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 - 바스티유의 포성에서 나폴레옹까지 북캠퍼스 지식 포디움 시리즈 5
한스울리히 타머 지음, 나종석 옮김 / 북캠퍼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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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프랑스혁명』은 오랫동안 교과서가 남긴 민중의 자발적 대봉기라는 낭만적 이미지로 기억되었다. 그러나 한스울리히 타머는 이 사건을 신화적 이미지를 벗긴 현실로 재구성하며, 권력 다툼과 정치적 동원이 얽힌 복합적 실체를 드러낸다. 자유·평등·박애의 구호는 단순한 이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계급 이해와 냉혹한 계산이 부딪힌 전장, 현실의 피비린내 속에서만 살아 있었다. 혁명은 이상을 실현한 순수한 열망이 아니라 이해관계와 이념, 야망이 교차하는 대규모 정치 실험이었다.


『프랑스혁명』은 독일 역사학자 한스울리히 타머가 대변혁의 10년을 압축적으로 탐구한 개론서이다. 그는 바스티유 함락부터 나폴레옹 집권까지의 정치·경제·문화를 간결하면서도 정밀하게 다루며, 짧은 분량 속에서도 복잡한 흐름을 날카롭게 정리한다. 타머의 문장은 학술적이면서도 서사적 긴장을 놓치지 않으며, 단순한 연대기를 넘어 항쟁에 덧씌운 신화적 이미지를 벗기고 현실의 결을 드러내는 치밀한 분석을 선사한다. 혁명의 폭발과 변주, 그 사이사이의 인간적 욕망까지 촘촘히 묘사하고 있다.


『프랑스혁명』은 늘 민중의 위대한 봉기로 요약되어 왔다. 그러나 한스 울리히 타머의 시선을 따라가면 그 신화는 금세 벗겨진다. 항쟁은 굶주린 농민의 순수한 봉기가 아니라 왕권을 둘러싼 귀족과 부르주아의 권력 다툼에서 비롯됐다. 세력 확장을 위해 지식인과 언론이 민중을 선동했고, 처음엔 단순한 몸집 불리기로 동원된 시민과 농민이 집회와 팸플릿 속에서 변혁의 주체로 변해 갔다. 타머는 이를 정치의 원시적 실험실이라 부르며 권력의 언어가 군중을 흔드는 방식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혁명의 동력은 시간이 흐르며 위에서 아래로 이동했다. 1792년 이후 상퀼로트와 농민은 독자적 분노를 폭발시켜 의회를 압박했고, 그 격렬한 움직임은 속도를 앞당겼다. 귀족 간 대립에서 출발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시민과 농민이 정치에 직접 참여했다. 지도층은 이를 억누르려 했으나 거리 시위와 자발적 조직의 힘을 꺾지 못했다. 타머는 이 변화를 항쟁의 진정한 심장으로 지목하며 민중 없는 혁명은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분노를 가장 빠르게 달군 것은 언제나 식탁의 빵이었다.



실제 맥박은 경제였다. 국가 부채와 세금 불평등, 빵값 폭등은 봉기의 불씨였다. 특히 1794년 풍작으로 곡물 가격이 안정되자 민중의 급진성은 잠시 누그러졌고, 흉작이 닥치면 거리의 함성은 다시 고조됐다. 경제 상황은 봉기의 시작뿐 아니라 강도와 속도를 조절한 실질적 동력이었다. 저자는 곡물 가격과 정치 폭력의 상관관계를 사례로 입증하며, 혁명의 열기가 언제나 식탁의 빵과 직결되었음을 짚는다. 그들은 허기를 달랜 뒤 항쟁은 삶의 표준과 시간을 새로 짜기 시작한다.



그래서 혁명은 정치·경제 제도만 바꾼 것이 아니었다. 도량형을 통일하고 달력을 새로 만들며 언론과 출판을 폭발적으로 늘렸다. 거리의 축제와 의례는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려는 실험이었고, 상징과 의례는 개개인의 시민을 하나의 민중 집단으로 묶는 데 결정적이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달력 속에서 시간을 다시 세고,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불렀다. 문화는 변혁의 또 다른 전선이자 과거를 지우고 미래를 설계하는 창조의 현장이었다. 이런 집단적 무대 앞에서 개인의 초상은 자연스레 흐려진다.



