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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 이게 뭐라고” 라는 팟캐스트 시즌2를 요조와 함께 진행하면서 본인이 말하고 듣는 사람으로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래도 역시 장강명은 읽고 쓰는 사람이다 라는 걸 깨닫는 과정을 쓴 책이 [책, 이게 뭐라고] 이다.
작가는 공대 출신에 정치부, 사회부 기자를 거쳤다가 소설가가 된 사람이다. 본인의 관심이 사회에 반하는, 마음에 안 드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써보겠다는 다짐으로 쓴 책들 즉 “산자들” “한국이 싫어서” 등 모두 하이퍼 리얼리즘과도 같은 현재의 삶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이번 에세이 [책, 이게 뭐라고]는 인간 장강명 특히 읽고 쓰는 장강명에 대한 이야기다. 읽고 쓰는 일이 취미이기도 하고 같은 세대라 그런가(나와 한 살 차이가 난다. 내가 동생임) 모든 말이 공감이다.
34p
논픽션 [당선, 합격, 계급]을 쓰기 위해 출판 관계자들을 만나 취재를 하다 “이미 한국 독서 생태계는 무너졌다. 얼굴 잘생긴 작가 책이 잘 팔린다”는 푸념을 들었다. 그 말이 하도 인상적이어서 책에도 인용했다.
이제는 한국의 출판업이 사실상 ‘셀럽 비즈니스’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셀러브리티가 쓴 책이 잘 팔린다. 아니, 셀러브리티가 쓴 책만 팔린다. 아예 처음부터 셀러브리티를 섭외해서 책을 만든다. 실제로 원고를 쓰는 거야 다른 사람이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그 동안 수 많은 책을 읽었지만, 인스타에 읽은 책과 짧은 리뷰를 올린 건 2020년 들어 처음이다. 동시에 블로그에도 찬찬히 채워가고 있는 중이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인스타를 훓어보면서 느낀 건 글과 상관없이, 아니 상관있나? 그건 모르겠지만, 잘생긴 예쁘고 어린 작가들의 팬덤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출판계에서도 팬덤과 셀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냥 항상 서점에 가서 베스트셀러에 올라가 있는 시시껄렁한(?) 책이 왜 많이 팔리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풀린 순간이었다. 물론 내가 쓰는 일로 먹고 살거나, 그 일에 상관있는 사람은 아니나, 글 쓰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고 고되며, 특히 연구해서 내놓는 자료가 책이 되는 순간의 고통을 어느 정도는 알기에 인스타에 올라온 짧은 글이나 그날그날의 “괜찮아”일기 같은 게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이 화가 났었다.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 게 아니였다니 [책, 이게 뭐라고]를 읽었던 충분한 이유가 된다.
101p
책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는 당연히 독서 토론도 많이 열려야 한다. ‘전문가’의 고전 강독을 듣는 모임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을 다룬 책을 매개로 참가자들이 자신의 내면을 여는 자리여야 한다.
나이나 재산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같은 동네 이웃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열흘이나 보름에 한 번씩 모여 책을 놓고 자기 생각과 경험을 자연스럽게 말하고 듣는 공간, 책을 읽고 의견을 차분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독거노인도, 미혼모도, 외국인 노동자도 모두 환영받는 자리. 그렇게 지역과 지식이 결합하는 세상 아직은 그냥 꿈이다.
작가가 바라는 세상은 읽고 토론하는 독서모임이 활성화된 세상이라고 한다. 누구나 동네 어딘가에 모혀 함께 읽고 공감하고 느끼며 이야기하는 세상이 꿈이라고 한다. 그의 꿈 같은 세상을 나 하나 쯤은 살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동네 엄마들과 모여서 독서 모임을 한 지 어언 3년이 지나가고 있다. 책이 주제이긴 하지만, 책을 주제로 하게 되는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인 뒷담화가 아니라 결국 내 얘기를 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좀 더 나를 들여다보고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 작가가 말하는 독서를 함으로써 가질 수 있는 일관성과 보편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이 좋은 걸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나 또한 작가와 마찬가지로 독서 모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되는 걸 꿈꾼다.
