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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우 씨는 다 죽어야 한다 - 2024년 타이베이국제도서전대상 소설상 수상작
탐낌 지음, 우디 옮김 / 엘릭시르 / 2025년 8월
평점 :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엘릭시르에서 출간한 탐낌의 『쓰우 씨는 다 죽어야 한다』는 2024년 타이베이 국제 도서전 대상 소설상 수상작이다. 어두운 가족사에 얽힌 욕망과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영국령 시절부터 이후까지 홍콩 사회의 법과 정치, 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진하게 고발하고 있다. 이런 이중의 선율로 인하여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이지만 킬링 타임용이 아닌 진지한 문학 작품에 속한다. 화려하고 빠른 속도감은 없지만 문장 한 줄 한 줄이 전하는 풍자와 후반부까지 감도 잡을 수 없는 범인은 다른 의미로 독자들의 심장 박동을 가속화시킨다.
탐낌의 『쓰우 씨는 다 죽어야 한다』 줄거리는 홍콩의 란타우 섬 끝자락 사이위의 쓰우 가문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들은 매년 가족 모임을 열지만 코로나19로 사회적 격리로 이어지며 한동안 모이지 못하다가 이번에 다시 모인다. 성대한 연회는 가족의 장인 쓰우원후가 주도한다. 이들 가족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가문 내에서 가족의 장을 제외하면 남녀 모두 발언권이 없으며, 소수의 가족 때문에 모두가 자손 번창에 집착해야 한다.
이 의무만 지키면 이들은 평생 동안 경제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가문에서 재벌처럼 먹고살게 매달 생활비를 대준다. 그러나 이런 가족의 내력이 문제라고 느낀 쓰우즈신은 가문이 주는 생활비를 포기하고 자유를 택한다. 일부는 자유를 염원하지만 생활비 때문에 묶여 있으며 대부분은 자유를 염원할 의지조차 가지지 못한다. 이런 그들이 가지는 몇 년 만의 연회에서 온 가족이 몰살되는 범죄가 일어난다. 다행히 쓰우원후를 비롯해 다섯 명이 더 생존하는데, 과연 범인과 동기는 무엇일까?
어두운 가족사에 얽힌 욕망과 진실을 주제로 한 탐낌의 『쓰우 씨는 다 죽어야 한다』는 미스터리 스릴러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주요 스토리를 엮는 과정에서 과거 홍콩의 화려함을 단숨에 찢어버리고 그 민낯을 드러낸다. 성별·계급·부를 좇는 인간의 본성, 권력과 법의 정의, 가족의 개념 등을 사건의 동기와 수사 과정을 통해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그 거칠고 생생한 폭로는 독자의 시선을 끝내 놓아주지 않는다. 이제 이 모든 것을 살펴보기 전에 작품의 주제를 압축해 담은 인물들의 이름 속 의미부터 먼저 들여다보자.
이 작품에서 정면으로 드러나는 이름은 쓰우(司武) 가문의 원후(文𧆞), 즈신(志信), 즈이(志義), 그리고 집사 아더(Arthur)이다. 가족의 장인 쓰우원후의 이름은 말 그대로 힘을 다스리는 낡은 세계, 억압적 권력층을 상징한다. 이름만으로 이미 서사 속 전통의 쇠락과 청산되어야 할 구체제를 담고 있다. 신의를 지키는 즈신, 도덕적인 문제는 있지만 끝까지 옳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즈이,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집사는 Arthur가 아니라 ‘Other’로 남는다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름에 숨겨 넣은 위트가 드러난다.
작품이 가장 먼저 고발하는 것은 가족의 개념이다. 사랑 없는 혈연이나 혈연 없는 유대라는 단순한 대비를 훌쩍 넘어 이야기는 의도치 않게 ‘키메라’를 불러낸다. 키메라는 한 육체 안에 서로 다른 DNA를 지닌 존재를 뜻하며, 신화에서는 사자·염소·뱀의 형상을 함께 지닌 괴물로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를 탄 벨레로폰에게 쓰러졌다. 현대 의학에서도 이란성 쌍둥이가 태중에서 한쪽을 흡수하거나 골수 이식 등으로 타인의 유전자를 품게 될 때 인간 키메라가 생겨난다.