바로 그 지점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라진다. 타머는 개인의 비극보다 구조와 제도 붕괴에 초점을 맞추며 대변혁을 특정 인물의 드라마가 아닌 집단적 사건으로 그린다. 왕비의 화려한 이미지를 지워낸 선택은 그의 냉정한 현실 인식을 드러낸다. 개인 영웅담 대신 무수한 얼굴 없는 시민을 전면에 내세운 시선은 역사가 권력의 초상보다 집단의 힘으로 재구성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밝혀준다. 같은 맥락에서 루이 16세도 개인이 아닌 체제의 표정으로 등장한다.



루이 16세의 처형은 한 인간의 몰락이 아니라 절대왕정 자체의 장례식이었다. 단두대의 칼날은 구체제의 죽음을 알리고 시민이 주권을 쥔 새로운 질서를 세계에 선포했다. 그의 체포와 재판, 공개 처형은 왕이 아닌 체제가 처벌받은 정치적 의례이자 근대 시민정치의 탄생을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저자는 단두대를 근대 정치의 최초의 무대로 규정하며, 권력의 얼굴이 어떻게 공포와 의식으로 재편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장면을 지나 그들의 발자취는 곧 오늘의 권력 교체 방식과 직결된다.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프랑스혁명』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의 정치 현장처럼 읽힌다. 어느 정권도 완전히 국민을 위한 정치가 될 수 없고, 권력의 욕망이 커지면 균형은 무너진다. 과거엔 그 균형이 피와 살로, 오늘날은 투표와 제도적 교체로 조정된다. 세계 곳곳에서 폭력적 항쟁이 여전히 일어나지만, 민주국가의 선거 또한 투표로 하는 혁명이다. 정치란 살아 있는 생물처럼 한쪽으로 기울면 스스로 반대편을 불러 중용을 되찾는다. 내 편이 영원히 옳을 수 없고, 그 올바름을 고집하는 순간 이미 반대의 힘이 자라난다.



이러한 권력의 순환과 시민의 역할은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오늘날 민주주의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유·평등·박애는 18세기에 묶이지 않는다. 언론의 힘, 시민의 참여, 권력과 민중의 긴장은 지금의 민주주의에도 계속된다. 항쟁이 남긴 제도와 사상은 오늘 우리의 불평등과 갈등을 비추는 거울이며, 권력의 순환과 민중의 저항이 반복되는 현실을 성찰하게 한다. 저자가 그린 혁명은 과거의 박물관이 아니라 현재의 광장에 던져진 질문이다. 우리는 그 질문 앞에서 여전히 대답을 찾고 있다.



한스울리히 타머가 그린 『프랑스혁명』은 결코 끝난 역사가 아니다. 권력의 불평등과 시민의 저항, 경제가 좌우하는 민중의 분노는 오늘도 되풀이되며, 항쟁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언제든 다시 솟구칠 수 있는 세계사의 영속적 흐름이다. 저자는 이 신화적 이미지를 벗긴 현실을 통해 투표가 혁명의 언어가 된 지금도 우리가 그 실험의 연장선 위에 서 있음을 일깨운다. 민주주의의 불안정한 뿌리와 권력의 순환은 여전히 반복되고, 과거의 피와 불은 투표의 잉크로 바뀌었을 뿐 시민의 저항은 새로운 얼굴로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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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을유세계문학전집 143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조애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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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이번에 을유문화사에서 인간 심연의 밑바닥을 훑은 문학,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을 출간했다. 포는 탐정 문학의 기초를 세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은 여러 겹의 인간 심리를 벗겨 가장 안쪽의 추악함을 드러내지만 결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 추악함을 토대로 가장 인간적인 이해를 끌어내며 읽는 이에게 소름 끼치는 공포와 함께 묘한 따스함을 남긴다. 덕분에 그의 단편들은 공포와 연민, 냉철한 추리와 시적 광휘가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고전으로 자리한다.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은 총 열세 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큰 틀에서 보면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이성의 미스터리, 곧 추리의 묘미가 살아 있는 『도둑맞은 편지』, 『모르그가 살인 사건』, 『네가 바로 범인이다』, 『황금충』이고, 다른 하나는 무의식의 심연을 파고든 심리·광기·공포의 작품들이다. 후자에 속한 이야기들은 괴이한 존재가 튀어나와 놀라게 하기보다, 인간 심연의 밑바닥을 훑은 문학이 주는 섬뜩한 공포를 전한다. 이를 두고 샤를 보들레르는 자신이 쓰고 싶었던 모든 것이 이미 포의 작품 속에 있다고 고백했다.


