌륭하다.

 

 

 

 

물론 국내 저작들도 다수 출간돼 있다. 김경용의 <기호학이란 무엇인가>(민음사, 1994), 김운찬의 <현대 기호학과 문화분석>(열린책들, 2005) 등이 '교재'로 활용될 만하다. 거기에 기호학연대의 책들은 기호학의 유용한 쓰임들을 보여준다. 한국기호학회에서 출간하는 논문집들은 보다 전문적인 수준이다. 입문서 몇 권을 읽어보고 흥미를 갖게 된다면 자신의 구미에 맞는 책들을 더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알아둘 만한 기호학자들의 이름은 소쉬르(스위스)와 퍼스(미국), 그리고 롤랑 바르트와 그레마스(프랑스), 움베르토 에코(이탈리아)와 유리 로트만(러시아), 토마스 시벅(미국)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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