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메론 밀레니엄 북스 61
보카치오 지음, 허인 옮김 / 신원문화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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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상스 이탈리아 애호'는 미술에서 문학으로도 번졌다. 그 쓴 약 신곡도, 물을 한 움큼 마시고 억지로 삼켰다.(사실 제법 재미있었지만.) 응당 다음에 삼켜야 할  것은 신곡과 나란히 인곡이라 불리는 데카메론. 그나마 신곡은 저명도라도 있어 허영심으로라도 읽었다. 데카메론은 그러한 보람이랄까 허영을 충족시킬 것도 없어 오랬동안 구석에 쳐박아두어 책표지에 먼지가 한 가득 쌓여있었다. 결국 내 돈 주고 산 책이요, 신곡도 읽었는데 인곡을 안 읽어야 쓰나 하는 의무감으로 억지로 읽기 시작했다.

 작은 울면서 억지로 했으나, 금새 푹 빠져 너무도 즐겁게 읽었다. 데카메론에는 재치가 번뜩인다. 기막힌 경구하며, 유쾌한 결말에서는 르네상스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물씬 묻어난다. 근엄한 체하는 수도사들이며, 엄격한 남편들,배신한 정부, 제 멍청한 줄 모르는 악인들이 당하는 꼴이 과관이요 그 꼴을 보아하니 웃음을 참을 수 없다.

데카메론의 거의 전부가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고, 게중 7,8할은 남편있는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는 얘기다. 불륜을 저지른 아내가 징벌을 받는 권선징악 얘기는 극 소수에 불과하다. 나머지 전부는 되려 남편은 바보가 되고, 부인은 훌륭한 재치로 불륜도 안 들키고, 남편을 바보로 만든 후 대놓고 정부와 재미(?)를 본다. 몇 번 절정을 맛봤느니, 절구질이니 하는 단어가 빈번히 등장하니, 이렇게 훌륭한 소설이 있나!(^^;;) 보카치오는 이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오, 실은 이것도 좀 고치고 뺀 것이요,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는 이런 걸 봐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고 있다. 역자도 색정 소설이라 욕할게 아니라 자유로운 르네상스 정신의 표출에 주목해달라지만, 내게는......

데카메론에 수록된 100가지 이야기 중에는 의외로 아는 얘기들이 많았다. 종교갈등에 대한 놀라운 해답이 담긴 '3개의 반지' 는 신문지 상에서 제법 많이 인용된 듯하다. '악마와 지옥' 얘기는 각색되어 내 중학 시절 음담 패설 레퍼토리에 자주 올랐던 얘기고, '한 쪽 다리 밖에 없는 학' 얘기는 초등학교 3년 때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었던 희곡의 원작이었다. 데카메론에서 내가 알던 얘기들의 원전을 발견하는 것은 놀랍고 한편으로 흥미진진했다. 또 어떤 얘기들의 원작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하고 데카메론을 읽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였다.

 '신원 출판사'라는 마이너 출판사 판본이라 적지 않게 염려했건만, 매끄러운 번역으로 읽기가 용이했다. 필요한 부분마다 역주가 달려 있는 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데카메론을 읽겠다면 이 판본을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기발한 재치와 유쾌함, 자유분방한 연애와 사랑 이야기, 부담없이 재미있는 단편들. 과연 인곡이라는 별칭이 딱이다. 오늘 날까지 찬양받는 신곡과 데카메론은 저명도에서 비교가 안된다. 그래도 내겐 근엄한 신곡 보다 인곡이 훨씬 좋았다. 르네상스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가슴으로 느꼈다.

이제 데카메론을 읽어 이탈리아에 가야되는 동기가 하나 더 늘어버렸으니, 이탈리아 행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모양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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