을유문화사에서 출간한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은 그동안 포의 작품을 대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각종 은유이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해 이슬람·유대교의 신, 문화적 양식, 다른 문학에서의 인용 등 폭넓은 지식이 필요하다. 보통 작품 전체의 해설은 있으나 이런 세세한 주석이 빠진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뒷면에 꼼꼼하게 첨부되어 있어 방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덕분에 초심자도 포의 세계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지난번에 읽은 책에서 소름 끼치는 복수극을 그린 『아몬티야도 술통』을 후기로 다뤘기에 이번에는 『리게이아』의 초현실적 열병과 『모르그가 살인 사건』의 이성적 해부를 다루면서, 포가 어떻게 인간의 양 극단을 끌어올렸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극점을 비춘다. 하나는 죽음과 집착이 빚는 몽환적 열기를, 다른 하나는 차갑게 사건을 해부하는 이성의 칼날을 보여준다. 포는 이처럼 꿈과 논리, 광기와 추리를 넘나들며 인간이라는 미로를 끝없이 탐색한다.



먼저 『리게이아』부터 살펴보자. 이 작품은 광기와 집착, 부활과 영혼을 둘러싼 초월적 이미지가 핵심이며 문체가 유려해 꿈결 같은 환각을 느끼게 한다. 리게이아는 그리스 신화 속 세이렌 세 자매 중 한 명의 이름으로, 세이렌은 바다에서 뱃사람을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노래를 부르는 존재다. 이름의 어원은 맑고 울림 좋은을 뜻하는 ligys와 여성을 뜻하는 aia가 합쳐진 것으로, 죽음을 부르는 매혹적 노래와 영혼을 사로잡는 음성이 이미 제목 〈 Ligeia 〉에 겹쳐 있다.



리게이아의 줄거리는 주인공인 나의 아내인 리게이아의 죽음을 겪은 후 그 아픔을 이기지 못하여 방탕한 생활을 하던 중 로위나와 재혼을 한다. 본처의 눈동자는 검은색이며 재혼한 로위나의 눈동자는 파란색으로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그래서인지 나는 로위나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그에게 벌을 주려는 듯, 로위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앓아누워 숨이 붙었다 끊어졌다를 반복한다. 이렇게 아픈 아내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여전히 죽어서 세상에 없어진 전처만을 떠올리고 있는데 로위나가 눈을 뜬다. 검은색 눈동자로.


사실 스토리 자체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까지 주인공의 끝없는 애착과 리게이아의 삶을 향한 집요한 집착이 끔찍하게 묘사된다. 한 생명체가 삶과 죽음을 오가는 경계와 그때의 주인공 상태는 이 모든 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모호하게 만들어, 환상 문학의 선구자라는 타이틀의 의미를 독자로 하여금 실감하게 한다. 초현실적 열병처럼 꿈과 현실의 경계를 흔들며 드러나는 죽음과 부활의 집착은 겉으로는 병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우리 마음 밑바닥에 오래 잠든 본능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모르그가 살인 사건의 줄거리는 밀실에서 끔찍한 이중 살인 사건이 발생한 후 경찰이 출동한다. 여러 목격자들의 말을 들으니 한 명의 프랑스인과 국적을 알 수 없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단서가 없다. 사람들과 경찰이 출입구를 막고 있었던 상황이기에 범인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사건은 미궁으로 빠진다. 이때 뒤팽이 경찰서장의 허락을 얻어 사건 현장을 살펴본 후 가볍게 범인을 찾아낸다. 마치 셜록 홈스처럼.