49p
현대사회는 진지한 인간들을 싫어한다. “왜?”나고 물으면 “그냥요” “재미있으니까”로 일단락지으며 “왜”에 답하는 사람들을 진지충이라며 폄하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
진지한 인간들을 공격하는 가장 쉽고도 파괴적인 방법은 그들의 핵심인 일관성을 역이용하는 거다. 읽고 쓰는 게 좋다면서 tv에는 왜 그렇게 자주 나와요? 개고기 먹지 말자면서 삼겹살은 왜 드세요? “그냥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은 절대로 곤란해하지 않을 그런 질문에 진지충들은 발목이 걸려 넘어진다.
나의 방어 전략은 시니컬해지는 것이다. 매사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며, ‘나를 공격하면 같은 식으로 되갚아주마’하는 신호를 주변에 뿌린다. 그렇게 무장하고 경계한다. 가끔은 스스로를 비웃으면서, 자신이 그리 탐스러운 먹잇감이 아님을 알리기도 한다. 이 음식에 내가 흙 뿌렸으니까 넌 욕심내지 말라고.
작가는 읽고 쓰는 작가이면서 왜 그렇게 미디어에 나오냐며 말하는 사람들에게 본인은 시니컬하며 냉소적으로 대한다고 한다.
아는 지인이 내가 읽는 책을 궁금해해서 보기 편하게 카톡 프사에 읽은 책들을 올린 적이 있었다. 어느날 책에 1도 관심없는 친구가 “너 책 참 많이 읽는다.” “책은 언제 읽어?” “왜 읽어?” “나는 졸리던데.” “참 대단하다” “나에게 좋은 책 추천해줘봐.” “책은 어떻게 골라읽어?‘ 등의 질문들을 약간의 비아냥이 섞인 표정으로 쏟아냈을 때가 있었다. 느낌으로 안다. ’뭘 그렇게 힘들게 읽냐?‘ ’그 시간에 애를 봐라.‘ ’그래서 뭐나 나아졌는데?‘ ’너가 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냐?‘를 함께 이야기한 것이라는 것을. 내 취미 생활을 무시당하는 것 같고, 내가 나름 가치를 부여한 일에 대해 가소롭게 여기고 있는 느낌이 상당히 거슬렸다. 그녀에게 어떠한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작가처럼 시니컬함을 방어기제로 사용했다. 또한 그 후 바로 프사의 모든 사진을 지웠다. 다시는 자의건 타의건 간에 책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왜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이런 더러운 기분을 느껴야 하는지,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그냥“ 과 ”재밌으니까’가 정답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니 회의가 들었다. 나 또한 삐딱하게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인가?
결론적으로 작가는 [책, 이게 뭐라고]의 팟캐스트를 관두기로 했다, 그러면서 글쓰기의 상위레벨인 소설을 쓰고 있는 중이며, 쓰는 도중에 잘 써지지 않아 우울증에도 걸렸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말하고 듣는 인간”보다는 “읽고 쓰는 인간”으로 살기를 원한다고 한다. 즉 독서는 작가에게 있어서 호흡이며 이미 읽고 쓰는 세계에 살고 있다. 그 세계가 두렵지는 않다고 한다.
작가와 비슷한 세대이며, 좋아하는 것도 같다. 읽고 쓰는 것이 일상이다. 다른 점이라면 작가는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며, 나는 그냥 습관이니 하는 중이다. 책을 안 읽거나 뭐라도 끄적이지 않으면 허무해지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읽고 쓰는 세상에 살고 있다. 앞으로 계속 읽고 쓰는 세상 속에서 늙어갈 것임을 예감한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협찬을 받았지만 개인적인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