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쇠망사 세트 - 전6권 로마제국쇠망사
에드워드 기번 지음, 송은주 외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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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는 11권부터 시작되는 그녀 자신만의 로마제국쇠망사에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자주 언급한다. 그러나 15권에서 종극에 이르는 그녀의 로마인이야기에서 비잔틴 제국은 지나가는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기타 시오노 여사의 르네상스 저작에서도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제외하고는 모두 간략한 언급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로마인이야기로 서양사에 입문했기에 그 후예이자 감질나게 언급되다마는 로마제국 이후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기번의 쇠망사외에도 노리치의 연대기 등 몇 가지 책을 통해 비잔틴 제국의 역사에 대해 미리 접해 보았다. 로마제국의 후예, 거대하고 야만적인 이슬람 문명에 삼겨진 비애의 콘스탄티노플 정도의 선입견은 선입견일 뿐이었다. 그 책들의 결론은 한결같다. 비잔틴제국은 망할만 하니 망했을 뿐.  

익히 알려진 대로 기번의 말솜씨는 대단하다. 번역판 기준 6권 4000 페이지의 두꺼운 원전이 재미있게까지 느껴진다는 것으로 설명이 될 듯하다. 로마제국 쇠망사의 진수라는 무수한 주들도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시오노 나나미 덕에 접한 기번이었지만, 기번의 대단함을 안 만큼 시오노 나나미에 대한 실망도 컸다. 로마인 이야기의 후반부는 거의 로마제국 쇠망사 요약본이라고 할 정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심지어 거의 같은 문장까지 있는 것에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읽은 기독교의 대두와 야만족의 침입, 경제력의 쇠퇴 및 시민들의 퇴폐가 쇠퇴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큰 차이가 없다(뭐, 따왔으니...)     

로마제국 쇠망사는 로마제국과 그 후계자인 비잔틴 제국을 중심으로 서술되어있지만, 결코 그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서로마제국의 판도였던 서유럽에서 프랑크 제국의 발흥부터 르네상스 문예부흥기까지, 그들의 정치, 문화, 종교에 대하여도 상세한 서술이 곁들여 진다. 또 과거 비잔틴 제국의 영역이었지만 상실되버린 시리아와 이집트, 아프리카의 이슬람 문명에 대하여도 균형감을 가지고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나중에는 징기스칸과 중국문명에 대한 일부 서술도 볼 수 있다. 

중세에서 종교를 빼놓는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더욱이 종교에 그들의 모든 열정을 바친 비잔틴인들이 주인공임에야. 기독교와 이슬람 천년 동안의 모든 종파와 역사가 다루는 것이 곧 중세의 역사임에는 틀림었다지만 종교에 관한 서술에서는 지겨움을 참을 수 없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기번역시 비잔틴 제국에 대해 앞의 작가들과 마찬가지의 시각을 공유한다. 즉, 비잔틴 제국은 멸망하는 게 당연했다는 것. 나약하고, 음험하며, 사치스러운데다, 광신적인 기독교만을 신봉한 그들은 그저 로마제국의 유산을 좀먹어가며 콘스탄티노플 함락의 그날까지 구차하게 살아왔다는 것. 유스티아누스, 바실리우스, 헤라클레오스의 영광도 그저 쇠퇴의 과정에 불과했다. 천년제국을 부흥시키기 위한 잠시 동안의 노력들은 비잔틴인 다운 다음의 경멸스러운 황제에 의해 제자리 걸음 내지는 퇴보를 거듭했다. 로마제국 쇠퇴기 200년 가량에 3권을 할애한데 반해, 비잔티움 1000년에 후반부 3권을 할애한 것을 본다면 기번이 생각하는 비잔틴 제국의 비중을 쉽게 알 수 있을 듯하다. 미국인디언들에게 미국인들은 그들이 미국을 지배하고 인디언을 밀어내는 것은 신이 예정한 자명한 운명이라고 했다고 했던가? 기번 역시 비잔틴 제국의 쇠퇴와 멸망은 자명한 운명이라 결론짓는듯 하다.

경멸스러운 그리스 국가에 대하여도 서양인들은 로마제국의 정통 계승자라는 것에 대한 희미한 향수를 품은 듯하다.  반지의 제왕에서 오크떼에 둘러쌓여 함락의 위기에 놓이는 인간계 최고의 요새 미나스 티리스는 콘스탄티노플의 오마쥬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에는 아라곤도, 간달프도 없었다. 그외에도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이라는 가정으로 쓰여진 많은 팩션이 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비잔틴 제국의 쇠망은 그만큼 로마제국의 위대함을 돋보이게 한다. 비잔틴 제국보다 훨씬 넓은 판도를 가지면서도 전세계에 패권을 자랑했던 로마와, 시종일관 시들어가는 비잔틴 제국만큼 극명한 대조가 또 있을까.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랬다. 로마제국의 부흥과 쇠퇴, 비잔틴 제국의 자명한 운명에서 우리나라의 진로, 미국과 중국의 미래에 대해 조그만한 상상을 해보는 것도 시사점 있는 일이겠다.  (이제 기번도 나와주었겠다, 이왕이면 몸젠의 저작도 번역해주면 정말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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