이 작품은 뒤팽의 냉철한 추리가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며 포의 첫 탐정소설이다. 흔히 『모르그가 살인 사건』을 현대 추리 소설의 출발점으로 부르는데 사건의 정교한 범행 동기와 치밀한 단서 배치, 그리고 이를 해부하는 뒤팽의 논리 전개까지 후대 탐정물이 따르는 거의 모든 기본 요소가 이미 이 한 편에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관찰과 이성적 추론을 통해 범인을 밝혀내는 과정이라는 핵심 구조는 셜록 홈스에서 아가사 크리스티까지 이어지는 모든 고전 추리의 뼈대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작품에는 경찰과 뒤팽, 범인을 잡는 핵심 인물 사이에 숨 막히는 추리 대결이 펼쳐진다. 뒤팽은 경찰이 미처 보지 못한 현장의 세세한 단서와 상식을 벗어난 가능성을 차근차근 짚어가며, 단순한 관찰을 치밀한 논리로 엮어 사건의 전모를 밝혀낸다. 특히 범인의 정체가 인간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순간, 추리 과정 자체가 하나의 서스펜스로 작동하며 독자를 끝까지 긴장시킨다. 포는 이 작품에서 범죄의 공포보다 이성이 어떻게 진실에 다다르는가라는 지적 쾌감을 중심에 두어 독자들에게도 동일한 전율을 선사한다. 



을유문화사에서 출간한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은 인간 심연의 밑바닥을 훑은 문학의 정수다. 앞서 살펴본 『리게이아』의 몽환과 『모르그가 살인 사건』의 냉철한 추리뿐 아니라 『아몬티야도 술통』의 소름 끼치는 복수, 『검은 고양이』와 『고자질하는 심장』의 광기와 죄의식, 저자 자신이 최고의 탐정 소설로 꼽는 『도둑맞은 편지』까지, 포는 이성의 빛과 광기의 어둠을 동시에 끌어올려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 섬뜩하고 매혹적인 세계를 여름의 끝자락에서 꼭 느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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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금시대 : 오늘을 비추는 이야기 - 출간 150주년 기념 국내 최초 간행본
마크 트웨인.찰스 더들리 워너 지음, 김현정 옮김 / 구텐베르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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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구텐베르크 출판사에서 출간한 『도금시대, 오늘을 비추는 이야기』는 마크 트웨인과 찰스 더들리 워너가 함께 쓴 고전 소설이다. 이 책은 1949년부터 1872년 사이 호킨스 가문을 중심으로 서부 개척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탐욕과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그린다. 이 시기에는 노예 해방을 위한 남북전쟁과 링컨 대통령 암살이 포함돼 있어, 이를 염두에 두고 읽으면 스토리가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부제가 ‘오늘을 비추는 이야기’인 만큼 19세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현재에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생생한 현실을 담고 있다.



마크 트웨인과 찰스 더들리 워너의 『도금시대, 오늘을 비추는 이야기』는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호킨스 부부는 자녀 워싱턴과 에밀리를 데리고 미주리로 이주하는 길에 로라와 클레이를 입양해 여섯 식구의 가족을 이룬다. 가장 실라스는 테네시 주에 큰 땅을 사놓고, 이주 후 금광이나 토지 투기 등으로 한몫 잡으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 사이 여러 차례 테네시 주의 토지를 팔라는 제안을 받지만 미래를 위해 모두 거절하고, 결국 사기꾼들에게 속아 재산을 잃고 자녀들을 각자 독립시킨다.


워싱턴은 워싱턴 D.C로 건너가 상원 의원의 비서로 일하게 되고, 로라는 이 상원 의원과 결탁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로비스트로 활동한다. 그 과정에서 로라는 헨리를 만나 그의 사랑을 받고, 필립은 루스를 향해 마음을 품는다.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실라스가 테네시 주에 사둔 땅이 있으며, 사람들은 모두 이 땅만 바라보며 실질적 노력보다 한탕주의에 빠져 살아간다. 당연히 그 결말은 누구에게도 좋지 않지만, 오직 성실한 필립만이 이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


마크 트웨인과 찰스 더들리 워너의 『도금시대, 오늘을 비추는 이야기』는 19세기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한탕주의와 황금만능주의를 풍자한 고전 소설이다. 이 작품은 트웨인의 초기작으로, 우리가 익숙한 『허클베리 핀』의 간결하고 구어체 가득한 문체는 아직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디킨스식 군상극, 서술자의 개입, 장광설 등 영국 장편소설 전통을 의식한 화법이 펼쳐지며,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디킨스의 어투와 구조를 닮았다. 이런 배경을 모르고 작품을 접하면 작가의 이름을 다시 확인하게 될 정도이다.