소설 속 쓰우 가문은 그 개념을 현실처럼 드러낸다. 혈통을 지키기 위해 여자는 남편을 데릴사위로 들여 그 성을 지우고 ‘쓰우’를 강제로 붙인다. 이 전통은 단순한 성씨 교체가 아니라 정체성과 과거를 덮는 폭력적 장치다. 서자로 버려진 아이, 범죄의 흔적으로 태어난 생명, 선택과 무관하게 ‘쓰우’ 아래 편입된 이들까지, 피라는 끈이 얼마나 잔혹하게 개인을 구속하는지 보여준다. 결국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어디까지를 가족이라 부를 수 있을까. 피가 이어졌다는 사실만으로는 답할 수 없다.
저자는 가문의 폭력을 독자가 더 뚜렷이 느끼게 하려 보육원을 등장시킨다.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한 아이들은 서열을 위해 폭력을 휘두르고, 입양되려 연기를 하며, 어른에게 더 받기 위해 무조건 복종한다. 쓰우 가문을 축소한 이 공간은 재산만 없을 뿐 닮아 있다. 탐낌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유를 위해 과감히 가문을 떠난 즈신과, 가문을 혐오하면서도 생활비를 포기하지 못하는 즈아이를 대비시킨다. 즈아이는 해외여행을 위해 끝내 복종하는 모순은 보육원 아이들의 무조건적 복종과 겹쳐 우리 모두의 내면을 거울처럼 비춘다.
작품은 홍콩 사회의 병폐도 날카롭게 고발한다. 미친 듯이 일해도 생활이 불가능한 화폐 가치와 왜곡된 사회 구조, 생존을 위해 범죄로 내몰리는 취약 계층의 현실, 그리고 그 범죄가 단순한 폭력을 넘어 사회 전체를 무너뜨리는 과정까지 집요하게 드러낸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정부가 제 역할을 잃을 때 벌어지는 참담한 풍경이자, 제도적 실패가 낳은 필연적 비극이다. 이는 명품 소비와 해외여행을 위해 스스로를 지우는 즈아이와 맞물려 자본이 인간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작품은 마지막에 사법 기관의 부패를 정조준한다. 국가가 만든 법이 이름만 남은 채 제 기능을 잃고, 바람 앞의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가는 진짜 사상누각이 된다. 그 빈틈을 파고든 경찰은 실적을 위해 범죄 단서가 없어도 스스로 범인을 만들고, 증거를 조작해 무고한 이를 30년 옥살이 시킨다. 권력자의 범죄에는 의도적으로 눈을 감고, 시민들은 두려움에 침묵하며 그 부패를 방조한다. 탐낌은 이렇게 법과 정의가 동시에 무너지는 과정을 집요하고도 날카롭게 고발하며 독자의 마음속 깊은 분노와 허탈함을 동시에 일깨운다.
탐낌의 『쓰우 씨는 다 죽어야 한다』는 어두운 가족사에 얽힌 욕망과 진실이라는 미스터리의 외피를 두르고 자본, 사회, 법까지 뒤흔드는 거대한 질문을 던진다. 피와 사랑의 경계를 무너뜨린 쓰우 가문, 자본에 자신을 내맡긴 인물들, 그리고 부패한 법의 그늘은 우리가 믿어온 정의와 가족, 인간성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든다. 마지막까지 촘촘히 쌓인 단서들은 끝내 한 사람을 지목하며, 독자는 책장을 덮는 순간에야 비로소 범인의 얼굴과 그 동기를 마주한다. 그때 남는 것은 단순한 정답이 아니라 가족과 인간에 대한 깊은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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