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과 기억 대우고전총서 17
앙리 베르그손 지음, 박종원 옮김 / 아카넷 / 200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뷰라기 보다는 개인적 감상에 불과하다. 형편없고 저열한 이해를 알면서도 굳이 글을 쓰고 공개하는 것은 여느 때 처럼 남들 읽기 어려운 원저 한 번 읽었다는 썩은 허영과 보람 탓이다.

베르그송은 프루스트 탓에 읽었다. 프루스트의 명작 '잃어버린 시간을'은 '베르그송적 소설' 이라고 불렸다. 프루스트 자신도 베르그송의 철학에 몰두했으며, 베르그송과 프루스트는 외가쪽으로 먼 친척이기도 했다.

 질과 기억을 읽으며 '이미지 기억'을 알았다. 반복되는 작업으로 각인되는 학습, 습관 기억과는 다른, 단 한 번의 직관, 느낌, 감각.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마치 지금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기억. 잃어버린 시간에서 마들렌 과자를 먹은 후에 돌연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 포석에 발가락을 부딫치고 떠오르는 기억은 모두 이 '이미지 기억'에 속하는 셈이다. 적어도 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이 베르그송적 소설이라고 불리는 지 알게 됐으니 이걸로 만족인가?

근대 이래 인식철학이 철학의 주류가 되었다. 실재론과 관념론으로 투박하게 나눌 수 있는 인식 철학에서 물질과 기억은 매우 독특하다. 사물은 내 관념에서 나온 것도 아니요, 모든 사물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이 우주도, 나의 뇌도, 관념도 모두 '이미지'요 이 이미지의 운동으로 내 기억과 식별이 가능하다. 관념론과 실재론의 상호 모순 문제도 베르그송의 이미지와 운동의 우주에서는 모순 없이 통일되니, 정말 천재적인 발상이다.

 저를 읽었을 때 보다 황수영의 개설서에서 더 많은 것을 얻었고, 그 찌꺼기 감상으로 겨우겨우 원저를 읽어냈다. 리뷰를 읽어보니 저열한 이해가 더욱 부끄럽다. 언젠가 다시 읽어, 읽었다는 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리뷰를 써야지. 비단 의무감 탓이 아니더라도, 너무도 독창적인 베르그송의 철학세계가 주는 흥미와 자극 탓에 물질과 기억은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싶은 드문 원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