제목의 ‘도금시대’는 말 그대로 껍데기에 금을 입힌 가짜 금을 뜻한다. 이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방식의 허위, 그들이 쏟아내는 말, 정치와 법조계의 겉과 속이 다른 현실을 비유한다. 그래서 소설 속에는 진실을 말하거나 거짓을 부끄러워하는 인물이 거의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결국 이 가짜 빛은 당시 미국 사회 전체를 뒤덮은 욕망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이 욕망은 단순히 서부 개척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반에 퍼져 있어 독자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이 작품이 비추는 당시의 시대를 몇 가지로 나누어 보면, 내용은 달라도 오늘의 사회와 닮은 결을 느낄 수 있다. 인물들은 허세로 살고 허세로 죽는다. 밖에서는 큰 사업을 벌이는 듯 떠들어 대지만, 집에 돌아오면 먹을 것이 없어 순무로 끼니를 때우고, 추운 겨울에는 난로 속에 촛불 한 자루를 넣어 난로가 켜져 있는 듯 꾸민다. 그럼에도 자기 손으로 무언가를 생산하는 사람은, 노동자 계층을 제외하면 단 한 명도 없다. 겉과 속이 극단적으로 갈라진 이 아이러니가 작품의 풍자적 힘을 한층 돋운다.


이런 허세가 어느 정도 지식 위에서 벌어지면 그나마 위트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철저히 무지해 현대인의 눈에는 오히려 순박하게까지 보인다. 덕분에 작품 속에서 사기꾼이 아닌 인물을 찾기 어렵다. 더구나 그들은 자신의 행태에 부끄러움조차 없다. 허세와 기만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사회 문화가 되었고, 모두가 이를 이해해 주는 듯하다. 욕망이 커지고 지위가 높아지면 그 허세 위에 위선까지 겹친다. 소설 속 상원 의원들이 바로 그 예다. 이 무감각한 허위의 층위가 인물들을 더욱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으로 만든다.



남북전쟁이 끝나 노예제가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흑인을 부리던 시대, 상원 의원 딜워시는 흑인을 위한 교육 기관을 세우겠다는 법안을 발의한다. 그러나 실상은 국가의 돈으로 자신의 배를 불리려는 속셈이다. 겉으로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머릿속에는 약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사기극에 발을 들인 호킨스의 자식들은 아버지가 사둔 땅의 가치만 바라보며 법안 통과를 위해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결국 모든 음모와 탐욕은 허무하게 막을 내리며 독자는 ‘도금’의 허상을 새삼 깨닫게 된다.



모든 남성 인물 가운데 유일하게 양심을 지닌 이는 필립뿐이다. 그 역시 한때 철도 개설을 노린 한탕주의에 뛰어들지만, 어느 순간 그 허상을 깨닫고 스스로 발을 뺀다. 이후 그는 자신만의 강점인 성실함과 도덕성을 지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이어가지만, 선한 개인 한 사람이 구조적 욕망으로 가득한 사회의 거대한 탐욕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어느덧 이야기의 변두리로 밀려난 그는 끝까지 신념을 지켜 결국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행복과 성취를 이룬다. 비록 그 크기는 작을지라도.



마지막으로 이 시대의 여성상이다. 남자들이 허상을 좇는 동안 여성 또한 실체를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부모들은 모두 딸을 부자에게 시집보내길 원하고, 결혼의 승낙 여부는 오직 재산에 달려 있다. 조금 더 개방적인 경우인 로라는 직접 남성들의 틈바구니로 뛰어들어 그들과 똑같이 헛된 욕망을 좇는다. 이에 대비되는 인물은 루스로, 그녀는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학업에 매진하며 여성으로서의 의무보다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한다. 과연 이들의 행방은 어떻게 되었을까?


