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관의 살인 1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지간한 추리 팬이라면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를 알고 있었을 터이고, 이번의 '암흑관' 출간 소식에 가슴 설레여 했을 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1500p에 이르는(정확하게는 1499p 밖에 안된다.)라는 위용 탓에 부담감이 가슴을 무겁게 짓 누르는 것을 느끼게 된다. 

결론 부터 말하자면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 1권 첫 페이지를 펴서, 3권 끝페이지를 읽을 때 까지 조금도 지루함을 못느끼며 내리 읽은 내가 장담하겠다. (단, 약속이 있거나 다음날 일찍 나가야 한다거나 하면 읽지 말 것. 내감으로야 시간이 흐른 것 같지도 않지만 시계를 보면 4~5시간씩 훌쩍 지나가 있다.)

   사에 대한 광기어린 집착과 근친 상간의 죄로 얼룩진 우라도 집안의 얘기는 백년의 고독의 일본 버전이었다. 막대한 부, 금기를 범한 죄로 기형적 형태로 얽어진 자손들, 불가사의한 죽음들, 수수께끼의 비밀 장치들도 가득 찬 저택. 암흑관은 그 어둠만큼 깊은 매력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읽다 보면 독자 또한 우라도 집안의 광기에 휘둘려버린다. '원, 저런 얘도 웃는 흰소리를 믿는담' 하고 코웃음 치다가도, 어느샌가 츄야군 처럼 그 불사와 달리아의 은혜에 빠져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 하게 된다. 귓가에는 매혹적인 미도리 - 미오 자매의 모습과 영롱한 웃음 소리가 들리고, 눈 앞에서는 시체 같은 겐요 노인의 그림자가 아른 거린다.

  얽히고 섥힌 가계도와 정신없는 건물 설계도 만으로도 암흑관을 따라는 것은 숨이 찬다. 읽다 보면 초점이 미묘하게 어긋난 것도 혼란을 가중시킨다. 무슨 헛소린지 잘 읽히지도 않고, 미묘하게 엇갈리는 시점 탓에 혼란스러워 책을 던져 버리고 싶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야츠지 유키토는 혼란스러워 하는 독자를 보고 즐거워하는 심술쟁이가 아니다. 요소 요소에서 사건을 정리하고, 요점을 알려주어 나같은 둔재도 무리 없이 추리를 즐기게 해준다. 묘하게 초점이 엇갈리는 것이  마지막 장의 해결 장에 이르러 씻은듯이 개운해지는 것은 또 압권이다. 아무 의미도 없어보이던 헛소리들에 그런 맥락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로 이마를 탁 하고 치게 될게다.

  1500p 두께의 책을 읽었는데도, 그만큼이나 읽었는가 실감이 가질 않는다. 머리 속은 결말의 충격으로 멍해진 상태고, 아직도 광기의 저택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의외로 역자는 후기에서 자신이 세상에 내놓은 자랑할 만한 과업에 대해 흑평을 하고 있지만, 나는 감히 암흑관이야 말로 2007년 최고의 추리 소설 중 하나라고 단언하겠다. 후기에 언급된 미로관과 수차관을 생각하면 벌써 부터 좀이 쑤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