『도금시대, 오늘을 비추는 이야기』는 남북전쟁 직후 미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허위로 덮인 욕망과 권력의 풍경은 지금도 낯설지 않다. 부와 지위를 향한 무분별한 탐욕, 그 속에서 사라지는 양심, 그리고 여성에게 주어진 제한된 선택지는 오늘의 사회에서도 반복된다. 마크 트웨인과 찰스 더들리 워너는 화려한 도금이 벗겨졌을 때 드러나는 인간 본성의 민낯을 통해 진짜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결국 이 고전 소설이 남긴 질문은 단순한 시대 풍자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경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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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엔 무조건 엄마 편
김이경 지음 / 샘터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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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샘터에서 출간한 가족 에세이 김이경의 『다음 생엔 무조건 엄마 편』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날아든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저자의 몸부림을 꾸밈없는 날 것으로 적은 작품이다. 지병이나 사고가 아닌 스스로 생명을 끊어 어느 누구보다 갑작스러운 상실을 맞이한 저자는 상실의 슬픔뿐만 아니라 그 이유까지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런 그녀의 솔직하고 단정한 언어는 어느 순간 독자에게 자신의 부모님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녀의 슬픔 너머의 일상을 담은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



슬픔 너머의 일상을 담은 김이경의 『다음 생엔 무조건 엄마 편』은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상실의 슬픔에서 벗어나 서서히 그리움을 안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내용은 애도하다–추억하다–살아가다의 세 부분으로 전개된다. 첫 번째에서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장례의 혼란 그리고 그리움이, 두 번째에서는 어린 시절의 장면과 집 안의 냄새, 식탁의 기억처럼 손이 닿는 흔적들이 불려 나온다. 마지막에는 홀로 남은 아버지와의 시간이 이어지며, 슬픔 이후에도 삶은 매일의 리듬으로 계속됨을 전한다.



김이경의 『다음 생엔 무조건 엄마 편』은 감성 에세이가 아니라 슬픔 너머의 일상을 담은 가족 에세이다. 상실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저자 한 사람에게서 그치지 않고 가족 전체의 변화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뒤처지지 않으려 앞만 보던 가족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각자의 삶을 돌보는 데서 멈추지 않고, 결국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극복하는 길을 택한다. 저자는 이 과정을 숨겨 둔 동전을 꺼내듯, 엄마와의 추억을 하나씩 펼쳐 절제된 언어로 담담히 기록한다. 독자는 그 차분한 기록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절절함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이 흔한 감성 에세이와 달리 특유의 무게를 지니는 또 다른 까닭은 눈물의 서사보다 상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다. 죽음을 똑바로 볼수록 삶이 선명해진다는 말이 이 책의 중심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녀는 절망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한다. 즉, 상실을 외면하지 않을 때 시리고 공허한 마음속 빛깔이 더욱 선명해진다는 것을 그녀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하였다. 이는 이 작품이 저자의 감정 소비가 아니라 독자의 감정 사유를 하게 한다.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깊은 감정을 기록하면서도 이를 거창한 철학으로 포장하지 않는 데 있다. 오히려 일상의 호흡이 스민 문장은 신파가 아닌 담백한 울림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마치 이불을 털고 창을 열어 바람을 들이듯 사소한 추억을 일상처럼 도란도란 풀어낸다. 그 흐름은 애도의 시간이 삶을 이끄는 힘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우며, 독자가 흔들리면서도 과장된 감정에 휩쓸리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삶과 죽음을 함께 바라보게 되는 차분한 울림이 오래 남아 있다.



저자는 서서히 변화하는 미묘한 감정의 결을 억지로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비추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화장을 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은 글이 감정에 파묻히지 않도록 하여 읽는 이의 마음에 오랜 파문을 남긴다. 독자는 그 파문 속에서 제 각자의 이름을 조용히 머리에 떠올리게 된다. 이미 그 이름 속 주인공을 잃은 이는 공감을, 아직 가진 이는 소중함을 깨우치는 계기의 순간을. 결국 사랑은 종종 늦게 도착하지만 그 늦음도 사랑의 일부임을 작가는 반복해서 말한다.



“엄마, 다음 생엔 무조건 엄마 편이 될게요.”라는 고백은 제목을 넘어 책 전체의 기조를 담고 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를 잃은 뒤 그녀는 이유를 찾기 위해 헤매지만 그 여정은 단순한 고통의 서술에 머물지 않는다. 과거를 더듬는 순간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깃든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은 감정, 감사와 미안함이 교차한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우친다. 그 깨우침은 살아 있는 아버지에게로 시선을 옮기게 하고, 상실의 고통이 차츰 풀려나가고 있음을 상징한다.



그녀의 시선이 옮겨간 아버지의 시간은 이 책의 또 다른 축이다. 남겨진 사람의 식탁, 고장 난 라디오, 빈 의자 같은 사소한 사물들이 아내를 잃은 남편의 심리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엄마를 잃은 자녀의 마음과는 또 다른 의미를 독자에게 말하고 있다. 아버지가 상실을 극복해 가는 과정은 단순히 배우자를 상실한 것이 아니라 노년의 고독을 함께 그리고 있어 훨씬 복잡하게 다가온다.  딸보다 훨씬 고요하지만 아내의 부재를 견디는 과정이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은 함께 늙어간다는 말의 책임이 한층 더 얹혀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시간은 결국 그녀와 가족들을 다시 일상의 자리로 이끌었다. 엄마의 부재가 남긴 빈 공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면서도, 그녀는 남겨진 사람들과 함께 밥을 짓고 계절이 바뀌는 길을 걸으며 애도의 무게 속에서도 살아가는 일을 멈추지 않으려는 발걸음을 이어 갔다. 그 발걸음은 사랑이 사라지지 않는 방식이자 남은 이들이 서로를 지탱하는 방식이 되었고, 공허함이 아니라 그리움이 남는 길 위에서 매 순간 지금이라는 시간을 새기며 더는 미루지 않겠다는 다짐을 품게 했다.



김이경이 기록한 이야기는 한 가족의 비극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맞이할 이별의 얼굴을 비춘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살아 있는 이와 이미 떠난 이 사이의 간격은 형태만 다를 뿐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특정한 한 사람의 슬픔을 넘어, 상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사랑을 이어갈 것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우리 모두에게 던진다. 독자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에겐 그럴듯한 멋진 답이 아닌 하루하루의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함께.



가족 에세이인 김이경의 『다음 생엔 무조건 엄마 편』은 애도와 사랑, 후회와 다짐을 다루되 과장하지 않는다. 상실의 그림자 위에 일상의 빛을 조용히 겹쳐 놓고, 삶이 다시 움직이는 소리를 들려주는 슬픔 너머의 일상이다. 이는 우리의 삶에서 통과의례처럼 다가오는 가족의 죽음을 떠올리며 현재에 더욱 집중하게 해준다. 그녀의 진솔한 목소리는 작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남는 위로로 남는다. 부모와의 관계를 돌아보고 싶은 분, 이미 상실의 아픔을 겪었지만 헤어 나오지 못하는 분에게 큰 도움이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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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바람 위에 있어 열다
헤르만 헤세 지음, 폴커 미헬스 엮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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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구름은 바람 위에 있어』는 하늘을 유영하는 자연을 통해 인간 존재의 자유와 덧없음을 비추는 테마 앤솔로지이다. 소설과 시, 산문 곳곳에서 구름을 노래한 대목만을 섬세히 발췌해 묶었다. 한 문장씩 따라가다 보면 바람과 빛, 계절의 온기가 문장 속을 흘러가고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삶의 호흡을 천천히 되찾게 된다. 짧은 발췌들이 느슨하게 이어지지만 구름이 건네는 무상과 자유라는 주제는 단단하다. 반면 이 느슨한 여백은 독자가 자신의 하늘을 끼워 넣을 자리가 되어 어느 순간 책과 하나 됨을 느낄 수 있다.


헤르만 헤세의 『구름은 바람 위에 있어』는 그가 쓴 작품 속에서 구름이 건네는 무상과 자유를 나타내는 부분을 발췌한 작품집이다. 단순하게 하나의 주제로 묶은 것이 아니라 그의 일생의 변화에 따른 시각의 차이를 현저히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는 작품 속에서 구름뿐만 아니라 그의 삶의 철학의 변화까지 함께 느낄 수 있어 헤세의 작품을 읽을 때 더 넓고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는 참고서 역할을 한다. 특히 이 책이 특별한 까닭은 저자의 관찰 방식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관찰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대상을 표면 그대로 감탄하며 바라보는 단계인 감각적·즉각적 관찰과 의미를 길어 올리며 스스로를 투사하고 구름을 삶과 존재의 은유로 읽어내는 해석·공감적 관찰이다. 이 작품 속 헤세의 시선은 단순한 심미적 감탄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작품 속 구름은 아름다운 풍경을 기록하는 1차적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곧 삶과 인간 존재를 비추는 상징으로 읽힌다. 그는 자연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그 안에 스며든 무상과 방랑, 자유의 의미를 길어 올린다. 



이러한 두 번째 관찰은 대상을 바라봄과 동시에 해석하고 자신을 비추는 행위이다. 이 시선이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고착된 것은 아니다. 물론 천재적인 재능으로 인하여 일반인에 비하면 두 번째 관찰 방식이 남달랐으나 원숙함을 자랑하는 단계에서의 그와 비교하면 온전히 1차적 관찰로 보인다. 이런 시선에 그가 살아온 시간의 축적이 더해지면서 아름답고 자유를 상징하는 것이 아닌 자신과 동등한 상황, 인간의 여정과 동일한 길을 걷는 모습의 구름으로 변한다.



이러한 점은 그의 초기작인 페터 카멘친트에서부터 노년의 대작인 유리알 유희에 이르기까지 확연하게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덕분에 독자는 책의 초반 여백에서는 그의 글에 자신을 가볍게 밀어 넣고 감각할 수 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오히려 행간에 자신을 밀어 놓고 그곳에 머무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즉, 감각에서 사유로의 전환을 자신도 모르게 경험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가 세계대전을 겪고, 동양 철학을 경험하게 되면서 그 밀도는 더욱 촘촘해진다.



헤세의 철학은 동양 사상과 불교적 사유를 접하면서 더욱 깊어진다. 무상과 공(空), 중도의 개념은 그의 문장 속 구름을 단순한 상징에서 벗어나 생멸과 순환, 존재와 비존재가 한 몸임을 깨닫게 하는 매개로 만든다. 구름이 오고 가는 모든 순간이 동일하다는 통찰 속에서 자연과 인간,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책의 후반에 가면 행간의 밀도는 더욱 촘촘해지지만 오히려 덧없음이 강하게 입혀지면서 독자는 무게감보다 가벼움을 느끼게 된다. 



이 삶의 태도 변화로 인하여 노년에 바라본 구름은 더 이상 멀리 있는 풍경이 아니다. 바람에 흘러가며 모양을 바꾸는 그 움직임 속에서 삶의 무게와 자유가 동시에 드러난다. 그는 구름의 이동을 통해 마음의 이동을 설명하고, 고독과 해방이 교차하는 인간의 내면을 고요히 포착한다. 더 나아가 어느 순간 그것을 바라볼 때 눈앞에 보이는 형체가 아닌 사라지고 난 이면을 보는 것을 뜻한다. 이는 그가 살아 있지만 드러난 삶의 의미가 아닌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관념을 지닌 구름을 바라보고 있음을 독자는 느끼게 된다. 



이처럼 『구름은 바람 위에 있어』는 한 이미지가 한 인간의 생애와 사유를 어떻게 변주하는지를 증명한다. 구름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자유와 고독, 방랑과 화해가 겹쳐 있는 거울이며, 감각적 관찰에서 해석과 성찰로 이어지는 모든 변화를 품고 있다. 그가 평생 구름을 통해 길어 올린 통찰은 독자로 하여금 하늘을 바라보는 일을 곧 자기 삶을 들여다보는 일로 전환시킨다. 단순히 곁에 있는 존재가 아닌 인간의 삶과 의미를 같이 하는 존재로의 인식 전환을.



결국 이 책은 발췌집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감각에서 사유로, 찬미에서 관조로 이어지는 그의 관찰은 구름을 따라 흘러가면서 인간과 세계의 무상함을 동시에 포착한다. 페이지를 덮은 후에도 독자는 자연스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게 되고, 변화하는 구름 속에서 자신의 내면과 시간을 조용히 재배치하며 삶의 속도와 방향을 다시 성찰하는 깊고 오래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여운은 잠시의 감탄을 넘어서 일상의 사소한 순간까지 스며들어 걷는 길과 바라보는 풍경, 스스로의 생각까지 새로운 빛으로 비추게 만든다.



구름이 건네는 무상과 자유를 그리는 헤르만 헤세의 『구름은 바람 위에 있어』는 결국 한 인간의 삶과 사유가 구름이라는 이미지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기록이다. 헤세가 평생 하늘을 올려다보며 발견한 자유와 무상, 그리고 존재의 투명한 진실은 독자에게도 자기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조용한 힘으로 남는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이어지는 그 고요한 시선이야말로 이 책이 남기는 가장 큰 선물이다. 소란스러운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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